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학년도 연세 대학교 논술 고사 집중 분석 - 불안에 대하여 박용성 평설위원|『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가볍게 뛰어넘기』 저자
- 독서평설에서 알려 드립니다.
이번 문제에는 그림이 포함되어 있는데, 웹상에서 글 중간이 있는 그림이 모두 깨지네요. 미리 정리해 드립니다.
화택규괘 = 태하리상의 괘 / 상리괘 = 불 / 하태괘 = 연못, 물
아래 제시문의 공통된 주제를 찾아 각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사회 문화 현상에 적용하여 논술하시오. (1,800자 안팎. 150분. 답안지 본문에 본인을 알릴 수 있는 어떠한 표기도 하지 말 것.)
(가) 『주역』의 화택규(火澤睽) 괘는 태하리상(兌下離上)의 괘다. 상리괘(上離卦)는 불(火)이고 하태괘(下兌卦)는 연못〔澤〕이다. 〔…〕 규(睽)는 노려볼 규. 등지다, 배반하다의 뜻. 곧 서로의 의견이 어긋나서 반목하다, 노려본다는 의미다. 〔…〕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흘러가니 이것은 서로의 의사가 합쳐지지 않고 반목해서 서로 배반하는 상태다. 〔…〕 규괘를 한 개인으로 보고 해석하면 곧 그 마음이 순일(純一)하지 못해서 사욕과 도리(道理)가 갈등하므로 생각이 통일되지 못해 바른길을 못 찾는 상태다. 이래서는 원만한 인격을 이루기 어렵다. 집단이나 한 국가로 보고 해석해도 내용은 같다. 〔…〕 군자는 이 상(象)을 법도로 삼아, 귀결되는 바는 설사 같다 할지라도 그 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선처해야 한다. 〔…〕 사람이 행복을 구하는 뜻은 비록 같다 해도 그 행위는 모두 다르다. ‘같으면서 다름〔同而異〕’은 이런 의미다. 〔…〕 이 우주와 인생에는 시간과 공간, 환경의 변화 때문에 동일한 것이라곤 존재할 수 없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성(人性)도 비록 근원은 동일할지라도 말단에 이르러서는 서로 어긋남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규괘는 이런 도리를 보여 주고 있다. 그 어긋남을 인식하면서 화협(和協)의 도리를 찾아야 한다. 〔…〕 규의 상태는 고금 왕래(古今往來)에, 인류 사회에 면면히 계속되고 있다. 「단전」에는 〔…〕 ‘다르면서 같음〔異而同〕’의 도리를 말했으며 「대상전」에는 ‘같으면서 다름〔同而異〕’을 말했으니, 이 도리를 터득하면 인간 만사에 통용되어 큰 허물을 범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어긋남〔睽〕의 때의 쓰임이 위대하다.”라 했다. 〔…〕 「계사전」에서는 “나무를 굽혀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서 활과 화살을 이용함으로써 천하를 위협하니, 아마 이것은 규괘에서 취함이니라.”고 언급하였다. ― 남동원, 『주역 해의』
(나)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축복의 단지를 곁에 두시고, 말씀하시길,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주겠노라, 이 세상 여기저기 흩어진 부를 이 한 줌에 다 모으리라.”
