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재림교회의 역사적 고찰 * 엘렌 G. 화잇의 그리스도론 (1827 ~ 1915)
엘렌 G. 화잇의 그리스도론 (1827 ~ 1915)
(히 2 :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벧전 2: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히 2 : 17, 18)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하나님의 일에 자비
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
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엘렌 G. 화잇은 재림교회의 기본신조 형성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1888 년 전에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저술을 발표한 최초의 지도자였으며 그것은 결국 청년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포용되었다.
1858 년 이 문제에 관한 그녀의 첫 번째 기사들을 기록한 후에 엘렌 G. 화잇은 지에 실린 기사들과
그 후의 그녀의 서적들 가운데서 점점 더 명료하게 그 주제에 대한 사상을 계속적으로 발표했다.
1874 년에 그리스도의 시험에 관한 연재기사에서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했다. 1888 년의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때 엘리엇 J. 와그너(Ellet J. Waggoner)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초로 삼았는데 그의 그리스도론의 모든 요지는 이미 엘렌 G. 화잇의 저서들에 의해
발표된 것이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업은 항상 엘렌 G. 화잇의 관심의 초점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그녀에게 모든 것이었다.
그녀는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라고 하였다. 이 주제는 1915 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그녀의 글들의 중심이었다. 그녀가
펜을 놓기 불과 6 개월 전에 기록하기를 “그(그리스도)가 자진하여 명성도 버리고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심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 되어 · · · 본질상 무죄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옷을 입으실 것을 동의하시고 타락한 인류와 하나가 되셨다.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실 것을
동의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다”고 하였다.
불행하게도 엘렌 G. 화잇은 결코 이 주제에 관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분규의 원인이었다. 그녀의 120.000 페이지의 원고 가운데,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기사는 수백 번에
불과했다. 더구나 어떤 환경이나 특별한 관점에 따라 동일한 개념들이 때로는 다르게 제시됨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설명서들을 적절한 문맥의 위치에 놓는 것이 중요하고
독자적인 진술에 의존하려는 시도를 피해야 하며 성서 해석의 기본 원칙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그리스도론을 분석함에 이런 규범을 따르도록 힘쓸 것이다. (영원한 본체를
붙잡다.P 68 – 69)
본성(本姓, nature)은 개별 존재가 본래 갖추고 있는 성품 또는 성질을 말한다. 본성을 줄여서 간단히
성(性)이라고도 하고 다른 말로는 성품(性品)이라고도 한다. 한자어 성(性)은 마음(心)과
태어남(生)의 두 낱말이 합성하여 이루어진 글자로,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태어나면서 갖추고
있는 마음’을 뜻한다. 라틴어 나투라(natura)eh ‘태어나다(birth)’라는 뜻의 동사 나시(nasci)에서
파생되었다. 사물에 대하여는 본성은 개개의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 또는 근본 성질을
말하며, 사람에 대하여서는 모든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덕(德)과 능력(能力)을 말한다. (참조 :
위키백과)
인성(人性, personality)은 인간의 성질로 개인의 성격을 뜻하는 말이며, 학문적으로 인성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인성은 사람에 따라서 인간의 본성으로 쓰이거나, 성격이나
인격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지(知)·정(情)·의(意)를 모두 갖춘 전인(全人, Whole Person)
의 특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거나, 인문주의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참조 : 위키 백과)
하나님이면서 성육신되신 그리스도의 본성
하나님의 본성이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독특한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말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영광스러운 분이며 심오한
분이며 완전한 분이며 충만한 분이라는것을 전제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것이 하나님의 본질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컵으로 태평양의 물 전체를 담아보려는 것과 같은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며 위대한 분이십니다. 경외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에는 1).자존성 : 출 3:14
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다. 2).영 :요 4:24 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영이시다.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감각으로 결코 인지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며 신체기관도 몸도 없으시며 시공간의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십니다.십계명의 첫 두 계명에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어디에나 계십니다. 3)편재성 : 하나님은 하늘에 충만하십니다. 땅에 충만하십니다. (렘
23:4)여호와가 말하노라나는 천지에충만하지 아니하냐. 4).인격성: 하나님은 위대한 정신이나혹은
힘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인격은 마음, 지성, 의지, 이성, 개별성, 자의식, 자기 결정을
가지고 있을 때 그런 존재를 인격이라고 합니다. (참조 : 구글)
하나님이면서 성육신되신 그리스도의 속성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
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宣傳)하게 하려 하심이라”
1).비공유적 속성 : 인생과 공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자신만 가지고 계신 독특한 속성들로
하나님과 피조물을 구별시키는속성입니다. ① 영원성(불변성) :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입니다. ② 전지성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되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아십니다. ③전능성 :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2).공유적 속성(도덕적 속성) : 우리에게도 주신 속성으로 우리가 늘 추구하고 닮아가야 하는 도덕적
속성들입니다. ① 거룩성 :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21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요일 1:5)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②
의로우심 : 거룩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의로우십니다. 의는 하나님의 옮으심을 의미합니다. ③
사랑(선하심) : 성경 가운데 나오는 인자함, 선하심이란 표현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④
