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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안톤 체홉
1
우클레예보 마을은 골짜기에 묻혀 있어서 큰길이나 정거장 쪽에서 보면 겨우 종루와 면직물 염색공장의 굴뚝이 보일 뿐이었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대해서 어떤 마을이냐고 묻기라도 하면, 이 고장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마을은요, 장례식 때 교회 집사가 캐비어를 몽땅 먹어치운 바로 그 마을입니다."
언제든가, 공장주인 코스추코프네 집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때 늙은 교회 집사가 자쿠스카(러시아 스낵의 일종: 역주)속에 굵은 캐비어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쿡쿡 찌르기도 하고 소매를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맛에 취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무슨 짓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먹어대고만 있었다. 결국 그는 항아리 속에 들어 잇던 4파운드의 캐비어를 깨끗이 먹치웠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도 이미 몇 년이 지나고 당시의 교회 집사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 캐비어 이야기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마을의 생활이 그 정도로 삭막했던가, 아니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10년 전에 일어난 이 하잘 것 없는 사건 이외에는 기억할 만한 재주가 없었던가. 하여간에 우클레에보 마을에 대하여는 달리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다.
이 마을에는 열병이 그치지 않고 돌았으며, 여름철에도 곳곳이 진창투성이였다. 늙은 갯버들이 가지를 드리워서 폭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울타리 밑 같은 데는 더욱 질척질척했다. 공장에서 나온는 쓰레기와 면직물 염색에 쓰이는 초산 냄새가 항상 주위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다. 공장은 면직물 염색공장이 셋, 그리고 피혁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마을 한가운데가 아니라 마을에서 약간 벗어난 변두링에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 작은 공장들로 직공의 수는 전부 합해 겨우 4백명 정도 밖에 안되었다. 피혁공장 때문에 개울물은 늘 악취를 풍겼고, 쓰레기는 목초 지대를 오명시켜 농가의 가축들을 탄저병에 걸리게 했다. 그래서 이들 공장에는 폐쇄령이 내려졌으나, 실제로는 지서장과 군의의 묵인하에 모래 조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공장주는 매월 10루블씩 그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었다. 마을 전체를 통하여 양철로 지붕을 이은 석조 건물은 겨우 두 채뿐이었다. 한 채는 군청이었고, 다른 한 채는 교회 맞은편에 있는 2층 건물로 에피판 출신의 그리고리 페트로비치 치부킨이라는 상인의 집이었다.
그리고리는 식품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뒤로는 보드카, 가축, 피혁, 곡물, 돼지, 그밖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다 취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수출용 부인모에 장식으로 다는 까치 깃털 주무을 맡아 한 쌍에 30코페이카씩 벌기도 하고, 삼림을 사서 목재를 베어내어 팔기도 하고, 고리 대금에까지도 손을 댔다. 어쨌든 빈틈없는 영감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장난 아니심은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고 있어서 집에는 어쩌다 한 번씩밖에 들르지 않았다. 차남 스테판은 그를 도와서 가게 일을 보고 있었는데, 신병이 있는 데다가 귀까지 멀어서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테판의 처 악시냐는 몸매가 날씬한 미인으로, 명절 때가 되면 모자를 쓰고 양산을 바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잤다. 스커트 자락을 살짝 치켜들고 열쇠를 짤랑거리면서, 하루종일 창고에서 지하실로 지하실에서 가게로 뛰어다녔다. 그리고리 노인은 그런 며느리를 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가 장남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통 모르는 둘째의 아내라는 것을 애석하게 생가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원래 가정적인 사람이어서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자기의 가족을 사람했다. 가족 중에서도 각별히 사랑한 것은 형사 노릇을 하는 장남과 둘째 아들의 처였다. 악시냐는 귀머거리 둘째 아들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놀라운 장가 수완을 발휘해서, 어느 손님에게는 외상으로 팔아도 되고 어느 손님에게는 안 된다는 것까지 환히 알고 있었으며, 온 집안의 열쇠를 맡아가지고 남편에게조차 건네주지 않았다. 주판알을 튕기면서 계산을 맞추는 것을 보면 농부가 말의 이빨을 들여다보듯 아주 정확했다. 하루종일 그녀의 웃음소리와 외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인은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거지 하나하나가 다 신통해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대단한 며느리야! 그래그래, 예쁜 아가..."
그리고리는 홀아비였다. 그러나 아들이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1년쯤 지나자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도 재혼을 하였다. 그른 우클레예보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는 바로바라 니콜라예브나라는 쳐녀를 중매를 통해 아내로 맞아들였다. 나이는 꽤 들었으나 가문이 좋고, 상당한 미인으로 몸매도 고왔다. 그녀가 2층에 기거하게 되자, 온 집안이 마치 창유리를 몽땅 갈아 끼운 것같이 갑자기 훤히 밝아졌다. 성상 앞에는 등불이 켜지고, 테이블에는 눈같이 흰 테이브 보가 쓰워졌으며, 창가와 뜰에는 빨간 봉오리를 맺은 꽃들이 놓였다. 식사 때에4도 쭉 해오던 대로 한 그릇에 담아놓고 모두들 다같이 떠먹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각자 자기 몫의 접시가 나왔다. 바르바라가 즐거운 듯 상냥하게 웃으면 온 집안이 그녀와 함께 미소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도 예전에는 일찍이 없었던 일로, 거지나 순례자나 집시 차림의 여자들이 안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우클레에보 여자들의 노래하는 듯한 애수 띤 목소리나, 술주정으로 공장에서 쫓겨난 초라하고 염치없는 사내들의 조심스러운 기침소리도 창가에서 들려왔다. 바르바라는 처음에는 그들에게 돈과 빵과 헌옷 같은 것을 집어 주더니, 이 집 살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가게의 물건까지 들어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그녀가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집어내는 것을 보고 기가 콱 막혔다.
"어머니가요, 차를 4분의 1파운드나 가게에서 가져갔는데요..." 그는 나주에 아버지한테 고자질했다. " 어느 장부에다 적어놓을까요?" 노인은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이윽고 2층에 있는 아내의 방으로 올라갔다.
