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1번 3악장 서주처럼, - 멀쩡한 동요를 암울한 단조로 채색해놓은 그 음악 속 작곡가의 심정처럼, 추억을 통해 더듬어 본 지난 시간들이 그저 아름답다기보다는 오히려 잿빛의 어두운 기억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토토에겐 어땠을까? 로마에서 감독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30여년 만에 돌아온 고향 땅에서, 마치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탈출할 수 없을 것같은 시칠리아 특유의 그 작고도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그는 자신이 왜 그토록 사랑했던 엘레나와 맺어지지 못했는가에 대한 작은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짧게 외친다. ‘말레뎃토 알프레도 Maledetto Alfredo! (빌어먹을 알프레도)’ 토토는 그제사 알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작고 답답한 마을을 떠나 외지에서 반드시 성공하길 바랬던 알프레도 할아버지의 집요하고도 위대한, 공포에 가까운 거대한 애정의 산물이라는 걸 말이다. |
(로마에서 유명 감독이 된 살바토레 디 비타. 나이 든 토토 역은 프랑스의 배우 쟈크 페랭이 맡았다.) |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꽤나 많지만, 역시나 우리는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 누오보 치네마 파라디조)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꼬마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 그 뒤로 흐르는 엔니노 모리코네의 감성적인 음악 등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과도 같이 우리의 마음 속에 내내 남아있다. |
(꼬마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 토토역의 아역배우 살바토레 카시오는 실제로 이 영화가 촬영된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팔라초 아드리아노 태생이다. 한때 배우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지금은 고향 땅에서 평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
글을 쓰기 위해 이번에 다시금 영화를 보았다. 90년대 초반쯤에 봤던 영화이니 벌써 20여년이 흐른 것이다. 옛날에야 이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인지도 몰랐었다. 아니 시칠리아란 곳이 이탈리아 어드매에 붙어 있는지, 뭐하는 곳인지 전혀 감이 없었다. 체팔루, 팔라초 아드리아노 같은 곳에서 로케를 했다지만 사실은 그걸 몰라도 영화는 잘 돌아가고, ‘여기가 시칠리아다’라고 딱히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냥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자란 소년이 첫사랑에 실패한 채 개나리 봇짐지고 상경하는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이다. |
(영화 속의 동네 극장 ‘시네마 천국’에서는 추억의 명화들이 꽤나 등장한다. 왼편 포스터는 네오리얼리즘의 기념비적 걸작인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 바로 이곳 시칠리아의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시칠리아 태생의 대문호 조반니 베르가가 남긴 자연주의 소설의 일대 걸작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을 원작으로 삼았다.) |
(‘토토’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도 등장한다. 여기서 토토(Totò)는 이탈리아의 국민 희극배우 안토니오 데 쿠르티스를 말한다. 나폴리 태생인 그를 나폴리타노들은 아직도 ‘그란데 토토’라 부르며 칭송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소피아 로렌 등이 출연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나폴리의 황금’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니, 지난 시간의 축적된 흔적들이 영화를 보면서도 나타났다.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탈리아 대사들이 이제는 속속 귀에 꽂히고, 사람들의 눈빛과 작은 행동거지 등도 모두가 감독의 예사롭지 않는 섬세한 연출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자신이 시칠리아에서 나고 자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자전적인 체험담이 상당부분 들어가 있을 텐데, 어쨌거나 항상 따뜻하고 아련한 시선으로 마무리를 짓는 건 이 영화 특유의 미덕이리라. 다시 보고 나니 마치 잘 내린 차 한 잔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눈듯한 기분 좋은 온기가 온 몸을 감쌌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2차 대전의 상흔’, ‘카톨릭 마을 공동체’, ‘모자간의 끈끈한 숙명적 애정’ 등은 모두 현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대변하는 키워드들이다.) |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감성적인 노스탤지어에만 함몰되어 지나치게 현실을 따뜻하게 채색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예술은 현실을 분석하거나 비평하는 것만이 그 임무가 아니며, 이 세상 무언가에 대해 항상 답을 내놓아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어떤 프레임에 담아 보여줄 것인가에는 결코 정답이라는 게 없지 않던가. |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음악인지도 모른다. 엔니노 모리코네와 그의 아들 안드레아가 함께 만든 <시네마 천국>의 아름다운 테마 음악) |
한없이 아련한 추억담을 보여준 <시네마 천국>과는 달리, 같은 감독이 조금은 더 예민한 시각 속에 세상을 바라본 작품이 <말레나>다. 이 영화는 아련한 추억담이라기보다는 ‘비극’이다. 시칠리아라는 특유의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그것도 파시즘과 전쟁이라는 실존적 공포 앞에서 신화 속의 여신과도 같은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지닌 막달레나(말레나)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 파멸기를 몽정기 소년 레나토의 성적인 환상 속에 담아냈다. 소재나 이야기의 전개방식 등이 일종의 ‘19금 시네마 천국’인데, 그 대신 카메라로 담아낸 시칠리아의 풍광은 전작 <시네마 천국>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다. |
(폐쇄적인 공동체의 근거없는 오해와 집단 폭력 속에 추락하는 말레나는 파시즘과 전쟁의 광기가 낳은 또 하나의 희생양일 것이다.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한 말레나는 여신과도 같은 신성한 아름다움과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여성이다.) |
(<말레나>의 화자인 소년 레나토는 <시네마 천국> 속의 토토처럼 그저 귀엽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소년은 이 세상을 관찰하면서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간다. 저 당당하고 온기 넘치는 눈빛이 그 결과물이다.) |
(<시네마 천국>이 2차 대전 직후를 다뤘다면 <말레나>는 2차 대전기의 시칠리아, 보다 엄혹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
(명색이 시칠리아 배경 영화인데 성당이나 성상행진 등 카톨릭 상징들이 등장하지 않으면 섭섭하다. 저 교회들이 전부 시칠리안 바로크식으로 지어진 것들이다.) |
(영화는 마을의 거대한 광장을 내달리는 소년의 자전거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된 극적 맥락을 표현하고 있다. 한때 아르키메데스가 살았던 ‘마그나 그레이키아’의 상징, 남부의 대도시 시라쿠사의 두오모 광장이다. 이 곳에 위치한 시라쿠사 대성당은, 고대 그리스 신전의 뼈대 위에 아랍의 장식과 기둥을 재활용하여, 시칠리안 바로크 스타일로 마무리한 건축물로 그 자체로 2천5백여년 역사의 시칠리아 문명사를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
(소년의 슬픔과 외로움을 받아주던 저 아름다운 석회암 계단은 ‘터키인의 계단 Scala dei turchi'으로 불리는 곳. 고대 그리스 신전으로 유명한 아그리젠토 인근에 있다.) |
(<말레나>에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 ‘Ma l'amore no 그러나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요’) |
북시칠리아 팔레르모 인근의 바게리아에서 태어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어려서부터 시칠리아 태생의 대문호 루이지 피란델로 등의 희곡을 읽으며 작가와 영화감독으로서의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지금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나 <베스트 오퍼>를 만든 감독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그래도 역시 토르나토레는 ‘시칠리아의 감독’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최근에는 D&G의 짧은 향수 광고 한편으로도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아름답게 풀어냈다. |
(D&G의 시트러스 향수 ‘Dolce'의 CF.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
다음 주는 ‘시네마 천국, 시칠리아’의 마지막 편이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사에 찬연히 빛나는 탐미주의의 걸작 한 편을 만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