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밤에 달이 하나이듯
정말 소중한 것들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요
몸이 하나요
일생이 한번뿐이요.
내 사랑도 오직 하나입니다.
고로 믿음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사랑도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나?
그러나 진리는 오류와 타협될 수 없고,
생명과 사망은 엄연히 다르듯
참과 거짓은 타협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불교에 대해 오래 연구하셨던
한 분의 연구내용을 토대로
중요한 내용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어릴 적 절에서 자라 대부분의 불경을 읽고, 스님이 도와준 은혜로 고신대학을 졸업한 어떤 목사님의 연구발표의 내용을 토대로)
석가모니의 가르침
석가모니는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에 위치했던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서 29세가 되던 해 생로병사의 고뇌와 108가지의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출가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B.C 500년경 인도와 주변국가들은 모두 힌두국가였고 석가모니 또한 힌두교 신자였기에 육체의 고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으나 고행을 통하여서는 해탈에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수행을 하던 중 마침내 35세가 되는 해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인도를 중심으로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고 그의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깨달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 부처(산스크리트어)라고 불렀다.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생기는 108번뇌와 생로병사의 모든 고통은 사람이 가진 욕심 때문이며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욕심을 버리고 버려서 자기 자신도 없는 상태, 즉, 무아(無)의 상태가 되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무아(無我)의 상태를 '니르바나" 라 하며 우리말로 번역하면 곧 열반"이라고 한다.
스님들이 죽으면 열반에 들었다는 것은 더 이상 욕심이 없는 세계에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석가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구원자나 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제자들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을 때마다 "내가 살아서의 일도 모르는데 죽고 난 다음을 어떻게 알겠냐?"고 대답하셨다.
석가모니는 죽기직전에도 자기를 찾았던 제자들에게 "나는 도를 찾아가는 구도자이지 구원자가 아니다"라며 이후에라도 더 좋은 진리가 있으면 그 진리를 찾으라고 하시며 제사를 드리거나 주문을 외우거나 탑을 돌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며 숨을 거두었다. 사회적으로 석가모니의 위대한 업적은 힌두교의 윤회설과 카스트 제도를 사회의 공공의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소수의 상류 계급을 유지하고 나머지 인간을 억압하는 카스트 제도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하고 있는 윤회(輪廻)설은 "인간이 만든 사상과 제도 중 가장 간악하고 사악한 것"이라고 규정하여 파란을 일으켰으며 결국 그는 힌두교에서 나와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던 것이다.
◈ 부처님의 가르침 요약
① 나는 구원자가 아니라 구도자이다.
② 인간의 고통은 욕심, 집착에서 생긴다. 무아, 열반의 경지를 경험하라.
③ 윤회는 가장 사악한 제도이다. 카스트제도의 기초이다.
④ 극락도 영혼도 없다.
⑤ 죽음후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
⑥ 내가 죽거든 신상을 만들지도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 윤회설이 거짓된 가르침임을 다시 확인해 주는 인도의 암베드카르
(참고: 영혼존재의 부정과 윤회설의 부정에 대하여 깊이 알고 싶으면'인도로 간 붓다' - 암베드카르Ambedkar, 1891년~1956년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암베드카르는 간디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가 탄생했을 때 국경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가촉천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봄베이대학교 엘핀스톤 칼리지를 졸업한 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노동부장관을 시작으로 1947년 독립 인도의 법무장관, 인도 헌법 초안적성위원회 의장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암베드카르가 이룬 가장 큰 공헌은 일생 동안 불교와 석가모니의 생애를 연구하여 1950년대에 20만 명밖에 되지 않던 인도의 불자들을 1억 명까지 개종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교의 핵심진리를 정리하여 『인도로 간 붓다 그의 삶과 가르침』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책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영혼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는 영혼에 기초하는 종교는 무가치한 것이고 단지 미신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확고하게 생각했습니다.
“붓다는 영혼을 믿었는가? 그는 믿지 않았다. 그의 영혼설은 아나타, 즉 무영혼설로 불려지고 있다." (이상근 옮김, 청미래 펴냄.188 쪽 9 참조.)
2. 그런데 왜 불교는 종교처럼 보이나?
불교는 소승(小乘)불교와 대승(大乘) 불교로 나눌 수 있다
소승(小乘)불교는 초기불교, 상좌불교, 원시불교라고도 한다. 소승(小乘)불교는 석가가 죽은 후 30년경에 500명의 승려들이 모여 석가모니 일평생의 모든 말씀을 다 기록하여 만든 '아함경' 을 경전으로 하는 불교종파이다!
여기에는 내세(來世)사상이라고는 전혀 없다.
대승(大乘)불교는 석가모니가 사후 700년이 지난 이후인 A.D 200여년 경 남인도의 브라흐만 집안의 사제인 나가르주나가 창시한 신흥종교이다.
나가르주나는 소승불교를 알고 있었지만 혼자만의 해탈을 추구하는 소승불교는 이기적인 가르침이라 비판하고 일체중생(一切의 구제를 이상으로 내세우고 석가모니가 모른다고 했던 내세사상과 신화적인 요소를 접목시켜 신흥종교인 대승불교를 만든 것이다.
구글 위키백과사전에 《나가르주나>를 검색해 보면 대승불교의창시자, 제2의 석가모니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대승불교는 원래석가모니의 불교인 소승불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신흥종교를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것처럼 속이고스스로를 대승(큰 가르침)이라 칭하고 원래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소승(작은 가르침)이라 칭하며 경시했다.