"여보, 바르바르슈카(바르바라의 애칭), 가게 물건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뭐든지 가져다 써요, 얼마든지 써도 괜찮아."이튿날, 귀머거리 스테판은 안뜰을 뛰어가면서 그녀에게 외쳤다.
"어머니,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세요!"
그녀의 자선행위 속에는 마치 등불이나 빨간 꽃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뭔가 새롭고 상쾌하고 밝은 마음이 배어 있었다. 금육일의 전날이나. 사흘 동안 계속되는 수호 성자의 기념일 같은 때 이 가게에서는, 도저히 통 옆에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냄새가 지독한 소금에 절인 고기를 농부들에게 팔아먹었다. 주정뱅이들에게 큰 낫이나 모자나 프라토크( 러시아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처럼 생긴 스카프: 역주) 같은 것을 담보로 잡고 외상 거래도 했다. 질이 나쁜 보드카에 곯아떨어진 공장 직공들은 진흙탕 속에서 뒹굴었다. 이렇게 해서 겹겹으로 죄업이 쌓여 주위에 안개가 낀 것처럼 자욱한 느낌이 들 때라도, 문득 그런 소금에절인 고기나 보드카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성품이 온화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이 집의 안방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선은 이 괴롭고 암담한 나날 속에서 기계의 안전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리의 집에서는 이것저것 항상 바빴다. 악시냐는 해도 뜨기전에 일어나 문간방에서 킁킁 콧소리를 내며 세수를 했고, 부엌에서는 어쩐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사모바르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용모가 깨끗한 그리고리 노인은 기다란 검은 프록 코트를 입고 면직물 바지에 번쩍번쩍 빛나는 긴 장화를 신은 채, 유명한 가극 속에 나오는 시아버지같이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면서 이 방 저 방 거닐었다. 이윽고 가게의 덧문이 열렸다. 날이 샐 무렵 경주용의 사륜 마차가 현관의 출입구에 도착하면, 노인은 커다랗고 차양이 없는 모자를 귀 언저리까지 눌러 쓰고 젊은 사람처럼 날쌔게 마차에 올라탔다. 이럴 때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가 쉰여섯 살 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었다. 아내와 며느리가 그를 배웅해주었다. 이처럼 산뜻한 프록 코트를 입고, 3백 루블짜리의 크고 검은 종마가 끄는 마차에 올라 앉으면, 노인은 여러 가지 청탁이나 하소연을 하러 오는 농부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원래 그는 농부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어떤 농부가 문 앞에 서서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기라고 하면 화를 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왜 그런 데 멀거니 서 있는 거야? 저리 가!"
또 거지라도 서 있으면 이렇게 소리쳤다.
"하느님한테나 받으러 가게!"
그가 장사일로 나가고 나면, 그의 아내는 검정 옷에 검정 앞치마를 두르고 방을 치우기도 하고 부엌일을 거들기도 했다. 악시냐는 가게를 보았다.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섞여 악시냐의 웃음소리와 외침소리가 안뜰에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어보면, 가게에서는 이미 보드카의 밀매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귀머거리 스테판 역시 가게에 나가 있는 것이 예사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한길을 서성거리며, 멍하니 그 근처의 농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 집에서는 하루에 여섯 번쯤 차를 마셨고, 네 번쯤 뭔가를 먹기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그리고 밤이 되면 매상을 계산하여 장부에 기입하고 나서야 깊이 잠이 드는 것이었다.
우클레예보에서는 면직물 공장 세군데와 그 공장의 소유주들, 즉 플뤼민 형제의 집과 쿠스추코프네 집에 전화기 가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군청에도 전화가 있었지만, 그 전화는 가설된 뒤 곧 불통이 되어버렸다. 전화기 속에 빈대와 바퀴가 번식했기 때문이다. 군수는 무식한 사나이로,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도 단어 하나하나를 그리는 형편이었다. 전화가 불통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전화가 불통이니까 우리들도 여러 가지로 불편해지겠는데."
플뤼민 형제간에는 송사가 그칠 새가 없었다. 재판을 시작하면 화해가 성립되기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조업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우클레에보 사람들에게는 이 재판이 일종의 기분전환 거리가 되어주었다. 왜냐하면,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와 뒷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기 때문이다. 축제일이면 쿠스추코프네와 플뤼민네는 서로 경쟁하듯 마차를 타고 멀리 돌아다녔다. 그들은 온 우클레예보를 달려다니며 송아지를 치어 죽이기도 했다. 악시냐는 화장을 하고 풀을 잔뜩 먹인 스커트 자락을 와삭와삭 소리내면서 가게 주위의 한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면 플뤼민 아우네 집 사람이 마차를 몰고 나타나 마치 우격다짐하듯 그녀를 끌고 어디론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면 그리고리 노인도 자기 말을 자랑하려고 마차를 타고 외출했다. 언제나 바르바라가 동행했다.
마차 멀리 타기 경쟁도 끝나고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플뤼민 아우네 집 안뜰에서는 누군가 값비싼 아코디언을 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달밤 같은 때에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가슴이 울렁거려서, 어쩐지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이 우클레예보도 초라한 골짜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2
장남 아니심은 축제 때 말고는 집에 들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대신 그 고장 사람 편에 곧잘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는 언제나 누구 다른 사람이 달필로 대필한 것이었는데, 반드시 편지지 한 장에 청원서와 같은 격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아니심이 평소 이야기할 때에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이상한 말투로 쓰여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께서 즐겨 드시라고 새싹으로 만든 고급 차 1파운드를 보내드리나이다.'
편지마다 끝에는 다 닳아빠진 펜으로 찍찍 긁은 것같이 '아니심 그리고리'라고 서명이 되어 있고, 그밑에는 달필로 '대필'이라 쓰여있었다.
이런 편지가 올 때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몇 번씩이고 소리를 내어 내용을 읽었다. 노인은 감동해서 으레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아이는 집에서 살기가 싫은가봐, 워낙 학문이 있는 사회에서 출세했으니까 말이야. 뭐 좋도록 하라지! 사람은 각각 제 갈 길이 있으니까."
