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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완전정복] Ep.18)
마라도나, 그가 축구의 신인 이유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 역사상 단일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누구일까? 지금껏 살펴본 펠레, 크루이프, 파올로 로시 이들 역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단일 대회를 기준으로는 이 사람을 넘기는 어렵다. 바로 디에고 마라도나, ‘축구의 신’이라 불렸던 사나이다. 그는 한 명의 선수가 한 대회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월드컵 3회 우승’ 펠레와 마라도나를 두고 누가 GOAT 인가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도대체 얼마나 축구를 잘했기에 단 한 번의 월드컵 우승으로 펠레와 비교될 수 있었던 걸까? 오늘은 디에고 마라도나를 축구의 신으로 만들었던 1986 멕시코 월드컵 활약상에 대해 알아보자.
여물지 못한 재능
166cm에 불과했지만, 낮을 신체 중심과 매우 탄탄한 피지컬을 지녔던 마라도나는 드리블에 있어서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그는 고작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된다. 다만,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엔트리까지는 선발되지 못했다. 대신 마라도나는 다음 해에 있었던 U-20 월드컵에서 6골을 넣으며 MVP를 받는 등 재능을 유감없이 뽐냈고 1982 스페인 월드컵 때는 당당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마라도나는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배정받으며 자신의 실력을 세계인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결국 2차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와 브라질에게 연달아 패했고 심지어 브라질 전, 보복성 파울을 가하고 레드카드를 받으며 쓸쓸히 대회를 마감했다.
그러나 이 대회를 기점으로 유럽에 진출한 마라도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바르셀로나를 거쳐 나폴리에 정착한 마라도나는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당시 강등권팀이었던 나폴리를 첫 시즌 8위, 두 번째 시즌 3위까지 끌어올렸고 이에 축구 팬들은 단 한 명의 선수가 축구팀을 이렇게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에 감탄했다. 1986년, 세리에 A 최고의 선수로 등극한 마라도나의 시선은 멕시코로 향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마라도나 (출처: elcomerico.pe)
새로운 캡틴, 디에고 마라도나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의 본래 개최지는 멕시코가 아니라 콜롬비아였다. 하지만, 당시 콜롬비아는 내전, 마약, 풍토병으로 인해 대회를 개최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FIFA는 1970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렀던 멕시코를 대체 개최지로 낙점한다. 대회 방식의 변화도 있었다.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24개국이 참가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2차 조별리그를 없애고 곧바로 16강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4개국 6개조에서 상위 두 팀, 그리고 3위를 기록한 여섯 팀 중 상위 네 팀이 와일드카드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아르헨티나의 분위기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월드컵 예선과 친선 경기에서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보였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 때부터 주장이었던 핵심 수비수 다니엘 파사레야의 부상 이탈 역시 뼈아팠다. 이때, 마라도나는 파사레야를 대신해 팀의 주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감독은 마라도나의 천재적인 능력과 리더십을 믿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한 마라도나는 조별리그 첫 경기 한국을 상대로 3도움을 기록하며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한국 수비수들은 마라도나를 전혀 제어하지 못해 그의 다리를 걷어차기 바빴다.
마라도나의 두 번째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였다. 지난 대회 패배를 되갚아줄 절호의 기회였다. 마라도나는 찬스를 만들기 위해 경기장 곳곳을 누볐다. 상대의 태클에 고전했지만 번뜩이는 멋진 드리블을 보여주었고 골까지 넣으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결과는 아쉽게 1대 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세 번째 상대는 불가리아였다. 마라도나는 이번에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며 정확한 크로스로 팀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조별리그 모든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절정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볼 경합 도중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가격하는 허정무, 당시 마라도나는 뛰어난 개인 기량으로 상대 수비를 휘저었다.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마라도나는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 대상이었고 이와 같은 살인 태클을 견뎌야 했다. (출처: 한국일보)
신의 손, 신의 발
아르헨티나는 16강에서 남미 라이벌 우루과이를 1대 0으로 제압하며 8강행 티켓을 손에 넣는다.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도 경기장과 상대 수비를 휘저으며 대단한 모습을 보였지만 공격포인트를 올리진 못했다. 아르헨티나와 마라도나의 다음 상대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사이는 철천지원수와 같았다. 1982년 양국 간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 때문이었다. 3개월간 펼쳐진 전쟁의 승자는 영국이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포클랜드 전쟁의 복수로 월드컵 승리를 원했다.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한 언론 역시 마라도나와 대표팀 선수들에게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했다. 강한 압박 탓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마라도나는 이 부담을 오히려 강한 동기부여로 삼았다. 이날, 마라도나는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완벽한 경기력으로 아르헨티나의 돌격 대장 역할을 맡았던 마라도나, 이를 잉글랜드 수비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마라도나가 공만 잡으면 강한 압박과 거친 반칙을 일삼았다. 심지어 마라도나가 공을 잡지 않고 있을 때도 견제가 쏟아졌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굴하지 않았다. 공을 잡으면 열에 여덟은 상대 진영을 향해 과감하게 전진했다.
