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11월 24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짙은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5km + 들머리 1.1km, 날머리 0.8km / 8시간 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 일요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923번 지방도-마전령-거르목산-910봉-장구령-906봉-무명봉-963.7봉-무명봉
장구목-안부-안부-전망대-안부-조망바위-안부-운달산-헬기장-1,068봉-석봉산
889봉-897봉-901봉-안부-855.5봉-조항령-도로-791봉-함몰지-안부-802봉-안부
806봉-활공랜드 전망대-활공랜드-스카이힐 천문대-새목재-쉼터-문경C.C갈림길
931봉-956봉-쉼터-단산-안부-754봉-석봉리 마을회관 갈림길-763봉-배넘이산 갈림길
배너미산-안부-신선대(선암산)-무명봉-임도-새터재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산북면, 호계면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4박 5일간 일본 여행을 갔다오고 나니 예전과는 달리 체력이 달리는지 많이 피곤하다.
토요일 저녁에는 사랑하는 진권아우의 딸래미 결혼식이 있는데 젊은것이 자기가 사는
수원이나 용인이라면 핑계거리 만들어서 안 가려고 했는데 결혼식을 우리집 코 앞에서 하는데
안 갈수도 없고...오랜만에 산이 아닌 결혼식장에 만나도 산꾼들은 반갑기만 하다.
같이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에와서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런 아침에 일어나 운달(영강)지맥 제2구간을 가기위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들머리에 도착하다(09:30)
06시 50분에 양재역에서 버스에 올라 잠에 빠진다
버스는 경부.영동 고속도로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를 지나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잠시 후 문경I.C를 빠져 나오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온 천지가 뿌옇다.
문경읍내를 빠져 나와 34번 국도를 따라서 가는데 경치가 빼어나 경북 제1경으로 불리는
진남교반을 지나 923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 젤 끄트머리에 도착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차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하고 워밍업을 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한다
이 비포장도로가 923번 지방도로이다.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에서 문경읍 갈평리로 넘어가는 길인데 포장이 되었다면
갈평리에서 오늘의 들머리인 마전령으로 접근하면 굉장히 거리가 가까운데
비포장 도로라서 이곳 가좌리로 오는 바람에 문경읍에서 30km이상을 돌아온 셈이다
요즘에는 동네 마을길도 다 포장이 되어 있는데 지방도가 포장이 안되었다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923번 지방도를 계속 따라서 올라간다
2주전에 걸었던 국사봉도 한번 올려다 본다
동료산꾼 12명중에 11명은 진작에 도망(?)을 가버리고 오늘도 조여사님과 나만 꼴찌이다
조금전에 걸었던 길을 한번 뒤돌아 본다.
마전령(馬轉嶺:670m:10:00)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에서 산북면 가좌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도상에는 923번 지방도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이 고개는 요즘엔 지방도로서는 보기드문 비포장 도로이다.
지명의 유래는 이 고개를 넘던 소금실은 말이 굴렀다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순수한
우리말로 ‘말구리재’라고 한다.
하늘재(서울) 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할 산북에서 문경을 연결하는 옛 고개중 하나이다
말구리 재는 말구리’와 ‘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말구리는 ‘큰 골짜기’의 뜻이고 재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로 해석할 수 있다.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는 ‘말골재’라고도 한다.
또는, ‘말이 굴러 떨어진 골짜기’, ‘지형이 말의 허리처럼 생긴 골짜기’,
‘지형이 말의 아가리와 같은 골짜기’ 등과 같은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기도 하나
이는 말골이나 말구리의 말을 ‘(말)’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마전령에서 급경사의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서낭당이 있다
서낭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으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로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는데 수호신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다.
조선시대의 서낭은 국행(國行)서낭과 민간에서의 서낭으로 나누어진다.
국행서낭은 호국(護國)이라는 두 글자를 붙였다
이성계(李成桂)는 즉위 후 여러 산천의 서낭을 제사하였으며, 태종은 백악(白岳)서낭과 송악(松岳)서낭을
신도(新都)서낭으로 모셨고 그 밖의 조선시대의 이름난 서낭으로는 해주·괴산·현풍·양산·신성(新城)·밀양·
전주·고성서낭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서낭에서는 정기적인 제사뿐만 아니라,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서낭제를 거행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하려 하였는데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서낭나무에 잡석을 난적(亂積)한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②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 ③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④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⑤ 입석(立石) 형태 등이다.
예전에 민초들이 마전령을 넘어갈 때 소원을 빈 듯한 서낭당이 보인다
民草들은 예나 지금이나 삶이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인 듯 싶다
얼마전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경기도 좋고 삶의 질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는 가짜뉴스라고 신문도 안보고 재래식 시장도 안 가는 모양인지...
