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물리치는 방법은 많지만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관리관이 쓰고 있는 이 방법, 즉 최선의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도 머리로는 억지로 최악을 생각하는 것은 가장 흔한 방법이며, 더 깊이 생각을 해봄직도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우리는 의심할 수 없는 어떤 정보제공자로부터 관리관의 부인이 실제로 영화를 보러갔으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투표를 할지 말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흔히 말하는 균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우주가 제 갈길을 가게하고 행성들이 제 궤도를 돌게 해주는 것으로, 한쪽에서 뭔가를 가져가면 다른 쪽에서 다른 뭔가로, 대체로 대등한 뭔가로, 똑같은 질을 가진 뭔가로, 가능하다면 똑같은 크기를 가진 뭔가로 대체가 이루어지며, 그래서 불공평한 대접에 대한 불평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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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주에 그 나름의 법칙들, 인류의 모순된 꿈이나 욕망에 무관심한 법칙들, 우리가 서툴게 이름을 붙인 것 말고는 기여한 것이 전혀 없는 법칙들이 있을 뿐 아니라, 어느 모로 보나 우주는 이 법칙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또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목표에 사용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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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가 끝난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유효표 숫자는 이십오 퍼센트에 미치지 못했다.
우익정당이 십삼 퍼센트로 일위를 했으며, 중도정당이 구 퍼센트, 좌익정당이 이점오 퍼센트였다.
무효표나 기권은 거의 없었다.
나머지 표, 그러니까 전체 표의 칠십 퍼센트 이상이 모두 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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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십시오, 입을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나도요,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장관님한테 이 말은 좀 해주세요, 아무리 빈틈없는 꾀를 내도 소용이 없다고요,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때도 계속 진실을 말한다고요, 바로 장관님처럼, 바로 댁처럼 말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대한테 나하고 같이 자고 싶으냐고 물었다면 댁은 뭐라고 말했겠어요, 저 기계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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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대신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복합 철수요,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이 일련의 행동 계획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와 더불어 민주적인 정상적 상태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하오, 다시 말해서 이 계획이란 정부를 즉시 다른 도시로 이동하여, 그 도시를 나라의 새로운 수도로 삼는 거요, 수도에 배치중인 모든 부대도 철수하고, 경찰도 모두 철수하는 거요, 이런 과감한 조치의 목적은 반란의 도시를 완전히 혼자 내버려두어서 그들이 마음껏 시간을 쓰면서 나라의 신 성불가침의 통일성으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 지 이해하게 하자는 것이오, 이 도시가 고립, 모욕, 경멸을 더 견딜 수 없을 때, 도시 안의 삶이 혼돈에 빠졌을 때, 그때 그 죄를 지은 주민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우리에게 다가와 용서를 구할거요.
총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게 내 계획이오, 여러분이 한번 검토하고 토론해 보시오, 하지만 긴 말 할 필요도 없이 나는 여러분이 만장일치로 승인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소, 지독한 병에는 지독한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오, 내가 처방하는 치료법이 여러분에게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이 간단히 말해 치명적이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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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도덕적 불완전성은 전에도 자주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것이 아니잖아, 그건 역사적 사실 이야, 저 산들만큼 오래된 거라고, 지금은 우리가 모두 서로를 밀어주는 것 같지, 하지만 내일이면 다툼이 시작될 거야, 그 다음 단계는 노골적인 전쟁, 불화, 대결이겠지, 그러는 동안 저자들은 링사이드에 느긋하게 앉아 그걸 구경하겠지, 우리가 얼마나 오래 버틸지 내기를 하면서 말이야, 버티는 동안은 좋지, 친구, 하지만 패배는 확실하고 틀림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 이야기는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야, 이런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백지투표를 하다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 미친 거야, 정부는 아직 놀라움을 털어버리지 못했어, 여전히 숨을 돌리는 중이라고, 하지만 첫 승리는 저들에게 돌아 갔어, 저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면서 우리가 똥더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어, 저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그 정도지 뭐, 그리고 외국의 압력도 생각해 봐야 해, 지금 전 세계의 모든 정부와 정당들이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자네가 원하는 뭐든지 걸 수 있어, 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거든, 그 사람들은 이게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거야, 여기서 불을 붙이고 기다리면 저기서 터진다는 거지.
