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완전정복]
Ep.10) 펠레, 축구황제 대관식
“매우 슬픈 광경입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경기장을 빠져나갑니다.”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3차전 경기 해설 도중 나온 멘트
살인 태클, 국가대표 은퇴
1958, 1962년 지난 두 번의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한 브라질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펠레를 앞세워 세 번째 우승을 노렸다. 지구의 모든 축구 팬은 펠레가 이번에 쥘 리메 컵을 거머쥠과 동시에 영원히 트로피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에이스였던 펠레는 상대 팀의 집중 견제 대상이었다. 펠레는 전설의 2단 백 태클을 당하면서 결국 큰 부상을 입었고 팀의 패배도 막지 못하며 조국의 조별리그 탈락을 지켜보아야 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우승 후보 0순위’ 브라질은 이렇게 허무하게 짐을 싸야 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펠레의 폭탄선언이었다.
“축구는 예술적인 기술로 관중을 끌어들이는 것을 멈추는 대신 진짜 전쟁으로 변했다.”
1962년에도 펠레는 조별리그에서 부상을 입어 결승전까지 팀의 우승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두 대회 연속 월드컵에서 악의적인 태클로 인해 부상을 당하자 펠레는 위와 같은 말과 함께 다시는 월드컵에서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펠레의 폭탄선언에 브라질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이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펠레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당시 월드컵에는 옐로카드와 레드카드 제도도 없었고, 심지어 선수 교체 제도조차 없었다. (퇴장은 있었으나 카드가 아닌 구두로 퇴장을 주었다.) 그래서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선수가 있는 팀은 10명으로 경기에 뛰어야 했다. 이 때문에 상대 팀의 에이스는 늘 수비수들의 노림 대상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펠레는 더욱 그랬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펠레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두 번 연속으로 살인태클을 당하며 경기 도중 실려나가고 만다. 긴급 치료를 마치고 다시 경기에 투입되었지만, 1차전 때부터 부상을 안고 뛰었던 펠레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FIFA와 브라질의 회유
FIFA와 브라질은 펠레의 복귀를 간절히 바랐다. 세대교체를 이룬 젊은 브라질 대표팀의 마지막 열쇠는 펠레였다. FIFA 또한 월드컵의 흥행을 위해서 세계 최고의 선수 펠레가 필요했다. 펠레는 이들의 간곡한 요청과 더불어 본인의 국가대표 커리어를 월드컵 우승으로 마치기 위해 복귀를 결심한다.
1970 멕시코 월드컵은 새로운 제도가 여럿 도입됐다. 펠레가 절뚝이며 경기를 치르는 것을 보며 마음을 바꿨는지 선수 교체 제도를 도입했다. 나아가 1966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던 아르헨티나의 안토니오 라틴과 주심의 언쟁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전 세계에 컬러로 생중계된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덕분에 모든 축구 팬은 펠레의 마지막 월드컵 도전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쇼타임
펠레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할 때 입은 부상을 시작으로 기량 하락이 찾아왔지만 1969년을 기점으로 좋은 폼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6경기 6골을 넣으며 본선 무대를 위한 예열을 마쳤다. 마침내 찾아온 본선 무대, 멕시코에서 펠레의 마지막 쇼가 시작됐다.
펠레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자신이 왜 최고의 선수인지 증명했다. 시종일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비진을 괴롭힌 펠레는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두 번째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였다. 1962년 우승팀과 1966년 우승팀의 맞대결, 축구종가와 축구 왕국의 맞대결에 모든 축구 팬이 이 경기를 주목했다. 경기 수준 역시 매우 높았다.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의 공격을 바비 무어를 중심으로 뭉친 잉글랜드 수비진이 잘 막아냈다. 하지만 단 한 순간 잉글랜드는 펠레에게 속았고 펠레의 패스를 받은 자이르지뉴가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1대 0으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펠레의 헤더를 막은 고든 뱅크스의 선방이었다.
펠레의 환상적인 헤더를 막아내는 뱅크스. 펠레와 팬들은 골이라고 확신했으나 고든 뱅크스는 이 슈팅을 막아내었고. 이 장면은 지금까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이브로 평가 받는다. 펠레 역시 “내가 본 선방 중 가장 멋진 선방이었다”고 말하며 뱅크스의 선방을 극찬했다. (출처: FIFA 유튜브)
비록 헤더는 넣지 못했지만 디펜딩 챔피언을 꺾는데 대활약한 펠레는 조별리그 3차,전 강력한 프리킥 골 포함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3대 2 승리를 이끌며 3전 전승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8강에서도 기세를 이어나갔다. 페루를 4대 2로 가볍게 제압하면서 4강 진출을 확정시켰다. 펠레는 이 날에도 어시스트 하나를 추가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마라카낭의 복수
브라질의 준결승 상대는 우루과이였다. 브라질과 펠레가 그토록 염원했던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나 1950년, 마라카낭에서 브라질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던 우루과이는 당시에도 만만치 않은 강팀이었다. 4강까지 단 한 골만 허용할 정도로 강력한 수비를 자랑했다. 심지어 우루과이는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크로스 성 슈팅이 골대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마라카낭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하지만, 복수를 다짐한 브라질의 공격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짠물 수비를 자랑하던 우루과이는 내리 세 골을 내주며 역전패를 허용했다. 펠레는 이날, 축구의 신이 자신임을 온 천하에 증명했다. 펠레는 히벨리누의 쐐기골을 도우며 공격포인트도 기록했다. 하지만, 그것은 빛나는 활약상의 일부에 불과했다.