처음에는 내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니...대통령께서는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모르니...참모들의 듣기 좋은 소리와 보고서만 보는 모양이다
정치는 生物이요, 民心은 天心이라 했소이다...제발 민초들의 삶도 좀 보살펴주소
나같은 자영업자들!...정말 죽을 맛이요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빡세게 올라서니 조금 넓은 능선이 나오고...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아침에 지나왔던 산북면 가좌리 마을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거르목산(926m:10:30)
문경시 문경읍 용연리와 산북면 가좌리 경계에 있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인데 네이버 지도에서
거르목산이라 표기를 해놨으나 그 이외의 지도에는 926봉이라 표기되어 있고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거르목산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가야할 운달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운달산 옆에 있는 성주봉까지 보인다
910봉(10:35)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마전령에서 거르목산까지 올라온 만큼 다시 장구령으로 향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힘겨루기?
암릉이 간간이 보이고...
등산화가 파묻힐 정도의 낙엽길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장구령(797m:10:42)
문경시 문경읍 용연리에서 산북면 호암리 갈골마을로 이어지는 낙엽이 수북한 그저 밋밋한 고개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여기에서 꽤 떨어진 장구마을이 보인다마는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고...언제나 오르막길은 힘이든다
선두는 어차피 만나지 못할 산꾼이고 같이 걷던 조여사님은 오늘
컨디션 난조인지는 몰라도 걸음이 느려 뒤돌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오늘은 당일 산행치고는 거리도 꽤 있고 난이도가 높은 산이라
내가 조여사님 걱정할 처지가 못되어 부지런히 걷는다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척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때는 비밀을 공유했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한통 하지 않을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면서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닌것을...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한번 꺽어지는 능선이 나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운달산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
906봉(10:58)
운달산에서 성주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따라서 걷는다
좌측 능선 저 멀리 백두대간 황장산 건너편에 있는 공덕산과 천주봉이 나무가지 사이로 보인다
무명봉(11:05)
안부로 내려섰다가 963.7봉으로 빡세게 올라간다
암봉인 963.7봉의 급경사 오르막으로 오른다
땅이 젖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963.7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963.7봉(11:12)
우측으로 꺽어져 장구목재로 내려간다
암릉구간도 만나고...
내리막길에 쌓인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운달산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미역줄기 나무 군락지도 지난다
무명봉(11:20)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장구목재가 나온다
장구목(877m:11:24)
문경시 문경읍 용연리에서 산북면 호암리 불당골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불당골로 이어지는
등로는 김용사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이곳을 ‘장군목’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정표(←운달산 정상 1.1km, ↓김용사3.0km, →장구령 1.0km)가 서 있다
장구목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다...고개가 아마도 악기의 장구의 목아지처럼
잘룩하여 붙혀진 지명은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김용사쪽으로 내려가면 산북면 호암리가 나온다
장구목재 김용사쪽 방향
이곳에서 처음으로 우리 일행이 아닌 일반 등산객 2명을 만난다
인천의 모 산악회에서 오셨다는데 운달산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술을 한잔하라고 하는데 막걸리가 소성 막걸리다
이~~~잉 젠틀맨님과 예전에 둘이서 마시던 그 막걸리가 아닌가
갑자기 남원으로 귀촌하신 젠틀맨님이 보고 싶어진다.
막걸리 한잔에 감말랭이를 얻어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장구목재에서 치고 올라 능선에 도착한다
운달산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암릉구간을 지난다
안부(11:27)
안부에서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는데 힘이들고 허기가 진다
점심시간(11:35~11:58)
오르막 등로 넙적바위에 밥상을 펼치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어댄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에다가 따뜻한 오징어 국물로 밥을 말아먹고
디저트로 감에다가 커피 한잔을 마신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빡세게 오르막을 올라서니...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안 보이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거르목산
계속되는 데크목 계단
등로가 험한 구간의 데크목 계단은 산행 시간을 상당히 줄여준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안부(12:07)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전망대(12:09)
잠시후에 가야할 운달산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전망대에서 다시 내리막길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낭떠러지
대미산에서 포암산...하늘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라인
급경사 계단을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 왔다가 사면길로 오른다
선답자의 흔적들
암봉을 오를수가 없다
암봉의 사면길을 택한다
오르지 못한 사면길을 뒤돌아 본 모습...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안부(12:18)
암릉구간은 계속되고...
苦行의 길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산북면 호암리
호암리(虎岩里)는 운달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불당골, 호암 등이 있다.
불당골은 개척 당시에 불당(佛堂)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불당이라고도 불렀다.
호암은 박세옥이란 이가 이곳에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칡덩굴이 많아 이를 제거하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갈넘, 갈골이라 하였는데 그 후 차차 칡덩굴이 자연히 고사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은 동네가 망할 징조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앞산의 용맹스럽게 생긴 큰 바위와 같이
마을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호암이라 개칭하였다 한다.