하지만 우리가 저들에게 고작 똥더미에 불과하다면, 끝까지 똥노릇을 하자고, 어깨를 걸고 말이야, 우리가 어떤 똥인지 똥맛도 좀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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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분명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질문을 하나 해볼 생각이오.
하십시오, 장관님.
당신 백지투표 했소.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잘 못 들어서요.
당신이 백지투표를 했냐고 물었소, 당신이 투표함에 넣은 투표용 지가 백지였냐고 물었단 말이오.
아무도 모르지요, 장관님, 아무도 모르죠.
이 일이 다 끝나면 한번 만나 오래 대화를 하고 싶소.
좋을 대로 하십시오, 장관님.
잘 계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그곳으로 가서 당신 싸대기를 한 대 올려 붙이는 거요.
안됐지만, 나는 너무 늙어서요, 장관님.
만일 당신이 내무부장관이 된다면, 싸대기를 올려붙이는 교정 방법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요.
악마가 그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하십시오. 장관님.
악마는 귀가 아주 밝아 큰 소리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소.
그럼 우리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가호를 빌어봐야 소용없소, 원래 신은 날 때부터 귀머거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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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그래, 없어도 되네, 퇴근하게,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시장님.
내일 보세.
우리가 평생 매일 작별인사를 하면서, 내일 보자는 이야기를 하거나 들으면서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그 가운데 하루는 누군 가의 마지막 날일 텐데.
우리가 그 말을 한 사람이 이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말을 한 우리가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내일에,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이튿날이라고 부르는 날에, 시장과 운전사가 다시 만났을
때, 내일 본다는 것이 그 간단한 말과는 달리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 그럼에도 그것이 실제로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기적적인 일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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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순간, 특히 숭고함에 다가선 순간의 심각한 약점은 그것이 아주 짧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약점이 없다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 큰 약점이란 그 순간이 끝났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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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자 정무비서가 말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창의적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저 사람이 우리 신뢰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이 만족스럽게 증명이 된 셈이로군요.
자네의 신뢰는 받을 만하겠지, 대통령이 말했다, 하지만 내 신뢰는 아닐세.
하지만 제 생각에는.
자네는 옳게 생각했네, 하지만 동시에 잘못 생각하기도 했네, 사람을 분류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은 어리석은 자와 영리한 자로 나누는 게 아니야, 영리한 자와 지나치게 영리한 자로 나누는 거지, 어리석은 자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영리한 자는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좋지, 하지만 지나치게 영리한 자는 우리 편에 있어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위험해, 그 사람들은 도움이 안 돼, 아주 묘한 것은 말이지, 그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늘 자기한테 경계심을 풀지 말라고 경고를 하듯이 행동한다는 거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가 낭패를 당하지.
그러니까 그 말씀은, 각하.
그래, 우리의 신중한 사무관, 골치 아픈 편지를 단순한 청원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그 편지등록부의 요술쟁이가 곧 경찰의 소환을 당해 협박을 당하게 될 거라는 말일세, 왜 아까 자네하고 내가 얘기했던 것 있잖나, 그 사람, 자기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겠지만,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고.
역시 그 말씀이 옳습니다. 각하, 언제나 멀리 보시는군요.
그래, 하지만 정치생활에서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이 의자에 앉은 거야, 그때는 이 의자의 팔걸이에 수갑이 달려 있는지 몰랐지.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서 그렇지요.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나한테 허용하는 일이라고는 리본이나 자르고 아기한테 입 맞추는 것밖에
없지.
그래도 지금은 으뜸패를 쥐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이걸 총리한테 건네주는 순간, 그건 총리의 으뜸패가 될 걸세, 나는 그냥 우체부 역할이나 하게 되지.
그럼 총리가 그걸 내무부장관한테 넘겨주는 순간, 그건 경찰 것이 되겠군요, 경찰이 조립 라인 맨 끝에 있으니까요.
자네도 많이 배웠군.
여기가 좋은 학교나 다름없으니까요, 각하.
이보게나.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각하.
