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성령과 신부를 따르는 성도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딤후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고 구원에 나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계 22장 18~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내용을 추가해서도 안 되겠고 있는 말씀을 빼서도 안 되겠습니다. 어떤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았더라’ 하실지, 바로 앞 구절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의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생명수의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되는 순간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장면이 되겠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매 그대로 나누어졌던 모습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지만, 이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오라 하실 때 부르시는 그 음성에 그대로 순종하고 나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어머니로 말미암은 약속의 자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성령시대에 성령과 신부로 오셔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갈 4장 28~29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입니다(요일 2장 25절). 영생을 약속받은 ‘약속의 자녀’들은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받은 바 약속이 너무나 복되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을 빼앗고자 사단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만큼은 하나님께서 과거 훌륭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아닌, 오늘의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셨습니다.
히 11장 35~40절 “…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할 큰 믿음을 가졌던 초대교회 성도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탄생하듯, 하늘 어머니로 말미암아서 약속의 자녀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이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등장하시기 전에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계 12장 9~10절, 갈 4장 26~31절).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여기시는, 여인의 남은 자손들입니다(계 12장 17절). 이사야서에서는 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 66장 10~14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넉넉히 먹고 엄마와 함께 즐거워하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이상의 큰 만족과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행복과 축복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성령과 신부의 부르심에 부응한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고 사랑스러운 자들입니다. 성령과 신부로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그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입니다.
말씀대로 어머니를 따르는 아름다운 믿음의 길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너희에게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하셨고 이 성경 말씀에서 절대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는 가운데서 어머니의 존재를 논하게 되면 어머니 하나님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지상의 이치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장 5절)라 하신 말씀에 비추어보면, 땅에 어머니가 계신데 하늘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주장은 그림자는 있는데 실물이 없다는 궤변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어머니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가르침을 은혜롭게 받들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저도 갈 것이고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끝까지 어머니와 함께하겠습니다” 했던 룻의 효행이 왜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의 장면, 장면을 보면 구원과 무관한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신앙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고 있다는 데 더욱 자부심과 긍지를 가집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약속의 자손으로 선택받아 무한히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축복은 어머니로 말미암아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큰지 자각하고, 우리를 여인의 남은 자손으로서 영생의 축복과 약속 가운데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더욱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립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가 되려면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길을 따르는 것 역시 말씀대로 사는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본을 따라서 서로 뜻을 같이하여 한마음과 한뜻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여인의 남은 자손, 약속의 자손으로서 허락된 영생의 면류관을 끝까지 굳게 잡아서 기쁨과 환호 속에 찬란한 하늘 영광 가운데 나아가는 시온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