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5, 6, 7, 8, 9 |
박정희 1917∼1979 |
일본육사 졸, 육군대위 전 배우자 : 김호남. 이혼 |
대통령 |
5, 10 |
최규하 1919년 7월 16일 |
만주 대동학원(15기), 만주국 관리 |
국무총리, 대통령, 1991년 최근경력 :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명예의장 |
역대 부통령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2 |
김성수 1891∼1955 |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및 이사 임전보국단 감사 |
한민당 창당, 부통령 |
4 |
장 면 1899∼1966 |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연맹 간사 |
국무총리, 부통령 |
역대 국무총리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2, 7 |
장 면 1899∼1966 |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연맹 간사 |
국무총리, 부통령,5.16혁명으로 실각 |
4, 10 |
백두진1908. 10. 31 황해 신천~1993. 9. 5 서울. |
조선은행 |
조선은행 이사, 재무부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최근경력 :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9 |
정일권 1917∼1994 |
일본육사 졸, 봉천군관학교(5기)
배우자 박혜수(朴惠穗) 장남 정세훈 장녀 정희진 |
1940 일본육군사관학교 최근경력 :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12 |
최규하 1919년 7월 16일 |
만주대동학원(15기), 만주국 관리 |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1991년 최근경력 :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명예의장 |
13 |
신현확 1920년 10월 29일~ 생존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최근경력 :현재 박정희전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 ,91년까지 삼성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
17 |
진의종 1921년 12월 13일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북해도청 농무과장 |
국무총리, 보건사회부 장관,★이헌재 전 부총리 장인, 딸 전진숙,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딸인 진진숙씨가 1979년 경기 광주에 2만3,000평 정도의 임야(2000년 기준시가 12억원)를 사들였다가 2003년10월~2004년3월 총 58억원에 매각, 46억원의 차익.이헌재 부총리 사퇴 결과 초래 |
19 |
김정렬 1917년 09월 29일
|
일본 육사, 전투기비행 중대장 |
초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국무총리
최근경력 :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
역대 외무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8 |
송요찬 1918년 02월 13일~1980 |
지원병,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외무부 장관
최근경력 : 국정자문위원 |
10, 15 |
김유식 ?~? |
청진지법 판사 |
외무부 장관, 통일원 장관 |
11, 13 |
정일권 1917∼1994 |
일본육사, 봉천군관학교(5기) |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 최근경력 :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14 |
최규하 1919년 7월 16일 |
만주 대동학원(15기), 만주국 관리 |
국무총리, 대통령, 외무부 장관 최근경력 :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명예의장 |
16 |
김동조 |
일본고등문관행정과, 일본후생성근무 |
주일대사, 주미대사, 외무부 장관 최근경력 : 해오실업 고문 |
역대 내무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1 |
윤치영 1898년 02월 10일~t사망 |
미영타도대좌담회(1941)에서 대동아성전 연설, 임전대책협의회(1941) |
내무부 장관, 서울시장
이승만(李承晩) 박사의 비서실장을 필두로 제헌의원과 제2 ·3 ·6 ·7대 국회의원에 당선, 초대 내무장관 ·대한국민당 당수 ·민주공화당 의장 역임. 1963년과 1968년 2차례에 걸쳐 민주공화당 의장을 역임,963년에는 박정희(朴正熙) 최고희의 의장을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 공화당 총재 상임고문 ·국토통일원 고문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국회의원 동우회 회장 최근경력 : 안중근의사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9 |
김태선 1903년 05월 18일 |
조선총독부 경무국 수사과장 |
내무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치안국장 |
11 |
백한성 [白漢成 1899∼1972] |
평양, 청진, 광주, 대전지법 판사
충청남도 논산(論山) 출생. 1923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30년 사법관시보시험에 합격하여 32년 평양지방법원 판사,35년 청진지방법원 판사, 38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45년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내무부장관
48년 법무부차관, 49년 서울고등법원장을 거쳐 대법관에 취임. 53년 내무부장관, 54년 국무총리서리 55년 다시 대법관이 되었다가 61년부터 서울에서 변호사업 |
12 |
김형근 (金亨根) 1915년 11월 21일~사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판사 |
내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관 서울지검 검사장 |
13 |
이익흥 (李益興)1905년 03월 18일 |
박천경찰서장 |
내무부 장관, 경기도지사, 헌병사령관 |
14 |
장경근 (張暻根) 1911년~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판사 |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
최근경력 : 제4대 국회의원(자유, 부천)
|
15 |
이직근 |
원주군수 |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
17 |
김일환(金一煥)1914년 08월 15일~(*사망)
|
봉천무관학교(5기), 만주군경리학교, 만주군 대위 |
국방부 장관,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
최종학력 : 이화여대 명예법학박사 |
19 |
홍진기(洪璡基)1917년 3월 13∼1986 (*사망)
|
전주지법 판사 |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전 신문인, 전 방송인, 전 법조인
현 직 : 前 중앙일보 대표이사 회장 |
20, 31 |
이 호 1914년 2월 7일 출생 (*사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검사, 경성고검 검사 |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
22 |
이상철(李相喆 |
일본군 장교 |
군단장, 내무부 장관 |
23 |
현석호 1907년 5월 23일 출생 (*사망)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화순군수 |
국방부 장관, 내무부 장관 |
24 |