그 가엾은 녀석을 그냥 놓아두세, 누가 아나, 오늘밤에 내가 집에 가서, 아니면 나중에 침대에서, 마누라한테 그 편지 내용을 말하게 될지, 또 정무비서 자네가 똑같은 일을 할지, 그럼 자네 부인은 자네를 영웅처럼 바라보지 않겠나, 자신의 착한 남편이 모든 비밀을, 국가가 짜는 그물을 속속들이 다 아는 사람, 내부 사정을 잘 알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권력의 하수구에서 나는 썩는 냄새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만 하시지요, 각하.
아니, 신경 쓰지 말게, 나 자신이 최악의 인간들만큼 악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그걸로 다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해질 때가 있네, 그럴 때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영혼이 아프다네.
각하, 제 입은 지금이나 나중이나 늘 닫혀 있을 겁니다.
내 입도 마찬가지일세, 내 입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우리가 모두가 입을 열고 쉴 새 없이 말을 하면 세상 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그러면 마침내.
마침내 뭡니까, 각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닐세, 지금은 혼자 있게 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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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나는 계속 당신을 의사라고 부르는데, 당신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아직 물어보 지 않았소.
경찰한테 자기가 아는 것이나 안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게 시간 낭비로 보였
기 때문이지요.
좋은 대답이오, 신에게 어떻게 전지, 전능, 편재할 수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로군.
그렇다고 경찰이 신이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단지 지상에서 신을 겸손하게 대리하는 사람들일 뿐이오, 의사 양반.
아, 나는 교회와 사제가 그런 일을 하는지 알았는데요.
교회와 사제는 서열이 두 번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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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가까이 다가왔다. 코가 경정의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개는 경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말하고 있었다, 당신을 해치지 않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전에 이 여자를 만났을 때 이 여자는 두려워하지 않았어.
그러자 경정은 천천히 손을 뻗어 개의 머리를 만졌다.
경정은 울고 싶었다. 눈물이 그냥 흘러내리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경이가 되풀이될지도 몰랐다. 의사 부인은 책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가요.
어디로요, 경정이 말했다.
함께 점심을 드세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말이에요.
정말이오.
뭐가요.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는 게.
정말이잖고요.
내가 지금 속임수를 쓰는 건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소.
그렇게 눈물이 그렁거리는 사람이 속임수를 쓸 리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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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만 물어봐 도 좋을지 모르겠네요.
물어보시오.
왜 우리한테 이렇게 해주는 거죠, 왜 우리를 돕는 거예요.
책에서 읽은 것 때문이오, 오래전에,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며칠 전에 생각이 났소.
그게 뭐죠.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좋네요, 생각을 자극하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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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오.
이 이야기에서 단물이 다 빠지면 다 른 이야기를 또 꾸며내겠죠 뭐, 늘 똑같잖아요, 아, 운전대를 잡고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걸 알게 되는지 놀랍습니다, 다른 이야기도 해드릴까요.
해보시오.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후면경은 그냥 뒤에 오는 차들만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그걸로 승객의 영 혼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 생각은 못해 보셨을 걸요.
못해 봤소, 그거 놀라운 일이구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이 운전대는 많은 걸 가르쳐준다니까요.
경정은 그런 놀라운 사실을 알 아냈으니, 이제 대화는 그쯤 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사가 차를 세우며, 다 왔습니다, 하고 말했을 때에야 경정은 그 후면경과 영혼 이야기가 모든 차, 모든 운전자에게 적용되는지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아뇨, 택시만 그렇죠, 손님, 택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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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은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맛을 기억하며 한 입 한 입 음미했다. 커피도 어제보다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자 몸이 새로 기운을 얻은 것 같았다.
어제부터 공원과 연못에, 그 녹색물과 물동이를 든 여자에게 어떤 의무감을 느끼던 정신은 그에
게 말했다, 너는 거기에 그렇게 가고 싶어하면서 가지 않았잖아. 그래, 지금 갈 거야, 경정은 대답
했다. 경정은 돈을 내고 신문을 봉투에다 도로 넣고 출발했다.
