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건져 올린 연애 같은 시
-시와 연애의 무용론-
윤준경
64편의 시에 묻어나는 일상들은 그녀의 시가 되고 연애의 대상이 되어서 가벼우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오랜 창작의 고뇌가 묻어나있다 난해한 시들이 넘쳐나는 시단에 그녀의 시집에서 읽어 내리는 것은 시적으로 소소하게 풀어 내리는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일상이다
가벼운 대상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중년여류시인의 여유로움이 묻어나있다
가끔은
밥을 짓고 싶다
수증기로 가득 찬 부엌에서
밥 짓는 일에 전념하고 싶다
내일의 프로나 보고 누워있는 당신 뒤에서
썰고 다지며 눈물을 흘리고 싶다
기름 냄비에 팔목을 데며
뜸들기도 전 밥 성화에
손을 베이고 싶다
밥 짓는 일만큼 성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흰 접시에 색색깔 반찬을 담아
수대로 수저를 놓으면
복종하듯 둘러앉는 식구들
내일은 무얼 먹을까
끝없는 걱정에 사로잡혀
편한 날 없이
밥을 짓고 싶다
알맞게 뜸 들여
모락모락 김 오르는
기름기 자르르한 밥그릇 앞에
당신을 꿇어앉히는 행복
끓어 앉힐 식구도 없이
밥을 짖는 일은
썰렁하다
-밥을 짓고 싶다-전문
이 시를 읽으면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오늘날 여성의 지위가 많이 올라가서 곳곳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만 집안에서 모든 식구를 통솔하는 시간은 밥을 차릴 때이다 밥그릇 앞에 모든 식구를 꿇어앉히는 행복을 만끽하고픈 시인의 행복감은 식구가 없어 밥을 짓는 일이 썰렁하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쓸쓸함이 밀려온다. 요즘 세대는 핵가족을 넘어 혼자 밥 먹고 술을 마시는 혼술, 혼밥이라는 시조어가 탄생할 만큼 혼자 지내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구속받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한 젊은이들과 장성한 가족을 출가시키고 곁을 지키던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는 경우인데 윤 시인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윤시인의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허전함은 또 다른 시 /떠났구나/ 시끄럽던 전자기타를 메고/ 여행을 가듯/너의 비늘 가득한 방/엄마 부르는 소리 들리는데/오줌도 못 가리던 것이/치마끈 잡던 것이/떠났구나..(빈방) 며칠 전 막내가 전화로/ 엄마 집에 어디 돈 좀 있어요? 했을 때/응 거기 화장대 밑 맨 아래 서랍에.....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못내 아쉬워/맨 아래 서랍 옷가지 밑에/지폐 몇 장을 묻는다...(행복하다,사는 일)에서 잘 나나내고 있다
출장에서 돌아온 아들이
유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며칠 안본 사이에 왜 이렇게 늙었어?
할머니가 다 됐네
어휴 엄마 이제 틀렸다
저리 비켜, 이놈아
웃으며 뿌리치고 말았지만
방으로 돌아와
거울을 본다
틀렸다, 틀렸다?
어디가 틀렸다는 것일까?
무엇이 틀렸다는 것일까?
불러 세워 따져 묻고도 싶지만
밤 가고 날이 밝으니 알 것 같다
해가 환히 비치니 알 것 같다
맞다,
틀렸다
-맞다, 틀렸다- 전문
중년의 소회를 여러 편의 시에서 드러내고 있는데 마음속에 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함축성 있게 표현하는 것이 시라면 윤 시인의 시집에서 드러나는 숨김없는 언어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은 공감을 하리라 믿는다. 오랜 교편생활 끝에 정년퇴임한 시인은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니 만큼 얼굴에 하나,둘 주름도 늘어나고 몸매도 예전 같지 않을 터 마음만은 청춘이고자 하지만 아들의 한마디에 새롭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시를 접하고 나니 새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문구가 생각이 난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건강관리로 인해 100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떤 이의 인생시계 계산법으로 치면 60세는 오후6시다 한참 일을 마치고 저녁을 즐길 시간이라는 것이다 인생시계 계산법은 간단하다 사람의 평균 나이를 80으로 계산하고 24시간에 비유하는 것이다 24간은 1.440분에 해당한다. 이것을 80년으로 나누면 18분이다 1년에 18분씩 10년에 3시간씩 시간이 흘러가는 것으로 계산하면 현재 자기의 나이가 몇 시쯤에 와있는지 계산이 된다.70세가 되면 인생시계 계산법으로 오후 9시가 되어 잠자리에 들기에 이른 시간이어서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인생시계 계산법으로 셈을 하면서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나는 아직 저녁 먹기 전 좋은 시간에 살고 있다고... 아직 틀렸다고 하기엔 이른 나이라고.
