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들
윤이산
청소부가
은행나무 아래를 오가며
노란 잎을 쓸어 담는다
나무가 다문다문 떨궈주고
청소부는 슬렁슬렁 쓸어 담고
생업에 한 번도 끄달려 본 적 없다는 듯
싱겁도록 덤덤하다
그냥 무엇의 배경화면 같다
어느 배역 하나 서두르거나
멈추는 법이 없어
종일 해도 일은 끝나지 않고
아예 대빗자루로 싹, 털어버리지요
은행 경비원의 퇴근 인사에
이 쓰레기들이 다섯 식구 밥줄이지요
한 줄 대사가 찬바람에 헹군 듯 선득하다
어둑해져서야 쓰레기차가
하루 노동을 수거해
배경 밖으로
사라지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건지
한꺼번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물소리를 쬐다』, 실천문학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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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산 시인 <조연>
김 양희
추천 1
조회 72
22.11.01 21:3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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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건지 한꺼번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