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동 산악회
번개산행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1박2일)
산행지: 설악산 울산바위 (서봉)
산행코스: 미시령촬영휴게소-폭포민박-말굽폭포-전망바위-석문-서봉 (원점회귀)
참석인원: 김옥현, 박정선, 양미경, 신동일 (이상4명/존칭생략)
산행 목적지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산행 그 자체다.
치열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 가 기다린다.
유래없는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며 이 여름 언제 가나 싶었는데.
등짐지고 산봉우리 오르듯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 숨막히던 계절도 그렇게 지나간다.
이제 여름도 가을에 자리를 물려줄 채비를 하고 있는건 아닐런지.
조석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도 계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다시 도진 "속초 앓이"
다시 말하면 "설악 앓이" 가 맞다.
원없이 걸어도 뭔가 허전한 느낌.
그 매력에 이끌려 또 다시 박배낭을 꾸린다.
기습폭우.
설악 출정을 앞두고 장대같은 비가 퍼붓는다.
금요일 (1무1박2일) 계획했던 오색-끝청능선 탐방 일정을 접는다.
대체산행지로 (1박2일) 울산바위 서봉으로 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토요일 오전 8시 강변터미널 집결.
양미경님 자가용 배려 덕분에 편안하게 이동하는 설악 출정이다.
휴가철 막바지 고속도로 차량정체가 극심하다.
미시령를 넘어 울산바위 촬영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다.
주차장엔 이미 여러대의 차가 쳐박혀 있다.
우리도 안전한 곳에 주차 후 산행 채비를 갖춘다.
계곡길 따라 울산바위 서봉의 품에 들다.
미시령휴게소를 들머리로 말굽폭포까지 약 3㎞.
폭포민박 전 좌측 계곡을 횡단하면 학사평으로 이어지는 선명한 산길이 보인다.
짙은 숲, 청아한 물소리, 맑은 새소리가 어우러진 평범한 숲길이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도 새들은 운다.
맑은날 지저귀는 새소리는 자연스럽다.
이렇게 비 오는 날 맑은 날을 염원하는 소리일까.
청아한 새 소리를 들으며 희망의 비결을 배운다.
계곡을 끼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 따라 말굽폭포까지 2시간이면 족하다.
미시령 도로를 질주하는 바이크 굉음만 간간히 들릴 뿐 전혀 심심하지 않은 산행이다.
기왕이면 길게 걷고싶은 마음이 드는 긴장감 없는 산길이다.
부드러운 오르내림이 몸을 다독이니 일상에 쌓인 피로도 가루가 되어 부서질 수 밖에...
말굽폭포 금줄을 넘는다.
고도를 꾸준히 높여야 하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길은 왼쪽으로 급하게 꺽이고 마지막 계곡을 횡단하면 돌탑이 보인다.
이곳을 통해 좌측 지능선 따라 석문까지는 약 2㎞.
초입부터 가풀막 등로가 서봉 오름길의 험준함을 암시한다.
거친 등로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높이로 바짝 다가오고.
고개를 숙이면 부딪칠 듯 걸음을 무디게 만든다.
험준한 길에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잠시 숨을 고르며 오름길을 뒤돌아 본다.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등골능선이 운무에 휘감긴 채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서봉은 쉽게 자신의 속살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등짐 지고.약 4시간 소요끝에 전망바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운무속에 침잠했던 북설악 능선들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그려낸다.
구름이 넘나드는 미시령.
서봉을 휘감고 도는 운해와 암봉의 장쾌한 모습에서 위로를 받는다.
몇 년 전 달마봉 무박산행에 스치듯 지났던 석문과 마주한다.
달마봉과 황철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로 울산바위 서봉 시작점이 되는 지점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힘들게 험준한 산을 오르냐고...
산꾼은 말한다.
또 다른 차원의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친근하다 못해 진부한 일상도 산을 타면 다르게 보인다.
바로 그 순간 산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한다.
설악의 존재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을 뛰어넘어 다른 눈 높이로 산을 바라보게 만든다.
석문을 뒤로하고 서봉에 오르니 사방이 하얀 구름바다.
마치 선계에 올라선 듯.
설악 풍경이 거침없다.
봉우리마다 구름에 덮이고 구름위에 솟구친 대청봉의 풍경이 장관이다.
안개 속에 잠겨있는 설악의 골짝은 무해로 변하니.
구름의 흐름이 선경을 방불케 해 그 조화는 외설악 제일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멀리 공룡능선을 엿본다.
송곳니 같은 날카로운 암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존봉" 이 구름속에 우뚝하다.
그 주변으로 험준한 봉우리들이 경쟁하듯 솟구쳐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뒤로는 설악 최고봉을 이루는 "대청"이 화채봉으로 이어진 화채능선이 아련하다.
속초앞 동해바다 풍광이 한눈에 펼쳐지는 서봉에 박지를 구축한다.
시원한 암봉 위에 자리를 마련하고 저녁 만찬을 즐긴다.
노을지는 풍경.
서봉에서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
노을은 짧아서 아름답다.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저무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하루산행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초록병 만한것도 없다.
조망이 툭 터지는 암봉에 앉아 여유를 마신다.
산행에 타이밍이 중요하듯 한잔의 여유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어도 설악에서는 말이다.
이슬로 촉촉한 한여름 밤의 추억.
서봉의 저녁은 감미로웠다.
속초의 야경과 바다의 원초적인 여백이 잊기 어려운 풍경을 평범하게 그려낸다.
설악에 취하고 산 기운에 취하고.
무리해서일까.
달빛에 젖어가는 서봉의 여운을 달래며 다들 심해로 가라앉듯 깊은 잠에 빠진다.
서봉 이마에 부딪히는여명에 눈을 뜬다.
울산바위 서봉 턱밑에서 비박을 하며.
여름바람이 실어오는 동해의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한껏 들이킨다.
암봉위로 반짝이는 별빛이 밝게 부서지는 한여름 밤의 꿈.
오늘 하루는 동료의 땀냄새나 코를 고는 숨소리 대신.
바람에 실려온 싱그로운 밤공기를 옆에 두고 편안한 꿈을 꾼다.
잊을 수 없는 한여름 밤의 꿈을...
장엄한 설악의 일출.
동해바다 일출을 보면서 즐기는 여유로운 아침.
서봉은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을 오르지 않고도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웅장한 설악이.
그것도 힘차게 솟구친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한줄로 보여지지는 유려한 곡선까지...
올라가야 보이는 것들.
설악 울산바위 서봉 이야기.
다시 선계에서 속세로.
산을 내려선다.
폭포민박 시원한 계곡 알탕이 하루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과열되고 과부하 걸린 일상을 리셋하기에 하루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서봉에서의 하룻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인양 머리속을 아득하게 만든다.
꿈결같은 설악.
동행길 열어주신 악우님들 한결같은 사랑과 배려에 감사드린다.
다음 일정에서 함박웃음으로 다시 뵙길 ^^
부족한 후기글 몇장의 순간포착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독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