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인사해야 하냐고 묻는 전화가 친구에게서 왔다. 그녀는 벌써 오 년째 치매 걸린 남편을 혼자 돌보고 있다. 오십을 넘긴 지 얼마 안 되어 그녀의 남편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르치던 대학에 휴직서를 내고 아이들이 있는 미국에 와서 몇 년을 지내다 퇴직하였다. 이제 그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미국에 올 때마다 자주 어울렸던 시간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진 것 같다.
요즈음 그녀는 남편과 함께 처리해 나가던 모든 일들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집 안팎의 자잘한 수리부터 보험이나 집 문제에 관련된 서류까지 모두 혼자 고민하고 혼자 처리해야 한다. 점점 더 먼 과거로 가고 있는 남편은 때로는 두-세 살 언저리에 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린아이 달래듯 얼리듯 남편을 돌보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밝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그녀 때문에 가슴이 더 시리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힐난하듯 묻는 내게 그녀는, 가끔 밤에 자다 일어나 하나님한테 밤새 소리 지르고 나면 다시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방긋 웃는다.
최근에 더 심해진 그의 치매 증상을 보며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강하게 결단을 내리라고 권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제는 남편을 시설로 보내야 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그렇게 권하면서도 나는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먼 과거 속에 홀로 잠겨 있다가도 순간순간 현재로 돌아와 나를 알아봐 주는 남편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무엇에 감정이 상했는지 갑자기 거칠어지며 그녀를 때리려고 했단다. 피해 숨어 있으면서 이제는 정말 때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국행을 고려했는데, 그 시간이 지나 순한 아기로 돌아가 있는 남편을 보고는 다시 주저앉았단다.
그래도 그 일 이후에 그녀는 좀더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이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 버리기 전에 구비해 두어야 할 법적인 조치도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다. 전화 상담과 몇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아 법적으로 필요한 모두 서류를 구비할 수 있었다. 완성된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며 그 변호사는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시는데 조금이라도 위로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 의뢰에 대한 수임료는 받지 않겠다’고 적었단다. 그 이메일을 받은 그녀는 한바탕 울고 난 젖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 한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듣는 내 가슴에도 진한 감동이 물결치며 올라왔다.
“하나님의 위로는 언제나 그렇게 우리에게 오는 것 같아.”
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저 ‘맞아 맞아’ 라는 말만 반복하며 울먹였다.
그녀는 그 깊은 감동을 준 변호사에게 무엇이라도 답례하고 싶어 했다.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한 끼 하시라고 기프트 카드를 보낼까? 아마존 카드라도 보낼까? 어떤 답례가 그의 배려에 실례가 되지 않으면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을지 몰라 그녀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는데 문득 무엇인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그 변호사의 귀한 마음에 비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답례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아니 그의 마음을 보잘것없게 만들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배려가 우리의 가슴을 어떻게 울렸는지 그 큰 감동을 적은 편지 한 장이 그 어떤 답례보다 그를 기쁘게 할 것 같았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변호사를 통해 그녀에게 다다른 하나님의 크신 위로였다. 감사의 이메일을 보내겠다며 그녀는 낮은 자리에 앉은 겸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예의 바른 답례일 거야.”
첫댓글 가슴이 뭉클합니다. 변호사님과 친구분 두 분 모두 대단하시고 훌륭하십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세상이 유지되나 봅니다. 힘 내세요.
네.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새 힘을 얻습니다.
남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온전한 몸도 중요하지만 온전한 정신이 떠나면 온전한 몸도 소용이 없어집니다. 온전한 몸과 온전한 정신으로 살다가는 일,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네. 선생님. 그 병이 어떻게, 누구에게 오는지 모르니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다 가기를 기도할 따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