결국, '소승불교' 라는 명칭도 나가르주나가 자신이 만든 '대승불교'를 스스로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이름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승불교는 인도 전 지역에 왕성하게 퍼져나가게 되었으나 내세 사상이 없었던 소승불교는 스리랑카 일부지역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당나라 시대 때 '현장법사'는 인도에 건너가 불교를 공부하고 불경들을 가져왔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것은 원래 석가모니의 불교(소승불교)가 아닌 대승불교라는 가짜 불교를 중국에 가져와 포교하게 되었고 이것은 신라, 백제등 에 그대로 전파되었으며 백제를 통하여 일본에 까지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A%B0%80%EB%A5%B4%EC%A3%BC%EB%82%98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배우러 와서 신천지를 배워서는 자기 나라에 가서 이것이 기독교라고 포교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대승불교는 불교계 내부에서도 불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대승비불설' 이라고 한다.
대승비불설이란?
"대승불교 경전은 성립 시기가 늦기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볼 수 없어서 대승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주장"(구글 위키 백과사전)
참고로 대승불교의 경전은 화엄경, 반야심경, 천수경, 아미타경, 금강 경 등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경전의 말씀이 석가모니 진짜 말씀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져 전해온 것이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봉암사 적명스님이 성철스님과 나눈 대승불설에 관한 내용을 다룬 법문을 보면 대승불교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성철스님도 명백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눈물 지으며 감동 깊게 읽은 대승경전이 다 거짓이라니…<봉암사수좌적명 스님이 제주불자들에게 들려준 법문내용 중>
고향 여러분들께 불교의 핵심에 대해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제가 28살에 되던 해에 성철 스님을 뵈러 해인사를 처음 갔습니다.
당시 성철 스님도 파계사에 계시다가 친한 도반인 자은 스님이 계셔서 해인사에 주석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성철스님을 뵙자 처음부터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왜 보자마자 그 질문을 드렸냐하면 제가 출가 후 처음 대승경전을 봤는데 대승경전 이야기들이 부처님의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알았어요.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하신 말씀과 사리불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부처님을 신처럼 느껴질 정도였고, 어떤 부분에선 감동이 밀려와 목이 메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경전을 제대로 못 읽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대승경전이 부처님이 친히 설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입적 후 한참 후에 만들어진 경이라는 것을 알고 속은 느낌이랄까? 사기 당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눈물 지으며 감동 깊게 읽었던 경전이 다 가짜라는 생각에 스님 노릇을 그만해야 하나' 라고회의감까지 들었어요.
그래도 내 자신을 설득하고 용맹정진 하면서 마음은 진정됐는데 의심의 뿌리는 없어지지 않았어요. 성철 스님이 저보다 27살 위셨으니까 40대 후반이셨을 겁니다.
내가 이제 80이 다됐으니까(웃음). 성철 스님은 선과 교를 겸해 박학다식 하셨고, 이미 유명하셨어요.
내 의심 덩어리를 던질 선지식을 발견한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철 스님께 인사를 하자마자 "대승불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마치 그 □ 질문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그 심한 경상도사투리로 답을 마구 쏟아냈어요.(웃음)성철 스님은 “대승비불설이 부처님의 진설이 아니라는 것은 맞기는 맞아예......
(제주불교신문, 2017.04.07 인터넷기사 발췌)
이러한 사실은 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 도 잘 알고 있었으며 평생을 믿고 닦았던 진리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극락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잠잘 때 꿈속에서 잠꼬대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불교를 노인들이 죽어서 극락이나 가려고 염불을 하는 종교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부처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는 일생동안 부처 앞에 절을 하거나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1982년 석탄일 법어)
소승불교는 신이 없기 때문에 극락, 지옥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말하며 지금도 동남아지역의 소승불교에서는 출가를 기본으로 한 의식이 강하고 극동지역의 대승불교에는 이런 극락과 지옥의 개념이 유입되어 만들어진 신흥종교인 것이다.
무소유로 유명했던 법정스님의 유언이나 성철스님이 딸 필히에게 남긴 유언만 보더라고 어디에도 극락이나 내세적인 말은 없다.
<성철 스님의 유언>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 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 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필히야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스님이 운명 직전 지옥의 석가를 보고 쓴 성철의 시
- 성철스님은 자신의 제자들과 저널의 기자가 보는 가운데 임종하였다.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西天(서천)에 속이고 東土(동토)에 기만하네
도적이여 도적이여!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녀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 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 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잎에 夜叉 (야차: 마귀 이름)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 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섭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빽빽함이여 바람이 씽씽 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234567 이여
두견새 우는 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억!( -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임종하다)
위의 시는 성철 스님의 운명 직전 <시사저널> 김훈 기자가 취재해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운명 전 영계를 직접 보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섭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시로 묘사한 것으로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 스님이 죽음 직전 그 광경을 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위 성철스님의 유언에서도 보듯이 일평생 믿었던 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상실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불교는 사회적인 도덕과 질서를 지키는 윤리는 될 수 있어도 구원을 주는 종교는 아닌 것이다.
https://youtu.be/GP7x43agT_A?si=B_Enl0JFNTcU4p2V
https://youtu.be/yrjCacscUEA?si=s85IXDR2pwZ_p51C
https://youtu.be/zpkhxWQCAZE?si=JBTJiGT5fjzSte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