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둥 이윤규
제목; 나의 데스티니
주제문; 남을 섬기는 일이 나의 데스티니이다.
(제목과 주제문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글쓰기 강의에서 배웠듯이 주제문은 내가 쓸 감상문의 방향을 잡아준답니다. 꼭 미리 생각하고 쓰도록 합시다)
제목을 읽고 나서 “데스티니? 운명? 내가 필요한 건데??”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요즘 삶의 중심에 ‘나’ 말고 ‘주님,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이시다. 사람들의 도발에도 안 넘어가고, ‘사랑’이라는 이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참으신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주제는 사랑이다. 다들 아는 구절이다. 내가 주님을 중심으로 세우기 전까지는 ‘그렇구나’라며 지나쳤는데 이제는 ‘아, 맞네’, ‘맞는 말이었네’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기, 질투 부분이 삶에 적용하기 힘든 것 같다. (왜, 어떤 부분이 삶에 적용하기 어려운지 구체적인 예를 들면 더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저자가 S형제에게 3천 달러를 준 것이다. 자기는 3천 달러를 주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망설이고 있었고 있었는데 기도를 통해 주님은 주라고 한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죠?) 이 부분이 내 인생인 것 같다. 나도 돈이 없는데 사람들에게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사주니까 부모님과 친구들은 나보고 뭐라 한다. 그래도 나는 기쁘다. 이것이 나의 ‘데스티니’인 것이다. 앞으로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마음에 새기며 살 것이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산다는 불기둥님을 응원합니다. 저자가 기도하고 응답받은 마음으로 자기 학비를 다른 형제에게 드렸을 때 하나님은 저자인 고성준 목사님의 생활도 책임져 주셨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훨씬 더 크게 갚아주시는 분이랍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우리는 선을 행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죠.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건 하나님의 뜻이니까요. ‘데스티니’가 하나님의 계획에 동행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기억하고 앞으로도 불기둥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바르게 순종하길 기도합니다.
기뻐하는 김담희
제목; 감상문의 제목을 고민해서 쓰도록 합니다.
주제; 존재 자체가 데스티니이다.
오늘 글쓰기 강의를 듣고, 글쓰기와 더 친해지리라 다짐했는데 이 글이 그 다짐의 첫번째 글이 되었다. 이번주 책은 ‘나의 데스트니 찾기’였다. 맡은 부분 요약을 못‸해서 수업 시간에 책을 읽고 요약을 했는데 요약을 할‸때 내가 읽은 글을 다시 읽으면서 정리하면서 내용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인류의 프로토타입인 아담과 보잘‸것 없는 것 같은 없어 보이는 아벨의 데스티니를 보며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다스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미 있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존재‸자체가 본질적인 데스티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사람들도 존재 자체가 그들의 데스티니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을 받기만 하는 데스티니가 있다면 사랑을 주는 데스티니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 에 나온 뇌성마비 환자 주하의 이야기를 자세히 쓰면서 이 내용을 설명하면 감상문을 읽는 사람이 좀 더 이해가 빠르겠죠?)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의 데스티니가 있듯, 나도 나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실행하고 싶다.
오늘 과제를 못‸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해 후회가 되고, 앞으로 시간 관리와 과제에 더 신경을‸써야겠다.
짧은 시간에 책을 읽고 잘 요약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책을 찬찬히 읽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의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수업에 참석하는데 그 시간이 좀 더 값지게 준비되길 바랍니다. 기뻐하는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계획에 동행하려면 먼저 잠잠히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 유익한 수업을 위해 애써야 하는 게 필요하겠죠? 기뻐하는님의 다짐이 글로만 보이지 않고 삶으로도 드러나길 기대합니다. 수고했습니다.
긍정적인 방수빈
제목; 내 안의 살롬
주제문; 나의 살롬과 데스티니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주제문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살롬, 즉 평강이라는 뜻이다. 나는 내 안의 살롬이 가득하였을까? 이번 책을 통해 생각해보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살롬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번 책을 통해 가장 인상이 깊고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었다. 우리가 삶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기 위해 나를 되돌아보며 생각하는데 그때에 우리는 내가 점차 더욱 낮은 사람처럼 보여지게 되고 보이고 불안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가져왔다. (또는 ‘불러일으켰다’로 써도 좋은데 어미의 시제를 통일하세요) 그러나 이러한 우리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그때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존재로 지어짐에 감동을 느꼈다. 지어졌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우리는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태초부터 이미 나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드심이 감사하였다. 그래서 데스티니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다.
