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4.
{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
4월13일. 춘천푸른산악회. 제162차 정기산행.
명산 영악의 신령스런 영산
팔 공 산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남으로 힘차게 뻗어 낙동강과 금호 강이 만나는 곳에 우뚝 높이 솟아
병풍처럼 둘러쳐진 팔공산은 예부터 우리나라의 명산영악(名山靈岳)으로 손꼽혀 왔다.
옛사람들은 이 산세가 삼존불, 즉 세 부처님의 형상이라 하여 신령스러운 영산으로 믿어왔다.
대구광역시의 북동쪽을 장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팔공산(八空山·1192.9m)은 대구와 경북5개 군에 걸쳐있으며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 바위절벽을 이룬 능선 그리고 깊은 골짜기와 울창한 수림 등 명산이 갖춰야 할 덕목을 고루 지녔다.
최정상인 비로봉(일명 제왕봉)에서 남동쪽으로 동봉(일명 미타봉)을 거쳐 염불봉 - 인봉 - 노적봉 - 관봉(갓바위·850m) 연봉을 뻗고, 서로는 서봉(일명 삼성봉)에서 한티 재와 가산(901.6m)을 거쳐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내려앉기까지 30㎞가 넘는 길이로 활개를 펼치는 사이 변화무쌍한 산세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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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모습을 띠고 돈을 긁어모으는 마이다스의 손-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冠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또 머리에 마치 갓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기에 그렇게도 부른다. 관봉은 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과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 봉우리로서 해발 850m의 고봉(高峰)이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팔공산의 서남쪽이 모두 두루 조망(眺望)된다.
이 부처님은 화강암 한 돌로 만든 것인데, 몸뿐만 아니라 대좌도 역시 한 돌로 되어 있다. 불상의 광배(光背)는 없지만 뒤쪽에 마치 병풍을 친 듯 기다랗게 바위가 둘러져 있어 혹시 이 자연 바위를 광배로 삼았기 때문에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그 위로 두께 15cm정도의 흡사 갓 모양을 한 얇은 바위가 얹혀졌다. 바위 아랫면에는 육계에 맞닿는 곳에 둥근 구멍을 파서 육계에 맞도록 하였으며, 윗면 가운데는 같은 식의 둥근 구명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 주위에 화판(花瓣)을 조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인공적 조각임을 느끼게 한다. 얼굴은 양쪽 볼이 두툼하게 되어 있는 등 비교적 둥글고 풍만한 편이다. 입술은 굳게 다물어 대체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조화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마 한 가운데는 백호(白毫)가 둥글게 솟았고, 오뚝한 코 아래의 인중도 두드러지고 있다. 두 귀는 길게 양쪽 어깨에까지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두 어깨는 반듯하고 넓어 당당한 신체와 잘 어울리고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비슷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이 수인은 석굴암(石窟庵) 본존불의 그것과 양식상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왼쪽 발 부근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약합(藥盒)을 올려놓았다.
불상에 표현된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인데 두 팔을 거쳐 두 무릎을 덮고 대좌 아래로 흘러내려 있으며, 불의의 옷 주름을 표현한 선각(線刻)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가슴 앞에는 속옷의 일종인 승가리(僧伽梨) 혹은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보인다. 불상의 뒷면에는 옷의 표현이 없고 그냥 평면으로 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은 편이다. 대좌 윗부분에는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이 엎고 있는데 이 같은 대좌 형식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이것은 팔공산 부근에 있는 군위(裙衣)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의 대좌형식과도 유사하다.
이 갓바위 부처님은 절에 전하는 바로는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선덕왕 7)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현재 보물 제 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의 학술상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 이름에서 굳이 약사불인 것을 밝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이 부처님의 명칭에 대해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異論)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왼손에 보면 약합이 있는 것이 뚜렷하다. 또 옛날부터 이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약사여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근거 없이 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어쨌든 손위의 약합이 분명한 이상 앞으로는 약사여래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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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소개에서 아래의 구절을 간과해 버렸다.
그래서 막상 그 불상을 목격하였을 때는 샘의 선입관이 여지없이 무너져 나리고 말았다.
샘은 갓바위 부처가 그리 높지 않은 산에 호젓하게 홀로 앉아 있을 것으로 상상했다.
사진으로 본 모습은 항상 외들어진 곳에 별 볼품없는 좌상일 것 같았다.
그런데 갓바위 부처는 규모가 우람했고, 그 두상이 아주 잘 생겼다.
그것은 연민을 자아낼 만큼 미숙한 장인의 솜씨를 감출 수 없는 작품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을 안도시킬 만큼 빼어난 얼굴인데, 또한 중생의 의존심을 자아낼 만큼 부리부리 함마저 눈매에서 풍기고 있었다.
샘의 선입견이 무너지는 바람에 실망을 자아낸 것은 아래 글이다.