신현확 1920년 10월 29일~ 생존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흥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최근경력 :현재 박정희전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 ,91년까지 삼성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
25 |
조재천 1912년 11월 19일 출생 (*사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판사 |
내무부 장관, 경북 도지사 |
26 |
한 신 1922년 12월 27일 출생∼1996 (*사망)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내무부 장관
75년 아세아자동차사장, 76년 동회장, 77∼85년 대한중석사장 |
27, 28, 32, 36 |
박경원 1923년 1월 3일 |
일본군 장교 |
군사령관, 내무부 장관 |
30 |
엄민영 1915∼1969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내무부 장관 |
37 |
김치열 1921년 09월 15일~생존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검찰총장,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최근경력 : 에이오에스 회장
현 근혜 한나라당 대표 후원회장 |
역대 재무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3 |
백두진1908. 10. 31 황해 신천~1993. 9. 5 서울. |
조선은행 |
조선은행 이사, 재무부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
조선은행 이사, 재무부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최근경력 :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4 |
박희현 |
일본 관리 |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 |
7 |
인태식 |
홍천세무서장, 청주세무서장 |
재무부 장관 |
9 |
송인상 1914년 03월 06일~생존 |
식산은행
배우자 최연순(崔連順) 1914.08.18 |
한국은행 부총재, 재무부 장관, 부흥부 장관
1947. 식산은행 심사부장 최근경력 :한국능률협회회장 송인상 회남경제과학연구원 원장
|
11 |
김영선 1918년 4월 25일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진도 군수 |
내무부 장관, 통일원 장관, 주일대사 |
16, 23 |
황종률 1909년 9월 3일~사망 |
만주 대동학원(3기) |
재무부 장관,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충북 도지사 |
역대 법무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3 |
이우익 |
재판소 통역생․서기, 부산지법 밀양지청 판사, 함흥지법․대구복심법원 판․검사 |
법무부 장관 |
5 |
조진만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해주지법 판사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복심법원 판사 |
법무부 장관, 대구지법, 지방판사 |
8, 20 |
이 호 1914년 2월 7일 출생 (*사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고검 검사 |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
9 |
홍진기(洪璡基)1917년 3월 13∼1986 (*사망) |
전주지법 판사 |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
11 |
조재천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판사 |
내무부 장관, 경북 도지사 |
12 |
이병하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법무부 장관 |
13 |
고원증 |
만주 고등문관 |
법무부 장관 |
16, 17, 18 |
민복기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판사 |
대검찰 총장, 대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
19 |
권오병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법무부 장관, 문교부 장관 |
21 |
배영호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법무부 장관 |
24 |
황산덕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행정과 |
성균관대총장, 문교부장관, 법무부장관 |
26 |
김치열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검찰총장, 내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
27 |
백상기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서울지검 검사장, 법무부 장관 |
역대 국방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4 |
신태영 |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
국방부 장관 |
7 |
김정렬 |
일본 육사(54기), 전투기비행중장 |
초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국무총리 |
8 |
이종찬 |
일본 육사(49기),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9, 11 |
현석호 1907년 5월 23일 출생 (*사망)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화순 군수 |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
12 |
장도영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13 |
송요찬 |
지원병,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18 |
최영희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19 |
임충식 |
간도특설대 |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차장 합참의장 |
20 |
정래혁 |
일본 육사(58기), 일본군 장교 |
국방부 장관 |
21 |
유재흥 |
일본 육사, 일본군 장교 |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차장 대통령안보담당특별보좌관 |
23 |
노재현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 |
24 |
주영복 |
일본 항공학교 |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역대 문교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2 |
백낙준 |
‘미영타도좌담회’ 참석, 대동아 성전 선전. 친일 논객으로 활동 |
문교부 장관, 연세대 총장 |
4 |
이선근 |
만주국 협화회 협의원 |
문교부 장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성균관대 총장, 영남대 총장 |
7 |
이병도 |
조선총독부 중추원 산하 조선사편수회 활동. 식민사학자 今西龍의 수사관보로 근무하면서 식민사관 형성에 기여 |
문교부 장관 |
12 |
박일경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문교부 장관 |
14 |
고광만 |
조선총독부 시학관(학무국) 충주공립중학교 교장 |
문교부 장관, 부산대 총장 |
16, 18 |
권오병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문교부 장관, 법무부 장관 |
22 |
황산덕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
성균관대총장, 문교부장관, 법무부장관 |
역대 농림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5 |
임문환 1907년 06월 11일~1993년 06월 19일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용인 군수 조선총독부 식산국 사무관 조선총독부 광공국 서기관․민정관
배우자 최복순(崔福順) . .
