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1) 뇌경색 발병
legit_brain 2022. 8. 30. 00:17
일요일 새벽 6시 잠에서 눈이 떠졌다.
잘 잔 거 같지도 않고 더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머리 뒤쪽에서 두통이 느껴졌다.
잠을 잘못자서 컨디션이 안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2시간 잠을 더 청하고, 깨서 평소와 같은 주말 아침을 보냈다.
그런데 계속 졸려서 꾸벅꾸벅 졸았고 결국 오후가 돼서 낮잠을 잤다.
낮잠을 조금 자다가 일어났는데 목에서 침이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침이 안넘아가서 물을 마시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물 한 모금을 마셨는데,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숨을 쉴 수 없다는 느낌과 동시에 물이 넘어가지 않아 그대로 뱉어냈다.
당장 화장실로 가서 토를 했고, 주말이라 응급실로 향했다.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부모님의 차량으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차로 걸어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꾸 한쪽 방향으로 걸음이 쏠리는 것이었다. 중심을 못 잡고 한쪽으로 쏠리면서 겨우 차를 탔다.
급하게 응급실로 가는 길..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한 쪽에서 온몸의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순간 뇌졸증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한창 코로나가 유행이라 혹시 코로나 증상인가 했다.
하지만 이런 코로나 증상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코로나가 워낙 다양한 증상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증상도 있나 의심하면서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은 코로나로 인해 역시나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밖에서 대기하여야 했다.
대기하는 동안은 계속 침은 분비되는데 삼킬 수가 없어서 계속 입에 물고 있다가 한 번씩 뱉어 내는 식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 만약 그때 내가 정확히 뇌졸증 증상을 인지하고 있었으면 나는 구급차를 불렀을 것이다. 그럼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 없이 바로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골든타임을 지켜서 지금 보다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내 차례가 되고 나는 응급실에 들어가서 코로나 관련 질의응답을 간단히 하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일반 환자로 분류되어 일반 병실로 가라고 해서 걸어가는데, 나는 한쪽으로 계속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을 본 간호사는 화들짝 놀랐고, 나를 선을 따라 걸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 의지대로 선을 따라 걷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지려고 했다.
간호사는 나를 급하게 침상에 눕히고 많은 간호사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때 나는 느꼈다.
'아! 뭔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Story 2) 뇌경색 초기증상
legit_brain 2022. 8. 31. 01:13
침상에 누운 후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게 진행이 되었다. 내 맥박수를 체크하고, 주사를 놓고..
모든 것이 정신없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계속 어딘가 이동을 하면서 검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CT 촬영을 하고, 그다음은 MRI 촬영을 하고..
그리고 침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살면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했다.
침을 못 삼킨다는 것은 결국 연하 곤란이 온 것이고 그 말은 결국 나는 아무것도 입으로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내 콧속에 콧줄을 꽂았다. 콧속에 콧줄을 꽂을 때 계속 헛구역이 나왔고, 지금까지 살면서 웬만한 것들은 인내를 가지고 참을 수 있었는데, 콧줄을 꽂는 것은 더 이상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간호사는 너무나 단호하게 계속 나에게 시도를 하였고 결국 나는 콧줄을 꼈다.
콧줄을 끼고 나서 처음엔 너무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콧줄이 계속 내 목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 때문에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고, 헛구역질 때문에 계속 토를 했다.
토를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에는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했다.
그리고 곧 담당 의사가 와서 부모님께 내 증상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CT촬영에선 발견할 수가 없었는데, MRI에서 증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 병은 뇌경색.. 정확히는 수질 경색증..
뇌를 지나가는 혈관 중에 하나가 혈전으로 인해 박리 현상으로 인한 증상이라 한다. 그 증상으로 인해 해당 뇌세포가 죽었고 그 뇌세포가 관여하는 기능들이 떨어진 것이다.
나에게 떨어진 주 증상은 우선 침을 삼킬 수 없는 연하곤란, 감각이상,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운동 이상이었다. 이외에도 뇌경색 증상으로는 주로 인지장애가 있는데 나는 인지 장애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면서 알게 된 얘기지만 인지장애는 사실 가장 힘든 증상이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가장 많이 오며, 가장 초기에 알 수 있는 방법으로는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처음에 뇌경색이란 얘길 들었을 때 사실 그게 무슨 병인지도 몰랐고, 며칠 쉬면 낫는 병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뇌경색은 결국 뇌졸증의 하나였다.
뇌졸증은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나뉘는데, 간단히 말하면 혈관이 터지면 뇌출혈, 혈관이 막히면 뇌경색이라고 한다.