그래서 먼저 힘이 길을 뚫자, 이어서 아름다움, 다음엔 지혜, 명예, 쾌락이 흘러 들어갔다. 거의 동이 날 무렵, 하나님은 잠시 멈추셨다. 모든 보물 중에 혼자만 남아, 안식이 맨바닥에 있음을 보시고.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만약 내가 이 보석조차 인간에게 부여한다면, 나보다도 내 선물들을 더 숭배할 것이니, 자연을 지은 하나님 대신, 자연에서 안식할 것이요, 결국 우리 둘 다 패배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다른 축복은 누리나, 늘 목마른 불안에 젖게 하리라. 인간은 풍요롭되 피로에 시달리게 하라. 그리하여 적어도, 선(善)이 그를 인도치 못하면, 피로함이 그를 내 품에 던질 수 있도록.” ― 조지 허버트, 「도르래」
(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불안의 현상 가운데 몇 가지만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의 관심을 그런 현상들에 국한시켜야 한다. 예를 들자면 그런 현상들은 아이가 혼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있거나 또는 어머니처럼 아이가 잘 알고 있는 사람 대신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타난다. 이 세 가지 예들은 단 한 가지의 조건, 즉 아이가 좋아하고 갈망하는 누군가가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경우로 축약할 수 있다. 〔…〕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상 상실의 문제 외에도 더 고찰할 것이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지 어머니가 자기의 모든 욕구를 지체 없이 만족시켜 준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위험으로 느끼고 보호받고 싶어하는 상황은 욕구로 인해 긴장이 증가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아무 해결도 할 수 없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 자극이 심리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채 불쾌감을 유발하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아이들에게는 필경 태어날 때의 경험과 유사할 것이고, 따라서 위험 상황의 되풀이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 해소되어야 할 자극이 축적되는 것, 이것이 위험의 진정한 본질이다. 이로부터 불안의 반응이 나타난다. 불안은, 출생 시 이 반응이 체내의 자극을 해소하기 위해 폐를 활성화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또한 축적된 자극을 호흡 기관과 발성 기관으로 돌려 엄마를 부르게 되는 과정을 유도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라) 위대한 발견은 생각들이 서로 부딪히고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생겨난다. 플람스테이드와 핼리의 실용적인 천문학 해석은 뉴턴으로 하여?혜성의 움직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해 내게 했고, 그 후 하늘에 있는 모든 물체들 상호 간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법칙을 주장하게 하였다. 혹성과 혜성 들의 궤도가 공히 타원형인 이유는 이 법칙 때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뉴턴의 이 ‘중력론’은 주어진 데이터에 대한 전적으로 순수 과학적인 논증은 아니었다. 사뭇 신비롭게 들리는 이 ‘보이지 않는 인력’ 개념은 유럽 전역이 유달리 불안정했던 때인 17세기 후반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주 나타났던 혜성에 대해 우주적 신비 등을 내세워 설명하려던 미신쟁이들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초판에서 뉴턴은 우주의 조화와 균형이 곧 깨어질 수도 있다고 암시한 바 있다. 그 예로 최근 하늘에 나타난 일련의 놀라운 현상들, 즉 혜성의 잦은 출현을 들었다. 그리고 핼리는 1697년에 영국 왕립 학회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에 혜성과 같은 크기의 물체가 충돌할 때”의 효과를 “다시 태초의 카오스 상태로 지구가 환원될 수도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특히 1680~81년 혜성은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뉴턴도 여든 살이 넘었을 때 조카 존 컨듀잇에게 1680년에 태양을 스치듯 비껴간 혜성에 의해 지구가 거의 멸망할 뻔했다고 말했다. 그 혜성이 중력에 의해 태양으로 끌려들어 갔더라면 그 결과 지구는 엄청난 화염으로 멸망했으리라는 것이다. 핼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 핼리와 뉴턴은 둘 다 1680년에 왔던 혜성이 다시 나타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결국 “그 혜성의 여파”로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다(핼리의 계산에 의하면 그 혜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은 575년이었다). 컨듀잇은 뉴턴과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언제 이 혜성이 태양으로 떨어질지 알 수는 없네. 어쩌면 그 혜성이 대여섯 바퀴는 더 돌고 난 후일 수도 있지. 그게 언제이건, 혜성이 떨어진다면 태양의 열은 치솟아 지구는 다 타 버리고, 생명체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네.” ― 리자 자딘, 『기발한 탐구 : 과학 혁명의 구축 과정』
1. 출제 경향 / 이런 문제가 나왔다
최근 몇 년간의 대학 입학 논술 고사를 살펴보면, 근본 성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별로 문제의 특징이 뚜렷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세대는 답안 작성 분량(1,800자)과 시험 시간(150분)이 다른 대학에 비해 길다. 아울러, 제시되는 자료가 무척 다양하다. 동서양의 고전과 현대 사회에 관한 여러 책에서 제시문이 선정될 뿐만 아니라, 시나 소설, 수필 등 문학적인 글과 함께 인문 과학과 사회 과학, 자연 과학을 아우르는 논리적인 글도 제시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최근 문자가 아닌 그림·광고·표 등 다양한 시각적 기호의 사용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것을 제시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연세대는 우리 주위의 사물과 사건 등 익숙한 것을 일반화하여, 그것이 지닌 사회 과학적인 의미를 심층적으로 설명하는 문제를 주로 출제하고 있다. ‘웃음’의 사회적 기능을 물은 2004학년도 문제나, ‘세월의 흘러감’을 욕망과 관련 지어 분석할 것을 요구한 2005학년도 문제, 그리고 ‘불안’을 사회 문화 현상으로 해석하라는 2006학년도 문제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사회 과학적 분석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주제들이다.
