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함경도 세 나라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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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20:54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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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온성 아래쪽이 새별군, 곧 경원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건치연혁」편에 “경원군은 옛날에 공주(孔州)ㆍ광주(匡州)ㆍ추성(楸成)”이라 했으며, 고려 윤관이 여진족을 쫓아내고 성을 쌓은 뒤 공험진에 방어소를 만들었다. 그 뒤 조선 태조 7년(1398)에 경원부를 만들고 태종 1년(1401)에 여진족이 침략하자 이 땅을 비워두었다가 태종 8년(1408)에 도호부를 두었다. 그 후 세종 10년(1428)에 부로 했다가 고종 32년(1895)에 군으로 고쳤으며, 김일성 부자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김정일을 상징하는 새별을 따서 1977년 새별군으로 고친 것이다.
“꾸밈없이 순수하며, 인정이 두텁고, 부지런하고 검소하다. 더러는 옛 학문으로 잘 가르치고 타일러 예의범절의 풍속이 함께 행해진다. 삼베를 짜서 옷을 입고, 좁쌀을 심어 밥을 먹는다. 서민들은 겨울에 개가죽 옷을 입으니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여지도서』「풍속」조에 실려 있는 경원군은 북서쪽으로 온성군과 회령시, 남쪽으로 은덕군에 닿아 있다. 동쪽의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경원군, 곧 새별군에는 산 정상에 시루와 같은 돌이 있는 증산이 있고, 새별읍에서 만주 혼춘(琿春)의 중간 지점인 두만강 한가운데 이도가 있는데, 이곳에 조선과 청국의 국경을 표시하는 조ㆍ청 정계비가 있었다고 한다.
백두산 자작나무
자작나무하면 러시아의 산림지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에 자작나무 군락이 우거져 있다. 껍질이 하얗고 곧게 뻗은 자작나무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압록강1)에 이어 두 번째로 긴 547.8킬로미터의 두만강은 한국, 중국, 러시아의 국경을 흐른다. 상류에서 유선까지는 북동 방향, 유선에서 온성까지는 남북 방향, 온성에서 어구까지는 남동 방향으로 흐른다. 상류 지역은 현무암으로 된 용암대지 및 화강암ㆍ화강편마암으로 된 무산고원(茂山高原), 중류 지역은 중산성 산지, 하류 지역은 낮은 산과 충적평야ㆍ모래언덕으로 되어 있다. 경사가 급한 상류에는 여울과 폭포가 많으며, 중류는 상류보다 완만하고 기슭에 낮은 단구들과 침수지들이 있다.
하류에서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퇴적작용으로 생긴 온성섬ㆍ유다섬(류다섬)ㆍ사회섬ㆍ큰섬 등 섬이 많으며, 강어귀에는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다. 하류 연안에는 모래언덕과 충적평야, 흑지ㆍ만포ㆍ서번포ㆍ동번포 등의 호수가 있다. 유역의 기후는 동계 혹한 기후로, 강우량도 적어 500~700밀리미터 정도다. 유역 일대 산림의 94퍼센트가 성숙림이다. 상류 지역은 분비나무ㆍ가문비나무ㆍ전나무ㆍ잎갈나무 등의 침엽수림, 중하류 지역은 잎갈나무ㆍ소나무ㆍ참나무ㆍ오리나무ㆍ사시나무 등의 혼합림이다. 서두수ㆍ연면수ㆍ성천수 등의 지류에 저수지가 건설되어 수량의 변화와 홍수가 적다. 어종으로는 두만강 고유종인 두만강야레를 비롯하여 산천어, 연어, 송어, 황어, 잉어, 붕어 등이 많다.
여름 백두산 © 이종원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기막힌 풍경의 연속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비탈길과 폭포, 구릉이 연이어 펼쳐진다.