조망바위(12:22)
다시 내리막길
안부(12:23)
암릉구간을 낑낑대면서 올라간다
힘들게 올라서니 능선이 나오고...
구조 이정목이 보이니 제도권 등로에 들어선 느낌이다
지금부터 운달산 정상까지 편하게 걷는다
인천에서 오신 분들은 장구목재로 되돌아 가는 모양이다
잠시후에 운달산 정상에 도착한다
운달산 정상에 도착하니 인천의 모 산악회에서 온 등산객 후미팀이 쉬고 있다
정상에는 꽤나 넓은 공터가 있고, 문경시에서 설치한 정상 표지판과 오래된 깨진
표시석에 이정표와 산북면 자연보호 협의 안내판, 그리고 2등 삼각점이 있다.
운달산(雲達山:1,103.2m:12:40)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산북면의 경계에 있는 운달산은 부운령을 넘어 오정산을 솟게 하고 진남교반으로
뻗어 내리는 운달(영강)지맥의 맹주산으로 산 능선은 동서로 10여㎞에 걸쳐 뻗었으며 그 사이의 마전령(627m),
조항령(673m) 등은 예로부터 문경과 다른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천년고찰인 김룡사와 운달계곡을 품고 있으며 특히, 산북면 김룡리의 운달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해
김룡사를 거쳐 문경읍으로 흐르는 운달계곡은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차가워 문경팔경 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운달(雲達)이라는 이름은 '구름에 가 닿는다'는 뜻이지만,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는 의미도 있다.
김룡사사적서(金龍寺事蹟序)에는 운달산이 ‘운봉(雲峰)’으로 기록되어 있고, 문경시 산북면이 세운
정상비석에는 ‘용뢰산(龍磊山)’이라 새겨져 있는데 그래서, 산 이름이 김룡사를 창건한 운달조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운달산은 육산으로 분류한다.
그도 그럴 것이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숲이 감싸고 있는 산세가 부드럽다.
그러나 속살을 파고 들어가면 도처에 암릉과 기암괴석들을 품고 있는 만만찮은 산이다
인증샷
이정표와 구조 이정표
정상은 생각보다 상당히 넓은 공터가 형성되어 있다
운달산 정상에서 성주봉 가는길
운달산 정상 2등 삼각점(△덕산 25)
등로 우측으로는 문경의 진산이라는 주흘산(主屹山:1,075m)이 미세 먼지에 갇혀 버렸다
주흘산의 모습이 고깔, 즉 옛 사람들이 머리에 쓰던 모자를 닮았다는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경에서 교사생활을 할 당시 매일 주흘산 아래에서 청운의 꿈을 꾸기도 했던 산이다.
주흘산의 유래를 보면 ‘조선이 개국하면서, 나랏님이 전국의 산들에게 영을 내렸다고 한다.
나라의 주산(主山)이 될 산을 뽑는다며 전국의 산들을 한양으로 불렀다.
늦게야 이 소식을 전해들은 주흘산은 가는 도중에 이미
삼각산이 주산으로 정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발길을 되돌렸는데, 이곳 문경새재 주변의 모습이 너무 좋아 그 자리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고려 때 공민왕이 이 산에 피난했다하여 임금님이 머문 산이란
뜻으로 주흘산이라 칭하였다.’고 산의 유래에 대해서 적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는
주흘산이 한양을 돌아서 앉은 이유에 대해서이다.
어떤 이는 한양을 등진 이유가 삼각산이 주산으로 뽑힌데 대해 삐쳐서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주흘산은 이미 삼각산이 조선의 주산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웠지만, 비록 나라의
주산은 되지 못하더라도 남쪽의 적을 막아 나라를 지키는 산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새 나라를 위해 자신이 할 일을 찾아 한양을 등지고 돌아앉아 천혜의 군사적 요새가 되기로 한 것이다.
영남대로인 문경과 한양 사이에 이와 같이 적을 방어할만한 산이 없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가야할 능선의 모습
운달산의 정상은 부드러운 육산(陸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까칠한 암산(巖山)이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서 다시 길을 나선다
완만한 내리막길에는 암릉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빛내림이 이어지고...
또 다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반간기만 하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1,058m:12:50)
좌측으로는 금선대와 화장암, 김용사가 있는 운달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운달계곡은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의 운달산 자락을 흐르는 계곡으로 주변에는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숲이 우거져 시원함을 더해 주며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서 냉골(冷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교적 폭이 넓고 수량이 많아 여름철에 많은
피서객이 모여든다.
