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대 마크
- 원: 우주상징
- 백색원: 6대주, 즉 단결 상징
- 원안의 청색: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을 상징하며 남북통일의 성업을 뜻함
- 산능선의 백색: 백의 민족을 상징
- 산봉: 7형x 3개로, 21사단을 상징
제21보병사단은 제20기계화보병사단과 함께 육본의 2차 한국군 증강계획에 따라 1953년 2월 9일 당시 제2교육연대를 모체로 창설됩니다. 당시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건봉산 일대 작전 지역을 인수받아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철원에서도 맹활약을 합니다. 이후 양구에 주둔하였으며, 휴전을 맞이합니다.
1970년대 초 전차중대를 배속 받았던 제21보병사단은 땅굴을 발견하였고, 동부전선의 첨병역할을 단단히 하는 명실공히 명문산악부대로 이름을 날립니다.
155마일 휴전선 중 10%에 해당하는 가장 넓은 지역을 맡고 있는 백두산부대는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든든한 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DMZ는 서해안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248km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총 4km의 공간으로 그 넓이는 총 2억 7000만평입니다. 군사분계선에는 1295개의 표식판이 있으며 제 0001호는 임진강 강변에, 마지막 표식판인 제1295호는 동해안 동호리에 세워졌습니다. 이 DMZ를 24시간 철통 경비하는 부대가 GOP부대입니다. 특히 GOP부대 중 가장 험악한 지형으로 소문난 곳이 제21보병사단입니다. 육군 제21보병사단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1월 15일 강원도 양양에서 제2교육여단으로 창설됐고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백두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으라는 의미로 백두산부대라는 부대명과 백두산 부대기를 받습니다.
백두산 부대는 1976년 북한강 감우리에서 공비 3명 사살, 1979년 대암산 축선 침투 무장공비 일망타진, 1983년 북한군 신중철대위 귀순유도, 1997년에는 가칠봉 침투 북한군 침투 등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백두산 부대의 가장 유명한 전사는 단연 피의능선 전투입니다. 휴전협상이 개시된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중요 요충지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일어났던 전투입니다. 강원도 983고지 확보를 위해 미군을 비롯한 한국군이 총공세를 펼쳤지만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와 촘촘히 구축해놓은 호를 뚫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장기전 끝에 고지를 점령을 했지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종군기자들이 '능선에 피가 흐른다'고 표현해 불러진 전투입니다.
▣ 피의능선 전투
피의능선은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으로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7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며, 20만발의 포탄이 떨어져 계곡과 산등성이마다 피로 얼룩진 혈전장이었습니다.
이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캔사스-와이오밍 선으로 진출한 후,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제한된 공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을 때, 미 제2사단과 국군 제5사단 제36연대가 양구 북방의 피의 능선(983고지-940고지-773고지)을 공격하여 북한군 제12사단과 제27사단을 격퇴하고 목표를 점령한 공격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1개연대 규모 사상자 발생과 북한군의 1개 사단규모 이상 피해가 발생해 피의능선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커다란 격전이었으며, 결국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고 한미 양군은 피의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 도로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피의능선으로 이어지는 동면 월운저수지 옆에는 1980년 11월에 세운 피의능선 전투전적비가 있는데 2001년 6월 양구군에서 바로 세우고 주변을 정비하였습니다.
현재는 E군단 예하의 전투보병사단으로 DMZ 철책선 관리를 하며 제1차 방어부대로 최일선 전투사단입니다.
▲ 사단가
첫댓글 감사합니다
일목정연한 자료 감사합니다. 그리고 맨 위의 부대 마크 이미지는 10여년 전에 제가 만들어서 올렸던거랍니다.(자랑 아님) ^^
사단가가 생샌하게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