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4주일 나해 강론
죽림굴 성지에서 만난 부산교구 김영곤 시몬 신부님!
지난 목요일(7월 4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 2번지에 있는 죽림굴 성지를 다녀왔다. 이 죽림굴은 굴 주변에 산죽이 많아 “죽림굴”이라 불려지고 있는데 기해박해 (1839) 당시 천주교 교우에 대해서는 인정 사정 없이 잔혹했던 관아의 손길을 피해 더욱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원했던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움막을 짓고 토기와 목기를 만들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생활의 굳은 의지를 지켜가던 순교자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좁은 입구 때문에 바같에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굴 안쪽은 넓어 150여명까지 안에 들어가 지낼 수 있는 천연석굴이다. 이곳은 대재공소라고 했는데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의 간월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 간월산 일대의 예 신자촌인 간월공소에서 왕방재라는 고개를 넘어 왕래한 박해시대의 피난처이다. 이 석굴공소는 대나무로 덮혀 있어서 '죽림굴'이라고도 불렸다. 폭 7m, 높이 1.2m 규모지만 입구가 낮아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은신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1840년부터 1860 년 사이에 샤스땅 신부와 다블뤼 주교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고 특히 최양업 신부는 경신박해(1860) 때 이곳에서 약 3개월간 은신하며 교우들과 함께 생쌀을 먹으며 박해를 피했고, 미사를 집전하며 스승 리브와 신부와 로그레주아 신부에게 보낸 마지막 서한(1860년 9월 3일자)을 쓰셨다.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 세 분의 복자도 이곳에 머물렀으며 김선이 아가다도 이곳에서 최양업 신부를 도우며 지냈다고 한다. 경신박해, 병인박해, 무진박해 등 계속되는 박해로 인해 결국 교우들은 체포되고 흩어져서 죽림골 대재공소는 문을 닫고 만다.
이 죽림굴은 지난 1986년 언양본당 신부로 있던 김영곤 시몬 신부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다. 1986년 11월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기도 드렸던 곳으로 보이는 석굴을 알고 있다.”는 한 본당 신자의 제보를 기초로 세 차례에 걸쳐 간월산 일대를 탐사, 이 굴을 고증한 끝에 이 굴이 최양업 신부가 1860년 9월 3일에 작성한 사목서한에 나오는 죽림굴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1988년 10월16일자 가톨릭 신문에 보도되어 “한국판 ‘카타콤베’ 발견”이란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성지를 발굴한 분이 바로 김영곤 신부인데 그는 1953년생으로 지난 1984년 사제 서품되어 여러 곳에서 사목생활을 하다가 3년 전에 은퇴하여 지금은 이곳에 10여km 이상 떨어진 곳에 머무르며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이곳 죽림굴 좁은 곳에서 참석자의 숫자와 상관없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3.4km나 되는 높은 곳을 매주 걸어서 올라와 미사를 하고 내려간다고 한다. 그는 이 일이 초대 교회 시절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려 했던 그 순교신심을 되새기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를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셨다고 말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힘이 그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기쁘게 그의 약점을 자랑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이 세 분들의 공통점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겪지 않았을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고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광으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먼저 에제키엘에게 내린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보자.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4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에제 2,3~4)
사람들은 에제키엘을 반대하고 아합왕은 그를 죽이기까지 획책한다. 그래서 호렙산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혹독한 고난을 받고 고독과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도 바오로는 또 어떠한가?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다. (2고린 12,7~9)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만나 회개한 이후 그는 과거의 행적 때문에 같은 사도들이나 사람들로부터 계속 의심을 사고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온갖 고난을 당한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으나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일가친척들로부터도 미쳤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고 결국은 십자가형에 처해져 비참하게 죽게 된다.
죽림굴 성지를 최초로 발굴했던 김영곤 시몬 신부의 삶에서 보듯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남모르는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언자들이다. 지금 당장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버림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고 높이 들려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고통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산다면 그건 어쩌면 주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고문을 받고 비인간적인 상태에 있는데 나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그건 진정한 신앙인의 길이 아닐 것이다.
오늘 성경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어떻게 하면 주님의 십자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