|
1950.12-1951.05 제2대 보건부 차관 |
11 |
임철호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한일회담 대표,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 |
13 |
정운갑 |
충남 군속,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농림부 장관 |
15 |
이근직 |
원주 군수 |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
16 |
이해익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개성 군수 |
경기도 도지사, 농림부 장관 |
18 |
장경순 |
일본군 장교 |
농림부 장관 |
역대 상공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1 |
임영신 |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발족 |
상공부 장관, 중앙대 총장 |
5 |
이재형 1914년 ∼ 1992년 |
금융조합 이사
1992년 1월 30일에 별세하였으며 산본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고향에 안장되지 못하고 화성군 장안면 서포4리 232번지의 자족묘지에 묘가 있다.
|
상공부 장관, 국회의장
제헌 국회의원(1948), 2대 국회의원(1950), 국회재경위원장(1951), 상공부장관(1952), 4대 국회의원(1958), 국회부의장(1960), 5대 국회의원(1960), 민주당.민중당 지도위원(1964), 신한당 정책위의장(1966), 7대 국회의원(1967), 신민당 부총재(1968), 신민당 고문(1970), 국정자문위원(1980), 제헌동지회장(1981), 민정당 대표위원(1981∼ 1983), 11대 국회의원(1981), 한일의원연맹 회장(1981∼1985), 한일친선협회장(1981), 민정당 상임고문(1983), 민정당 전당대회 의장(1985), 12대 국회의원(1985), 국회의장(1985∼1988) 상훈으로는 일본 훈1등욱일수교훈장(日本勳一等旭日修交勳章)을 수상 |
7 |
박희현 |
일본 관리 |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 |
9 |
김일환(金一煥)1914년 08월 15일~(*사망) |
봉천무관학교(5기), 만주군경리학교 만주군 장교 |
국방부 장관,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 |
10 |
구용서 |
조선은행 동경지점 근무 조선은행 대판지점 서구출장소 지배인 |
한국은행․산업은행 총재, 상공부 장관 |
13 |
오정수 |
조선곡물사․만주곡물사 사장 |
체신부 장관, 상공부 장관 |
14 |
이태용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
상공부 장관 |
15 |
주요한 |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 임원 친일문필 활동 |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 |
17, 19 |
정래혁 |
일본 육사(58기), 일본군 장교 |
상공부 장관, 군사령관 |
21 |
이병호 1916년 02월 12일~?? |
동양척식회사 근무
배우자 한경선(韓京善) . . |
상공부 장관
최근경력 : 국제로터리375지구 총재 |
역대 건설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3 |
박임항 |
만주신경군관학교, 일본 육사 |
국방대 총장, 건설부 장관 |
6 |
전예용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광주 군수 조선총독부 사회과장, 학무국 원호과장 |
한국은행 총재, 부흥부 장관건설부 장관 |
9 |
이한림 |
일본 육사(57기), 만주신경군관학교 |
육사 교장, 건설부 장관 |
역대 부흥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3 |
송인상 |
식산은행 |
한국은행 부총재, 재무부․부흥부 장관 |
4 |
신현확 1920년 10월 29일~ 생존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최근경력 :현재 박정희전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 ,91년까지 삼성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
5 |
전예용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광주 군수 조선총독부 사회과장․원호과장 |
한국은행 총재, 부흥부․건설부 장관 |
6 |
주요한 |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 임원 친일문필 활동 |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 |
역대 보건사회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5, 16 |
신현확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 보사부 장관 |
13 |
김태동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조선총독부 전매국 총무과 사무관 |
보사부 장관 |
14 |
이경호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보사부 장관, 한일회담 대표 |
15 |
고재필 |
만주 고등문관 만주 대동학원(11기) |
보사부 장관, 무임소 장관 |
18 |
진의종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북해도청 농무과장 |
국무총리, 보사부 장관 |
역대 교통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8 |
김일환(金一煥)1914년 08월 15일~(*사망) |
봉천무관학교(5기), 만주군경리학교 만주군 장교 |
국방부 장관,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 |
20 |
장성환 |
항공학교 장교 |
