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순례 / 곽주현
볕이 따갑다. 아직 5월인데 벌써 여름 못지않은 날씨다. 자외선이 강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이렇게 땡볕 일줄 몰랐다. 양산을 쓰고 가는 여성들이 많다. 이럴 땐 가끔 이런 의구심이 생긴다. ‘왜 남자들은 양산 같은 햇빛 가림막이 없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초등생 수준의 호기심을 거두며 그늘진 쪽을 찾아 걷는다. 집에서 30여 분 걸리는 거리지만, 운동하려고 차를 타지 않고 간다. 병원에 가는 길이다.
나이가 드니 몸뚱이가 심상치 않다. 이곳저곳에 빨간불이 켜진다. 요즘 머리가 무겁고 쉽게 지치는 것 같아 집에 있는 혈압계로 체크를 했더니 수치가 자꾸 정상 범위를 벗어난다. 수축 혈압이 160을 넘을 때도 자주 생긴다. 운동, 음식 조절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 노력이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나 보다.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를 다독여 보지만, 언짢은 기분을 다 털어 내기가 어렵다. 할 수 없이 약을 처방받았다.
손주들 돌보미로 딸네 집에 머문 날이 많아 목포에서 비뇨기과 다니다가 딸이 이사하게 되어 광주의 다른 병원을 찾았다. 전립선 비대증 때문이다. 70대가 되면 10명 중 일곱 명 이상 겪게 된다는 소변 장애 증상이다. 남자에게만 있는 질병이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다. 의사가 상태가 너무 나쁘다며 당장 수술을 하라고 권고한다. 거의 명령조다. 아니 여태껏 다녔던 곳에서는 별말이 없더니 갑자기 수술이라니, 떡심이 풀린다. 곧바로 전남대학 병원에 예약하고 며칠 후에 진료를 받았다. 초음파와 요속(오줌 속도), 혈액 검사 등을 하자며 날을 잡아 준다. 엊그제 동네 의원에서 준 자료를 제출했는데 같은 것을 또 하자고 한다. 병원을 옮기면 이러는 게 이해가 안 되어 “또 검사해요?”라고 물어도 설명이 없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10여 년 전부터 약을 먹고 있다. 처음에 고지혈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육 고기보다는 생선과 채소를 더 많이 먹는 편인데도 그렇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과일을 워낙 좋아해서 제철에 나오는 것들을 상자로 사다가 먹는데도 이렇게 되었다. 유전, 환경, 노화, 일상생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내과를 방문한다.
20여 년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장동료들이 모임이 있는 날이다. 회원 한 분이 카톡에 참석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 함께 할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한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정정했다. ‘이분이 그런다고?’ 골프, 탁구, 파크 골프, 배드민턴 등 운동을 좋아해서 늘 활기차게 생활한다. 그래서 믿기지 않는다. 걱정되어서 전화했다. 거동이 불편해서 나들이가 힘들겠단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며 안 가겠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그런데 전화 너머의 목소리에 ‘꼭 나가서 만나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서글프네.’ 하는 말이 묻어나고 있었다. 내 집과 먼 곳에 살고 있어 좀 망설였으나 그분의 아파트로 승용차를 몰았다.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비척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온다. 그 균형 잡힌 몸매는 어디 가고 몸꼴이 말이 아니다. 탁구 치다가 쓰러졌는데 45일 만에야 의식을 찾았다 한다. 일과가 재활 치료하는 것이란다. 함께 한 역전의 용사(?)들이 한마디씩 한다. ‘노인은 누구나 예비 환자.’라고.
노인은 갖가지 질병에 취학하다. 건강했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되기도 한다. 아프지 않으려고 날마다 알맞게 운동하고 내 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다. 나이 들면 일과의 많은 부분을 건강 지키기에 내주지만, 점점 쇠약해 가는 체력은 어쩔 수 없다.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젊은이들을 들쑤셨지만 <아프니까 노인이다>가 맞다.
첫댓글 글을 읽는데, 먹먹해지네요. 곽 선생님은 날씬하고 피부도 좋으셔서 참 건강해 보였어요. 《아프니까, 노인이다.》참 서글픈 표현입니다.
'아프니까 노인이다.'
선생님 재치가 너무 신선해서 웃었어요.
죄송합니다.
글이 정말로 좋아요!
나이 들면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건강해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선생님 건강을 위해 기도할께요.
건강 회복하시길 빕니다. 일상이 늘 글의 소재가 되고 잘 쓰시는군요.
아니, 선생님. 서글프게 왜 이러세요. 노인이라는 생각 안 듭니다!
요즘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야 할 병원 수가 많아지고 먹어야 할 약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더 짙어지네요. 건강하게 나이 들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아픈 부분들은 잘 다스려 나가시면서 손자들 잘 돌보시고 좋은 글도 오래 오래 써 주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소망하는 건강, 선생님의 소망도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저는 <노인이니까 아프다> 로 표현해 봅니다.
겉으론 말짱해 보이셨는데, 요즘 애들말로 '사기캐' 이시군요. 건강에 더 신경쓰셔서 좋은 글 오래 쓰셔야지요. 사실은 저도 자랑할 병이 있답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맞나 봅니다.
저도 운동하는데 최대한 시간을 많이 쓰려고 노력합니다.
서글프게 병원 순례만 하다 인생을 보낼 순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