2. 논제 파악 / 무엇을 묻고 있는가
이 문제는 논제가 직접 나와 있지 않고, 단지 제시문을 독해하는 방향만 알려 주고 있다. 문제에서 출제자는 ‘① 제시문을 분석하여 공통된 주제를 찾을 것, ② 공통된 주제를 사회 문화 현상에 적용하여 논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공통된 주제를 사회 문화 현상에 적용하라.’는 지시 사항 때문이다. 사회 과학이란 자연 과학과 마찬가지로, 경험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따라서 ‘사회 문화 현상에 적용하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의 사실로 인식하거나, 타당한 것으로 공감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적절하게 응용하라는 뜻이다. ‘신은 있는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등과 같이, 경험적인 증거로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에 빠져 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제시문 (가)는 주역 연구가 남동원(1920~ )이 쓴 『주역 해의』에서 발췌한 글로, 두 개의 형식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1문단은 “집단이나 한 국가로 보고 해석해도 내용은 같다.”라는 문장을 앞뒤로 하여 두 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1문단의 전반부는 규괘의 자구(字句)를 풀이해 놓은 부분이다. ‘태하리상의 괘’는 위로 타오르는 ‘불’과 밑으로 흘러가는 ‘물’이 서로 만나 화합하지 못하는 형상으로, 서로 의사가 어긋나서 반목하는 상태를 보여 준다. 1문단의 후반부에서는 규괘의 심층적인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곧 화괘와 택괘는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이다. 두 괘 모두 두 개?양효(ꁍ)와 하나의 음효(ꁌ)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하나는 ‘불’을 하나는 ‘물’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두 괘의 ‘다름’만을 보지 않고 그 ‘같음’에 주목하게 되면, 반목에서 벗어나 타협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그 어긋남을 인식하면서 화협의 도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2문단에서는 규괘의 심오한 뜻을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다시 말하고 있다. 활과 화살은 분명히 그 형상이 다르지만 모두 ‘나무’에서 취한 것이므로, 그 근원은 같다. 다만 나무를 굽혀 만든 것이 활이요,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 화살일 뿐이다. 만물동이(萬物同異)의 이 원리를 이해하면 천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시문 (나)는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 영국의 목사·시인)의 시 「도르래」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좋은 것을 모두 ‘축복의 단지’에 넣어 인간에게 주었다. 우선 ‘부’를 그 단지에 넣은 뒤(1연), ‘힘, 아름다움, 지혜, 명예, 쾌락’을 계속하여 넣었다(2연).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이 신을 버리고 자연의 세계에서 쉬게 되면 신과 인간 모두가 패배자가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간에게 이 모든 것을 주되 끝내 ‘안식’만은 주지 않았다(3연). 인간을 “풍요롭되 피로에 시달리게 하”여 결국 신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하려는 신의 섭리가 작용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불안’은 결국 신을 찾게 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제시문 (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에서 발췌한 글로, 어린아이의 ‘분리 불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 없이’ 혼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불안해한다(1문단). 아이에게 이런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되풀이되면 결국 불안이라는 반응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아이는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축적된 자극을 호흡 기관과 발성 기관으로 돌려 ‘엄마’를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2문단). 제시문 (라)는 리사 자딘(Lisa Jardine, 1944~ )의 『기발한 탐구 : 과학 혁명의 구축 과정』의 일부로, ‘과학의 진보’가 ‘인간의 불안 의식’을 잠재우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턴(I. Newton, 1642~1727)의 만유인력 법칙은 플램스티드(J. Flamsteed, 1646~1719)와 핼리(E. Halley, 1656~1742)의 실용적인 천문학 해석의 바탕 위에서 확립되었다. 하지만 뉴턴의 이 ‘중력론’이 전적으로 순수 과학적인 논증(옳고 그름을 이유를 들어 밝힘. 또는 그 근거나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인력’이라는 다소 신비롭게 들리는 이 개념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주 나타났던 혜성 때문에 천문 현상을 우주적 신비로 해석하려 했던 미신쟁이들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1문단). 그래서 뉴턴은 혜성의 잦은 출현을 예로 들면서, 우주의 조화와 균형이 곧 깨어질 수도 있으며, 그 결과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2문단). 언젠가 혜성이 태양으로 떨어진다면 태양의 열이 치솟아 지구는 다 타 버리고, 생명체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그 당시 뛰어난 과학자들까지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3문단). 제시문 (가)에서 『주역』의 화택규(火澤睽) 괘가 의미하는 것은 ‘어긋남’이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밑으로 흘러가서 서로 어긋나는데, 여기서의 문제는 ‘어긋남’이다. ‘태하리상(兌下離上)의 괘’는 사회적으로 갈등이 일어나는 상태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불안’ 심리가 깊이 드리워진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제시문 (나)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안식’을 허락하지 않아 인간은 늘 불안하게 사는데, 바로 이 ‘불안’이 문제다. 제시문 (다)에서 어린아이는 좋아하는 누군가가 없으면 불안해하는데, 여기에서도 ‘불안’이 문제다. 제시문 (라)는 유럽 전역이 유달리 불안정했던 때, 과학자들마저 미신의 영향을 받아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도 문제는 ‘불안’이다. 이렇게 볼 때, 네 제시문은 ‘불안’이라는 공통 주제로 묶을 수 있다.
