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식 수준에 과분했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 의대 증원 문제를 다룬 MBC '100분 토론'을 보고 느낀 점 류종렬(자유기고가)
지난 18일 MBC '100분 토론'에서 의대 증원 찬성 패널로 나온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과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의 주장을 듣고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의료 분야에 종사했고, 의료정책에 자문을 하는 사람들이 의료문제에 대해 잘못된 지식과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들이 저 정도라면 국민들의 80% 이상이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이 100분 토론이 있고 난 뒤 가장 화제가 되었던 인물은 송기민 위원장(이하 송기민)이지만, 박민숙 부위원장(이하 박민숙)도 송기민 못지 않은 망언을 쏟아냈다. 송기민은 최안나 의협 대변인(이하 최안나)이 정부의 필수의료 사법 리스크 대책이 너무 미흡하다며 형사처벌 대상에서 사망사고를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자, “환자가 죽었는데, 의사를 형사 처벌 못한다구요?”라는 발언으로 상식적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토론의 전후과정을 살펴보면, 송기민의 이 말은 의사의 고의나 중대한 실책이 아니더라도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며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송기민과 같이 생각하면 의사들은 단 10%라도 사망할 확률이 있는 환자는 진료, 치료, 수술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1%라도 살 가능성이 있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의사들이다. 하지만, 송기민 같은 자들로 인해 민사 보상이 과도해지고 형사 처벌이 가혹해져 더 이상 바이탈 분야 의사들이 견디지 못하고 이탈해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송기민은 필수의료가 왜 붕괴되었는지 모르니 의대 정원 증원하면 낙수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담당할 것이라는 무지몽매한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송기민은 앞에서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해야 하는 이유로 80%가 넘는 국민들이 찬성하는 것을 들고는, 뒤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해야 한다는 최안나의 주장에 대해 경부고속도로와 인천공항의 예를 들면서 두 사업은 여론과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밀어붙여 성공하지 않았냐고 반박한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경부고속도로/인천공항이 성격이 전혀 다른 데도 같은 층위에서 비교하는 것도 문제지만, 앞에서는 국민들의 여론이 그러니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해놓고는 뒤에서는 여론에 관계없이 국가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율배반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송기민은 우리나라 의사 수입(소득)이 세계 최고라며 마치 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 사수를 위해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의사들을 악마화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였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소득이 세계 최고라는 송기민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송기민은 의사들의 소득이 높은 국가(미국, 스위스, 일본,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호주, 캐나다)들이 빠진 나머지 OECD 국가들의 자료를 토대로 저런 주장을 한 것이다.
실제 자료를 제출한 국가들의 의사 소득을 비교해 보면, 전문의-봉직의 경우 우리나라는 31개국 중에 8위, 전문의-개원의는 11개국 중 6위, 일반의-봉직의 경우 19개국 중 9위로 중상위권에 위치하지만, 일반의-개원의 경우는 15개국 중 14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것도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사(전문의)가 되기까지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없는 반면, 유럽 국가들은 학자금, 전공의 과정에서 지원 등이 많다는 것과 영국의 경우는 의사의 연금이 거의 1억원에 이라는 점, 우리나라 전공의들은 4~5년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는 점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연간 소득만으로 비교하기 힘들다는 것을 송기인은 숨기고 있다.
필자가 볼 때, 송기민의 무지함도 어이가 없었지만, 박민숙의 발언은 간호사들도 화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민숙은 간호사 출신으로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에 오른 인물이다. 간호사 출신이라면 간호사들의 근무여건을 더 잘 알 것이고, 간호사들이 왜 이직율이 높은지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박민숙은 “간호대 정원도 1천명 더 늘리는데 의대 정원 증원을 왜 반대하느냐”고 일갈을 한다. 필자는 박민숙의 이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간호사협회가 간협의 수뇌부 자신들만의 조직일 뿐, 간호사들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는 일선 간호사들의 불만이 왜 나왔는지도 알 것 같았다. 간호사 출신 인사가 간호대 정원 늘렸다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니 간호사 처우가 바닥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니 간호사들이 2년도 안 되어 70%가 사직을 하지 않겠나?