평생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어머니
식솔들 생일은 물론
대소사 생신이나 제삿날, 받을 것 줄 것을
머릿속 어디에 적어 놓으셨는지
보지도 않고 줄줄이 외우셔서
어머니가 틀림없이 천재일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 어머니가 철학자라는 건
어머니 떠나신지 오랜 지금에야 알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단다“
“개똥밭에 굴러도 죽는 것 보다 사는게 낫지!“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란다“
긴 한숨이 샐 때마다 줄줄이 뱉어놓은 어머니의 경전
하늘이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죽을 듯 죽지 않고 살아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있으니
뒤웅박인들 어떻겠는가
개똥밭인들 어떻겠는가
겨울 한 철 죽었다가 봄 한 철 살아나는
저 풀잎처럼
사방에 똥칠하면서도
죽는 것 보다 사는 게 낫다던 어머니
그 위대한 철학처럼
-어머니는 철학자였다- 전문
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에서 어머니에 관한 시 두 편 중 한편이다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아프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매어오는 그 이름.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윤시인의 부모님 세대에는 가난이 보통명사처럼 살기 힘들 시절이었다. 부엌에서 밥을 할 때도 남편이 속 썩일 때 한숨과 함께 내뱉던 말들. 가난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들려주었던 격언들이 돌아보니 모두 철학적이고 생활의 지혜였음을 깨닫는다. 다른 한 편의 시 『어머니의 한』 에서는 살아생전에 아버지의 곁에는 묻히지 않겠다는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으면서 /어머니 그래도 아버지 곁이 나아요/ 아버지는 죽은 목숨이잖아요/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생전에 사이가 좋지 못했던 남편이기에 죽어서는 자유롭게 홀로 있고 싶었던 어머니를 아버지와 합장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뒤늦게 시에 담아냈다.
그 여름 나는 시와 연애에 열중했다 시에 더 열중
하고 싶었지만 시는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워서 열중
할 수 없었다 연애는 달콤하고 황홀해서 밤낮으로 집
중할 수 있었지만 지나간 뒤에 공허가 오래 남았다
밤 새워 쓴 시는 아침이면 한 줄도 남지 않고
시들어 버렸다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워서
나를 거부한 시
나의 시는 나의 연애만큼 절실하지 못했다
나는 연애 같은 시를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고
시 같은 연애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혁명적이라고 믿었던 문장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지고한 사랑은 불륜의 패러디로 치부되었다
시와 연애사이에서 인생의 여러 페이지를 남용하고
내 감각(感覺)의 사인(死因)을 추적하는 것으로
남은 생을 남발하고 있다
-시와 연애의 무용론- 전문
첫 번째 시집 『나 그래도 꽤 괜찮은 여자입니다』 이후 네 번째 시집제목을 시와 연애의 무용론이라 붙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이번 시집의 제목은 성공적이지 않을까? 시인은 시와 연애의 무용론을 외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시와 연애의 유용론을 외치고 있다. 한 권의 시집을 사려고 서점에 갔다가 시의 무용론을 절실하게 느낀 적이 있다 서점에 가서 시집을 찾다가 구석자리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몇 권의 시집을 보고 허탈한 적이 있는데 물론 대도시 큰 서점은 사정이 조금 다르겠지만 서점 가판대 맨 앞쪽을 차지하던 시집들이 이제는 경제서적에 밀려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것은 시골이나 대도시나 마찬가지이다. 요즘 누가 시집을 사서 읽느냐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읽는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바쁜 시간에 쫓겨 시 한 편 읽을 여유가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시가 넘쳐나서 시의 홍수에 살고 있으면서 시집은 팔리지 않고 인문학 강좌에 자리가 넘치도록 사람들이 넘치는데 전국의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는 수강생이 없어 폐강되는 현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와 연애가 없다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쓸쓸할까? 그래서 시와 연애 사이에서 인생의 여러 페이지를 남용하고 있는 현재에도 시 같은 연애를 연애 같은 시를 우리들은 꿈꾸며 살아간다. 인생 후반기에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윤 시인의 열정에 웅원의 박수를 보내며 여기 윤시인의 유쾌한 시 한 편을 남겨놓는다
명자가 웃고 있는 상가(喪家)는 동창회장이다
농촌에서 농촌으로 시집 왔지만
서울이 되어버린 명자네 집
그 많은 논 밭 다 금덩이가 되어
월수입만 몇 천이 넘는 부자, 명자
그래도 촌놈 기질 벗지 못해 밤이나 낮이나
일을 놓지 않고
10원 벌이 단추달기도 종일하면 하루 5천원이 된다고
자랑하면서 뒤에서 수군수군 쓸 줄 모른다고 말하는 거
다 알지만 상관 않는다는
그 말이 나는 좋았는데
화장실이 대문 밖에 있는 옛날 집에서 아파트는
새 집 같아서 싫다고 고집하더니 얼마 전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너무너무 좋다고 놀러오라더니
멀리 동두천 연곡 전곡에서 초등학교 동창생들
다 불러놓고 막걸리에 빈대떡 부쳐 푸짐히 차려낸다
잘 갔다느니 너무 빠르다느니
눈물 콧물 한숨 섞어 찔끔 울려놓고서
억대 부자 명자 시종일관 웃음이다
뭐가 켕기는지 모두들 훌쩍 일어서지도 못하고
언제 다시 만날까 손을 잡다가
에구구....마른 다리를 주무르다가
누군가 찰칵,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활짝 웃고 있는
명자를 찍다가
어느새 눈짓으로 우리를 세워놓고 찰칵,
“웃어! 웃어!”
(명자가 듣지 못하게)
“웃어! 웃어!”
-상가에서, 웃어!-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