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定三昧壺中日月 (선정삼매호중일월)
凉風吹來胸中無事 (양중취래흉중무사)
선정삼매는 항아리 속 일월 같고
시원한 바람 부니 가슴 속엔 일이 없네
@1899년 10월 5일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식현리 425번지에서
양주 윤 씨 문(炆) 거사를 부친으로,
하동 정씨를 모친으로 태어났다.
선사의 아명(兒名)은 지호(志豪)였으며
어릴 때는 한학을 공부했다.
선사는 속세의 인연이 있었던지
어릴 적부터 스님만 보면 그 뒤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선사는 출가수행에 대해 동경을 버리지 못해
열일곱 살 되던 가을에 출가의 뜻을 세워
삼각산 도선사와 도봉산 망월사 등지에서 행자 생활을 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17년 7월에 해인사에서
제산(霽山)화상을 은사로 득도하여 사미계를 받으니,
법명이 상언(祥彦)이었다. 곧 해인사에서 사미과를 이수했지만,
은사이신 제산스님이 직지사로 옮김에 따라서 운수행각을 떠나게 되었다.
전국의 제방 선원을 두루 거치며 정진하다가
선사의 세수 마흔 살 되던 해
천성산 천성선원에 주석하시던 용성선사를 참방했다.
고암스님에게 용성선사가 물었다.
“조주 무(無)자의 열 가지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만 칼날 위의 길을 갈 뿐입니다(但行劍上路)”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가섭에게 꽃을 들어 보인 뜻은 무엇인가?”
“사자 굴 속에 다른 짐승이 있을 수 없습니다(獅子窟中無異獸)”
“육조스님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
일어나 삼배(三拜)한 고암스님이 답하였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습니다(天高地厚)”
그러고는 스승인 용성선사께 고암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용상선사는 주장자를 세 번 내치며 제자에게 반문하였다.
“너의 가풍은 무엇이냐?”
이 물음에 제자인 고암스님도 주장자를 세 번 내리쳤다.
이를 본 용성선사는 그제야 ‘만고풍월 萬古風月’이라고 칭찬하고
이어서 전법게를 내려 인가하였다.
부처와 조사도 알지 못하고
머리를 흔들며 와도 또한 알지 못하며
운문의 호떡은 둥글고
진주의 무는 길기도 하지
그리고 송( 頌)을 읊으셨다.
만고에 풍월을 아는 자 누구인가?
고암을 독대하니 풍월이 만고로다
용성스님은 인가와 함께 고압이라는 당호를 내렸다.
조계종 3대, 4대, 6대 종정을 역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