뇌경색이란 단어는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뇌졸증이란 단어는 너무 크게 와닿았다.
내가 뇌졸증이라고?!..
나는 도저히 지금 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건 마치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어쩌면 나는 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길을 이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Story 3) 골든타임
legit_brain 2022. 9. 1. 00:01
그렇게 응급실에서 나는 사경을 헤매면서 어떻게 치료를 다 받고 병실로 옮겨졌다.
응급실에서 가장 중요했던 치료는 증상 발생 후 혈전용해제를 빠른 시간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혈전용해제를 통해서 혈류를 묽게 해 주어 막혀있는 혈관에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를 수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혈전용해제는 나는 매일 지금도 먹고 있다.
여기서 골든타임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볼까 한다.
나는 운이 좋아 골든타임을 지켰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골든타임은 뇌경색 증상이 발생되고 4시간 30분이라고 한다.
그 시간 안에 응급 치료를 받지 않으면 수 만개의 뇌세포가 죽고, 이는 큰 후유증을 남길 수가 있다.
그리고 발병 시 생겼던 증상들이 호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골든타임 내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던(운동, 감각, 연하곤란) 외에도 왼쪽 눈 처짐, 왼쪽 입술의 미미한 마비 증상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이 뇌졸증이란 증상에 대해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잘 알지도 못한다.
나의 경우도 뇌경색이라는 단어 자체도 처음 들어봤을뿐더러, 만약 침 삼킴이 안 되는 증상 없이 두통만 있었다면 그냥 오늘 하루 쉬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고 병원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골든 타임을 당연히 지키지 못했을뿐더러 더 안 좋은 상황과 마주쳤을 것이다.
문제는 뇌경색이라는 증상이 과거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나타났지만, 지금은 나와 같은 30~40대에서도 증상이 많이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이 젊다고 하더라도 절대 이런 증상에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되며 혹시나 관련 증상이 의심이 된다면 반드시 119를 불러 빠른 시간에 응급실에 도착하길 바란다.
그래야지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응급환자로 구분이 되서, 나처럼 응급실 앞에서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뇌경색은 1분, 1초가 정말 중요하다. 그사이에 수많은 세포가 죽기 때문이다.
죽은 세포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정말 안타까운 사실일 수밖에 없다.
지금 내 머리를 MRI를 촬영하면 한번 타격을 입었던 곳은 하얗게 나온다.
그건 뇌세포가 죽었고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Story 4) 간병, 가족
legit_brain 2022. 9. 2. 17:52
병원 입원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은 보호자 1인외에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보호자 1인도 사실 내가 퇴원 하기 전까지 바꿀 수 없기에 와이프와 나 단둘이만 병실에 있어야 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던 4살 여자 아이였다. 아이는 당연히 병원에 들어올 수 없었고, 결국 할머니 집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병 때문에 기약없이 아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와이프나 나나 아이를 당장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동시에 아이가 받을 상처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아이는 한번도 우리 곁을 떠나 본적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았고 나와 와이프는 한번도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기지 않았었다.
그러기에 아무 준비 없이 홀로 할머니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고 그러한 심적인 충격은 바로 행동으로 보여졌다.
평소의 활발함도 사라지고, 우리 대신 같이 있어줬던 고모에게 더욱 더 집착하게 되고,
병원에서 아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와이프가 병원을 오고 가면서 아이를 케어해 줄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상황이 안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그로인해 나는 빨리 이 병원에서 나가야 된다는 절박함이 생겼고 어떻게든 빨리 재활을 해서 완치는 아니더라도 아이를 보기위해 퇴원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와이프는 아이에게 열 밤 자고 간다고 약속했고, 숫자도 잘 모르는 아이는 매일 매일 숫자를 세며 열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이 되었을때, 나는 여전히 퇴원을 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가장 문제는 연하곤란.. 콧줄을 끼우고 아무것도 못 먹는 상황이기에 병원 밖에서는 사실상 생활이 불가 했다.
나중에 관련 증상에 대한 재활은 언급하겠지만, 결국 연하곤란 재활을 통해서 콧줄을 뗄 수 있었고 그 계기로 예상보다는 빠르게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열흘차가 됐을 때 나는 큰 결심했다.