공군 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
22 |
최경록 |
육군 지원병, 일본 예비사관학교 |
헌병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
역대 체신부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4 |
조주영 |
일본 변호사시험 합격 |
체신부 장관 |
7 |
이응준 |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
육군 참모총장, 체신부 장관 |
8 |
곽의영 |
괴산, 청원군수 |
체신부 장관 |
13 |
한통숙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체신부 장관 |
16, 17 |
홍헌표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강서 군수 평남도이사관, 함북도사무관 조선금융조합연합회 함북지부 감리관 함북 농상부장 |
체신부 장관, 성균관대 부총장 |
18 |
김홍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행정과, 양덕 군수 |
충남 도지사,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
21 |
황종률 1909년 9월 3일~사망 |
만주 대동학원(3기) 졸 |
충북 도지사, 재무부 장관,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
24 |
신상철 |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 졸 |
육군헌병 사령관, 체신부 장관 |
31 |
김기철 |
강원도공립보통학교장, 神仙공립교장 |
체신부 장관 |
역대 무임소 장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5 |
김선태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무임소 장관 |
6 |
신현확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흥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12, 13 |
김홍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행정과 양덕 군수 |
충남 도지사,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
17 |
황종률 1909년 9월 3일~사망 |
만주 대동학원(3기) |
충북 도지사, 재무부 장관,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
18 |
김원태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무임소 장관 |
27 |
장경순 |
일본군 장교 |
농림부 장관, 무임소 장관 |
28 |
고재필 |
대동학원(11기), 만주고등문관시험 합격 |
보사부 장관, 무임소 장관 |
역대 검찰총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2 |
김익진 |
충주, 강원, 평양, 함흥지법 판사 평양복심법원 판사 |
대법관, 검찰청장 |
4 |
한격만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서울지법원장, 검찰총장 |
5 |
민복기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경성지법 판사 |
대검찰 총장, 대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
6 |
정순석 |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
검찰청장 |
9 |
장영순 |
지원병 |
검찰청장 |
10 |
정창운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검사 |
검찰청장, 동국대 법정대학장 |
역대시․도지사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
서 울 특 별 시 장 |
1 |
김창영 |
전남 경농부장 |
| |
2 |
이범승 |
경북 이사관, 양주경찰서장 |
| ||
12 |
윤태일 |
일본 육사(7기), 만주군관학교 만주군 장교 |
36사단장 | ||
13 |
윤치영 |
미영타도대좌담회(1941)에서 대동아 성전을 호소하는 연설. 임전대책협의회(1941) 임원 |
내무부 장관 | ||
부산직할시장 |
2 |
정종철 |
진주부윤 |
경남도지사 | |
6 |
배상갑 |
김해읍회의원 |
| ||
경 기 도지사 |
2 |
이해익 |
강원도청 지방과장, 개성군수 |
농림부 장관 | |
4 |
이익흥 |
박천경찰서장 |
헌병사령관, 내무부 장관 | ||
8 |
신광균 |
개풍군수 |
| ||
10 |
이흥배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 ||
강 원 도지사 |
7 |
홍창섭 |
삼포군수 |
| |
충 북 도지사 |
2 |
이명구 |
충북도평의원, 중추원 참의원 |
| |
5 |
김학응 |
보은 군수 |
| ||
7 |
황종률 |
만주 대동학원(3기) |
재무부 장관,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 ||
충 남 도지사 |
6 |
김학응 |
보은 군수 |
충북도지사 | |
7 |
김홍식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행정과 양덕군수 |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 ||
전 북 도지사 |
1 |
신현확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 | |
6 |
신용우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
전남도지사 | ||
7 |
김규진 |
일본 보통문관 |
경남도지사 | ||
11 |
임춘성 |
전주부 재무과장 김제, 남원, 익산 군수 및 부윤 |
전주시장 | ||
전 남 도지사 |
8 |
이하영 |
위원 경찰서장 |
| |
14 |
신용우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
전북도지사 | ||