계곡을 따라 수령 200~300년 된 전나무 숲을 걷다보면 신라 진평왕 때 운달이 창건했다는 김룡사가 보인다
헬기장 끄트머리에 ‘←단산가는 길’ 표지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1,068봉(12:53)
암릉 구간을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우회하면서 바라본 암릉구간
맥길은 암릉이 차지해 버렸다
맥꾼을 사면길을 따른다
암릉구간을 우회하다가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내리막에서 다시 좌측으로 우회하고...
낙엽이 푹신한 편안한 길을 따라서 홀로 음악을 들어면서 호젓하게 걸어간다
쪼개진 암릉에 갇혀 힘들게 살아가는 나무를 만난다
상생?...민폐?
다시 오르막길 능선을 따른다
조금을 더 가니...
갈림길인 석봉산이 나온다
석봉산(石鳳山:985.7m:13:20)
문경시 문경읍 당포리와 산북면 석봉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이정표가 정상
표지판이 있고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면 운달계곡과 천년고찰 김룡사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산 좌측 아래가 석봉리라 그렇게 부른것은 아닌지?...
석봉산 아래에 있는 석봉리 굴골마을 뒤편에 석회암(石灰岩)으로 되어 있는 병모양의 동굴이 있고
동굴 밑에 골이 형성되어 이 골을 중심으로 마을이 있었다 하여 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근(1980년대)까지 이 마을 뒤편에
있는 석봉광산과 단산광산에서 무연탄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김룡사 홍하문(紅霞門) ...사진 펌
홍하문은 '붉은 노을'이라는 뜻으로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는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유래되었으며용맹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으로
홍하문은 성철스님이 평소 즐겨 읊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김용사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서암, 서옹 큰 스님들이 수행한 절집이기도 하다
또한 홍하문의 기둥에 쓰여진 주련(柱聯)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 이 문을 들어서면 알음알음하지 마시게
無解空器大道成滿(무해공기대도성만): 알음알음 없는 빈 그릇이라야 큰 도를 이루리라
김용사(金龍寺) 대웅전 삼존불...사진 펌
문경시 산북면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雲達祖師)가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 하였으며, 그 뒤에
조선 중기까지의 사적은 전래되지 않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옛날 문희(聞喜 : 지금의 聞慶)부사로 김씨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官)에 죄를 짓고 도망쳐 이 산에 숨었다가 우연히 신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용(龍)이란 아들을 낳았다. 가운이 또한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씨 어른(金長者)이라 일컬었다.
하루는 큰 비 바람이 분 뒤 그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으며, 지금 그 옛 터와
섬돌이 절의 서쪽에 남아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선대(金仙臺)의 금자와 용소폭포의 용자를 따서 금룡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사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교통의
불편으로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으며, 1940년 요사와 종루를 개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 하는데,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문경8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극락전·응진전(應眞殿)·금륜전(金輪殿)·명부전(冥府殿)·
상원전(上院殿)·영산전(靈山殿)·원통전(圓通殿)·첨성각·범종각·수월당(水月堂)·만월당(滿月堂)·연하당·
일주문(一柱門)·천왕문·요사 등 전각 48동이 있다.
일주문에는 문 윗부분에 ‘紅霞門(홍하문)’, 아랫부분에 ‘雲達山 金龍寺(운달산 김룡사)’라고 쓴
김규진(金圭鎭)의 글씨가 있고, 대웅전에는 1644년(인조 22) 조성된 천장(天藏)·지장(地藏)·지지(持地)
보살상을 묘사한 삼장탱화(三藏幀畫)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다시 지은 건물로서, 16나한상과 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절 입구에서 보면 정면에 ‘慶興講院(경흥강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300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온돌방으로서, 자연 지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다.
절의 규모에 비해 지정문화재는 없으나, 시대를 알 수 없는 석조 약사여래입상과,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맷돌·떡시루·쇠북·범종, 지옥의 염라왕청에서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나타난다는
업경대(業鏡臺) 등이 사물(寺物)로서 남아 있다.
부속 암자로는 대성암(大成庵)·화장암(華藏庵)·양진암(養眞庵)·금선대(金仙臺)·토굴 등이 있다.
양진암은 1658년(효종 9) 설잠(雪岑)이 창건하였으나, 1664년에 불탄 뒤 1749년(영조 25) 환월(幻月)이
중건하였으며, 그 뒤 1769년 무영이, 1825년 해운과 경봉이, 1840년 정봉이, 1929년 인택이 각각 중수하였다.
대성암은 1800년(정조 24) 영월(潁月)이 청하당을 옮겨 창건하였고, 1886년 혼성(渾性)이 중수하였다.
현재는 여승들만의 수도처로서, 이곳에는 고승의 진영이 담긴 영정과 동물 그림의 병풍 등 많은 현판들이 있다.