사육제를 앞두고 어느 날, 우박 섞인 큰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노인과 바르바라는 바깥 형편을 살펴보려고 창가로 갔다가 놀랍게도 아니심이 역에서 썰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아니심은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 한 초조한 기색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구뒤에도 계속 변하지 않았고, 어쩐지 자포자기하는 듯한 데가 있었다. 별로 출발을 서두르는 눈치도 없어서, 혹 근무처에서 목이 잘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르바라는 그의 귀가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능청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저었다.
"어떻게 된 거냐, 아니심?" 그녀가 말했다. "스물여ㄹ 살이나 되어 가지고 여지껏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ㅉㅉㅉ..." 옆방에서는 그녀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ㅉㅉㅉ...'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노인과 악시냐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두 사람의 얼굴에는 마치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 같은 야릇하면서도 곡절이 있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니심을 장가 보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아, 글쎄!...동생은 벌써 장가를 들었느데..." 바르바라가 말했다. "형이 되어서 마치 시장에 내다 놓은 수탉처럼 언제까지 이렇게 짝없이 지낼 셈이야, 제발, 색시만 얻으면 뒷일은 다 잘되게 되어 있어. 아니심은 근무처로 나가고 색시는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면 되잖아. 아니심 같은 젊은 사람이 혼자 있으면 생활에 절도가 없어서 안돼. 아무래도 우리 큰아들은 세상의 순리를 몽땅 잊어버린 사람 같이 보여. 이거야 원, 정말이지 결혼을 하지 않고 늙어가는 건 죄악이라구." 그리고리 가의 남자가 장가를 들 때에는 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얼굴이 예쁜 색시감을 골랐다. 그래서 아니심의 색시감도 예쁜 처녀가 선택되었다. 아니심으로 말하자면, 그는 볼품없이 생겼을 뿐 아니라 주변머리도 전혀 없는 남자였다. 허약하고 병자 같은 체격에 키도 작았고, 두 볼은 공기가 잔뜩 든 것처럼 볼록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눈을 깜박거리지 않아서 눈매만은 날카로워다. 붉은 턱수염은 거칠게 자라 있었고, 무슨 생각에 잠길 때에는 수염을 이빨로 자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더욱이 그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것이 표정에나 걸음걸이에 역력히 나타났다. 이런 사내인 데도 신부감이 나섰다는 것, 그것도 상당한 미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좋아. 나도 아주 볼 줄 모르는 건 아니니까. 우리 그리고리 가의 남자들은 워낙 풍채가 좋으니까 말이야."
시의 변두리에 트루구에보라는 마을이 있었다. 최근 그 마을은 절반이 시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로 편입된 쪽의 땅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어떤 과부가 있었다. 그 과부에게는 날품팔이를 하며 살아가는 리파라는 나이 찬 딸이 있었다. 리파가 미인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트루구예보에 소문이 나 있었지만, 집이 너무 가난하여 청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장차 어디 나이 많은 늙은이나 상처한 홀아비가 그녀의 가난을 탓하지 않고 색시로 데려가든지, 아니면 구냥 막 돼먹은 사내에게 시집갈 거라고 사라들은 말했다. 바르바라는 중매장이 여자로부너 이 리파의 이야기를 들은 죽시 마차를 타고 트루구예보에 가보았다.
이윽고 격식대로 리파의 이모네 집에서 자쿠스카와 포도주를 차려 놓고 선을 보았다. 리파는 선을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새로 맞춘 장미빛 옷을 입고, 머리에는 불꽃 간은 느낌을 주는 새빨간 리본을 화려가게 매고 있었다. 화사하고 품위있는 얼굴에 날씬하고 가냘픈 몸매의 처녀였는데, 노천에서 노동을 한 탓으로 얼굴은 햇볕에 그을어 있었다. 얼굴에서 슬픈 듯한 수줍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눈매에는 호기심이 섞인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젓가슴께가 겨우 사람의 눈에 띌 종도로 작은 계집애였다. 그러나 결혼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나이가 들어 있었다. 정말 상당한 미인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대장간의 집게처럼 축 늘어진, 사내처럼 턱없이 큰 두 손이었다.
"지참금이 없다고 하시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바르라라는 리파의 이모에게 말했다. "우리 둘째 아들 스테판도 가난한 집안에서 색시를 데려다 짝을 지어주었느데. 지금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훌륭한 며느리랍니다. 집안일도 그렇고 장사일도 그렇고, 대단한 일꾼이예요." 리파는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어째든 좋으실 대로 하세요. 저는 여러분들을 믿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학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날품팔이인 그녀의 어머니 플라스커비야는 겁에 질린 나머지 부엌 한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녀가 아직 젊었을 적에 어느 상인 집에 마루를 청소해 주러 다녔는데, 어느 날 상인이 무슨 일로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그녀를 꾸짖었다. 그때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놀랐었느데, 그후부터 그녀의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혀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공포 때문에 언제나 손발이 떨리고, 볼은 실룩실룩 경련이 일어났다. 그녀는 부엌에 앉아서 손님들이 무슨이야기를 하는지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이마에 대고 때때로 성상쪽을 바라보며 성호를 그었다. 얼큰하게 취한 아니심이 부엌으로 난 문을 열고 서슴없이 말했다.
"어머니, 왜 그런 데에 앉아 계세요?"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우리들이 영 심심하고 지루하군요."