마라도나는 기어이 상대 골문을 뚫어내는데 성공한다. 페널티 박스 앞에서 동료에게 2대 1 패스를 건넨 마라도나는 골대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동료가 패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를 잉글랜드 수비수가 걷어낸다. 그런데 웬걸? 걷어낸 공이 문전으로 향했고 마라도나는 헤딩을 시도한다. 그대로 골로 연결되며 아르헨티나는 선제골을 기록한다. 그러나 잉글랜드 선수들은 격렬하게 심판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이 마라도나의 머리가 아닌 손에 맞았다고 보았다. 반면 마라도나는 태연하게 세러머니를 하며 동료들과 함께 득점의 기쁨을 나누었다. 결국 잉글랜드 측의 항의에도 판정은 변하지 않았고 마라도나의 득점이 인정되었다.
마라도나의 선제골, 일명 '신의 손' 장면 마라도나는 이를 회상하며 곧바로 세러모니를 실시했고 동료들에게 세러모니에 참여하지 않으면 심판이 골을 취소시킬 것이니 빨리 나에게 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FIFA 유튜브)
마라도나는 선제골의 기세를 잃지 않았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되는 골을 터뜨린 마라도나는 이번에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집어 넣는다. 선제골 직후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을 잡은 마라도나는 순식간에 두 명을 벗겨내고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 두 명 제치더니 기어이 골키퍼까지 제치고 빈 골대에 공을 집어넣었다. 마라도나는 55m나 되는 거리를 10초 동안 홀로 달렸다. 그 사이에 44번의 발걸음과 12번의 터치가 있었다. 그의 신들린 드리블의 농락당한 잉글랜드의 선수는 무려 6명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멀티골로 순식간에 두 점 차로 리드를 벌렸다. 경기 종료 10분 전, 1986 월드컵 득점왕 개리 리네커가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라도나는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출처: FIFA 유튜브)
마라도나는 인터뷰에서 조금의 마라도나의 머리, 약간의 ‘신의 손’이 선제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잉글랜드 언론과 축구 팬들은 마라도나를 향해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잉글랜드 사람들조차 인정한 골이 있었으니, 바로 신의 손 이후 터졌던 마라도나의 추가 득점이었다. 사람들은 이 골을 두고 ‘세기의 골’,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이라며 칭송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수문장이었던 전설적인 골키퍼 피터 쉴튼 역시 마라도나의 신의 손은 용서할 수 없지만, 그가 보여준 환상적인 솔로 골은 정말 최고였다고 말하며 마라도나의 위대함을 인정했다. 전 세계 축구팬은 이날, 5분 동안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추악한 골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을 경험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마라도나였다.
월드컵 하드캐리의 표본
축구 역사에 남은 두 골로 인해 마라도나를 향한 세계의 주목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마라도나에게 부담감 따위는 없었다. 4강에서 벨기에를 마주한 마라도나는 이날도 자신의 능력은 만천하에 알렸다. 환상적인 침투로 선제골을 넣었고 또다시 환상적인 드리블로 벨기에 수비 네 명을 허수아비로 만든 후 정확한 슈팅으로 추가골을 올렸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멀티골에 힘입어 2대 0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축구 팬들은 팀 스포츠에서 개인의 역량이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마라도나를 통해 알 수 있게 됐다.