와이프가 내 옆에 있어줌은 정말 큰 힘이 되었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아이에게는 너무 미안했고, 그렇게 엄마를 아이곁에 보내주는 것이 내가 아파서 힘든 것보다 더 중요했다
우리는 급하게 간병인을 구했다. 하지만 간병인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간병인분들을 매칭 시켜주는 몇 개의 업체가 있었지만 업체에서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간병인분들이 대부분 이미 병원에서 간병을 하고 계신분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간병인분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그분들 중에 퇴원해서 나오시는 분과 일정이 맞아야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간병인 분들도 환자의 상태와 병원 등 선호도가 있기에 그 분들이 원하는 환자가 아니면 구하기 힘든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하면 하루 10~15만원 정도에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병원생활이 오래 될 수록 비용 문제도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간병인 보험 상품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프고 나니 필요성을 느껴서 나도 가입을 해야하나 고민 중이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오실 수 있는 분을 구할 수 있었고 그렇게 와이프는 아이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오신 간병인 분과 다시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Story 5) 입원
legit_brain 2022. 9. 4. 13:32
병원실로 옮겨져 입원하게 된 후에도 추가적인 검사는 계속되었다.
간호사는 내가 좌측 뇌경색으로 인해 우측 편마비가 왔다고 하였고, 그래서 오른쪽 한 발에 힘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누운 상태로 한발을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아무렇지않은 듯 한발을 들어올릴 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응급실에 오후에 도착 한 이후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몸도 아프지만, 계속 검사하고 응급실에서 제대로 누워있지도 못하고 하다 보니 너무 지쳐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빨리 잠을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유는 연하곤란 때문이었다.
콧줄을 끼고 잠을 자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계속 줄이 신경이 쓰였고 그것보다 더 힘듦 건 침을 삼킬 수가 없어,
계속 입에 침이 고이기 때문이었다.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물도 마실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에 입을 머물고 있다가 뱉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물도 콧줄로 넣어서 수분 보충을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면서부터는 사실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무의식에서 물을 마시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뿐이었다.
잠자는 내내 침을 주기적으로 뱉어 내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잠을 제대로 잘 수 도 없었다.
새벽,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 올 때까지만 해도 한쪽으로 쏠림 현상은 있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일어설 수는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간호사가 이래서 아까 내 한쪽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고 테스트를 한거였구나'
결국 와이프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은 기껏해야 10걸음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10걸음이 아닌 100걸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화장실이 가까운 것은 1인실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발병 일주일 전 직업상 해외를 다녀온 이력 때문에 나는 일반 입원실이 아닌 격리실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6일이 지나고 나서야 일반 병실로 옮길 수가 있었다.
지금 그 당시를 회상하면 와이프와 대화를 하면, 와이프는 처음에 나를 부축해서 화장실 갈 때 본인보다 무겁고 큰 나를 안고 가면서 절망적이었다고 한다. 이 증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본인이 평생 이렇게 나를 부축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겨우 침대로 와서 잠을 청하고,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도 모르게 절망적인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 해는 아무렇지 않게 떠올랐다.
(Story 6)입원 첫 날
legit_brain 2022. 9. 9. 22:30
아침을 맞이하고 나서 천천히 눈을 떠보니 앞에 있는 tv가 흐릿하게 보였다.
내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아, 한 개의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멀리 있는 물건들은 어느 정도 하나로 보여도 특히 가까운 물건들은 심하게 잘 안보였다.
그날은 그렇게 하루 종일 잠만 자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루를 보내면서 처음으로 식사를 콧줄로 하였다.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양 드링크를 콧줄에 연결하여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 앉아 있어야 했고, 몸이 불편했던 나는 계속 누워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너무 힘이 들었다.
식사는 아주 소량씩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요구하는 양을 다 주입하려면 얼추 1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매 끼니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좌절감을 주었고, 매번 이렇게 앉아 있는 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계속된 연휴기간이라 담당교수님을 바로 만날 수가 없었고 당직 의사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연휴가 끝나야 담당교수님을 뵐 수 있고 정확한 얘기는 그때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일정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우선 연휴가 바로 끝나는 날 뇌혈관 조영술을 통해 정확한 내 뇌혈관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필요시에는 수술까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수술을 해서 빨리 나을 수 있다면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나중에 담당교수님의 얘기를 들었을 때 수술은 정말 위험하기 때문에 혈관에 문제가 없다면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수술하는 경우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고서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오히려 수술을 해서 부작용으로 인해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이 수술이라고 했다.
결국 내가 혈관조영술을 통해 큰 문제가 없어 수술을 하지 않고, 약물(혈전용해제) 치료를 통해 막혀있는 혈관이 뚫리는 것이 최고의 상황인 것이었다.
또한 지금 나에게 있는 증상들이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니면 평생 후유증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얘기에 가슴이 무너졌고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특히 내 콧속에 있는 빌어먹을 이 콧줄을 빨리 떼고 싶었다.
빨리 떼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싶었다.
