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에 거부감을 가질 분 있다 생각한다.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눈감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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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귀향하면 시차를 적응하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에 나가면 언제나 애를 먹는다. 이틀전 미국땅에 다시 들어간 후 이틀밤을 꼴딱 새고있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신기하다.
나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에는 한국땅 = 안정, 미국땅 = 불안정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엄마, 엄마품, 포근, 안심, 안정.....뭐 그런거다.
예상치 못한 일로 -형이 죽었다- 급작스럽게 모국(엄마나라란 말이네)으로 돌아갔고 2주일 정도 그곳에 머물다 아이가 공부하고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다시 나왔다.
엄마품 찾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문득 무슨 수를 쓰든 이참에 안산분향소도 가고 단원고도 가고 광화문 청운동 홍대 시위현장도 가고...피켓도 들고 그래야지 마음먹었다. 참 멀지만 진도 팽목항도 꼭 갈거야 그랬다.
세월호, 저 엄마아빠들의 아픔의 크기는?
자식은 부모의 전부다.
이 늙수구레 한 넘이 죽을 힘을 다해 미국에 다시 간 것은 아이 곁에 있기 위해서였다. 미국에 다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이 엄청난 선택을 아이가 최종적으로 하게 했고……오랜기간을 두고 아빠 못지않는 고통중에 해낸 아이의 결심을 나는 따랐다.
이제 막 초보농부딱지 뗐는데.....그래? 널 위해서라면 아빠, 포기못할 게 없다, 가자.
이게 아빠의 인생이다.
생? 나나나…나의 영생을 추구하는 게 인생이 아니다, 인간이 걸어가야할 길이 아니다. 너너너의 가치, 남의 구원을 추구하는 거다, 그게 인생이다.
먹을 거 없어 굶어 죽어버린 3살짜리 저 가엾기 짝이없는 소말리아 아이, 너너너너 만큼은 누구보다 우선해서 구원받아야 돼, 반드시 그래야돼.
자식을 잃은 아픔을 함께 해야해.... 그런 마음이 있었고.... 아이들의 저 터무니없는 죽음에 나도 책임이 있어... 죄의식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해........ 그런 마음도 있었고....
미국으로 다시 떠날 날을 얼마 앞두고 홍대앞 시위현장에 갔다. 암말 안하고 있다 와야지.....피켓만 들다 올꺼야.....실제로 내보일 것도 없고... 저기서 아무런 나의 흔적 남기지 않을거야.......속으로 그러고 갔다.
그 들끓던 전국민의 열기는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듯 일순간에 식어 버리더라. 세월호 식구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한 순간에 싸늘해 지더라. 인간이란! 허허 참…..가보니 시위참여자가 진짜 열명 남짓이다. 한때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 어찌 저러냐?
근데 날 가만히 두질 않는다. 어디 사시느냐....나이는 얼마시냐....하긴 별넘 다 있으니까...모르는 사람이 왔으니까....시위대에다 대고 욕하고…침뱃는 놈도 있단다, 깽판치는 놈도 흔하고…..악마들!
우물우물 넘기기도 그렇고...미국에서 왔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다윤엄마 곁에 있었다.
미수습아이 엄마 다윤엄마
실제 몸이아픈 엄마 다윤엄마
“우리 다윤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1년반이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2014년 4월 16일이예요....”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홍대앞에서 다운엄마와 함께~
나는 저 아픔이 어떤 아픔인지 모른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같은 사람에다 대고....
다윤엄마의 소원을 다 들어드리고 싶었다.......초라한 내 꼬라지란.....내가 원해서 이 모습하고 있고....볼품없는 나의 이 겉모양에 개의치않고 살아왔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전능한 존재, 신?이라면 참 좋겠다 그랬다.
며칠후 광화문 시위현장에 다시갔다. 시위가 끝난 다음 이 두엄마는 그곳 한 조그만 방에서 나와 따로 만나 나와 대화를 더 이어갔다. 아직 흐를 눈물이 남아있다고 대화중 몇번이나 눈물을 더 훔치신 은화엄마와 다윤이 엄마
다시한번, 오늘만큼은 나는 내가 전지전능한 신, 절대적 존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내가, 오직 나만, 진짜 신이라는 이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짜가 신 말고 말이다. 전 인류를 보듬는 신, 전 인류의 아픔을 다 품는 진짜 신 말이다.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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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CxErKvSMTY?si=pr6kVUpsZ3a0Y2aZ
작곡자 : 드볼작(Antonin Dvorak)
곡명 : 교향곡 제9번, 일명 신세계 교향곡(9th Symphony, New World) 제2악장
연주 : 두다멜(G. dudamel)지휘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여기서 신세계란 미국을 말한다.