그러자 플라스코비아는 더욱더 두려워져서 바싹 마른 가슴에 두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어머, 별말씀을... 점말로 너무 과분한 혼담이 되어놔서요." 맞선을 본 뒤에 곧 결혼식 날이 정해졌다. 결혼날을 잡은 뒤로 아니심은 집에 있을 때면 줄곧 휘파람을 불면서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마치 땅 속까지 투시하려는 것처럼 쏘는 듯한 시선으로 마룻바닥을 응시하기도 했다. 부활제가 지나고 곧 그 다음 주가 되면 결혼하기로 정해져 있건만 조금도 기뻐하지를 않았으며, 새색시를 만나고 싶어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무작정 휘파람만 불고 있었다. 그가 장가를 드는 것은 다만 아버지와 계모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마을에는 그런 법도, 즉 집안일을 돕기 위하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한다는 법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근무지로 돌아가면서도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대체로 예전에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와는 거동이 달랐다. 어쩐지 매우 자포자기한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을 수없이 지껄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3
시칼로보 마을에는 플레절런트 종파(13-14세기경 주세 유럽에서 시작된 광신적 종파의 하나로, 이 종파의 신도들은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등 가혹한 고행을 일삼음: 역주)를 믿는 자매가 양잠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결혼 의상을 주문받아서 그 가봉을 하러 왔다가 오래도록 차를 마시고는 돌아갔다. 바르바라는 검은 레이스와 유리 구슬 장식이 달린 갈색 옷을 맞추었고, 악시냐는 가슴에 노란 천을 대고 치맛자락에 무늬를 한 초록색 옷을 맞추었다. 두 자매가 옷을 다 만들었을 때, 그리고리 노인은 현찰 대신 자기 가게의 물건으로 옷 값을 지불했다. 자매는 바라지도 않던 양초와 정어리 통조림 꾸러미를 두 손으로 그러안고 실망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을을 나서서 들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언덕에 앉아서 엉엉 목놓아 울었다.
아니심은 결혼식 사흘 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통 새것으로만 치장하고 있었다. 번쩍번쩍한 윤이 나는 고무 덧신을 신고, 넥타이 대신에 구슬 장식이 달린 빨간 끈을 매고, 외투 역시 새로 맞춘 것으로 소매를 꿰지 않고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린 다음,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왔다고 인사를 하며 1루블짜리 은화 10개와 50코페이카짜리 은화10개를 드렸다. 그리고 바르바라에게도 같은 액수의 돈을 내놓았고, 악시냐에게는 25코페이키짜리 은화 20개를 주었다. 이 선물의 가장 큰 매력은 은화가 모두 새것이라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아니심은 근엄하고 교만한 태도를 취하려는 듯, 짐짓 얼굴표정을 딱딱하게 하고 두 볼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마다 식당으로 쫓아갔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그이 태도에는 어쩐지 자포자기한 듯한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이윽고 아니심은 노인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자쿠스카를 들었다. 바르바라는 새은화를 손에얹어 뒤집어 보기도 하고, 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덕택에 별탈은 없어요. 모두들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니심이 말했다. "다만 이반 예고로프네 집에 조그만 불행이 있었습니다. 뭐, 소피아 니키포로브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뿐이에요. 폐병이었지요. 포도주도 나왔더군요. 농부들... 결국 이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인데... 그들도 2루블 반씩 냈어요. 하기야 그들은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농부들이 소스가 곁들여진 요리를 어떻게
먹겠어요."
"2루블 반이라!" 노인이 말하고는 머리를 저었다.
"물론이지요. 도시는 이런 시골과는 달라요. 뭘 좀 먹으려고 요리 집에 가도 한 접시 두 접시 주문하는 동안에 친구들이 모여들고, 그래서 술판이 벌어지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새벽녘이고, 계산서를 받아보면 한 사람 앞에 3, 4 루블씩 계산이 돌아가는 게 보통이랍니다. 거게에 만약 사모르도프가 자리를 함깨 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져요. 그 녀석은 먹은 다음에는 반드시 코냑이 든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데, 그 코냑이라는 것이 한 잔에 60코페이카 하는 형편이니까요..."
"흥, 바보 같으니!"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허풍만 치고 있군!" "저는 요즈음엔 언재나 사모로도프와 어울려 다닙니다. 사모로도프가 바로, 집으로 보내는 제 편지를 대신 써주는 바로 그 사람이에요. 아주 글씨를 잘 쓰는 친구입니다. 그렇죠. 어머니?" 아니심은 바르바라를 보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사모르도프가 어떤 사나이인지 이야기를 해봤자 어머니는 곧이듣지도 않으실 거예요. 우리들은 모두 녀석을 므후탈인라고 부릅니다. 워낙 온몸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처럼 새까맣거든요. 저는 녀석을 뱃속까지 꿰뚫어볼 수 있으니까 녀석이 하는 짓이라면 뭐든지 손에 잡은 듯 훤해요. 그것을 녀석도 눈치채고 있어서 제 뒤만 쫓아다니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녀석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지만, 저와 인연을 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제가 가는 곳이면 녀석도 반드시 따라다니지요. 제 눈은요, 어머니, 일단 이렇다 싶으면 절대로 실수가 없어요. 이를테면요, 헌옷 시장에서 농부가 셔츠를 팔고 있습니다. 그 농부를 한 번 보고는 '잠깐만, 그 셔츠를 장물이지!'라고 합니다. 뒤에 조사해보면 틀림없이 장물이거든요!"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내지?' 바르바라가 물었다.
"어떻게고 뭐고 없어요. 어쨌든 제 눈은 그렇게 알아보게 되어 있답니다. 무슨 곡절이 있는 셔츠인가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저 어쩐지, 이유없이, 머리에 딱 떠올라서 이건 장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그뿐이에요. 그래서 우리 수사과에는 모두들 이렇게 말한답니다. '하하, 아니심 녀석. 또 사기꾼을 잡으러 갔군'이라구요. 곧 장물을 찾아내러 갔다는 뜻이지요. 이거야 정말... 훔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숨기기는 아주 어렵거든요! 세상은 넓지만, 장물은 숨길 장소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우리 마을에서는 지난 주, 군트레프네 집에서 숫양 한 마리와 암양 두 마리를 잃어버렸는데..." 바르바라가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찾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면 제가 찾아줄까요? 찾는 것이라면 문제없어요"
결혼식 날이 되었다. 쌀쌀하면서도 마음 들뜨게 하는 화창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멍에와 말갈기에 울긋불긋한 리본을 단 쌍두 마차와 3두 마차가, 절렁절렁 방울 소리를 내면서 온 우클레예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찌르레기도 마치 그리고리네 집에 결혼식이 있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댔다.