하지만 이 콧줄 또한 내가 떼고 싶어서 떼는 것은 당연히 아니거니와 관련 검사를 통해서 문제가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검사는 자주 하는 검사가 아니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할 수 있어서 다음 주 목요일이 되어야 가능하단 얘기를 들었다.
"당장 떼고 싶어도 모자랄 판에 다음 주 목요일까지 이 상태로 아무것도 못 먹고 버티라고?!"
나는 오로지 그날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사실 그날이 되어도 내가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계속 콧줄을 끼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콧줄을 계속 끼고 있어야 될 확률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마치 그날이 되면 뗄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다.
(STORY 7)긍정 마인드
legit_brain 2022. 10. 17. 21:27
두 번째 날이 되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
먹지도 못하고, 빨리 내가 회복되기를 기도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해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고,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뭐라도 하는 게 낫다 싶었다.
먼저 연하곤란이 가장 불편했기 때문에 이것부터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안넘어가는 침을 계속 삼키려고 했다.
나중에 재활을 하면서 들은 얘기지만 그 당시에 내가 침을 삼키려고 노력했던 것이 예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침을 못 삼킨다고 가만히 있으면 관련 기능은 점점 퇴화되기 때문에 침이 안 삼켜지더라도 계속 시도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고, 또한 침이 아니더라도 공기라도 삼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자꾸 시도를 해봐야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불편함이 없이 살때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하루에 몇 백번 이상의 침 삼킴(백번인지 천번인지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음)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연하곤란이 오고 나서는 침삼킴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기능이 점점 더 상실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능들이 점점 퇴화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회복이 더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비슷한 생각을 나 또한 했었다.
지금 잃은 기능들이(운동기능, 연하곤란, 감각이상, 한쪽 눈꺼풀 처짐, 아랫입술 경련 등) 시간이 점점 더 지나면 지날수록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재 상태라도 일단 유지하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그 기능이 회복하는데 그나마 도움이 되어 더 빨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또한 나는 내가 후유증은 당연히 없을 것이고 지금 온 증상들이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긍정적인 생각만 했었던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걷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간병을 하고 있던 와이프는 무리하지 말고 그냥 누워 있는 것이 어떻게냐고 했지만, 나는 꼭 일어서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에 힘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일어서는데 까지는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 침대 주위에서 자주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인지장애는 오지 않았지만, 나는 내 뇌를 최대한 활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만히 누워 TV를 보는 것이 아닌 책을 읽고 인터넷 기사를 읽고 공부를 하면서 내 뇌를 쉬지 않고 계속 활발하게 작동하게 하고 싶었다.
사실 이것은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우리 뇌의 다양한 분야를 자극시켜주면 뇌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다.
그래서 지금도 뇌의 다양한 부위를 자극 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실천 중이다.
(STORY 8)뇌혈관조영술
legit_brain 2022. 10. 24. 19:23
응급실에 들어서면서 CT촬영과 MRI 촬영을 해서 뇌경색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검사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뇌혈관 조영술을 통해 뇌 혈관의 이상이 없는지 정확히 확인을 해야한다고 했다.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검사 전날 서혜부 쪽을 면도를 해야한다고 했다.
민감한 부위이다보니 와이프가 면도를 해주었고, 나름 다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간호사가 더 깨끗이 해야 된다고 해서..
간호사가 내 민감한 부위까지 면도를 해주는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어찌됐든 다음날이 되어 조영술을 하기 위해 검사실로 들어갔고 마치를 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전신마취가 아닌 부분 마취이다 보니 뜬 눈으로 30분이상을 누워 있어야 했다.
나의 경우는 코로나 격리까지 겹치면서 바로 해야 할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이미 혈전용해제를 복용하고 있는 상태이어서 지혈이 쉽지가 않았다.
조영술이 끝나고 나서 담당 간호사들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지혈이 잘 되지 않아서 당황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영술을 마치고 다시 병실에 올라온 후 간호사는 4시간이면 지혈이 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4시간 동안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절대 움직이면 안된다고 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허리 통증이 점점 오기 시작했다.
오래누워있다보면 아픈 허리 통증은 누구나 다 알것이다.
그렇게 시계만 보면서 기다리고 4시간이 지났는데도 담당 의사가 오지를 않았다.
알고 보니 저녁시간이 되어 해당 시간에 응급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의사가 와야하는데, 현재 응급실에 사람이 많아 바로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다리는 동안 1분 1초가 10분처럼 느껴졌고, 거의 한시간이 지난 후에야 담당의사가 와서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 의사가 진료를 보러 왔을 때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아직도 지혈이 안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혈전용해제 탓인지 지혈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드레싱 및 마무리를 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나는 힘들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