한편 상류의 무산 부근은 철광석, 중류 회령군에서 하류 아오지에 걸쳐 갈탄 산지가 있어 유역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지하자원 지대를 이룬다. 또한 임야지가 전 유역의 94퍼센트를 차지하므로 임야자원도 풍부하다. 무산에서 회령에 이르는 중류는 뗏목 수송에, 하구에서 85킬로미터까지의 하류는 수운에 이용된다. 11월 하순부터 3월 상순까지는 얼어붙기 때문에 뗏목은 그 사이를 피하여 운송되었으나 무산선, 백무선 등 삼림철도가 개통되면서 불편을 덜게 되었다. 연안에는 넓은 초원이 발달하여 목축이 성하며, 특히 면양 방목지를 이루고 있다. 부령에 2만 8000킬로와트 출력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있다.
신숙주는 두만강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맑은 강에는 얼음이 녹아 물이 넓은데,
숲이 푸르고 아득한 오랑캐의 고장이다.
산 뒤에는 바다 구름이 국경에 연하여 어두컴컴하고,
성의 서쪽으로는 트인 고갯길이 하늘까지 기다랗게 걸렸구나.
사람들은 임금의 선조가 살던 땅이라는 옛 역사를 말하고,
봄은 만 리 밖에 있는 관하에 별을 펼쳐주도다.
전쟁의 경보와 싸움의 불길도 사라진 지 벌써 오래고,
다만 닭과 개 소리만이 먼 지역까지 들려오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원도호부」편에는 “두만강은 부의 동쪽 25리에 있다. 근원이 백두산에서 나와 동량ㆍ북사지ㆍ아목하ㆍ수주ㆍ동건ㆍ다온ㆍ속장 등의 지방을 경유하여 횟가[회질가(會叱家)] 남쪽으로 흘러 경흥부의 사차마도(沙次麻島)에 이르러 갈라져 5리쯤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진 말로는 만을 두만(豆滿)이라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사전에 북독의 신을 여기서 제사 지낸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라고 했는데, 두만강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길다.
백두산 동남쪽 대연지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서두수ㆍ연면수ㆍ성천수 등의 큰 지류들이 합류하며, 중류에 이르러서는 심한 감입곡류를 하면서 보을천과 회령천을 합한 후 본류는 북북동으로 흐른다. 함경북도의 최북단에 이르러 중국의 간도 방면에서 흘러오는 해란강을 합한 두만강의 물길은 급전하여 남동류한다. 하류에서는 다시 간도 지방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혼춘강과 우리나라 쪽의 오룡천ㆍ아오지천 등의 물길을 합한 후 수량과 하폭을 증대하면서 하구 부근의 호소 지대를 거쳐 서수라 부근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백두산 천지 전경
천지는 둘레가 14.4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장군봉을 비롯한 화구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두만강은 고려강ㆍ통문강(統們江)ㆍ도문강(圖們江)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만주지명고』에 따르면 두만강에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衾)에서 색금을 뗀 도문이라는 여진어 자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청문감(漢淸文監)』이나 『동문유해(同文類解)』에서는 원나라 때 지방관제에 만호(萬戶)ㆍ천호(千戶)라는 관직명이 있었는데, 여진어로 만호를 두맨이라 발음하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두만강이라고 쓰여 있다. 후에 청나라 측이 백두산정계비에 쓰여 있는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자구 속의 토문이 두만강이라고 강변함으로써 오늘날의 간도 지역을 중국의 영역으로 하고 있다.
두만강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민요로는 「애원성(哀怨聲)」을 들 수 있다. 함경도의 북청을 비롯하여 혜산, 갑산, 무산, 삼수에 이르기까지 널리 불렸던 이 민요는 남편을 두만강 너머로 떠나보낸 여자가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내용으로, 모두 42편이 남아 전하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최서해ㆍ김동환ㆍ김기림ㆍ나운규 등 수많은 문인들이 두만강을 묘사했는데, 이용악 시인은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라는 시에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나는 죄인처럼 숙으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그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듯 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은 거칠다 길은 멀다
(······)
[네이버 지식백과] 세 나라의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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