샘은 그곳을 탐방하기 전에 아랫글 읽기를 간과했다.
[현재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약 80평가량 널찍하게 터가 닦였고, 바닥에 돌이 깔리고 주위에는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또 그와 함께 선본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좀 더 넓혀지고 계단과 철제 난간이 많이 보완되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한결 기도드리기 편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위 위 부처님 바로 앞에는 최근에 화강암으로 만든 단(壇)과 돌 거북, 그리고 양쪽에 석등을 놓았다.]
거기서 헌금 헌물하고 수십 명이 엎드려 애원하는 자세와 동작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샘으로서는, 그 기복신앙에 지나지 못하는 군중들의 헛된 소비(낭비) 행태를 차라리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아 주어야 했다.
일요일이라 그곳을 찾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불교도인지 상춘객인지 분간치 못하게 혼합돼 있었다.
더구나 무슨 고시 철이나 입시시험 기일이 임박하면 합격 기원 불공을 드리려 산사를 찾는 발길이 아주 많아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경이라 한다.
그러니 갓바위는 부처의 모습을 띠고 돈을 긁어모으는 마이다스의 손이 된 것이렷다.
하긴 대중의 기복 행위들이야 어느 편을 보아도 마찬가지, 그래서 샘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그런 실태인 고로, 샘은 차라리 부처의 가피를 입으려는 군중심리, 그 신앙심의 ‘그림자’자가 띠고 있는 군중의 위력과 의미를 속으로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군중의 위력’이란 그들이 느닷없이 사막에 큰 모래언덕을 쌓아 놓는 폭풍과 같은 힘을 뜻한다.
첫댓글 가촌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계신곳에 사람 마음만이 존재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부처님'은 항상 無心인 고로 그 앞에는 人心이 그득하게 마련린가 보군요. 샘은 사찰이나 불상, 그리고 巫俗 등을 문화재로 봅니다.
가촌님의 후기글을 읽으면서 혼자 웃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요약하면, 네 제를 네가 알렸다? 라고 하면 되나요....... 아무튼 저도 이번에 애원하는 동작을 세번씩이나, 취했습니다.. 지금껏 산을 다니면서 많은 절들을 무심히 지나쳐 다녔지만,,,, 사실은 샘물님 말씀이 계셨기에, 처음으로 등산화 끈을 풀렀습니다.. 한번 업드리고 일어나려니, 주변 사람들 보는 눈이 너무 많고, 짝수로는 안하는것 같아 세번을,,,,,,,, 그런데, 그것이 운동이라도 됐음인지, 계단을 내려옴에 무릎이 매우 편했습니다.... 아마도 기도발의 한 종류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머루'는 언제 보아도 순진한 소년 같아요. 기도발을 잘 받는 모양이니 처가의 쇠말뚝에 절을 해보시오. 그러면 한층 더 내조가 도타워서 가화만사성이 저절로 이루어질 거요.
處處佛像 處處佛心 아닐까요? 저는 개신교의 십일조나 불전함의 불전들로 기도하는 중생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는 보상으로 좀 더 어려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불심으로 보였어요^^ 불전이나 십일조를 꼭 내어야 기도가 이루어 지는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지니까요...
샘이 山友의 한 사람으로서 갓바위 부처의 슬하까지 갔던 것도 거기서 기원 드리는 佛信徒들의 처치와 다른 차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샘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외부(타인들)에서 찾아본 것이지요.
수백계단 오르고 정성껏 머리 무릎 조아리면 그것으로 佛心은 충분할 터인데, 온누리에 퍼져야할 자비는 큰佛錢 거두고자 欌 만들어 등잔불 밝히고 비석에 흉물스레 이름석자 새겨놓아 관봉에 올라도 마음이 정갈해 지지 않으니 불전에 과욕으로 언제 중생을 구도할려는지....
사람은 남의 말을 따라 행동하기 보다 자기가 경험한 정서에 따라 더욱 잘 행동하는 고로비석에 성명을 새겨 넣어주고 돈을 받는 상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바가 깊습니다. 이름이 영험한 부처님 앞 비석에 새겨지고 등불이 밝혀진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보시를 받는다는 실감을 체험시켰을 테지요. 부처는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라고 말했건만 그것이 들릴 리 없고, 중의 소리만 들렸을 것입니다. 심청이의 아버지처럼........
저도 지난번 한국갓을때 절에서 행하는일이 너무 상업적인모습을 보고 눈을 찌그린적이 있습니다 . 가촌님의 글 많은사람들에게 생각할수있는 기회를 주네요 .후기글 잘보고 갑니다 .
실은 절에서 펼치는 행사는 양반다워요. 다른 종교에서는 더하고, 정치꾼은 극단적이지요. 아무튼 절 사람들은 나치스, 히틀러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어요. 달라이라마도 절에서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