경 북 도지사 |
1 |
김대우 |
평북 박천군수, 중추원 서기관 조선총독부 사회교육과장 전북․경남 도지사 |
| |
6 |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판사 |
내무부 장관 | ||
7 |
신현확 |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일본 상공성(이후 군수성) 근무 |
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부흥부 장관 | ||
8 |
이근직 |
원주 군수 |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 ||
경 남 도지사 |
9 |
정종철 |
진주부윤 |
부산직할시장 | |
제 주 도지사 |
9 |
강성익 |
전남도평의원 |
|
역대 대법원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2 |
조용순 |
판사임용시험 |
대구고법원장, 대법관 |
3, 4 |
조진만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해주지법 판사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복심법원 판사 |
법무부 장관, 대구지법 지방판사 |
5, 6 |
민복기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판사 |
대검찰 총장, 대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
7 |
이영섭 |
경성지법 판사 |
대법원 판사, 대법원장 |
역대 대법관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
김찬영 |
판사 |
대법관 |
|
김두일 |
청진, 광주, 함흥, 해주지법 판사 |
서울지검 인천지청장, 대법관 |
|
김익진 |
평양복심법원 판사 |
대법관, 검찰청장 |
|
노진설 |
변호사 |
대법관 |
|
최병주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대법관 |
|
백한성 [白漢成 1899∼1972] |
평양, 청진, 광주, 대전지법 판사 |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내무부장관
48년 법무부차관, 49년 서울고등법원장을 거쳐 대법관에 취임. 53년 내무부장관, 54년 국무총리서리 55년 다시 대법관이 되었다가 61년부터 서울에서 변호사업 |
|
이우식 |
전주지법원장 |
대법관 |
|
김동현 |
대구지검 검사 |
대법관 |
|
한격만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서울지법원장, 대법관, 대검찰총장 |
|
김갑수 |
평양복심법원 판사 |
대법관 |
|
김세원 |
경성지법 판사 |
대법관, 제주지법원장 |
|
고재호 |
판사 |
대구고등법원장, 대법관 |
|
허 진 |
판사 |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
|
오필선 |
광주지법 목포지청 검사 |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
역대 합동참모회의 의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1 |
이형근 |
일본 육사(56기),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
2 |
정일권 1917∼1994 |
일본육사, 봉천군관학교(5기)
배우자 박혜수(朴惠穗) 장남 정세훈 장녀 정희진 |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
1940 일본육군사관학교 최근경력 :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3 |
유재흥 |
일본 육사,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4 |
백선엽 |
만주 봉천군관학교(9기), 간도특설대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
5 |
최영희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
6, 7, 8 |
김종오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
9 |
장창국 |
일본 육사(59기),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
10 |
임충식 |
지원병, 일본군 장교, 간도특설대 |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차장, 합참의장 |
11 |
문형태 |
지원병,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
12 |
심흥선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
13 |
한 신 1922년 12월 27일 출생 (*사망)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내무부 장관 |
14 |
노재현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 |
역대 육군참모총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1 |
이응준 |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체신부 장관 |
2, 4 |
채병덕 |
일본 육사(49)기,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
3 |
신태영 |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
5 8 |
정일권 1917∼1994 |
일본육사, 봉천군관학교(5기)
배우자 박혜수(朴惠穗) 장남 정세훈 장녀 정희진 |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
1940 일본육군사관학교 최근경력 :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 |
6 |
이종찬 |
일본 육사(49기),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7, 10 |
