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의 반성 차은량 카타리나
집에서 차를 끌고 먼 길을 나설 때 기도를 합니다. 기도 후 마음이 놓이고 무탈하게 먼 길을 다녀옵니다. 바깥마당에 차를 주차하고 집안으로 들어올 때는 잘 다녀온 데 대한 감사기도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식사 때도 거의 그렇습니다. 식사전 기도를 드리노라면 감사의 마음이 하늘에 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슬고슬 윤기나는 밥이 된 쌀과, 김치 안에 들어간 배추와 고춧가루, 파, 마늘에 배인 농부들의 손길과 땀방울, 먼 바다 달려와 반찬이 되어준 고등어와 멸치에 들어간 어부들의 노고며 닭장에서 꺼내 온 계란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은혜로이 내려 주신 풍성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는 식사후 기도보다 설거지하기가 바쁩니다.
내가 다급할 때만 기도를 합니다. 대학졸업과 취업을 앞둔 아이들의 안정된 앞날을 위해 새벽에 눈을 뜨면 머리맡의 묵주와 기도책을 찾아 구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것이 나의 첫 구일기도였습니다. 그렇게 기도의 기쁨을 맛본 후에는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과음으로 인해 건강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가까운 사람과 빚어진 갈등으로 힘이 들 때도, 나 살자고 바친 기도를 그분은 다 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내 편한 기도만 하고 살면서도 놀라운 경험을 하곤 합니다.
운전 중 일어난 돌발상황에 등줄기가 오싹하며 이건 분명 대형 사고감이야 싶은데 찰나 같은 그 상황을 모면할 때면 절로 성호가 그려집니다. 운전할 때 뿐인가요 어디. 살면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난관을 만나고 거기서 무사히 벗어날 때마다 누군가의 기도가 있지 않고는 이렇게 내가 무사할 수가 없다는 분명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기도가 일상인 교우들을 보면 부끄러움에 뒷걸음질을 칩니다. 지난 대림시기엔 전과 달리 신앙생활에 대한 자책과 반성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농사철에는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쁘게 뛰어다니는 처지이긴 하지만 농사일을 핑계로 언제까지 이렇게 껍데기만 성당에 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두어 시간, 나의 이런 고민을 들은 대모님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카타리나, 바로 내가 기다린 이야기야.” 십여 년 냉담 중 맞닥뜨린 벼랑 끝에서 환하게 웃으며 서 계시던 대모님. 쓰러져 우는 내게 “성당 가자.”가 아니고 “성당 갈래?” 하시던 겸손한 대모님. 성서 말씀으로 그때그때 마땅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유말씀을 해 주시는 대모님은 내게는 성경박사요, 지혜로운 솔로몬입니다. 항상 저와 제 가정을 위해 구일기도를 하고 있노라고, 늦은 게 잘못이 아니라고, ‘매일미사 읽기와 성체조배, 기도와 복음묵상을 다시 시작하라’는 해답을 듣고 돌아오는데 날 저물어 어두운 빗길이 어찌 그리 환하던지요. 그날 이후 제 기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기도 빚을 갚는 기도입니다.
2024. 1. 7 주님공현대축일 주보/ 이야기가 있는 탁자/ 차은량 카타리나/ 수필가. 교구 가톨릭문인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