하프라인부터 페널티박스 부근까지 환상적인 단독 드리블을 보여준 펠레, 반칙을 당한 펠레는 자신이 역사적인 골을 넣을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반칙과 관련 없는 우루과이 선수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출처 : FIFA 유튜브)
‘펠레 더미(Pele’s dummy)’’ 비록 골로 연결되지 못했으나 펠레의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던 장면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노 골이라고 칭송했으며 이 펠레의 트릭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출처: FIFA 유튜브)
자신의 천재성을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보여주며 마라카낭의 비극을 철저하게 되갚아준 펠레에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였다. 바로 쥘 리메컵 트로피였다. 펠레의 마지막 관문은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1968년 유로피언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수페르가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됐던 길고 긴 암흑기를 탈출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하며 아주리 군단의 부활을 알렸다.
대관식
1970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은 단순한 결승 경기가 아니었다. 창과 방패의 대결, 그리고 무엇보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인 ‘쥘 리메컵’의 영구 소유권이 걸린 경기였다. 당시 ‘쥘 리메컵’은 월드컵 3회 우승팀이 영구 소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탈리아는 1934년과 1938년 연속으로 두 번 우승한 이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브라질 역시 1958년과 1962년 두 차례 연속 제패하며 2회 우승을 기록한 팀이었다. 즉, 이 경기의 승자는 ‘쥘 리메컵’의 영원한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었다.
역사에 남을 1970 멕시코 월드컵의 결승전은 멕시코 시티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아스테카(Estadio Azteca)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에스타디오 아스테카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을 담은 경기장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겼다.
이날,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는 말 그대로 축구의 신이 강림했다. 신의 이름은 바로 펠레였다. 펠레는 전반 초반 왼쪽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높은 점프 이후 강력한 헤더로 마무리하며 축구황제 대관식의 포문을 직접 열었다. 고작 173cm의 단신인 펠레가 ‘빗장수비’를 이겨내고 헤더를 성공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펠레는 경기 내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2도움을 추가로 올리며 브라질의 4대 1 완승을 이끌었다.
펠레뿐만 아니라 히벨리누, 카를로스 알베르투, 제르송, 토스탕, 클로도아우두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1970 브라질 대표팀. 전대미문 전승우승과 함께 19득점 6실점을 기록한 1970 멕시코 월드컵 셀레상은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축구팀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출처: 영문위키)
G.O.A.T.
브라질은 이탈리아를 제압하며 염원했던 쥘 리메컵을 영구 소장하게 되었다. 우승의 주역은 단연 펠레였다. 펠레는 이번 월드컵에서 4골 7도움으로 굉장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아가 역사에 남을 명장면 역시 여럿 만들며 자신이 왜 축구 황제인지 스스로 증명했다.
펠레는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커리어를 서서히 정리하기 시작했고 1971년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셀레상을 떠났다. 펠레는 월드컵에서 14경기 12골 10도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스탯을 쌓았으며 월드컵 트로피를 세 차례나 차지한 유일한 선수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펠레는 공식 경기엣서 767골을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1283골) 기록한 그야말로 불멸의 축구 황제였다. 그러나 펠레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평가 받는 이유는 월드컵 3차례 우승. 특히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퍼포먼스 덕분이다.
과거는 미화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펠레는 제대로 된 선수 보호조차 없던 시대에서 상대 선수의 온갖 살인 태클을 견뎌내며 월드컵 3회 우승을 이루어냈다. 축구에서, 아니 스포츠에서 월드컵이 주는 의미는 굉장하다. 모든 축구 선수의 꿈이며 단순 스포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축제'로 평가받는다. 이런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월드컵에서 전무후무한 활약을 보인 펠레는 G.O.A.T.(Greatest of All Time)라 불려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다.
결승전 승리 이후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는 펠레의 모습이다. 펠레는 3회 우승을 달성하며 '축구 황제'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출처: Sports Illust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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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골 라인 넘은 거 맞아? '축구종가' 논란의 우승
첫댓글 축구적으로 펠레는 단점이 없다고 평가받죠 거의 모든 능력치가 최상급인
헤더좋고 프리킥 잘차고 양발 다 잘쓰고 드리블,패스,슛 다 최정상급
66월드컵 부상없었으면 4연속우승도 노려봤을 ㄷㄷ
무엇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동료들에게 볼배급하는 물흐르는듯한 플메능력도 최고였죠 진정한 축구마스터
인류 역사상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