백선엽 |
만주 봉천군관학교(9기), 간도특설대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
9 |
이형근 |
일본 육사(56기),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
11 |
송요찬 |
지원병,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12 |
최영희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13 |
최경록 |
지원병, 일본 도요하시 예비사관학교 |
헌병사령관, 육군참모총장 |
14 |
장도영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15 |
김종오 |
일본군 장교 |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
16 |
민기식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
17 |
김용배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
18 |
김계원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
19 |
서종철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
20 |
노재현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21 |
이세호 |
일본군 장교 |
육군참모총장 |
역대 공군참모총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1, 3 |
김정렬 |
일본 육사(54기), 일본군 장교 |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5 |
김창규 |
일본 육사(55기), 일본군 장교 |
공군참모총장 |
7 |
장성환 |
일본 항공학교, 일본군 장교 |
공군참모총장 |
8 |
박원석 |
일본 육사(58기), 일본군 장교 |
공군참모총장 |
9 |
장지량 |
일본 육사(60기), 일본군 장교
배우자 송광희(宋光姬) 1929.04.07 별세(2001.5.3) |
1966.08-1968.07 제9대 공군 참모총장(중장) |
11 |
김두만 |
일본 항공학교 |
공군참모총장 |
12 |
옥만호 |
일본 항공학교 |
공군참모총장 |
13 |
주영복 |
일본 항공학교 |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
역대 치안국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1 |
이 호 |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검․고검 검사 |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치안국장 |
2, 4 |
김태선 |
조선총독부 경무국 수사부 국장 |
내무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치안국장 |
5 |
이익흥 |
박천경찰서장 |
내무부 장관, 경기도지사, 헌병사령관 |
6 |
홍순봉 |
만주국 행정참사관 |
치안국장, 헌병학교장 |
7 |
윤우경 |
황해도 송화경찰서장 |
서울경찰국장, 헌병사령부 수사과장 치안본부장 |
11 |
김종원 |
군 |
|
17 |
박주식 |
일본 고등문관, 전남도경찰부 경부 서울 성동경찰서장 |
치안국장 |
역대 서울특별시 경찰국장
임기(대) |
이 름 |
식민지 시기 경력 |
해방 이후 경력 |
2 |
김태선 |
조선총독부 경무국 수사국장 |
내무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치안국장 |
3 |
이익흥 |
박천경찰서장 |
내무부 장관, 경기도지사, 헌병사령관 치안국장 |
4 |
윤우경 |
황해도 송화경찰서장 |
서울경찰국장, 헌병사령부 수사과장 치안본부장 |
5 |
윤명운 |
종로경찰서 경부 |
서울경찰국장, 내무부 차관 |
6 |
윤기병 |
수원경찰서장 |
서울경찰국장, 동대문 경찰서장 |
7 |
변종현 |
경기도 경찰부 경부보 동대문 경찰서 경부보 |
서울경찰국장 |
첫댓글 잘보면...정부 주요요직들은 지들이 다 해쳐먹었죠? 이나라가 이런나랍니다 이러니 친일후손들이 정권잡겠다고 저리 설치는게죠...뻔뻔한 종자들같으니.......
선거때가 되었군요~ㅋㅋ...종자라는 말씀은 좀...지나친감이 드네요...저 분들중에선 아직도 존경받는 분들도 계시네요.*^^* 애견카페에 정치적 성향이 물씬 풍겨 한번 남겨봤습니다...나쁜 분들이 더 많이 보이긴 하지만ㅋㅋㅋㅋㅋ릴렉스~~언어순화 좀 하자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정부탁글은 쪽지 남겨 드렸습니다.
글게요...퉤!!퉤!!
인재풀 가동해서 겨우 저거겠죠?? 줄서기와 낙하산 인사를 잘 받아야 했죠...근데 역사는 양면적인거라...피치못했을 사정도 있을거예요...어느시대건 성공하려면 그 시대 흐름에 동조해야 하기에...그 자리가면 다 그렇게 물들더군요...어쩔 수 없죠...변화가 혼자의 힘으론 어렵고 총과 칼 앞에서 당당할 사람이 과연 몇일까요?? 친일파중에서도 나쁜 친일파만 있던건 아니였습니다...어쩔 수 없이 국가를 배신한 척한 분들도 있었고 그 안에서 노력했던 분들도 있습니다...을사오적은 누구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그들이 튕겼더라도 아마 다른 사람이 서로 하겠다고 했을겁니다. 역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안동지방에 가면 학봉종가의 13대 종손인 김용환이란 분이 계십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파락호인척 평생을 사셨지만 노름으로 탕진한 돈인줄 알았는데...모두 군자금으로 보냈더군요...남들은 죽을 때까지 손가락질했죠...단지 이런분들이 너무 적어서 광복이 늦었지만...3.1운동이 전국방방곡곡??ㅋㅋㅋ역사학자들은 모두 웃어요...월드컵 경기때처럼 수가 된다면 비유가 맞겠지만...국민 1%도 안되는 학생들과 사람들만 중국집 앞에서 만세 부르다 떠나 갔으니까요...솔직히 지금 애국심을 강조하기엔 시대가 많이 변했죠...전쟁나면 과연 몇이나 자발적으로 참전할까요?
