알파(Α)와 오메가(Ω) 되신 하나님 (요한계시록 1:4~8)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오늘 이 시간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면서, 진실한 믿음으로 우리 모두의 심령 속에 영접하기를 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주위의 시계를 보면, 언제나 현재의 시각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의 삶은 항상 현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에게 허락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으며, 또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들의 삶은 ‘모래시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을 묵상하는 성도들에게는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의미 있는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인간들 모두에게 이미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마지막 때를 아셨기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하여 매 순간순간마다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모래시계와 같은 저와 여러분들의 육신의 삶에 있어서 모래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필경 그들은 성경의 말씀을 오도하는 이단들이나, 사이비 교주들, 또는 거짓말을 난무하여 믿음의 성도들을 유혹케 하는 마귀, 사단의 하수인들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만약에 오늘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이 육신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무슨 마음으로 준비들을 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죽음과 함께 모두가 사라져버릴 이 육신의 세상의 것들을 채우는데 급급해하며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육신의 세상을 떠날지라도 영원한 천국에 준비되어 있는 하늘의 소망을 둔 본향의 삶을 준비하시겠습니까?
그동안 성도 여러분들뿐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여러모로 협조해주신 덕분에 그동안 제가 무의탁 노인들을 대상으로 간간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수없이 많은 분들의 임종을 지켜본 목사 중에 한 사람이라고 자부를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살아생전에 제대로 된 병원에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가족도 없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가운데 쓸쓸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사실은 마음이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마지막 순간에 그동안에 제가 간혹 찾아뵙거나, 우리 교회에 모셔서 협소한 대접을 했던 것이 고마워서인지는 몰라도 바짝 마른 얼굴로 가물가물한 눈에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렇게 마지막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저도 죽으면 아픈 것도 없고, 슬픈 것도 없고 고생할 것도 없는 천국에 갈 수 있지요?’라고 말입니다. 그 말씀의 뜻은 비록 그분들이 어쩌다가 한 번씩 행사 때가 되면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예배에 참석하신 후에 빈약한 음식이었지만, 맛있게 잡수시고 가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그분들이 단지 음식만을 드시러 오신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동안 간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구원의 목적과 천국에 대해 주로 전했던 요한계시록 21장 4절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형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보다 그분들이 더 천국을 소망하며 그리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하며 눈을 감으실 때면, 오히려 목사인 제가 그분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왜 갑자기 이런 설교를 하느냐하면, 우리 김연자 권사님의 부탁으로 얼마 전부터 시간이 나는 데로 원자력병원에 입원해 있는 말기 간암환자인 모 유명 인사의 병문안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분을 상대로 살아계신 주님을 영접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면서 저에게 주어진 사명 감당에 최선의 노력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부터 불신앙을 가지고 살아온 분으로서 워낙이 성격과 심령이 완고한 분이라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분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저는 그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병원에 수많은 환자들 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각종 암병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이 육신의 세상에 미련을 두고서 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는 분들까지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두려움에 떨면서 그동안 믿어 왔던 하늘에 대한 소망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며,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장에 죽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이 육신의 세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만은 그들의 모습들을 보면, 모든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믿음보다 세상의 기술과 능력에 의지하려는 마음들이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믿음을 가진 어떤 환자가족들 중에는 교회에서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병문안을 와서 쾌유를 기원하는 예배를 드리며 위로를 해보지만, 이를 형식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주 찾아오는 것도 귀찮아하는 가족들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오늘날 성경의 말씀대로 여러 가지 징조들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있어서 오늘부터 몇 주간은 요한계시록의 본질에 대해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입각하여 해석해보고자 하오니 많은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 중 맨 마지막 책이면서도 가장 적게 읽혀지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종말에 반드시 일어날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면서 종말 성도들이 제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Irony)한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육신의 삶은 말세의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토대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믿음의 성도라고 한다면, 성경의 여러 예언들이 제시하고 있는 종말의 징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시간이 바로 종말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한두 가지의 징조만을 주장하며 그런 것들에 비유를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성경의 말씀대로 오늘날 이 육신의 세상 모든 상황들이 그렇게 진행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번거로울지 몰라도 그 증거의 말씀을 반드시 살펴보고 오늘날 이 세상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속도(速度)의 증가와 지식의 발달입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다니엘서 12장 4절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아멘!
둘째로, 성적(性的)으로 인한 타락입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7장 1절로 4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아멘!
셋째로, 음악(音樂)으로 인한 타락입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8장 22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 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아멘!
넷째로, 난리(亂離)와 난리의 소문입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24장 6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아멘!
다섯째로, 불법이 성합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24장 12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아멘!
여섯째로, 쾌락을 즐깁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유다서 1장 7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아멘!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오늘날 이 육신의 세상에서는 실질적으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그리고 사업장에서나, 정치적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연관되어 있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이러한 보편적인 사회적 징조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어디 그것들뿐입니까? 첫째로, 처처에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24장 7절로 8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아멘!
둘째로, 공해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8장 8절로 11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아멘!
셋째로, 이상기온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6장 8절로 9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아멘!
넷째로, 천체계의 이상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누가복음 21장 25절로 26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아멘!
