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언민행
눌언민행(訥言敏行)을 직역하면 ‘느린 말(訥言)과 재빠른 행동(敏行)’이라는 뜻으로 ‘말은 더듬거리듯 신중하게 하고 행동은 재빠르게(민첩하게) 하라’ 혹은 ‘말은 언제나 신중하게 하고 잘못을 깨달은 뒤에 바로 잡거나 행동을 할 때는 재빨리 해야 한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말이다. 예로부터 번드르르한 말의 성찬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놓고 행동이 따르지 않아 실망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생겨난 경고이자 금언이었을까. 이 말이 생겨난 유래와 참된 쓰임새와 만남이다.
오늘날 말로 희망고문을 하는 인사들이 넘쳐난다. 특히 정치판의 각종 공약(公約)은 선거가 끝나면 무참하게 수렁으로 처박히며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원래 말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도 그 말을 행하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꿰뚫었던 옛 선인들이 남긴 금언이다. ‘말은 어눌하다고 할 정도로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행동은 재빨라야 한다’는 성어의 출전(出典)은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이다. 여기서 나오는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 군자는 말이 어눌하더라도(君子欲 訥於言 : 군자욕 눌어언) 실행에는 재빨라야(민첩해야) 한다(而敏於行 ; 이민어행) /
여기서 비롯되었다. 한편 이 말을 통해 공자(孔子)는 ‘군자는 말이 어눌할지라도 실행에는 재빨라야(민첩해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하되 행동은 재빨라야 한다’ 혹은 ‘군자는 신중하게 말하고 재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옛 사람들은 충분히 생각을 한 뒤에 느릿느릿 말하는 것은 어눌하게 보일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점보다는 말만 앞세운 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를 경계하며 실행을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던가 보다.
/ 군자는 말보다는 행동 즉 실행을 앞세워야 한다(君子先行其言 : 군자선행기언) /
이러한 철학이나 가치관은 논어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글귀(文句)로서 이렇게 이르며 일깨워주고 있다.
/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君子恥其言而過其行 : 군자치기언이과기행) /
또한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서 ‘말에 앞서 행동하라’는 뜻을 담아 이렇게 일깨워주고 있다.
/ 말하기 전에 행동하고, 행동하고 나서 말하라(先行其言而後從之 : 선행기언이후종지) /
주위에서 자신이 내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말갈망을 제대로 못해 치욕스러운 망신을 자초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그럴 때마다 언행불일치의 폐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매사에 말부터 앞세우는 가벼운 입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어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역시 공자가 일렀던 ‘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인 ‘교언영색(巧言令色)에는 진실함이 없다(鮮矣仁)’는 말을 기억하면서도 그렇다는 말이다.
수사적(修辭的)인 표현이 아닌 진솔한 뜻에서 ‘말을 앞세우지 말고 재빠르게 행동하라’고 이르는 바를 곱씹어보려다가 문득 중국 후당(後唐) 시절 오조팔성십일군(五祖八姓十一君)을 모셨다는 재상(宰相)인 풍도(馮道)의 처세관을 담은 시(詩)가 뚱딴지 같이 떠올랐다. 이는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서 전해지고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 구시화지문)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 설시참신도)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 폐구심장설)
가는 곳마다 몸이 평안하리라(安身處處牢 : 안신처처뢰)
사람 사이에 말과 행동이 달라 다툼과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배설하듯 자연스럽게 내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풍조가 만연한 현실에서 눌언민행의 뜻을 한 번쯤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아쉬운 지금이다.
한맥문학, 2024년 5월호(통권 404호), 2024년 4월 25일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첫댓글 말이 어늘하다를 나는 말보다 행동에 신중울 기해 좋은 일에는 민첩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