집 안에는 벌써 여러 개의 테이블 위에 가느다란 물고기와 햄, 내자을 빼내고 대신 양념을 넣어 요리한 새고기와 올리브 기름을 사용하여 만든 엄청나게 많은 보드카와 포도주 병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 훈제 소시지와 쉬지근한 대하 냄새가 풍겼다.그리고리 노인은 테이블 둘레를 돌아다니면서 칼을 갈아주고 이었다. 모두들 계속 바르바라를 불러대며 온갖 일들을 부탁했으므로, 바라바라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숨을 할딱이면서 부엌으로 달려가곤 했다. 부엌에서는 리사가 새벽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한 악시냐가, 삐걱삐걱 소리나는 새 편상화를 신고 드러난 무릎과 가슴패기를 언뜻언뜻 내보이면서 회오리 바람같이 안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와글와글 들끓었고, 욕을 하는 소리도 들리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활짝 열어놓은 문 앞에는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무슨 경사가 있음을 느끼게 했다.
"색시를 데리러 간대!"
한동안 방울 소리가 철렁철렁 울려오더니 그 소리도 멀리 마을 밖으로 사라져 갔다. 2시가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갔다. 다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신부가 도착했던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지가 달린 촛대에 불이 밝혀졌고, 성가대는 그리고리 노인의 희망대로 악보에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리파는 등불빛과 화려한 의상 때문에 눈이 부셔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성가대의 높은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난생 초음으로 몸에 댄 코르셋과 편상화가 몸을 잔뜩 죄어, 마치 기절했던 자가 겨우 숨을 돌렸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검은 프락 코트를 입고 넥타이 대신 빨간 끈을 맨 아니심은 한 곳을 응시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한층 높아질 적마다 황급히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죽은 어머니와 성찬을 받으러 왔던 곳도 이곳이었고, 다른 소년들과 함께 성가대석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이곳이었다. 그는 이 교회의 구석구석을 성상 하나하나를 낱낱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결혼식을 올리려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법도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 성상을 볼 수도 없었고, 가슴을 꼭 졸라 매는 것만 같았다. 그는 기도를 하면서,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의 머리 위에 덮쳐올 불행이, 마치 비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마을을 비켜 가는 가뭄 때의 비구름처럼 무사히 자기 위를 그냥 지나가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빌었다. 그가 여태까지 지은 죄업은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더욱이 용서를 빈다든가 도망친다든가 돌이킨다든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쁜이었다. 그래도 그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흐느껴 울기조차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가 과음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도 그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갑자기 겁이 난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밖으로 나가, 빨리!'
"조용히!" 신부가 소리쳤다.
그들이 교회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뒤에서 졸졸 따라왔다. 가게 주위나 문 앞에나 안뜰에나 창 밑에나 어디고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여자들이 축가를 부르러 왔다. 신랑 신부가 문턱을 막 넘으려 할 때, 악보를 손에 들고 미리 문간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합창대가 일제히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고, 특별히 시내에서 불러온 악대도 반주를 시작했다. 미리 준비했던 돈 산의 샴페인이 길쭉한 술자에 담겨 나왔다. 그때 눈이 덮일 정도로 눈썹이 길고 짙은, 키가 크고 여윈 엘리자로프라는 목수 영감이 신랑신부에게 말했다.
"아니심과 너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서로 정답게 살아야 한다. 알겠지?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니." 그리고 그는 그리고리 영감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리, 자, 함께 우세. 기쁨의 눈물을 흘리잔 말이야!" 그는 큰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껄걸 웃다가, 이번에는 굵은 저음으로 말을 계속 했다. "하하하! 이번 며느리도 틀림없이 좋은 며느리라구! 모든 것이 흠잡을 데가 없어. 모든 것이 다 술술 풀려서 막히는 데가 없을 거란 말이야. 말하자면, 기계가 완벽하고 나사못도 제대로 다 있다는 말씀이야." 그는 예고리예프 군 출신이었는데, 젊어서부터 우클레예보 마을과 근처의 공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만 원래 이 마을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곳에 정착해 버렸던 것이다. 그 옛날, 바로 이 고장에 왔을 때에도 이미 늙은이였고, 게다가 바싹 마른 것도 그때와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목발'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40년 이상을 공장에서 기계수리만 한 탓인지, 그는 사람이거나 물건이거나간에 그것이 견고한지 수리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따지게 되었다. 테이블에 앉을 때에도 으레 의자가 튼튼한가 어떠한가를 살펴보고 나서 앉았고, 음식 같은 것도 미리 슬쩍 만져보는 것이었다.
샴페인을 마시고 나서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손님들은 의자를 움직이기도 하며 서로 지껄였다. 문간방에서는 합창대가 노래를 부르고 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한편 안뜰에서는 여자들이 장단에 맞추어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한편 안뜰에서는 여자들이 장단에 맞추어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이런 모든 소리들이 함께 뒤섞여 괴상하고도 엄청나게 큰소리가 되었다. 이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목발'영감은 의자에 앉은 채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옆 사람을 팔꿈치로 집적거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훼방놓기도 하고, 울다가 웃기도 했다.
"자, 아가, 아가, 아가들아!" 그는 애칭을 사용하여 악시냐와 바르바라을 부르면서 빠른 말투로 중얼거렸다. "얘, 악시뉴슈카하고 바르바르슈카야, 우리 모두 평화롭고 사이좋게 살아 보자꾸나. 우리 귀여운 아가들아." 그는 평소에도 술이 약한 편이었으며 지금도 영국산 화주를 마시자, 모두들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혀가 꼬부라드는 것이었다.