우리나라의 간호사 등록자 수는 인구 1천명당 8.76명(2021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을 넘어선다. 하지만 2020년 국가별 면허등록 간호사 수 대비 의료기간 활동비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51.7%(OECD 평균 74.7%)로 OECD 꼴찌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장롱면허가 절반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장롱면허가 많은 이유는 간호사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취업했다가 너무 힘들어 1~2년만에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갖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간호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료현장에 근무하는 간호사 수가 적은 것이다. 우리나라 병,의원 등 의료기관들은 간호사 고용을 많이 하면 비용이 증가해 수익이 악화되기 때문에 적정 간호사 고용을 꺼려한다. 병,의원장 등 경영진은 간호대 정원이 늘어 간호사 배출이 늘어나면 경쟁이 심해져 저임의 간호사들의 고용이 용이하니 간호대 정원 증원을 환영하게 된다.
간호사 출신의 박민숙이 이런 구조적인 문제도 모르고 당당히 “당당히 우리는 간호대 정원을 늘렸다”고 공개석상에서 떠들고 있으니 현장의 간호사들이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간호사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려면 간호대 정원을 증원할 것이 아니라 감축하고 간호사 1인당 간호 환자 수를 OECD 평균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전혀 담지 못하는 속빈 강정 같은 ‘간호법’에 동의해 놓고는 이를 거부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고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대한간호사협회를 현직 간호사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저런 자들이 간호사들을 대변한다고 간부직을 꿰차고 있으니 우리나라 의료가 산으로 가고 간호사들은 현장에서 아직도 신음을 하는 것이다.
2023년 출생아 수는 약 23만명이다. 우리나라 간호대 정원이 2만 5천명인데, 이들이 대학을 갈 때 즈음에는 10명 중 1명은 간호대를 가야 하는데, 박민숙은 간호대 정원 1천명 늘리는 것을 당당히 자랑하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최소한 간호대 정원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간호사 인력 수급이나 간호대 교육이 정상화될 것인데 간호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간호협회가 동의하고 있으니....
송기민이나 박민숙은 의료인 증가만이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 것처럼 의대 정원도 늘리고 간호대 정원도 늘리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송기민이나 박민숙은 우리나라 약사들이 OECD 국가들에 비해 얼마나 부족한지는 아는지 모르겠다. 이들의 논리나 주장에 따르자면 우리나라 약대 정원은 지금보다 100% 이상 증원해야 한다.
보사연이나 KDI 연구보고서도 우리나라의 약사 수가 부족하다고 계속 지적해 왔다. 의사 부족보다도 심각하다는 자료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 약사 수는 인구 1천명당 0.78명(2021년 기준)으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일본이 2.03명으로 우리나라의 3배에 이른다.
약사 수는 1977년 21,515명이었고, 2022년에는 75,461명으로 약 3.5배 증가했다. 의사 수 증가율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들의 논리라면 의대 정원을 65% 늘여야 한다고 했으니 약대 정원은 130% 늘려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약사 수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약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약국(약사)의 접근성은 병,의원(의사) 접근성만큼 우리나라는 높다. 지방의 농어촌 지역의 면 단위 지역에는 병,의원이 없듯이 약국이 없는 것도 비슷하다.
약대(약전) 정원을 증원하여 아무리 약사를 많이 배출해도 농어촌 면단위 지역에 약국이 생길 수 없고, 약사가 그 곳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의대 정원을 아무리 늘여도 농어촌 면단위 지역에 병,의원이 들어설 일이 없고 그 곳에서 개업할 의사가 없듯이 말이다.
필자도 OECD 평균보다 많이 낮다고 하여 약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 국가의 면적, 인구밀도, 도시화 정도, 교통 등 인프라 수준, 의료시스템, 의료문화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정 의료인(의사, 약사, 간호사, 치과의사 등) 수를 산정하면 되는 일이다. 의료인 수가 절대적 기준이 될 이유가 없다.