전래되는 대표적인 전설로는 산너머의 대승사(大乘寺)에 불이 났을 때,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바가지에 시냇물을
퍼서 불을 끈 동승(童僧)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20여년쯤이었나 보나 내가 요즘 산에 미쳤듯이 예전에 절집(불교)에 미쳐서
다닐 때 김룡사, 대승사, 윤필암을 왔다 갔는데 지금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김룡사 방향을 향해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뒤돌아 본 운달산의 모습
계속되는 내리막길
완만한 능선도 만나고...
889봉(13:35)
암봉을 만나 좌측으로 우회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897봉(13:40)
우측으로 우회를 하고...
901봉(13:43)
오르지 못한 암봉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 본다
암봉 아랫쪽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데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안부(13:47)
855.5봉(13:49)
浮石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좌측 아래로 산북면 석봉리로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잠시 후 조항령 윗쪽에 있는 팔각정에 도착하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조항령(鳥項嶺:680m:14:03)
문경시 문경읍 당포리에서 산북면 석봉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고개로 단산과 운달산 사이에 있다.
새의 목처럼 잘록하다 하여 새목재라 하기도 하며 석봉리에는 새목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새모기
또는
조항(鳥項)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최근 문경시가 임도를 개설하여 부분적으로 시멘트 포장을 하고 고개 정상
부근에는 약수터와 팔각정 등
쉼터를 조성하였으며 지역 주민들의 통행이 편리해지고 경제적으로는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김룡사와 대승사의 접근도 수월해져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아지게 되었다. 부근에 문경활공랜드 이륙장이 있다
조항령 문경읍 당포리쪽의 모습
이곳에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문경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석봉산이 보인다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서 내려서니 조항령에서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도로를 만난다
도로(14:13)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날씨는
포근한 편이나 바람은 생각보다 상당히
차갑다
뒤돌아 보니 운달산에서 뻗어나온 성주봉과 수리봉(종지봉)이 시원스레 보인다
성주봉(聖主峰:961m)은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와 당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성주봉은 전체가 거대한 바위산으로 안정감을 갖춘 빼어난 산세로 기세 당당하며 예로부터
고을 사람들이 신주(神
조선후기의 대문장가이며 학자, 시인인 옥소 권섭(玉所 權燮 : 1671~1759) 선생은
화지동(현 당포1리 고주골)에 은거하면서 이 일대의 지도인 "화지동 고지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도에서 성주사 뒷편의 봉우리를 수리처럼 생겼다하여 취봉(鷲峯)이라 하였고, 정상 전
장군봉이라 부르는 바위봉을 관음상처럼 생겼다하여 관음봉(觀音峯)으로 표기하였다고 하며
당포리의 주민들은 기세등등한 장군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장군봉이라 부른다
성주봉
윗쪽으로는 지나온 운달산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은 계속되고...
능선 우측 아랫쪽은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다시 빡샌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791봉(14:27)
다시 내리막 길을 내려서니...
석탄가루같은 검은 물질이 많이 보이는 함몰지로 내려선다
함몰지(14:29)
석탄이 많이 났던 문경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도시였다.
강원도 태백에 이어 전국 제2의 탄전지대이자 경북도의 지하자원 보고였던
문경은 30개가 넘는 탄광이 있었고 많은 광부들의 희생은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지역 경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문경에 가면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인구는 16만 명을 넘었으나 1990년대 초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펴면서 탄광은
하나씩 문을 닫았고 광산 종사자들 역시 문경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인구가 8만이 채 안된다고 한다
함몰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내리막길
안부(14:32)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802봉(14:35~45)
어차피 내 走力으로는 선두를 따라가는 것 애초부터 무리이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오늘 나의 컨디션은 좋은 편이라 시작부터 혼자오다 보니
뒤쳐진 조여사님에게 괜스레 미안하기만 하다...이곳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보충하고 조여사님을 기다리다 오질않아 다시 혼자 길을 떠난다
안부(14:47)
806봉(14:52)
활공랜드를
향해 칼날 능선을 곡예하듯이 걸어간다
등로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본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古堯里)의 모습
문경읍 고요리는 봉명산 기슭에 위치한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강선, 기성, 동우점 등이 있다.
강선은 조선시대에 넓고 큰 서당을 지어 학동을 가르쳤던 곳이라 하여 광원이라 하였던 곳이다.
전주 이씨가 글방을 차려 강론하였다 하여 강선이라 불려지게 되었으며 또한 갈평, 평천쪽으로 흐르는 물이
이곳에서 합쳐져서 넓은 냇가를 이룬다고 해서 광수원이라고도 불렀다. 기성은 중국의 요순시대 사람과 같이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여 고요성 또는 구성으로 불려지던 것이 변음된 이름이다.