팀의 결승행을 확정 짓는 마라도나의 두 번째 골, 수비수 4명이 손쓸 수 없는 대단한 드리블 능력과 마무리를 보여주었다.(출처: FIFA 유튜브)
마라도나의 마지막 상대는 서독이었다. 그들의 감독은 다름 아닌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요한 크루이프를 꺾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였다. 베켄바워는 마라도나의 봉쇄를 위해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인 마테우스를 마크맨으로 지목했다. 결승 당일, 마라도나는 마테우스에게 집중 마크 당하며 지난 경기들처럼 화려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대신 마테우스가 마라도나를 마킹하느라 지금껏 보여주던 창의성과 중원 장악력을 보이지 못했다.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중원 싸움에서 승리하며 2대 0으로 앞서며 월드컵 트로피를 가져오나 했다. 하지만 코너킥에서만 두 골을 몰아넣은 서독은 경기를 연장으로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연장전을 갈 생각이 없었다. 중원에서 볼을 잡은 마라도나는 침투하는 공격수에게 자로 잰듯한 스루패스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루차가의 깔끔한 마무리. 결국 아르헨티나는 3대 2로 서독을 꺾고 8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다. 마라도나는 결승전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대회 우승 + MVP인 골든볼 트로피를 거머 쥐었다.
11만 5천여 명의 관중의 환호와 박수 그리고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마라도나는 트로피에 입맞춤 했다. 마라도나가 60년대의 펠레, 70년대의 크루이프 & 베켄바워를 이어 80년대의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마라도나의 기록은 7경기 5골 5도움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총 득점이 14골임을 감안했을 때, 이 기록은 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뿜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마라도나의 퍼포먼스는 단순 스탯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는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혼자 힘으로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지 전 세계인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마라도나를 ‘축구의 신’이라 불렀던 이유가 바로 그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때문이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마라도나, 80년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등극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출처: sportsnet)
축구의 신(神)
월드컵 우승 이후,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리그 우승 트로피와 UEFA컵을 차지하며 대단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역시 팀의 주장 자격으로 출전해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이를 갈고 돌아온 서독에게 완패하며 트로피를 넘겨주어야 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다. 1990 월드컵 준결승 당시 이탈리아 팬들에게 했던 도발 때문에 세리에 A 내에서 평판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마약 스캔들에 휘말리며 폼이 망가진다. 결국 1994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약물 도핑 의혹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추방당했고 머잖아 축구의 신이 불리던 사나이의 커리어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2020년 11월 25일, 그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지만, 전 세계 축구 팬은 한뜻으로 위대한 축구 영웅의 넋을 위로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마라도나의 장례를 무려 ‘국장’으로 치렀으며 사후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이는 1986년 마라도나가 월드컵 무대에서 남긴 위대한 업적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라도나는 개인의 힘이 축구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보여주었다. 강등권 팀이었던 나폴리를 리그 우승, UEFA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화룡점정으로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까지 석권했다. 사람들은 그의 훌륭한 실력과 퍼포먼스에 ‘축구의 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많은 축구인이 그를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마라도나가 월드컵 무대에서 우승을 거둔 지 3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986년 마라도나의 퍼포먼스를 뛰어넘는 월드컵 스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월드컵 단일 대회 최고의 퍼포먼스’ 이 타이틀의 주인공은 여전히 마라도나다. 과연 누가 이 타이틀을 가져올 것인지 축구 팬으로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영영 나오지 않을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마라도나의 퍼포먼스는 위대했으니까.
1900년대 최고의 축구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이 두 선수 펠레(좌)와 마라도나(우)를 꼽는다. 두 선수가 활동했던 시기는 달랐지만, 사람들은 이 두 선수의 퍼포먼스를 비교하며 누가 역대 최고의 선수인지를 두고 많은 설전을 벌였다. (출처: thewee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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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초대 월드컵,'메이저 3연패'를 이룩한 우루과이
Ep.8) 골 라인 넘은 거 맞아? '축구종가' 논란의 우승
Ep.11) 축구 전쟁,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Ep.15) 역사상 최악의 월드컵, 1978 아르헨티나
Ep.17)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왜 동시에 펼쳐질까? 히혼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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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樂soccer 원문보기 글쓴이: 존예보스최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