손님 중에는 성직자도 있었고, 부부 동반해서 온 공장의 사무원과 딴 마을에서 온 상인과 술집 주인도 있었다. 14년 동안이나 함께 근무하면서 그 동안 한 장의 서류에도 서명한 적이 없고, 관청에 온 사람이면 누구 하나 속이거나 모욕을 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다는 군수와 서기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 다 피둥피둥하게 살찌고 혈색이 좋았다. 둘 다 부정과 사기가 몸에 베어 있어서, 얼굴의 피부조차 어쩐지 유달리 흉물스러워 보였다. 사팔뜨기에다 바싹 말라빠진 서기의 아내는 자기 아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데리고 와서, 접시란 접시는 모두 사나운 새처럼 곁눈질하다가 손에 닿는 대로 무엇이든지 접어서 자기 포켓과 아이들의 포켓에 쑤셔 넣었다.
리파는 여기 와서도 교회에서와 똑같은 얼굴로, 마치 화석이 된 것처럼 꼿꼿이 앉아 있었다. 아니심은 첫 대면 이후 지금까지 그녀와 말 한마디 교환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침묵을 지킨 채 영국산 화주만 마시고 있었다. 취기가 돌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모에게 말을 걸었다.
"내게는 사모로도프라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대단한 놈이지요. 명예공민(어떤 공적이나 교육 자격에 대해서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 주는 칭호: 역주)의 자격이 있어서 이야기를 시키면 참 잘하지요. 그런데 이모님, 나는 녀석을 뱃속까지 꿰뚫어 보고 있고,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어요. 어떠세요, 한 번 사모로도프의 건강을 비는 뜻으로 함께 건배하시지 않겠어요. 네, 이모님!" 바르바라는 몹시 피곤하고 들뜬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요리를 권하면서 테이블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호화로운 요리가 푸짐하게 나와 있으니까 아무도 불평하는 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으나 식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들의 무엇을 먹고 있고 무엇을 마시고 있는지 분간 못하게 되었다. 또한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음악이 때때로 그쳤을 때, 어떤 여자가 이런 말을 외쳐대고 있는 것만 뚜렷하게 들렸다.
"실컷 남의 피를 빨아먹다니. 천벌받을 놈, 뒈져 버려라!" 밤이 되자 다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플뤼민 아우네 집안 사람들은 집에서 술을 가지고 왔다. 그중의 한 사람은 카드리유(4명의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추는 프랑스의 사교 댄스. 19세기경 온 유럽에 유행했음: 역주)를 출 때, 양손에 병을 하나씩 들고 입에 술잔을 물고 추었다. 이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웃었다. 카드리유를 추던 그들은 갑자기 몸을 꾸부린 채 러시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악시냐는 어찌나 빨리 추는지, 그 추는 모습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치맛자락에서는 바람이 쌩쌩 일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스커트 단의 레이스를 밟았다. 그러자 '목발'영감이 이렇게 외쳤다.
"야아, 스커트의 허리판이 빠져 버렸단다! 애들아"
악시나는 거의 깜박이지 않는 잿빛의 앳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선 줄곧 아리따운 미소가 가시지를 않았다. 이 깜박이지 않는 눈과, 가늘고 간 목 위의 작은 머리와 날씬한 몸매는 어쩐지 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노란색의 가슴판이 달린 초록색 옷을 입고 생글생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은, 이른 봄에 어린 호밀밭에서 머리를 쳐들고 통행인들을 엿보는 독사와 어딘가 닮은 데가 있었다. 플뤼민네 집안 사람들과 그녀는 아주 친한 것 같았는데, 그들 가운데 제일 나이 많은 자가 그전부터 그녀와 은말한 사이라는 것은 누구나 훤히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귀머거리 스테판만이 아무것도 모른채, 그녀쪽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마치 권총을 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드를 까먹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리고리 노인이 일어나 방 한가운데로 나서며, 자기도 러시아 춤을 추겠다는 신호로 손수건을 흔들었다. 그러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안뜰에 있던 사람들에게서까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몸소 나오셨다! 몸소!"
그러나 춤을 춘 것은 바르바라였고 노인은 그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양쪽 발을 교대로 하며 구두 뒤축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안뜰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떠밀면서 창가에 매달려 환성을 울렸다. 잠시 동안이긴 하나 그에 대한 모든 불평 불만을 잊고 있었다-그가 부자라는 것도, 또한 그가 자기들에게 지독하다는 것도.
"잘하는데, 그리고리!" 사람들 속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내라! 그정도면 아직 얼마든지 벌어들이겠구나! 하,하!"
밤이 깊어 1시가 지나서야 이 모든 소동이 조용해졌다. 아니심은 비틀거리며 합창대와 악대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고 그들 모두에게 50코페이카짜리 새 은화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노인은 한 발로 걷는 것처럼 껑충거리면서 손님들을 배웅했다. 그는 한 사람씩 붙잡고 말했다.
"이 결혼시에 2천 루블이나 들었어."
손님들이 꾸역꾸역 돌아가느 사이에 누군가 자기의 헌 외투를 벗어놓고 시칼로보 술집 주인이 입고 온 소매없는 고급 외투를 대신 입고 간 사람이 있었다. 아니심이 이 사실을 알고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가만 있어!내가 곧 찾아올게! 훔친 자식을 훤히 알고 있어! 기다려!" 그는 거리로 달려나가, 어떤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이윽고 그를 붙잡아 팔을 끌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취한 데다가 화가나서 빨갛게 상기된 채 땀을 흘리면서, 그때 막 리파가 이모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방 안으로 그를 밀어넣고 철컥 자물쇠를 잠가버렸다.
4
그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아니심은 떠날 채비를 끝내고 바르바라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등이란 등에는 모조리 불이 밝혀져 있고, 주위에서는 향내가 자욱했다. 바르바라는 창가에 앉아서 빨간 털실로 양말을 짜고 있었다.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느데..." 그녀가 말했다. "아마 답답한 모양이지. 뭐... 우린 부족한 것 없이 마음 편히 잘 살고 잇지. 결혼만 해도 그래, 훌륭하고 실수 없이 치렀지. 아버님은 2천 루블이나 들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뭐, 그 한 마디로 버젓한 상인답게 사는 걸 중명하는 셈이야. 다만 이 집은 어쩐지 답답해. 그야 물론 탐욕스런 짓만 하니까 그럴 거야. 난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걸려 못 견디겠어. 그 악랄함이란 것을 좀 생각해 봐. 말 한 마리를 바꾸는 데나, 뭔가 조그마한 물건 하나를 사들이는 데나,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도 다 그렇단 말이야.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사기만 치고 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속임수 투성이야. 우리 가게에서 팔고 있는 금육일에 쓰는 기름 같은 것은, 맛이 쓰고 썩어서 다른 가게에서 파는 송진보다 못할 정도야. 도대체 왜 좋은 기름을 못파느냔 말이야."