일설에 의하면 괴목이 울창하여 성을 이룬 것 같다고 하여 괴성이라고 불리던 것이 음이 변하여 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며 동우점은 1500년 경 경주 김씨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 동쪽 운달산 기슭에서
옹기(동우)를 구워 이것을 팔기 위한 점방을 벌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문경읍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동녘의 해가 제일 처음으로 뜨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활공랜드 전망대(14:55)
등로 좌측으로는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가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활공랜드 정상으로 이어지는 넓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마니아들
뒤돌아 본 전망대와 주차장의 모습
화장실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데크목 계단으로 오르는데 이곳은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계단에 스테인 칠을 해놔서 가지 말라고 금줄을 쳐놨지만 무시하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내가
계단을 開始한 셈인가?
계단을
올라서니 이곳도 공사중이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을 만난다
활공랜드 정상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문경읍 당포리(唐浦里)의 모습
문경시 문경읍에 속해있는 당포리는 운달산 남서쪽에 위치한 산간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고주골, 살뫼, 숲마을 등이 있으며 고주골은 고려시대에 고주 부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고주(줏)골이라 이름 하였으며, 살뫼는 시루봉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를 옥삼이라는 선비가
삼문이라 이름 하였고, 또 당시 이곳에 있었던 고주 부사가 갈뫼라 이름 하였는데 이후 이곳
사람들은 이 마을을 살뫼 또는 살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숲마을은 마을 주위에 500년 이상의 고목과 느티나무숲이 울창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현재 당포리의 중심마을로 발전되었다.
활공랜드
정상으로 올라간다
활공장
정상에서 바라본 잠시후에 가야할 단산과 배나무산의 모습
활공랜드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오지라고 하는 문경도 지독한 미세 먼지에 시달리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주 일본을 5일동안 여행을 하면서 느낀점은 미세먼지가 전혀없고 하늘이 너무 맑아 깜짝 놀랬다.
일본
제2도시라는 오사카와 나라, 교토는 말할것도 없고 공업도시인 고베도 미세먼지가 전혀 없었다
활공랜드(861m:15:10)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滑空場)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에게
활공기능을 가르치고 장소를 제공한다. 문경은 험준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형태의 지형으로
상승기류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활공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1998년 4월에 패러글라이딩스쿨 문경 활공랜드로 문을 열어 지역주민의 여가활동과 관광객들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단산과 조항령 사이에 위치한 이륙장에서는 문경읍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주흘산, 조령산 등의
명산들이 주변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제1이륙장은 3,500㎡의 규모에 고도는 730m이며 제2이륙장은
6,800㎡, 고도 866m이다. 착륙장은 13,000㎡의 넓이이며 고도 220m이다. 활공전망대에서 활공하는
장면을 구경할 수 있으며 주변에 클레이사격장, 불정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당일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2009년 4월에는 32개 국가의 선수들이
참가한 패러글라이딩월드컵문경대회(2009 Paragliding World Cup
MunGyeong Korea)가 열리기도 했다
활공랜드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있다
활공랜드
정상 3등 삼각점(△문경306)
활공랜드 정상에서 바라본 산북면 석봉리(石鳳里)의 모습
문경시 산북면에 위치한 석봉리는 단산 기슭의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굴골, 돌담골,
샛골, 장자골, 허런골 등이 있으며 굴골은 뒤편에 위치한 병 모양의 동굴 밑에 골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골을 중심으로 마을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담골은 산등성이가 내려온 모양이 돌닭이
홰에 오르는 모양과 같다 하여 석달이라 부르던 곳으로 오랜 세월이 흐르며 구전되는 과정에서 이름이
변하였다. 샛골은 경주 이씨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뒷재를 새의 목과 같이 생겼다 하여 새목재라 이름 짓고,
새목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새모기라 부르던 곳이다. 후일에 샛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장자골은 천 석을 하는 부자가 살던 부유한 골짜기의 마을이라 하여 부른 이름이다.
허런골은 마을 앞 시냇물 한 곳에 깊고 푸른 소가 있었는데 그 소에 두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가 한 마리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희룡골이라고도 불리어졌다.
정상에는 아마추어 페러그라이딩 실습이 있는지 초보자가 몇번이나 飛
스카이힐 천문대(15:15)
문경관광 30選에 선정된 스카이힐 천문대는 관람형이 아닌 사전 예약제로
초보자들을 상대로 소인원으로 진행하는 칼 세이건 천문 리더쉽 강연이 유명한
곳이다
활공랜드에서 조여사님을 기다리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도로로 내려선다
이곳은 산악 자전거로 유명한 곳인가 보다
도로에서 우측의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선다
도로옆에 있는 단산 등산로 안내판
생뚱맞은 이정표
문경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에 ‘문경대간’이라니... 문경시청 관계자님 정말 제 정신 맞아요?