이 제 2악장의 주선율은 우리가 어린시절 배워 모두가 흥얼거릴 수있는 노래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이다.
드볼작은 이 선율을 흑인영가에서 영감을 얻었다 했다.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저 베네주엘라 출신 지휘자 두다멜(G. Dudamel)은 언젠가 여기에 소개한적이 있는 ‘베네주엘라 거리의 아이들의 기적 이야기, Simon Boli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를 아세요?“ 프로그램 출신이다.
~2018년 어느날 아리조나에서 마주친 어느 아메리칸 인디안~
첫댓글 찾아갈 고향이 있고, 찾아 뵐 부모님이 계시는 일 만도 축복 받은 일 일텐데...
가슴을 저미는 음악. 잘 듣고 갑니다.
라라님 고맙습니다.
저의 글이 뭔가 이곳 분위기를 깨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나름 조심한다 애를 쓰지만 실제론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필자에서 독자의 자리로 당분간 돌아가겠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자식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다윤엄마가 기다리는 건
왜? 그런 일이 있어야 했는지
한마디 말이라도 듣고 싶은 거겠죠
잔인하고도 참 슬픈 4월...
가슴이 먹먹합니다
몽블랑님께서 2018년에 아리조나에서 만나
함께 사진 찍으셨다는 저 원주민 사나이
제가 그 여름에 Monument Valley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만난 가이드분과 많이 닮으셨어요
원주민 민요도 불러줘서 찍었던 동영상이 있었는데
비교해 보려 찾다가 포기했어요 ㅎㅎ
안녕하세요, 그대로님?
저때가 8월 초순, 그야말로 푹푹 찌는 날이었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다윤엄마는 초겨울 차림을 하고 있었어요. 잠깐씩 쉴때는 코트까지 걸치고 있었고요. 그러고도 춥다며 몸을 떨더라고요. 다윤이 아빠 말이 두번이나 이웃 아파트 옥상에서 다윤엄마를 발견했데요.
시체팔이한다는 언론의 말을 팩트로 믿어가는 백성…싸늘하게 식어가는 민심…이제 아내까지 죽어가고…
어찌나 안되보이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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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암튼 슬픔의 글은 이카페분위기를 가라앉게 하는 것이 분명해요.
이곳은 희망과 기쁨이 더 필요한 곳입니다.
몽블랑님, 망설이다 한자 적습니다. 음악과는 담쌓고 살아가는 저같은 사람도 이번 노래같은 경우는 익숙하니 귀가 기울여지고 끝까지 듣게되고, 차이를 느끼게됩니다. 덕분에 다른 올리신 곡도 들어 봤습니다.
댓글이 늦게 오르기에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이 카페에 남으신분들이야, 절대절명의 순간에 반전을 만드신 몽블랑님의 역량을 잘들 기억하실겁니다. 정의와 연민을 바탕으로 사시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에 사족을 달기가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올 한해도 모든일들 술술 잘 풀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언제나 새글을 기다리는 일인입니다.
drdd(캐나다/남1953)님, 안녕하세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 모두가 그랬습니다. 이번일에 득실계산 등이 우선했다면 사후 가령 전리품 나누기^^, 주도권 잡기^^등의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다 봅니다. 뭔 주도권, 전리품씩이나…써놓고 보니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런 것 없었어요.
이곳이 이렇게 평온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다루는 주제, 좀 특이해 보일 수있는 제 성향 등이 이 평안을 깰 수도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잠시 물러나 있겠습니다.
몽블랑님, 글을 지금처럼 볼수 없게 될까봐 걱정이 되서 올린 글이였습니다. 가끔 23.12.16 근처 추조님, 몽블랑님의 유언같은 글들을 되돌아가서 봅니다. 가슴이 아립니다. 그 새까만 나락의 정점에서 카페의 여러분들이 살려 냈습니다. 오늘은 하루하루가 꿈입니다. 평화시 몽블랑님의 글은 비타민 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