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使命) - 살아야 할 이유, 죽어야 할 이유
"슬프도다,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는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구나.....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是日也放聲大哭)
장지연 선생이 을사년 조약에 울분을 토하며 황성신분에 올린 글 중 일부입니다.
을사조약 직후 충정공 민영환은 목숨을 끊으면서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대전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다.
(나는)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이로부터 5녀 후인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됩니다.
이 때,매천(梅泉) 황현(黃絃)이라는 선비는 절명사(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금수도 슬피 울고 산천도 찡그리니/ 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다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
글 배운 사람 구실 정망 어렵구나.
역사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한국 전쟁 중에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주화의 제단 위에도 적지 않은 분들이 붉은 피, 뜨거운 피를 흘렸습니다.
이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뜻한 바 없이 죽어간 역사의 피해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분들이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였을까요?
이들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알고 있었을까요?
"나는 내 목숨을 살릴 권리도 있고 내 목숨을 내놓을 권리도 있습니다."
목숨을 내 놓을 권리란 어떤 어떤 사명감(使命感)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명감이란 "하늘 뜻"이요, 하늘의 명령(天命)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명감은 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고, 또한 죽어야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민영환은 유서에서 이렇게 썼다 하였습니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덩을 것이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했던 말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과 겹치고 있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은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한 10,17)
을사오적 같은 사람들은 결코자기 목숨을 던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식민지 세력에 빌붙어, 권력에 빌붙어 어떻게든 구차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저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하였도다..."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재앙이라고 노자는 말합니다.(益生日善. 노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죠.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신을 죽여서 사랑(仁)을 이룬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훨씬 더 노골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입니다.
나 때문에 죽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았던 이 땅의 성인들을 기리는 날 입니다.
그분들의 하늘 사랑과 신앙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는 성인들 앞에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을 것인가?
내 생명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이, 그런 사명감이 도대체 있기를 한 것인가?
나는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참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가?
2017. 09. 17
박신부의 묵상 산책
ㅡ모든 것 안에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ㅡ3권 중에서
서울 대교구 상도동성당 주임사제이신 박성칠 미카엘 신부님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