2010년대 초반에 한남정맥 의왕구간을 지나면서 의왕정맥이란 이정표를 만나긴 했지만...
문경시 관계자들은 역사나 지리적인 감각이 피래미 뭣만큼만 있어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텐데...
맨날 학교에서 주입식 암기교육만 받고, 입시위주의 경쟁사회에서 인문학을 도외시한 채 성장한
자들에게 인문학을 요구하는 건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겠지
오늘 내간 걷는 운달(영강)지맥길의 행정구역은 온전히 다른 지자체와 겹치는 일이 없는 오로지 문경시
행정구역 내에서만 있어서 문경대간이라 붙혔는지는 몰라도 그건 무식함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다
“大幹’이란 말 그대로 큰 줄기라는 뜻으로 한반도의 등뼈를 형성하고 있는 “백두대간” 이외의
산줄기는 대간이란 용어를 붙이면 안되는 것이다
하기사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백두대간을 일제시대에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
(小藤文次郞) 로 자본 수탈을 위해 제작한 ‘조선산악론’과 ‘조선전도’에서 부른 태백산맥을 백두대간으로
고쳐지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지
당신네들이 아무리 문경대간이라 주장해도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니 속히 시정하셔요
거기에 대한 근거를 모르겠으면 산줄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현오 권태화님’과 ‘산으로 박흥섭님’ 을
문경시로 초청하여 강의를 함 들어 보셔요...당신들의 짓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지 금방 알거요.
남한의 백두대간의 길이가 740여km인데 그 중에서 문경시를 통과하는 길이가 116km 정도이고
33개 시.군이 거치는 백두대간 중에 문경시 구간이 가장 긴데 뭔 욕심을 그리내요.
문경대간을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당신네들의 무지(無知)가 더 들어나니 빨리
고치시요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선다
가야할 단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길이 그리 험하지도 않는데 데크목 계단길이 계속된다
등로 아랫쪽에 있는 바이크 로드길에도 데크목으로 설치해놨다
계속되는 데크목 계단길
새목재(15:18)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에서 산북면 석봉리 장자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새의
목덜미’
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목재라 부르는데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고개로 접근할 수가 없다
단산으로 향하는 길
뒤돌아 본 활공랜드의 모습
쉼터(15:25)
지맥길과 나란히 가고 있는 문경 바이크로드
인구 8만명도 안되는 문경시 재정 자립도가 얼마나 높은지 몰라도 그냥 다닐 수 있는
등로에다가 많은 돈을 들여서 하는 짓거리 뭔 지랄인지...산꾼을 산을 걸어야지
많은 돈을 들인 문경대간(?)...산꾼이라곤 나 빼고는 개미 새끼 한마리도
안보인다
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냥 데크목 길을 따른다
저 능선이 맥길이다
문경C.C 갈림길(15:34)
계단으로 올라간다
다시 맥길에 합류한다
931봉(15:40)
단산까지 이어지는 데크목 등로
지나온 운달산은 자꾸만 멀어진다
문경대간(?)은 대간길이 아니라 둘레길인데 사람은 한명도 없다
민초들이 낸 세금을 쌈지돈 쓰듯 한 문경시... 참으로 개념이 없는
듯...
단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석봉리의 모습
956봉(15:47)
지나온 조항령의 모습
쉼터(15:52)
쉼터를 지나서 조금을 더 가니 단산 정상이 나온다
가야할 배너미산과 선암산(신선대)의
모습
봉명산 너머로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백두대간 능선
단산(亶山:959.4m:15:55)
문경시 문경읍과 산북면의 경계에 있는 단산은 서쪽과 남쪽으로 두 줄기가 뻗어내려 봉명탄광으로
유명한 봉명산과 경북팔경 중에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의 오정산을 솟구치게 한 뒤 영강으로 잡긴다
단산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면 정상부위의 평평한 산세가 푸른 하늘에 제단을 펼쳐놓은 것만 같은
형상이라 어쩌면 선암산(배너미산(배나무산) 살던 신선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쌓은 거대한
하늘 제단
같다
인증샷
문경 활공랜드에서 이곳
단산까지 약2km 가까이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좀 편하게 왔다.
이곳 정상에는 2개의 정상이 있는데 문경대간이라 써놓은 표시석이 영 맘에 안든다.
문경시는 평야지대와 구릉지대가 조화를 이룬 살기 좋은 고장으로 특히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조선시대 철의 생산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도 석탄 생산지로 유명하다.
단산은 운달산과 오정산 사이에 있는 이 산은 탄전지대의 중심이 되고 있다.