3. 논술 구상 / 깊이 있게 생각하자
〔서론〕 문제 상황과 앞으로 논의할 문제를 제시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런데 ‘불안(不安)’이라는 것은 ‘공포(恐怖)’와는 다르다. ‘공포’는 눈앞에 주어진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생기는 원초적 감정으로, 동물도 느낄 수 있다. 쥐는 눈앞에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나면 공포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한다. 이것은 사고 작용이 없어도 생기는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은 사람만이 느끼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원인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막연한 생각의 결과로 생기는 근심이나 걱정, 두려움 따위의 감정이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위기나 피해를 미리 상상하거나 불길한 일을 예상할 때, 그 생각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불안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안은 인간만이 지닌 실존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본론1~2〕 공통된 주제를 열쇠말로 삼아 각 제시문을 분석한다. 제시문 (나)는 인간의 불안과 관련해 독특한 사유를 보여 주고 있다. 곧 인간은 불안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시에 따르면, 도르래에 들어 있는 물건(부, 힘, 아름다움, 지혜, 명예, 쾌락 등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의 무게에 반비례해서 인간은 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갖출 것을 다 갖추고 풍요롭게 살 때는 신을 잊고 지내다가도, 불안이 커지게 되면 신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이렇게 볼 때 도르래는 신을 떠나 방황하는 인간의 불안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을 서서히 신에게로 끌어당기는 도구이기도 하다. ‘불안’은 신이 우리 마음에 설치해 놓은 코드(code)인 셈이다. 제시문 (다)에서도, 인간은 어릴 때부터 불안이라는 문제를 안고 사는 존재라 말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불안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원초적인 형태다. 이러한 불안은 ‘대상 상실의 불안’으로, 자기를 양육하는 중요한 대상이 자기를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누가 곁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것은 어린아이 때 지닌 ‘대상 상실의 불안’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시문 (나)와 (다)가 인간의 불안을 실존적이고 원초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는 데 비해, 제시문 (라)는 불안을 외부적 상황이 가져다주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17세기 후반, 과학자들은 혜성의 잦은 출몰을 보면서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에 나오는 기우(杞憂)(1)라는 한자 성어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기(杞)나라 사람은 어리석어서 그렇게 생각했다지만, 뉴턴은 17세기 과학 혁명의 상징적인 인물인데도 하늘이 내려앉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까닭 모를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불안해하는 원인이 단순히 자연 현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불안은 일종의 사회 문화 현상으로, 사회적 상황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뉴턴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과학 이론을 수립할 때는 전적으로 순수 과학적인 논증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우주적 신비로 설명하는 미신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17세기 유럽이 “유달리 불안정했던 때”였다는 변수가 작용했다는 제시문 (라)의 진술이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17세기 유럽은 한마디로 사회적 격변기였다. 우선, 청교도 혁명(2)과 왕정복고, 명예 혁명(3)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이 말해 주듯 정치적으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그뿐 아니라, 16세기 이후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유럽의 자본주의는 17세기에 이르러 침체의 늪에 빠져 큰 불황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 기후까지 겹쳐 기근으로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 갔고, 14세기부터 번지기 시작한 흑사병 또한 절정에 다다라 수백만 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마녀 사냥으로 이어져 17세기에는 그 광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제시문 (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화 하택’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불은 원래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고 연못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니 서로 등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주역』은 이 형국에 대해 성급한 가치 판단을 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상리괘와 하태괘는 같으면서도 다른 괘다. 하나는 불을 다른 하나는 물을 상징하고 있지만, 그 둘은 두 개의 양효(ꁍ)와 하나의 음효(ꁌ)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같다. 바로 이 점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같은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로 천하를 위협할 수 있듯이, 불안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다.