인정하기 싫지만 저분들이 계셨기에 이렇게라도 살죠...물론 더 훌륭한 분들도 계셨겠고 순전히 낙하산만으로 출세한 분들도 계시겠죠...현재 정부도 마찬가지니까요...고위직은 정무직이라 대통령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다 그 수준에 그 인물들이죠...대통령을 그렇게 뽑아놨으니 고만고만한 인물들로만 채워졌겠죠...우리가 바꿔야 하는데 모두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니 방관만 하고 있죠...글이 이상한 쪽으로 가네요...죄송합니다...높은신분들이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똑바로 나라를 이끌어 주길 바랄뿐입니다...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죠*^^* 올해 대선엔 꼭 참 일꾼을 뽑자고요...그래야 저런 세상이 다신 안옵니다.*^^*
재롱이님 쪽지 잘받았습니다 저런 사람들이라도 있어서 이정도 사는군요 근데 왜 멍청한 국민들은 친일청산하라고 저 난리인지 이해가 안되려고합니다 그럼 저 사람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친일을 했고 해방후 한국의 발전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내몰면서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킨거군요 선거철이라했나요? 선거철이라해서 글올린건 아니거든요 아뭏튼 덕택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운영자분이 잡다한 얘기하라고 펼쳐놓은 게시판이니 제글이 문제될것 없지않나요?이런글 싫으면 운영자분과 얘기해서 역사문제는 하지말라고 하시든가...근데 님말대로면 참 독립운동가들은 뻘짓했네요
헉...쪽지까지 보내드렸는데...언쟁으로 비춰질까 두렵습니다. 우선 "저런사람들 덕에 이정도 사는군요" 는 맞습니다. 그게 사실이잖아요...저 사람들이 헌법만들고 통치해서 이 날 이때까지 조부모,부모님들이 살아오셨잖아요...국민들이 친일청산하라고 저 난리...<===다수가 동의하죠...저역시도요...근데 너무 수수방관만 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경향만 있죠. 실제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청산을 요구하나요? 그저 TV앞에서 관련 기사 나오면 욕이나 한마디 하고 넘아가고 말죠...월드컵때의 반에반도 못 미치는 사람들만이 강성으로 나서잖아요...국민들이 착해서 그렇죠...아님 과거엔 무관심하거나...*^^*
"독립운동가들을 내몰았다" <===맞습니다. 많은 설움과 핍박을 받았죠...다수가 나쁜 분들이였습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김용환분같은 분들이 너무 적어서 주권도 광복도 늦게 찾은거지요...많았더라면 진작에 더 좋은 세상에 살았겠죠...다수의 나쁜 친일파때문에 선조들이 고통스러웠죠...그 친일파가 해방되니 또다시 독립투사로 변해 있더라구요...변절자도 있겠고...정말 눈물을 머금고 총칼앞에 어쩔 수 없었던 분들도 있었을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들을 다시 쓰잖아요...주요직책마다...돌아가면서...저는 이 부분을 비판했던 겁니다...또자니님 말씀에 충분에 동의하고요...그래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고 말씀드린거구요...