최안나가 의사 수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국민 전체의 의료비 증가를 초래하여 건겅보험재정 고갈을 가져와 우리 건강보험제도도 파탄이 날 것이라 주장하자, 송기민과 박민숙은 이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외면한다.
의사 수 증가는 의료비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지금까지의 실적으로 보아도 확인이 된다.
아래는 우리나라의 연도별 의료비, GDP, GDP대비 의료비, 활동 의사수, 인구1천명당 의사수이다.
연도 의료비(억원) GDP대비(%) GDP(억원) 활동 의사수(명) 1천명당 의사(명) 2005 442,047 4.6 9,574,478 78,342 1.6 2010 782,635 5.9 13,226,112 98,293 2.0 2015 1,103,928 6.7 16,580,204 114,322 2.2 2020 1,616,910 8.4 19,407,262 130,014 2.5
윤석열 정부는 의사 수가 증가해도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국민들을 기만한다. 언론들도 이에 대해 침묵하고 국민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의사 수가 늘어나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아래는 의사 수가 늘면 국민 1인당 의료비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PATTERN DETECTOR’님의 글이다.
『인구 당 의사 수는 참고 지표이지 목표가 될 수 없음. 의료의 목표는 높은 품질의 의료를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어야 함. 인구 당 의사 수는 그 목표를 위하여 조절하거나 참고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없는 지표임. 정부는 인구 당 의사 수를 OECD 평균과 비교하는데, 치료율과 가격이라는 궁극적 목표에서 OECD 평균은 한국에 훨씬 떨어짐. 1등이 평균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이상함. 원칙적으로 인구 당 의사 수는 적을수록 저렴할 수 있음. 산업/농업혁명의 본질은 “100명이 먹을 쌀을 100명이 농사지어도 지을까 말까 했는데, 10명이 지을 수 있게 된 것”임. 의료는 전문화, 진료 혁신, 기술 활용 등으로 생산성 향상 가능성이 많은 분야임.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은 수술 방식을 혁신하여, 선진국 병원 대비 의사당 수술 환자 수가 5-8배가 됨. 그래서 돈이 없어 실명하는 많은 인도인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함. 아라빈드 안과병원에 “OECD와 비교해서 환자당 의사 수가 적으니 늘여라”고 하면 납득할까? (우리 정부의 논리로는 그렇게 말해야 함) 의사가 늘어나면 환자당 매출을 올릴 것이므로, 환자 당 부담이 올라갈 것임. 한국은 1인당 진료비는 낮지만, 의사당 환자를 많이 보아서 매출을 올리는 ‘박리다매’ 구조임. 인구당 의사를 늘리면 의사 1인당 환자가 감소하므로, 박리다매 어려움. 의사당 환자가 줄면, 의사들은 여러 방법으로 환자 당 매출을 올릴 것임. 비급여 진료 더 많이 하기. (“이것도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더 자주 오게 하기. (한달에 한번 → 1주일에 한번) 의료 수가 인상 요구.
그래도 의사들의 평균 수입은 떨어질 수 있지만, 환자들의 비용도 늘어남. 즉 의사와 환자가 둘 다 손해보는 (lose-lose) 상황이 됨. 예시) 현재는 의사 1명이 100명에게 1만원씩 받고 진료중임. 의사를 2명으로 늘이면 의사 1명당 50명의 환자를 보아서 인당 수입이 50만원이 됨. 의사들은 앞에 얘기한 방법들로 환자당 매출을 1.5만원으로 올림. 의사들의 평균 수입은 75만원으로 의사가 늘기 전보다 25% 감소함. 환자 인당 부담은 1만원에서 1.5만원으로 50% 증가함.』
의사의 소득이 높은 것을 시샘하여 의사 수를 늘리게 되면 오히려 자신에게 손해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
송기민과 박민숙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고구마를 10개 먹은 기분이다. 버젓이 공개석상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도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저런 자들이 의료문제를 다루고 의료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의료방향이 설정되고 의료문제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