신실하심(미쁘심, faithfulness) : (살전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요일 1:9)”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시면서도 동시에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참조 : 구글)
하나님이면서 성육신되신 그리스도의 인성
(요 1 :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시매”라고 기록되어 있고, (빌 2:6-8)에서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사람의 모양으로 이세상에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 즉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는 사람의 참 모습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참사람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에게는 아예 없는 사람만의 모습과 영역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성서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의 인성은 크게 세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 고난, 그리고 죽음입니다. 첫째로 “유혹”이라는 현실입니다. 에수님께서는
그의 목회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시험받으십니다. 여기에서 “시험받으셨다”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유혹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유혹을 받는 것은 우리 인생의 피할수 없는
현실입니다. 유혹받음은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서 어디를보아도 하나님이 유혹을 느끼거나
유혹받으시는 기록이 없습니다. 유혹은 오직 사람이,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람만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은 다양한 모습의 참으로 많은 유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떠한
유혹들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들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유혹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 그 자체는 절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건강한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유혹에 대한 사람의 대응방법입니다. 그에 따라 유혹에 승리할 수도 있고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우리의 선택에 따라 결정됩니다. 유혹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한계이지만, 그 유혹을 어떻게처리할 것인가는 바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그 선택이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이라는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참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참조 : 구글)
여기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위의
예수님의 본성과 인성을 구굴에서 찾아 봤을때 심지어 개신교의 목사들도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서는 그리스도가 죄의 성향이 없기에 죄의 유혹을 받아도 죄를 지을 수 없는 거룩한
몸이다라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전통과 신조의 공식화된 것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뒤에서 숨어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와 똑 같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반면에 재림교회 몇몇 목사님과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본성 즉 인성을 그대로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들어온 사상을 한데 뭉그러 받아들어온 결과인, 즉 그리스도는 유혹을 받았지만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이 없어서 죄를 지을 수가 있지만 죄를 하나도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라는 자체를 모르기에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본성과
인간의 조상대대로 내려온 유전자인 그리스도의 인성를 혼합하여 말함으로, 사람의 정신을
혼란시켜서 거짓된 이설로 미혹케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시키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정신이 숨어있는 기가막힌 전술이 아닌가 생각이든다.
그렇게 성경 말씀을 보고 성경을 연구한 분들이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본성과 인성의 개념을 갖지
못하는지 도저히 이해가되지 않고, 내가 그분들의 논리에 설득당할려해도흑백의 진리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어찌 그분들의 사상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혼란된 사상과 논리로 성육신 진리를
왜곡시킨다 해도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구속의 깊은 진리와 더할 나이 없이 크고 넓은 하늘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짓되고 왜곡된 사상과 이설을 가지고 좁고 작은 손바닥으로 드넓은 광활한
하늘을 가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곧 얼마안 있어 야곱의 환란때 성육신의 거짓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 믿는다.
사람의 본성과 인성은 같은 말로 사용해도 되다. 사람은 아담이 죄를 범하고 난 후 그 죄의 결과를
가지고 태어난 죄의 본성 즉 죄의 인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나서 죄를
범한 그 시점의 불순종의 죄 자체가 아담의 뼈와 살에 깊숙히 스며들어 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난후,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한 순간부터 그의 몸속에 죄의 유전인자가 심어졌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아담이 지은 죄 자체가 아닌 죄의 결과로 생긴 육신의 연약함, 죄의 생각등 죄가 있는 유전인자 DNA
가 조상 대대로 몸속에 심어져 부모로부터 물려 받았다는 것이다. 원죄(Original Sin)와 자범죄(Self
Committed Sin)에서 아담이 지은 죄가 우리에게 물려진다는 것은 아담이 지은 죄(罪, sin)는 아담
자체가 지은 허물이기에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없다는 것과는 상충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태어난 지 얼마 안된 갓난아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아담이 지은 죄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죄라는 것도 모르고 죄를 한번도 안 지었는데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만약
이 말이 맞으면,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신 분이 아닌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왜 중요한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은 오랫동안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되어 왔다. 왜 그런가? 예수님의
인성에대한가르침은“믿음으로말미암는의”와“세 천사의 복음”의 근간을이루는 중요한교훈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로 마지막 백성이 준비되며, 그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완비된다. 만일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죄 있는 인성을 가지고 죄를
승리하신 예수님처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그것을 믿고 주님의 능력을
