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업축구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현창 감독(63)이다. 한국철도(현 인천 코레일)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이 감독은 1992년부터는 한국철도의 코치로 부임했고, 94년부터 감독을 맡아 한국철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던 인물이다.
2006년을 끝으로 정년 퇴임을 한 그는 치열했던 승부의 세계를 뒤로 한 채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러나 축구로만 45년 인생을 보냈던 이 노장(老將)은 결국 축구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풀뿌리 축구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K3리그였다. 이천 출신으로 이천중에서 축구를 시작한 이현창 감독은 한국철도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직후, 자신의 마지막 꿈으로 고향에 시민구단을 만드는 것을 꼽았었다. 그리고 결국 2009년 이천시민축구단을 창단해 K3리그에 참가했고, 올 시즌 2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한국철도 감독을 할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 고향인 이천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것이었어. 내가 부를 많이 축적해서 고향에 돈으로 봉사할 수도 없는 것이고, 아는 게 많아 지식으로 봉사할 수도 없잖아. 나는 축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니까 축구로 봉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런 개념으로 시작한 것이 이천시민축구단이야.”
팀 창단을 위해 이 감독은 조병돈 이천시장과 이천시의원들을 만나 협조를 구했고, 다행히 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일이 순조롭게 풀려 2009년부터 K3리그에 참가하게 됐다. “처음에는 내셔널리그 팀으로 창단할까도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천이 중소도시라서 자립도가 약해. 그래서 K3리그로 왔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축구가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K3리그가 잘 되어야겠더라고. 규모가 작은 시들도 큰 부담 없이 팀을 창단해서 K3리그에 참가할 수 있다면 축구 인프라가 발전하는 것이잖아.” “이천 출신들이 이천제일고까지 나온 후에 대학이나 실업, 프로팀으로 진출하거든. 그런데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도중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선수들이 많았어. 그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팀을 만들게 된 것이지.” |
그리고 이천시민축구단은 창단 첫 해에 18개 팀 중 5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는 축구로 45년 인생을 살아온 노장의 풍부한 경험이 큰 몫을 차지했다. 한국철도 감독 시절부터 아버지와 같은 정(情)으로 어려운 여건의 선수들을 잘 보듬어서 이끌어갔던 이 감독이었다. 내셔널리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를 해야 하는 이천시민축구단 선수들에게도 그는 지도자가 아닌 아버지로서 다가갔다.
“다른 K3리그 팀들도 비슷하겠지만, 우리 역시 모든 선수들이 따로 직장을 갖고 있어. 병역 문제 때문에 공익근무나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고. 직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훈련도 1주일에 2번 정도 야간에 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나도 화려하지 않았던 선수 시절을 보냈거든. 그래서 이 아이들이 느끼는 설움과 아픔을 잘 알아. 그렇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팀이 뭉쳤기 때문에 작년에 창단 첫 해였으면서도 17개 팀 중에서 5위를 할 수 있었어. 사실 나는 중위권 정도를 생각했었거든. 그래도 이천시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다행이야. 선수 수급에 있어서 다소 어려움이 있기는 해도 시의 지원이나 시민들의 관심은 K3리그 팀들 중에서 가장 낫다고 생각해.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2~3년 안에 내셔널리그 구단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작년의 선전에 이어 2년째를 맞이하는 올 시즌에도 이현창 감독과 이천시민축구단의 상승세는 여전하다. ‘2010 DAUM K3리그’ B조에 속해 있는 이천시민축구단은 25일 현재 4승 1패(승점 12점)로 9개 팀 중 3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24일 B조 1위 팀인 포천시민축구단과의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사실 작년에 우리 아이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올 시즌에는 더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시즌을 맞이하니까 다른 팀들도 많이 보강됐더라고.(웃음) 작년보다 전체적으로 선수층이나 기량이 좋아진 것 같아. 어느 한 팀 만만하지가 않은 상황이야.” |
K3리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 감독은 앞으로 이천시민축구단을 꾸준히 키워 언젠가는 K-리그에까지 진입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K3리그부터 시작한 중소도시의 구단이 한발 한발 내딛어 최고의 무대인 K-리그까지 올라서는 것, 축구밖에 모르는 63세 노장의 마지막 꿈인 것이다.
“내가 축구계에 있으면서 유럽이나 남미의 선진화된 축구 시스템을 보고 정말 많이 부러웠었거든. 이제 우리도 시스템이 점차 구축되어가고 있어. 그리고 우리 세대는 힘들지만, 밑에 세대로 내려가면서 언젠가는 이천 같은 중소도시에서도 K-리그 팀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해.” “시장이나 의원들과 팀 창단을 위한 미팅을 가지면서 내가 설명했던 부분도 그것이었어. 이천은 축구를 좋아하는 도시니까, 언제인가 시대 흐름이 무르익었을 때 K3리그부터 시작했던 팀으로서는 가장 먼저 K-리그에 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그랬거든. 그 꿈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거야.” 2007년 9월, 한국철도 사령탑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을 당시의 이현창 감독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축구만 바라보고 한 평생 살아왔던 이 감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가슴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인터뷰 말미에 이 감독은 이렇게 말했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축구를 떠날 수 없을 거야. 내 인생 자체가 오로지 축구 한 길 뿐이었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축구와 연관된 것들이었지. 내가 선수, 그리고 지도자로서 은퇴하긴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축구 한 길을 갈 수밖에 없어. 그게 내 팔자인 것 같아.”
이현창 감독의 이 말은 2010년 현재도 그대로 유효했다. 다만 지도자로서도 다시 복귀했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한 평생 ‘축구’라는 '마이 웨이(My Way)'를 걷고 있는 이 감독의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 뭉클하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터뷰=이상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