"어머니,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답니다."
"너는 그렇게 쉽게 말하지만,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 그러니, 정말 네가 한 번 아버지께 말씀드려보는 게 어떨까!"
"어머니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말이야, 나도 말씀을 드리기는 하지. 그렇지만 아버지는 단한 마디, 아니심이 지금 말한 그대로 말씀하실 뿐이야...'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다.' 하지만 저 세상에 가면, 그야말로 사람은 각기 어떤 길을 걸었는가 반드시 조사를 받게 돼. 하느님의 심판은 언제나 올바르시니까."
"설마 그런 것을 누가 조사하겠어요." 아니심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왜냐하면 어머니, 어차피 하느님 같은 건 없으니까요. 조사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바르바라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웃으면서 두 손을 모았다. 그녀가 그의 말에 너무나도 놀라 매우 별난 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으므로, 그는 당황해 버렸다.
"그야 하느님은 있을지 모르지만 다만 믿음이 없단 말입니다. 요전 결혼식 때에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을 보면 속에서 병아리가 삐약삐약 울고 있을때가 있지요, 꼭 그와 같이, 제 마음 곳에서도 양심이 울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식이 거행되는 동안 내내 하느님은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그런 생각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저희들은 아주 꼬마 적부터 그런 것을 배워왔어요. 어머니 젖을 빨고 있을 때부터 배우는 것은 단 한 가지,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다는 것뿐이었어요. 첫째, 아버님도 하느님을 믿고 있지 않아요. 어머니가 언젠가는 군트레프네에서 양을 도둑 맞았다고 말씀하셨지여... 전 범인을 찾아주었습니다. 그것을 훔친 것은 시칼로보의 어느 농부였어요. 그런데 도둑질은 그놈이 했는데, 그 양의 털가죽은 놀랍게도 우리 아버지한테 있지 않겠어요... 이러고도 믿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아니심은 한쪽 눈을 깜박거리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군수도 하느님을 안 믿어요." 그는 계속했다. "서기도 그렇습니다. 교회 집사도 그렇구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거나 금육일을 지미는 것은 남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또 어쩌면 정말로 최후의 심판날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장담살 수 없기 때문이겠죠. 요즘 항간에서는 뭐 인간이 나약해졌다든가, 또는 양친을 공경하지 않게 되었다든가, 그런 이유로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들어대지요, 쓸데없는 짓이에요. 저는요, 어머니,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요, 어머니, 어떤 것이라도 속까지 꿰뚫어보는 사람이니까 환히 알고 있어요. 딴 데서 훔쳐 온 셔츠를 입고 있는 녀석이 있으면, 제게는 곧 그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음식점에 앉아 있다고 합시다. 어머니 같으면, 그저 차를 마시고 있나보다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차도 차지만, 그밖에 그자식은 양심이 없는 자식이라는 것을 환히 알아봅니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자 양심 있는 인간 같은 건 하나도 발견할 수 없어요. 이게 다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건 그렇고, 어머니, 전 이만 물러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저를 나쁘게 생각지 마 駕첼얘" 아니심은 바르바라의 다리께까지 몸을 굽혀 인사를 했다.
"저희들은 만사에 있어서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한테는 우리 집안 사람 모두가 큰 은혜를 입고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이십니다. 저는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심은 매우 감동한 태도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을 계속했다.
"저는 사모르도프 때문에 어떤 사건에 말려들었습니다. 부자가 되느냐 아니면 파멸이냐, 양단간에 하나입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에는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잘 위로해 드리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저... 하느님은 자애로우셔. 그보다도 아니심, 노는 아내를 더 귀여워해 줘야 되네. 너희들은 둘 다 입을 꼭 다문 채 눈싸움만 하고 있잖아. 하다 못해 서로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주어야지." "예, 그런데요, 그 사람은 좀 별나요..." 아니심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언제나 입을 꼭 봉하고 있어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 겁니다. 좀도 어른이 되어야겠어요."
현관 앞 계단 께에는 벌써 키가 크고 살찐 흰 수말이 마차에 매여서 있었다.
그리고리 노인은 몸의 리듬을 조절해서 달려가 기운차게 마차에 뛰어 올라 고삐를 잡았다. 아니심은 바르바라와 악시냐와 아우에게 키스를 했다. 현관 앞 계단에는 리파도 나와 있었지만, 그녀는 몸도 까딱 않고 서서 마치 배웅하러 나온 게 아니라 그저 우연히 거기 있게 된 것처럼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심은 리파에게 다가가서 볼에다 가볍게 입술을 댔다.
"잘 있어요."하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어쩐지 애매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다가 이내 얼굴을 떨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녀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니심도 마차에 뛰어올라 허리에 손을 대고 의젓한 태도를 취했다. 자기가 미남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가 골자기를 빠져나가는 동안 아니심은 계속 마을 쪽을 돌아다 보고 있었다. 맑게 갠 따뜻한 날이었다. 가축들은 이 해 들어 처음으로 들에 나와 있었고, 그 가축들 주위에는 나들이 옷으로 곱게 단장한 처녀들괴 부인들이 거닐고 있었다. 들에 나온 것이 기쁜지 누런 황소가 음매음매 울면서 앞발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위아래 곳곳에서 종다리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심은 아름답게 흰 칠을 한 교회 - 그 교회는 최근에 하얗게 칠을 했다.- 쪽을 자꾸 돌아다 보고, 닷새 전에 자기가 거기서 하느님께 기도까지 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는 또 초록색 지붕의 학교를 바라보거나 그 옛날에 멱을 감고 낚시질하던 작은 시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즐거운 생각이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순간에, 땅 위에 갑자기 벽이 솟아올라와 자기가 가는 길을 막고, 자기를 과거 속에서만 사는 인간이 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졸을까 생각하는 것이었다.