받아들일 때에 예수님의 성품,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계 14:7)성품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죄 있는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예수 믿음”(계 14:12)을 가진 성도들이 생기게 되고, 결국 그 믿음은 사람들로 하나님의 인을 받는
성품을준비하게 하고, 그리하여마지막하나님의참 백성인 십사만사천이생겨나게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바른 진리가 가르쳐질 때에 마지막 백성들을 준비시킬 마지막 현대진리가
탄생되어 전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사탄은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하여 맹렬히 공격을
가해온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어렵고 혼돈되는 교리로 인식되고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별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알아야 할 중대한 주제로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게
되는 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인성은 타락한
우리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 곧 천사 같은 본성을 취하셨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우리도 예수님의모본을 따라하나님의 능력으로죄를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
가르침을 거절하게 된다.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다르므로 그분께서는 죄를 승리하실 수 있어도
우리는 죄를승리할 수없다는 결론에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은우리와 같은,
즉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고, 또한 그러한 가르침에
일치하는 생애, 곧 죄를승리하는 생애를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능력을 의지하며 최선을다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참고로, 죄의 본성이란 죄로 기울어지는 연약성이지 죄의 본성 자체가 죄가
아님을 주지하자. 사실 죄된 본성이란 단어가 좀 거룩하지 않게 들리지만, 그 말의 뜻은 실제로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유전법칙을 통하여 타고나는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성들(inherent
propensities)을 가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는 “악한 성향(evil propensity), 곧 죄를 많이
지어본 경험에서 후천적으로 배양된 “악한 성향”이 없으셨다. 그러나 선천적인 경향을 유전적으로
24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죄를 지어 본 일이 없으셨다.”…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나 한 가지, 예수님께서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시고 출생하셨다. 주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거듭나신 분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본이 되시는 것이지 거듭난 경험이없는 모든 사람의 표준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는
사람들은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타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성령의 은혜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본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우리는 모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할 수 있다 (참조 : Light For Life Ministry)
엘렌 G. 화잇은 1874 년의 기사에서 그리스도의 타락 후의 인성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에 조금도
의문을 남기지 않았다. “구속의 위대한 사업은 타락한 아담의 위치를 취하신 구속주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1901 년 진술에서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하나님의 본성 곧 그분의 율법이 범해진
그분의 본성과 범법자인 아담의 본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안에서 만났다.
아무튼 1890 년 진술 가운데서 이것을 정당시키고 있다. “우리는 사단의 유혹하에 있는 그리스도의
책임감이 그분의 인성을 타락하게 했다고 생각하거나 그분이 인간과 똑같이 죄되고 오염된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연합된 신의 성품은 그분이 사단의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있게 했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시험은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보다 훨씬 컸다.
왜냐하면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는데 그것은 타락했으나더럽히지않은본성이었기
때문이다.
엘렌 G. 화잇의 모든 저서 가운데 그리스도의 인성을 타락 전 아담의 인성과 같이 취급한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예수께서 아담의 죄와 타락이 시작된 4000 년 후의 아담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확정한 단언들이 많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의 육신 곧 사도
바울이 표현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다. (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p. 72)
나는 여기서 (롬 8: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를
위의 본문의 글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았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는 말은 예수님은 인간과 똑같은
죄 있는 성향 (경향)을 가진 죄 있는 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말은 예수님께서 죄의 성향
(경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이라도 죄를 간직하고 품지 않았기에 죄로 오염되지 않았다는
말이며, 죄의 성향 (경향)를 가진 인간의 죄의 본성(인성)을 취하셨지만 티끌만큼한 한 점의 죄를
짓지 않으므로 예수님의 죄의 인성에는 죄로 오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만일 인간과
같이 죄된 인간의 본성에 한점의 죄라도 오염되었다면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단의 여러가지
극심한 유혹에 쉽게 굴복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의 죄 있는 본성을 갖었는데 인간과 달리 오염되지 않은 죄의 성향을 가질 수가
있었느냐 하는가? 이 문제는 롬 8 :3 절에서 자기 아들을 성령으로 태어나시게 하시어 성육신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 즉 영이신 신성을 가지고 육신에 죄를 정하사 죄 있는 본성 즉 인성을
취하셨지만,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았으므로 죄가 하나도 오염이 되지 않았기에 죄가 하나도
없으셨다는 것이다. 이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후 그 죄의 결과가 조상대대로 유전되어 우리 몸속
깊숙히 꿈틀거리며 뿌려받혀져서 생긴 죄 있는 인성보다, 사탄은 4000 년 동안 모든 인간이 겪은 더
큰 유혹과 시련과 죽음의공포를 겪어야만 했던 성육신 되신 그리스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죄라도 범하게 하도록 하였다. 또한 예수님을 죄에서 무너뜨릴려고 무섭고 맹렬하게 끊임없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겪으셔야
하셨던 죄의 유혹과 시험들에 대하여 말할 때 이 점을 확실히 단언하셨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