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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축구 전쟁
사람들은 종종 스포츠를 두고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UFC나 태권도를 비롯한 무술 종목은 상대를 향해 무자비한 타격과 기술을 써서라도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 럭비, 미식축구와 같은 스포츠들은 목표를 위해 몸을 던지고 박고 싸운다. 꼭 몸싸움이 아니더라도 치열한 승부를 보여주는 광경을 보면 전쟁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축구만큼 전쟁과 잘 어울리는 스포츠는 없을 것이다. 축구 자체가 과격한 몸싸움이 동반된 스포츠이긴 하다만, 어떤 스포츠도 전쟁의 시발점이 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축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냐고? 사실 그렇게 보긴 어렵다. 그러나 기폭제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1970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 지역 예선을 벌인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두 국가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969년, 월드컵을 1년 앞둔 양 국가는 북중미 지역의 월드컵 예선에서 준플레이오프(이 경기에서 이긴 팀이 아이티를 상대로 단두대 매치를 펼쳐야 했다.)를 벌인다. 국경을 맞닿은 인접 국가인 만큼 라이벌 의식은 강했고 양국의 정치적 갈등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와 온두라스(HONDURAS) 면적, 온두라스가 더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BBC)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나라는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삼는 국가였다. 농업을 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근본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할 토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엘살바도르의 면적은 전라도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고, 온두라스는 이런 엘살바도르보다 5배나 컸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엘살바도르의 인구는 300만이었고 면적이 더 넓었던 온두라스는 230만 명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 개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엘살바도르는 농민들에겐 지옥 그 자체였다. 소수의 엘리트가 경작할 땅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결국 농민들은 엘살바도르보다 땅이 넓었던 온두라스로 이주했다. 19세기부터 이주 행렬이 시작되었고 그 수는 무려 30만에 이르렀다.
그러자 온두라스 농민들이 불만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지주들로부터 땅을 얻는 것도 버거운데 이주민들의 유입으로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의 나라로 건너온 이주민들이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것도 모자라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수십 만 명의 일본인이 경제난으로 우리나라로 넘어와 “건방진 조센징”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이다.
결국 1962년 온두라스는 농지개혁법을 통과시킴과 동시에 엘살바도르 이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안 그래도 경제적 고난을 갖고 있던 엘살바도르는 이 문제까지 떠안자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두 국가는 정치, 문화적 차이로 다투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갔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1969년 6월, 이러한 분쟁 속 양 국가는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축구 시합을 가지게 된다. 국가 간 갈등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맞붙은 것이다. 온두라스 홈에서 열린 1차전 경기는 1대 0으로 온두라스가 승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일주일 뒤 열린 엘살바도르 홈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는 3대 0으로 엘살바도르가 완승을 거둔다. 다만, 당시에는 1, 2차전 점수 합산으로 승자를 정하지 않았기에 승자를 가리기 위해선 3차전이 불가피했다.
경기를 치르는 과정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경기 결과의 낙담한 소녀팬이 자살을 하는 소동이 있었고 양국의 해설진들은 객관성을 잃고 상대 국가 선수들을 저주하는데 바빴다. 심지어 양 팀의 응원단끼리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 특히 엘살바도르에서 열린 2차전은 그야말로 전쟁의 도화선이었다. 두 나라의 응원단끼리 결국 물리적 충돌을 하고야 만 것이다. 수적 열세였던 온두라스 원정팬들은 그야말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고 국경으로 쫓기듯이 도망치는 수모를 당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온두라스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에 머무르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공격을 시작했다.
FIFA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월드컵 개최지인 멕시코에서 3차전을 주최했고 양 팀의 운명을 건 경기가 멕시코 시티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멕시코 당국 역시 두 국가의 험악한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어마어마한 경찰을 경기장에 투입했다. 덕분에 이전과 같은 난투극은 없었다. 양 팀의 경기는 라이벌전답게 매우 치열했다. 2대 2로 후반 종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연장전, 엘살바도르의 피포 로드리게즈가 결승골을 넣으며 조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에 불과했다.
100시간 전쟁과 후폭풍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국의 관계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파국으로 향해갔다. 3차전 경기가 열리기 직전,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를 상대로 외교 단절한 것을 시작으로 양국은 군사적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온두라스에 있는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무차별 폭행을 계속 당하고 있었으며, 국경 주변에서는 양국 공군 간 분쟁이 계속 발생했다. 결국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에 머무르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1969년 7월 14일이었다.
전쟁은 나흘 동안 계속되었다. 나흘째가 되던 날,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인해 양국은 휴전 협정을 맺었다. 얼마 후, 엘살바도르의 육군이 온두라스에서 철수함으로써 전쟁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이 전쟁의 이름은 두 개로 나뉜다. 축구 경기로 촉발되어 ‘축구 전쟁(Football War)’이라 부르거나 100시간 동안 펼쳐져 ‘100시간 전쟁’이라 칭한다.
어떤 전쟁이든 그 결과는 참혹하기 마련이다. 침공당했던 온두라스는 국토 일부가 폐허가 되어 고난을 겪어야 했다. 전쟁의 사상자 또한 수천 명에 달했고 안타깝게도 그들 대부분은 온두라스 민간인이었다. 수도까지 공격받았던 온두라스는 사실상 전쟁에서 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더 큰 손실을 본 것은 엘살바도르였다. 선제공격을 시도한 탓에 전범국으로 낙인찍히며 국제적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주변 국가들과의 무역이 끊겨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맞이한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 엘살바도르는 뒷날, 7만여 명이나 희생되는 내전을 치르게 된다.
전쟁 이후, 온두라스에서 거주하다 엘살바도르로 다시 이주한 엘살바도르 이주민들의 모습이다. (출처: Si.com)
스포츠맨십
오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글을 보면 대개 사람들은 축구 경기 역시 난장판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였다고 전해진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로드리게즈는 “양국 선수들은 적이 아닌 라이벌이었을 뿐이었고 서로 감사했으며 상호 존중의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와 정치인들이 스포츠의 승리를 국가 이미지 향상에 이용했을 뿐”이라 덧붙였다.
세계 역사를 들여다보면 축구와 같은 스포츠가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솔리니의 월드컵과 히틀러의 올림픽, 후에 다룰 아르헨티나 이야기 등 스포츠는 늘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스포츠가 정치에 악용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스포츠의 힘을 정말 강하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맨십,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사람들의 화합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창립자 쥘 리메가 원했던 것 역시 축구를 통한 전 인류의 화합이었다. 스포츠가 가진 힘, 이를 선하게 활용한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게 변하지 않을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이후 축구계는 전쟁 반대 구호, 우크라이나 응원 구호 등을 외친 바 있다. 스포츠가 가진 강력한 힘을 선하게 활용한 일례가 아닐까? (출처: The Austra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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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월드컵의 탄생, 쥘 리메의 꿈
Ep.2) 초대 월드컵,'메이저 3연패'를 이룩한 우루과이
Ep.3)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무적의 아주리
Ep.4) 축구 때문에 자살을? 마라카낭의 비극
Ep.5) '공은 둥글다' 베른의 기적
Ep.6) 펠레, 축구황제의 강림
Ep.7) 세상을 경악케 한 ‘절름발이’ 가린샤
Ep.8) 골 라인 넘은 거 맞아? '축구종가' 논란의 우승
Ep.9) 에우제비우, 돌풍을 잠재운 흑표범
Ep.10) 펠레, 축구황제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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