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궁궐은 눈이 내리는 궁궐 못지 않게 아름답다.
박석에 떨어져 내린는 빗 소리도, 처마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소리도 음악처럼 들린다.
전각에 앉아서, 준비 해 간 커피를 마시며 비내리는 전각의 모습을 보면 더욱 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광화문
경복궁 안에서 바라본 광화문으로,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다른 궁궐들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흥례문(興禮門)
흥례문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으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이다.
유화문
신하들이 서쪽 궐내각사와 빈청을 드나들던 문이다.
흥례문 일곽에서는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반포 등이 이루어졌으므로, 궐내각사와 빈청의 관원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문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유화문이 한 것이다.
금천
흥례문 일곽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 온 물, 금천이 있다. 지금은 비가 내려서 물이 많다.
금천을 지키는 천록
근정문
영제교를 건너면 근정문으로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의식을 행하거나 즉위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는데,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은 단종이다. 특히 근정문 앞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드ㅡㄹ의 조회 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근정전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으로 궁궐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품계석과 차일고리
정전 마당에는 박석이 깔려 있고, 품계석이 놓여 있어 신하들은 품계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박석 위에 설치되어 있는 차일고리는 천막 설치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근정전 하월대 답도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는 4신상과 12지신상을 간결하고 재치있게 조각해 놓았다.
근정전 월대 위에서 바라본 근정전 넓은 마당
청동향로
근정전에서 의식이 거행될 때 왕이 어좌에 오르면 근정전 밖 좌우 향로에 불을 피웠다.
무쇠드므
근정전 내부의 어좌
정전 바닥에는 전돌을 깔고 가운데에 임금의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로는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를
놓았다.
칠조룡
어좌가 놓여 있는 천정에는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칠조룡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근정전 내부
사정전
사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일상으로 정사를 논의하던 편전으로,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사정전은 ‘천하의 이치를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임금이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사정전 내부
편전 영역의 중심 건물인 사정전 내부 가운데는 어좌가 놓여 있으며, 그 뒤로 '일월오봉도'가 벽에는 구름 속에 놀고 있는 '운륭도'를 그려 걸었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고, 사정전 좌우에 편전의 기능을 보완하는 만춘전과 천추전에 온돌이 설치되어 있다.
경회루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 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엇던 것을 태종 12년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으며,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수정전
경회루 연지 남쪽에 위치한 수정전은 세종대에 집현전이 위치한 궐내각사 지역에 고종대레 새로 지은 건물이다. 고종대 초기에는 임시로 편전의 역할도 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내각 본부인 군국기무처로 사용되었다.
천추전
사정전을 보좌하는 부속건물로 서편전에 해당된다.
천추전 서 온돌방
천추전 대청마루
천추전 동 온돌방
만춘전
사정전을 보좌하는 부속 건물로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의하거나 연회를 베풀던 편전 가운데 하나로 사정전 동쪽에 위치하여 이름과 같이 봄을 상징한다.
만춘전 서 온돌방
만춘전 대청마루
만춘전 동 온돌방
강녕전
왕의 침전에 해당하는 정면 11칸에 측면이 5간 해서 55간으로 전면에 넓은 월대를 두고 있어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동서 양쪽에는 동소침 연생전과 서소침 경선전과 함께 행각으로 둘러 싸여 있다. 강연전은 궁궐의 중심인 내전 구역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을 이루는 건물로 용마루가 없다.
강녕전 대청 천장
강녕전 공간 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문자도가 새겨진 강녕전 굴뚝
교태전
강년전의 뒤로 돌아가면 양의문이 나오는데 교태전이 그 문 안에 들어앉아 있다. 강녕전이 왕의 침전이라면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자 시어소(時御所)이다. 왕비도 공인으로서, 궁궐 안에 살며 활동하는 내명부를 비롯한 여러 층의 여인들을 처리하는 일 등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적지 않았다.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공간이 시어소인 교태전이다. 특이한 점은 교태전에도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용마루가 없다.
교태전 후원 아미산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으로서 크고 길다란 돌을 쌓아 네 층의 계단으로 조성한 화계이다. 석지가 있는 윗단에는 붉은 벽돌을 육각형으로 쌓고 그 위헤 둘레를 돌아가며 기와를 얹고 가운데에는 집 모양으로 연기 빠지는 구멍을 만든 굴뚝 네 기가 서 있다. 뿐만 아니라 굴뚝의 면마다 돌아가며 봉황 등의 벽사상, 십장생, 사군자, 만자문, 당초문 등의 길상문을 구원 박아 넣었다.
자경전 꽃담
대비전인 자경전의 서쪽담장 외벽에는 매화, 천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이 든 벽돌로 장식하여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자경전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신정황후(조대비)를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특히 자경전은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가 살던 곳이니만큼 동서남북 사방을 돌아가며 행각과 담장이 둘러 있다. 특히 화계를 대신할 만큼 아름다운 꽃담과 십장생 굴뚝이 유명하다.
십장생 굴뚝
자경전 뒤편에는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 처럼 화계를 꾸미지는 않았지만, 십장생과 박쥐문, 당초문을 새긴 굴뚝을 세워 볼거리를 만들었다. 십장생 굴뚝의 그림은 꼭 십장생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있는 바위와 구름, 붉게 빛나는 해, 소나무와대나무, 불로초, 연꽃, 포도, 국화, 사슴, 학, 거북, 오리, 작은 새 등 화조 병풍이 따로 없다.
건청궁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에 지어진 건물로,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는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장안당
사대부 집의 형태를 띤 사랑채에 해당되는 건물로 왕(고종)이 사용했다.
장안당 대청마루
대청마루 벽에는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다.
곤녕합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일상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자선당
동궁전으로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자선당에서는 문종이 세자시절 단종을 낳기도 하였으며, 고종대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