삶을 살면서 내가 현실적으로 능력이 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보다 생존하기 위한 일을 하고 그러한 일을 하며 점차 고통이 생겨난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과의 살롬이 깨지고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받은 존재이며 존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앞으로의 내가 현실 속에서 고통을 받더라도 우리는 용사이며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시기에 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내 안의 데스티니를 느끼는 이루어내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가끔은 불안과 열등감이 있었었고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잘 몰랐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 안의 데스티니와 살롬에 대해 살롬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큰 힘을 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것에 큰 감사를 느끼었다. 그래서 앞으로 내 안의 데스티니를 이뤄내며 하나님을 알고 내가 어떠한 존재임을 알며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성실하게 과제를 제출한 긍정적인님으로 말미암아 힘이 납니다. 우리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님이 쓴 대로 하나님을 계속 만나야 하는 첫째 이유이죠. 책을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와 찬양을 통해 늘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긍정적인님 되기를 바랍니다. 주제문은 감상문을 쓰기 전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기억하고 조금 더 고민하고 쓰기를 바랍니다. 불필요한 접속부사는 생략하는 게 좋습니다. 수고했어요.
배려하는 김예은
제목; 이번 일주일과 나의 벧엘
주제문; 연단의 시간들이 나를 하나님의 뜻으로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책에서 해주고 있었다. 이번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에 쉽게 대처하지 못했고,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그래서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갈급했고, 이번 한 주 열심히 기도하면서 겨우 버텨냈던 거 같다. 그랬기에 이번 주 도서는 내 마음에 더 가깝게 다가왔다.
야곱은 큰 위기 가운데 있을 때 벧엘의 언약을 맺게 되었다. 많은 경우 벧엘의 체험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간의 노력이 한계에 다다르는 때, 그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 열리고 벧엘이 열린다. 그래서 벧엘의 언약은 오갈 데 없는 인생 가운데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과 맺는 언약이다. 나에게 벧엘이 있을까? 야곱은 위기의 순간마다 그의 데스티니를 기억나게 해주는 벧엘로 돌아갔다. 이것이 야곱이 마지막까지 그의 데스티니를 경주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저자에게 벧엘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이 돌아가는 고향이며 버팀목이라고 했다. 나는 벧엘이 없는 사람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었으며, 인생의 버팀목이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주일을 보내며 그 벧엘이 세워진 것 같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정확한 표적이 보인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내 삶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계신다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사실은 한순간에 확 와닿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나만의 벧엘이 조금씩 세워져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2005년 겨울,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20년도 더 전에 저자가 하나님 앞에서 드렸던 헌신의 기도들을 기억나게 하셨다. 주를 위해 살겠다는 기도였다. 나 또한 지난 겨울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었다. 누군가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내가 되게 해달라는 야베스의 기도였다. 어떤 고통이 와도 감당하겠으니, 주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잠시 잊고 살았던 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스스로의 기도를 다시 기억해낼 수 있게 하셨다. 내가 잊었던 내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모두 기억하고 계셨다. 겨울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이번 일주일을 제외하고 돌아봤을 때, 최근 나의 삶은 굉장히 평탄했고, 내 마음은 나름대로 평안했다. 작년에 비해 훨씬 나아진 내 상황을 보면서 스스로 기뻐했고, 기뻐하며 어쩌면 내 무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잊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 대신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우상을 만들었다. 그 우상은 하나님보다 높은 위치에 가게 되었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도 속으로는 진짜 뜻을 숨기고 있었다. 어느새 내가 만든 우상은 내 삶의 전부가 되었고, 내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손으로 견고하게 만든 내 우상을 가져가셨다. 눈앞에서 우상이 부서지는 모습을 볼 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다. 우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내 잘못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우상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붙잡으려고 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해 스스로 굉장히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었다. 아직도 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그 뜻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려고 한다. 내가 포기하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려고 한다. 부족하고 연약한 내 힘이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연단의 시간이라 믿고, 스스로 잘못한 것들을 회개하며 더 성장할 나를 기대한다.
배려하는님의 감상문을 읽으며 기도하게 하시네요.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말씀이 배려하는님에게 실제로 다가왔군요. 무슨 일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더 가깝게 하는 시간이라는 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적절한 시간에 이 책을 읽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데스티니를 위해 벧엘과 브니엘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에 동감하며 앞으로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배려하는님을 축복합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