다섯째로, 오존층의 파괴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그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24장 29절과 요한 계시록 6장 12절로 14절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아멘! 다음은 요한 계시록 6장 12절로 14절입니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아멘!
이처럼 자연계의 징조는 더 이상의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정치적 징조와 종교적 징조, 그리고 군사적 징조와 경제적 징조를 열거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인 요한계시록 1장 8절을 보면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알파(Α)와 오메가(Ω)라는 말은 헬라어의 처음 문자와 마지막 문자를 말합니다.
때문에 이 단어는 하나님의 전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 쓰여진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이자 나중이심으로서 즉, 창조자이시며 완성자이시다. 라는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활용하고 있는 영어의 철자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알파벳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헬라어의 첫 번째 두 글자인 ‘알파’와 마지막 ‘베타’라는 말을 조합해서 만든 단어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믿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즉,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란 말씀입니다. 믿으십니까?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계시를 받을 그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그 당시 황제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로서 AD 81년부터 AD 96년경까지 15년 동안 로마를 통치하였습니다.
또한, 그 당시 로마제국은 황제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신전을 세우고 황제를 숭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Dominus et Deus(주님과 하나님)라고 부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이러한 종교적인 박해 때문에 밧모라고 하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내일이란 삶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토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어떻게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우리 주님께서는 가르쳐주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서는 요한을 통하여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서 이를 체험한 요한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영광스러운 주님을 소아시아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시간의 주인이시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이러한 주님은 그저 존재만 하는 분이 아니시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던 하늘의 비밀을 깨달아 보는 귀한 예배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를 각종 죄악으로부터 해방시키셨던 주님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요한계시록 1장 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아멘!
그 당시 사도 요한은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어 있었기에 완전한 자유의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키 위하여 ‘Exodus’ 즉, 해방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가장 큰 사건을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Exodus’ 출애굽 사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 때문에 그들이 그 지긋지긋한 애굽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 강점 36년 만인 1945년 8월 15일 감격의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바로 온갖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망의 올무에서 건져주시어 해방 받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총이란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몇 년 전에 TV에서 방영된 ‘LA 뒷골목의 별난 목사’라는 인간극장이 방영되었습니다. 당시 LA에 있는 많은 한인 교민들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꾸고 고국을 떠나서 그곳까지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다 보니 먹고 살기도 힘들고 돈을 벌어야 하기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그들이 어려서부터 마약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있어서 그들을 돌보는 선교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나눔 선교회’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영호라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 목사님도 과거에는 마약에 빠져 살았으며, 중국 갱단의 부두목까지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분이 마약에서 해방되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지나온 아프고 슬픈 과거가 있었기에 마약에 빠진 아이들을 그 마약에서 건지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선교회에 들어와서 마약을 끊고 새롭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70~80%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을 지나도 마약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여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약에서 해방을 받는 다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하물며 마귀가 주는 마약인 각종 죄악에서 해방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종 죄악에서의 해방이라고 하는 것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처럼 집단적으로 해방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일로서 오직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일대일의 일입니다. 때문에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연 상태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상태는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성이 회복되지 못해서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속으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같은 경우는 그 어떤 암병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이러한 죄악 가운데서 해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죄악에서 해방된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고 그런 타락한 육신의 생활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다시금 애굽을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누구를 통하여 어떻게 사망의 올무에서 해방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죽도록 사랑하사 당신의 피 값으로 우리 모두를 죄악 가운데서 해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하지만 한때는, 저와 여러분들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저와 여러분 모두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서 그 사랑의 피로 오늘날 우리들 모두가 죄악의 올무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본문 5절 하반부에서 “해방하시고”라는 동사는 과거 시제를 뜻합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모든 죄악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는 뜻으로서 이것은 과거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단번에 해방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사”라는 말씀은 현재 시제를 뜻합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그 사랑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왜 주님께서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사건이야말로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살아가기 시작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평생 갚아야 할 모든 빚을 청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온전한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롭다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보혈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는 사람처럼 인정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들 모두가 그동안의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은 온전한 믿음으로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 모든 죄 값을 탕감 받았지만,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피의 댓가를 치르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사 당신의 거룩하신 그 피로 과거에 우리들을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런데도 아직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감사와 찬송이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은총에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로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그동안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된 것은 세상의 감옥에서 나온 것이나, 세상에서의 사회적인 지위를 되찾은 것만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또한, 이 육신의 삶속에서 제 아무리 값지고 귀한 것일지라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거나 감히 비교조차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 육신의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사는 사람일지라도 아직까지도 각종 죄악에서 해방 받지 못했다면, 그들이 가장 불행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육신의 세상에서 흔해 빠진 그런 것 하나 누리지 못하고, 비록 핍박을 받고 환란을 당하여도 죄악에서 해방된 믿음의 성도들은 항상 즐거워하며 기뻐서 뛸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으로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후에도 넘치도록 부어지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항상 오늘의 삶을 살아갈 때, 언제 어느 때 주님을 영접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믿음으로 하늘의 소망만을 기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다음 주에도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저와 여러분들은 항상 재림의 주님을 사모하면서, 준비된 믿음으로 이 육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
윤요셉/ 벧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