〔본론3~4〕 공통된 주제를 사회 문화 현상에 적용하여 논술한다. 인간은 불안하게 살도록 ‘내던져진 존재’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신들린 듯이 스포츠나 오락, 음주에 몰두하는 이유는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들이 도취 상태에서 도피하려는 것, 애써 생각지 않으려는 그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보았다. 불안은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인간 존재의 깊은 심연에 드리워져 있는 근본적 분위기’다. 인간 자신의 존재가 어느 순간 한 줌 존재의 무게도 지니지 못한 채 흩어져 버릴 痼繭遮?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리고 그 허무한 죽음의 땅으로 추락하는 순간은 예고 없이 닥쳐오며, 그 순간을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유한한 인간에게 이 불안감은 숙명적이며, 도저히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스포츠나 음주, 오락, 아니면 일에 몰두하여 우리는 잠시 그것을 잊을 수는 있지만, 근원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불안을 개인의 실존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불안의 뒷면에는 그 사회의 모순이나 갈등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다양한 사회 제도 속에서 사회적 조건과 함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시대의 흐름은 항상 불안으로 얼룩져 왔다. 우리는 그 불안을 우리의 무의식 또는 주관적인 의식 세계 속에서, 때로는 종교 속에서, 심지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과학 속에서 발견하곤 한다. 특히 현대 사회는 ‘불안의 시대’라 할 만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불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 존재 자체뿐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강요된 개별화와 고립감,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나 환경 파괴 및 생태 위험, 게다가 예측하기 어려운 글로벌 금융 자본의 투기와 시장의 교란 등 불안의 그림자가 도처에 드리워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엄습해 오는 이 불안을 역동적인 형태로 전환시킬 방법은 없을까. 만물동이(萬物同異)의 원리를 밝힌 『주역』의 ‘상화 하택’의 괘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화괘와 택괘는 각각 불과 물로 그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두 개의 양효(ꁍ)와 하나의 음효(ꁌ)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같다. 같으면서도 다르고〔同而異〕 다르면서도 같은〔異而同〕 이 도리를 깨우친다면, 우리는 불안이라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반목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또한 남과 북은 본질적으로 피를 나눈 동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결론〕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서 제언을 한다. 불안은 말끔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도 불안은 잘라도 어느새 고개를 다시 치켜드는 메두사(medusa)❹의 머리처럼 인간을 끈질기게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불안과의 대결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은 가장 처절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인들은 불안에 대항하기 위해 용기를 과장했고, 그리스의 영웅들을 그린 많은 책에서는 불안에 떠는 삶의 비겁한 모습을 죽음과 결연히 싸우는 비장미로 장식하여 불안을 떨쳐 내려 하였다. 그리고 중세에는 전능한 신에게 불안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 달라고 갈구함으로써 여기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한편 오늘날 인간은 삶의 불안 요인들을 장악하고 삶에 희열을 제공하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그것을 추방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시대의 불안을 성찰하고, 또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인간에게 불안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사회를 해체하는 사회 병리 현상(사회에서 일어나는 병적인 현상. 범죄·비행·자살·부랑·매춘·가출·알코올 중독·마약 중독·가정 내 폭력 등을 가리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의 문명을 진보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불안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구와 결핍, 경쟁과 강박 등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발전이나 역사의 진보를 앞당길 수 있는 역동적 에너지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1. 기우_ 기인지우(杞人之憂)의 줄임말로, “기나라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몸 둘 곳이 없음을 걱정한 나머지 침식을 전폐하였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2. 청교도 혁명_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라는 걸출한 군주의 지휘 아래 16세기 말부터 본격적인 절대 왕정 체제(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고 서유럽의 선두 주자로 질주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 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차례로 왕위에 오르면서 절대주의가 더욱 강화되자, 의회는 여기에 반발하여 왕에게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권리 청원(1928)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1929년 찰스 1세는 이것을 무시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동시에 의회의 지도자를 투옥하고, 11년간 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전제 정치를 감행했다. 그 결과 1640~1660년에 걸쳐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면서 공화제가 성립되었고, 찰스 1세는 1649년 처형되고 말았다. 3. 청교도 혁명의 결과 공화제가 성립되었지만, 이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660년 청교도 혁명을 이끌었던 크롬웰이 사망한 뒤 의회가 혼란에 빠지자, 유럽을 전전하던 찰스 2세가 다시 돌아와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왕정복고). 1688년, 결국 영국은 왕을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 남겨 둔 채 의회 정치를 시작했다. 이 같은 정치적 변혁이 살육과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명예로운 타협’ 속에 진행되었다고 해서, 영국인은 이것을 ‘명예 혁명’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