정거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가서 셰리 주를 한 잔씩 마셨다. 노인이 돈을 치르려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제가 낼께요!" 아니심이 말했다.
노인은 감동해서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애가 바로 내 아들이오!' 하는 듯이 식당 주인 영감에게 눈짓을 했다.
"아니심, 너는 집에서 장사일을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만..." 노인이 말했다. "넌 워낙 장사 솜씨가 좋으니까! 그러면 내가 너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돈으로 싸줄 텐데."
"그렇지만 아버지, 아무래도 그건 곤란해요."
세리 주는 시큼하고 봉랍 냄새가 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잔씩 더 마셨다.
정거장에서 돌아왔을 때, 노인은 처음에 자기 집 새 며느리를 전혀 몰라보았다. 리파는 남편이 집에서 떠나자마자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갑자기 명랑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낡은 스커트를 입고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리고, 맨발로 현관의 계단을 씻으면서 은방울을 굴리는 것 같은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걸레를 빤 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그녀가 곧잘 짓는 어린애 같은 웃음을 띠고 태양을 우러러볼 때에는, 그녀 역시 종다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현관의 계단 앞을 지나가던 늙은 고용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만족해 했다.
"정말이지, 당신네 며느리들은 하나같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셨나 봐. 그리고리! 정말 색시들이 모두 보물 덩어리야!"
5
7월 8일 금요일, '목발'이란 별명이 붙은 엘리자로프와 리파는 카잔스코예 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카잔의 성모를 예배하기 위해 교회 미사에 참례하러 갔던 것이었다. 그들의 훨씬 뒤에서는 리파의 어머니 플라스커비야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몸이 아픈데다 숨이 가빠서 자꾸만 뒤처지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목발' 노인은 리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저는요, 아저씨, 잼을 무척 좋아해요." 리파가 말했다. "혼자 방구석에 앉아 잼을 섞어서 차를 마셔요. 그렇지 않으면 시어머니하고 마셔요. 그러면 어머니는 뭔가 뜻 있는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우리집에는 잼이 엄청나게 많이 ... 네 항아리나 있어요. '자, 먹어요, 리파, 얼마든지'라고 말한다구요.
"그래? .... 네 항아리씩이나!"
"굉장한 살림이에요. 휜빵과 함께 차를 마시고 쇠고기도 먹고 싶은 대로 양껏 먹을 수 있어요. 잘 살긴 하지만, 전 어쩐지 무서워요, 아저씨, 무서워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뭐가 그렇게 무섭지?" 목발노인이 묻고는 플라스코비야가 얼마나 뒤처졌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맨 처음에는요, 결혼식 뒤에 아니심이 무서웠어요. 뭐 야단치거나 하지 않는데도, 그저 그이가 옆에 오기만 하면 전 온몸이 오싹해져서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그래 저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벌벌 떨면서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그리고 요즈음에는 악시냐가 무서워요, 아저씨. 그 사람도 특별히 어떻게 하는 건 아니예요. 악시냐는 줄곧 웃고 있지만 때때로 창문 쪽을 바라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 눈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마치 외양간에 있는 양처럼 초록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나요, 플뤼민 아우네 사람들은 그분에게 이상한 짓을 권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 시아버지는 부초키노에 40헥타르의 땅이 있지'하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곳에는 모래도 있고 물고 있으니까, 악슷시(악시냐의 애칭), 거기에다 당신 돈으로 벽돌공장을 세워요. 우리가 한몫 낄 테니까'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벽돌은 지금 1천 개에 20루블이나 하니까 이익이 많은 사업일테죠, 어제 점심 때도 악시냐가 시아버님께 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저는 부초키노에 벽돌 공장을 세워서 제 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라구요. 그리고 방글 방글 웃는 거예요. 그러자 시아버님은 싫은 얼굴을 하셨어요. 틀림없이 악시냐의 말이 마음에 안 드신 것예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뿔뿔이 헤어지면 안돼. 모두 함께 살아야지'라고 시아버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그분은 눈을 부릅뜨면서 이를 갈지 않겠어요... 튀김을 내왔는데 먹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말예요, 전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인데, 그분은 도대체 언제 자는지 몰라요!" 리파는 말을 계속했다. "그분은 30분쯤 잤나 싶으면 갑자기 발딱 일어나서 그 근방 일대를 돌아다니며 살펴보는 거예요. 농부들이 어디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나, 뭘 훔치러 오지나 않나 걱정스러운 거지요. 전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 무서워요, 아저씨! 그리고 플뤼민 아우네 집안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난 다음부터 밤잠도 자지 않고 재판하러 도시로 쏘다니고 있어요. 그게 모두 악시냐 때문이라고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해요. 세 형제 중에서 두 형제는 악시냐에게 공장은 세워주마고 약속했는데. 막내가 성을 냈다나 봐요. 이래저래 공장은 한 달이나 쉬어버렸어요. 그 바람에 우리 프로홀 아저씨는 일자리를 잃고 이 집 저 집으로 빵부스러기를 얻으러 돌아 다니는 형편이예요.'아저씨, 들일을 나가시든지 산판에라도 가서 일하시면 어때요? 그러고 다니시는 게 수치스럽지 않으세요?' 라고 제가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하지만 리퓌니카, 나는 농사일에서 손을 뗀 지가 오래되어서 이젠 아무 일도 못해!...' 라고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두 사람은 싱싱한 당버들숲 앞에 멈추어 한숨을 돌리면서 플라스코비야가 다라오기를 기다렸다. 엘리자로프는 수년 동안 도급을 맡아 목수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말 한 필 장만하지 못해서 언제나 빵과 양파를 담은 작은 자루를 짊어지고 이곳저곳을 걸어서 다녔다. 그는 두 팔을 흔들며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기 때문에 함께 나란히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下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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