그리고 선거철인건 맞기에 패쓰하고요...잡다한 내용들 올리셔도 당연히 돼죠...*^^*아무도 뭐라 안해요...회원님들의 관심사항이면 리플도 많을테고 관심밖 사안이면 무관심하겠죠...역사문제든 수학문제든 정치이야기든 다 상관없다고 보는데요...이상한 선정적인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글들은 운영진님들이 알아서 커트해 주시니까...여러 좋은 자료들과 잼난 이야기들 많은 지식에 관한 부분들 올려주셔서 감사하죠...또자니님처럼 사회적 이슈 문제들도 이렇게 꾸준히 올려주셔서 감사하구요...진심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은 뻘짓했네요" <===넘 감정적이신 말씀 같아 패쓰하려다...짧게나마 글 남깁니다. 아니죠...그 분들 덕분에 또한 이렇게 살죠...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합작품 덕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뜻이였어요...중요한건 나쁜 친일파가 절대 다수였지만...아주 정말이지 아주 쪼금은 어쩔 수없이 억지춘향식으로 친일인 척 하신분들도 있다는거였어요...독립운동가분들이 대접받아야 하는데...이상한 분들이 정권을 잡으니 궁핍하게 지내시는 것 같더라구요...그래서 대통령을 똑바로 뽑아야죠...위의 언급된 보직들은 다 정무직이잖아요...대통령만이 임명권이 있어요...무론 추천제도 있긴 하지만 대통령의 코드와 성향이 같아야 하기에
재롱이님 말씀은 저런 사람들이라도 있어서 이정도 사는군요라고 말씀하신게 아니라 저런분들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결과물을 말씀하시는거고 그런 치욕을 이기기 위해선 대통령을 잘 뽑아서 참 일꾼으로 정무직을 채우자는 말씀이네요.
그럼 독립운동가들이 실속없는 종자들인가? 한것도 없이 이나라를 이정도나 발전시켜준 고마운분들을 펌하나하려고하다니...재롱이님 참 고맙습니다 새로운 진실을 가르쳐주셔서...근데 글은 스스로 삭제 못하겠네...이해안되는건 근데 왜 사람들은 일본 싫어해?저런논리면 한국을 근대화로 이끌어준 고마운 나란데...저 사람들이 조선인을위해 친일을했고 한국의 발전을 위해 일했다면 일본도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한일은 있는데 왜 일본 싫어하는지 모르겠네...재롱이님이 가르쳐주시라우?
"종자들"이란 언어선택이 지나친 것 같아서 그래도 망자도 계시고 현존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좀 지나친 것 같아서 릴렉스하자고 부드럽게 표현 좀 해 달라고 말씀드렸던 거였는데 오해가 있으셨나봐요...또한 폄하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정말이지 감히 존경한다는 말씀조차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들이죠...그만큼 힘들고 어렵게 이루신 것들인데....가당치 않게 어떻게 제가 폄하를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도산 안창호 선배님인데 설마 그럴리가요...삭제라는 말도 표현한 적 절대 없습니다...종자들이란 표현이 좀 지나쳤다는 말씀이였지요...수정부탁은 이헌재부총리관련 부문이였고요...
저는 일본을 한번도 안가봤지만 저도 이유없이 싫어요...그들의 무례함도 과거반성도 없는 그런 모습들이 싫어요...근대화 발전이요? 이건 양면적인거죠...맞는 부분도 있고 확대해석도 있고...한국인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몹쓸짓을 많이 해서가 아닌가 싶어요...다들 잘 알고 있을 36년의 뼈아픈 시절과 위안, 징병, 강탈, 기타 등등...근대화 도움도 한국을 위한게 아니라 물자약탈과 정복의 용이성을 위해서 한거라 설득력은 없죠...해방되고 보니...아...전철도 있고 전기회사도 있고 전화기도 있네...어씨구나 이제 우리꺼다 했던거죠...이 부분은 일본의 순수성이 없기에...자기들 득 볼려고 만든거라 저역시 동의 못하는 부분입니다...
쭉 읽어 보면 또자니님과 제 생각이 같을거란 걸 아실거예요...오해는 없길 바라고요^^그저 20대를 벗어나니까 많은 사료도 보게 되고 주워듣고 경험도 하고 그래보니...모든 문제에는 양면적인 것이 있더라구요...저도 말 험하게 한다고 여러차례 경고도 받았었어요*^^*시간이 지나니...철이 좀 들었다고나 해야 할까요?? 위분들중엔 존경받는 분들도 극소수지만 몇 분 눈에 띄는데 종자라는 표현이 좀 거슬려서 릴렉스하자고 말씀드렸던거예요...충분한 설명이 되었길 바라겠습니다. 위에 존경할 분들이라 해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박근혜의원을 지칭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참고로 서울 출생에 전라도가 번적입니다. 오해 없으셔야 합니다.*^^*
재롱이님 말씀에 송이님이 좀 감정적이셨네요~~재롱이님 많이 달라졌네요.ㅎㅎㅎ 종자라는 표현은 제가 들어도 민망스럽네요~구구절절 재롱이님 말씀이 맞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