택시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걸어가는 쪽을 택했다.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기도 좋았다. 경정은 공원에 이르자 의사 부인과 이야기했던, 그리고 눈물을 핥는 개와 본격적으로 친해졌던 벤치로 가서 앉았다. 그곳에서는 물웅덩이와 물을 부으려고 물동이를 기울이고 있는 여인이 잘 보였다. 나무 밑은 여전히 약간 서늘했다.
경정은 레인코트를 끌어당겨 무릎을 덮은 뒤, 만족해서 큰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얀 점이 박힌 파란 타이를 맨 남자가 뒤에서 다가와 경정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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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은 우리 적들이 죽였습니다.
제발 내 앞에서 오페라 아리아 좀 부르지 마시오, 나도 이 게임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 동화는 안 믿는단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적들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면 만들었지 죽일 이유는 전혀 없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총리님, 그자가 전복적인 인물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자하고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계산을 정리해도 되었을 거요, 그를 죽인 건 용서할 수 없는 대실수요, 이제 지금까지 벌어진 사태로도 모자라 거리에 시위대까지 나오게 되었지 않소.
그건 대수롭지 않은 겁니다, 총리님, 내 정보로는.
당신 정보는 아무런 가치가 없소, 이미 주민의 반이 거리로 나왔고, 나머지 반도 곧 합세할 거요.
미래는, 총리님, 미래는 틀림없이 내가 옳았다고 판단할 겁니다.
현재가 당신이 틀렸다고 판단하는데, 미래가 퍽이나, 당신한테 도움이 되겠소, 자, 이제 끝냅시다, 나가 주시오, 이야기는 끝났소.
하지만 후임자한테 일을 인계해야 하는데.
걱정 마시오, 그건 사람을 보내 처리 할 테니까.
하지만 내 후임자는 누가 됩니까.
사실 내가 당신 후임자요, 총리 겸 법무부장관이 내무부장관도 겸임하면 안 될 게 뭐가 있소, 그렇게 하면 모든 걸 가족 내에 묻어둘 수 있는데, 그러니 걱정 마시오, 내가 다 알아서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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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에 하얀 점이 박힌 파란 타이를 맨 남자가 의사 부인과 남편이 사는 건물 뒤편을 거의 마주 보는 건물의 평평한 지붕으로 올라갔다. 광택이 나는 나무 상자를 들고 있다.
사각형 상자였다. 안에는 분해된 무기가 들어 있다. 망원경이 달린 자동 소총이다.
그러나 망원경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훌륭한 저격수라면 이런 가까운 거리에서 표적을 놓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소음기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얀 점이 박힌 파란 타이를 맨 남자는 그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큰 무례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무기를 조립하여 장전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목전의 일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도구다. 하얀 점이 박힌 파란 타이를 맨 남자는 총을 쏠 자리를 고른 뒤에 기다릴 준비를 한다. 그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고 늘 잘했다. 조만간 의사 부인이 발코니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어 질 경우에 대비하여 하얀 점이 박힌 파란 타이를 맨 남자는 다른 무기도 가져왔다. 흔한 새총이다. 돌을 날릴 때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유리창을 깨는 데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무도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무도 어떤 개구쟁이가 그 짓을 했나 보러 달려나오지 않는다. 한 시간이 지났다. 의사의 부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가엾은 사람. 하지만 이제 나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것이다.
부인은 거리를 마주 보는 창문은 열지 않는다. 그곳에는 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은 뒤쪽 발코니를 더 좋아한다.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로 훨씬 더 조용해졌다.
여자는 쇠난간으로 다가간다. 두 손으로 난간을 잡는다. 쇠붙이가 차갑게 느껴진다.
우리는 여자에게 잇따라 울려 퍼진 두 발의 총소리를 들었냐고 물을 수 없다.
여자는 죽어 바닥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피가 흘러 발코니 아래로 뚝뚝떨어진다.
개가 달려 나와 코를 킁킁거리며 여주인의 얼굴을 핥더니, 목을 뻗어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낸다. 또 한 발의 총 소리가 그 소리를 없앤다.
그러자 한 눈 먼 남자가 물었다. 무슨 소리 들었나. 총소리가 세 발 들렸는데,
다른 눈먼 남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개가 우는 소리도 들리던데.지금은 그쳤어,
세 번째 총 소리 때문일거야. 잘 됐군,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