1988년에는 41개 탄광에서 7,000여 명의 근로자가
경상북도 석탄 총생산량의 57%를 생산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조여사님을 기다린다
단산 장상에서 바라본 봉명산(鳳鳴山:692m)의 모습
문경시 문경읍 문경읍 고요리와 마원리, 마성면 외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명' 지명은
『문경읍지』(2009)에 의하면 봉황새가 울었다는 전설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문경)에 "봉명산은 현의 동쪽 8리에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산 중턱에 지금은 없어진 금학사(金鶴寺) 터가 남아 있는데, 앞의 문헌에 "금학사는 봉명산에 있다."라는
기록이 확인되며 『해동지도』에 봉명산이 향교 아래 표시되어 있고, 『청구도』에서도
봉명산이 확인된다.
잠깐 사이에 바람이 너무 불어서 다시 길을 나선다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가야할 배너미산의 모습
계단으로 내려 가면서 고도를 낮추어 간다
간간히 석탄처럼 보이는 탄가루같은 것을 만난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배너미산을 바라 보면서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면서 뒤돌아 본다
맥길이나 등로는 아주 좋다
석탄가루같은 것이 보이고...
안부(16:15)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움푹파인 고랑같은 곳을 지난다
멋진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구조 이정표도 간간히 보인다
편안한 등로를 가다가...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희안하게 생겼네...
754봉(16:27)
암릉구간 능선을 걷는다
암릉들이 많이 보인다
배너미산이 점점 가까워 지고...
오늘따라 등로에
빨간 리본이 많이 보인다
석봉리 마을회관 갈림길(16:35)
등로는 상당히 뚜렸하다
763봉(16:40)
배너미산 가는 길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배너미산 갈림길(16:45)
배너미산은 맥길에서 오정산 방향으로 20여m 정도 우측으로 떨어져 있다
배너미산(810.5m:16:47)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와 호계면 부곡리, 선암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대미산(1,115m)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남쪽으로 운달산과 단산을 거쳐 이루어낸 산으로 군락을 이루는 곳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큰 홍수가 났을 때 배가 산을 넘어와 서덜지대에 머물렀다고 한다.
선암산(仙岩山)이라고도 하며 오정산으로 향하는 남서쪽에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배너미산을 선암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우측으로는 진남교반이 있는 오정산으로 가는
등로가 보인다
배너미산 정상의 이정표
다시 배너미산 갈림길(16:50)
배너미산 갈림길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 가는데 산동네 대장님한테서
어디냐고 하면서 전화가 걸려온다...배너미산에서 내려 간다고 하니까
조여사님도 왔다고 하면서 빨리 오라고 한다...여사님이 축지법을 배웠나?
나중에 안 얘기지만 조항령에서 능선을 안 타고 활공랜드 도로를
따라서 왔다고 한다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간다
가야할 선암산(신선대)이 높아 보이기만 하다
안부(16:53)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지맥길이란 수월한 곳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안부에서 짧은 구간에 급경사의 오르막에다 지쳐있는 상태라 갑자기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이 수반된다
죽을 힘을 다해서 치고 올라서니 선암산 또는 신선대라 불리는 정상에
도착한다
신선대(神仙臺:798m:17:00)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와 호계면 부곡리, 선암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이며 아주 좁은 곳이다
누군가가 돌에다가 ‘신선대’라고 메직으로 써놓았는데 문경대간이라 그려놓은 지도에는 이곳을
선암산이라 표기를 해놨고 북서쪽으로 조망이 트여 지나온 문경 활공장과 단산이 보인다.
옛날에 이곳에 살던 신선들이 단산으로 가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하는데 신선이 놀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듯 하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단산과 문경 활공장의 모습
아찔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능선 아랫쪽에는 산북면 석봉리가 보인다
뒤돌아 본 신선대의 모습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7:05)
급경사의 내리막길...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돌리네 습지 방향으로 향한다
고도를 확 낮추며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이라 빨리 어두워지는 느낌이다...똑닥이 카메라의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임도(17:20)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임도 우측에는 묘지가 보이고...
똑닥이는 초점이 맞지 않으니 그림이 점점 흐려진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돌리네 습지 방향으로 향한다
등로는 이제 완전히 어둠속에 갇혀
버렸다
좌측의 능선으로 가야 하는데 어둠속이라 그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좌측으로 꺽어지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서 간 다음에...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새터재(17:30)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와 호계면 부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시멘트 농로가 나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새터재에서 용선사 방향으로 향한다
산행을 종료하다(17:40)
꼴찌로 도착한 범여를 무작정 기다려 주는 동료 산꾼들이 늘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근처에 있는 닭백숙집에 들려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귀경한다
첫댓글 깊고깊은 문경땅에 고생많으셨습니다. 가도가도끝이없는길인데..끝가지 ..열정으로 건강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올한해 고생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