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차 정기 합평회(2023.3.11.토)
1. 감사패 / 박희자
2. 팥빙수 결사대 2 / 백금태
3. 묵은 때의 미학 / 김기람
4. 퐅데기 / 임윤교
5. 렛잇비(let it be) / 백명철
6. 이런 인연 / 엄옥례
수필의 자존심 한국수필문학관부설 한국에세이포럼
1. 감사패 / 박희자
퀵맨이 전해준 감사패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함께 근무했던 왕 여사님이 보내온 것이다. 최근에 신문화로 가족 간에도 감사패를 주고받는다는 말을 들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고희(古稀)를 맞는 부모님께 자녀가, 그들에겐 사랑과 희생이 전제되어 있기에 감동하였었다.
왕 여사와 나의 사적 관계에서 감사패란 상식적이지 않아 놀랐다. 그만큼 왕 여사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패에는 ’제2의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준 고마움, 헤어짐의 아쉬움, 행복한 앞날을 기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여사께 감사패를 받는 것은 과분하다. 삶에 지쳐 있을 때 관심 가지고, 칭찬으로 격려했었다. 하지만 근무 중에 좋은 모습 보였었기에 오히려 내가 감사했어야 했다.
회사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요건이 맞지 않아 사업을 접어야 했다. 세월의 변화를 인식하며, 조직 구성원들은 수용했으나, 여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생에 버팀목이었던 직장을, 정든 사람들을 잃기 싫다고 했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면 마음을 추스르는가 싶다가 다시 감정선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수척해졌다. 평소에 왕 여사는 위기를 극복하는 나름의 전략을 설명했었다. 그 호기는 간데없이 얼굴에 그늘이 깊어졌다.
무리는 아니다. 팔순이 넘어 인생의 한 축을 내려놓는 일이 쉬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대표 바라기였던 마음에 깃든 정이 얼마이든가! 긴 세월 하루 같았다. 먼저 출근해 커피를 내려주었고, 손수 그린 나의 캐리커처를 사무실 곳곳에 장식했다. 아침 조회시간에 조직들과 소통할 때면 책임자인 내 감정을 넘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분이다.
어느 날 사석에서 왜 그렇게 좋은지 물었다. “늙고 병들어 쓸모없는 나란 존재 안아 주었고 작은 것 하나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잖아요.” 아이처럼 웃던 눈이 붉어졌다. 그 힘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고, 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티슈를 길게 뽑아 썼다.
사무실 닫을 날이 코앞인데 여사는 사업을 이어갈 것을 읍소하니 난감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에 연연하다가 하루아침에 헌 집 무너지듯 건강을 잃을까 봐 염려되었다. 여사의 홀로서기를 위해 냉담해지기로 했다. 그런 내 태도에 섭섭해서 흘리는 눈물을 끝까지 피했다.
여사와의 만남은 십여 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업장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 쭈뼛쭈뼛 사무실 문턱을 넘었었다. 머리에 두건을 썼고, 칠순에 마지막 항암을 마쳤다 했다 . 투병 중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우울증을 앓던 터였다.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나에게, ‘사람의 온기와 정이 치료제’라며 지인은 내 손목을 끌어 여사의 손을 잡게 했었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아 주는 것을 우선했었다. 아픔을 겪으면서 닫아건 마음에 빗장을 풀어야 했다. 틈내어 식사와 차로 마주 앉았다.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낸 의지를 칭찬했고, 살아가야 할 소중한 날들을 어울려 살아가자고 토닥였다.
여사님 즐겨 하는 노래에 박수를 보냈고, 업무에 임하는 자세에 칭찬했다. 의욕을 잃었던 여사에게 칭찬은 특효약이었다. 몸과 마음이 빠르게 회복되어 조직 속으로 스며들었다.
조직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여사의 의지는 모범사원으로 거듭났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근속으로 이어졌다. 팔순 잔치에서 구성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백 세까지 일하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여사님 즐거운 인생에 어깨동무해 줄 것을 약속했는데, 세상 변화에 밀려 생이별했다.
퇴직 후 카톡이 쉬지 않고 날아왔다. “출근 시간인 줄 알고 자리를 박찼다 주저앉았다.” “가방 들고 현관을 나섰다.” “그때가 그립다.”라는 하소연은 외로움과 싸우는 중이었다. 나는 폐업 정리에 바쁘다는 핑계로 반응을 아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리라.
퇴직한 지 달 포가 지났다. 여사의 카톡도 잦아들고, 내용도 안정을 찾은 듯했다. 수십 년의 아침 루틴이 바뀐 나 역시 탈진 상태였다. 그러구러 마음이 안정되니 여사가 눈에 밟혔다. 그러면서 일을 놓았으니 편해지자고 이기심과 타협하며 인정 없는 나로 지냈다. 그런 중에 여사의 감사패를 받으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더 배려가 있었다면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외로움을 하소연할 때 받아주어야 했다. 황혼에 고립이 두려웠던 여사께 남아 있는 날들 정 나누며 살아가자고 새끼손가락 걸었어야 했다.
내 우려와 달리 헤어진 후에도 인생의 깊은 연륜을 보여준 여사님의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스케치북 캐리커처에 펼쳐 보이면 엄지척을 해 주고 싶다. 그러면 여사님 얼굴에 오월 처럼 따스한 미소가 넘쳐나리라!
2. 팥빙수 결사대 2 / 백금태
1) “백 선생, 팥빙수 결사대 이야기 참 재미있던데!”
지인이 한 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도 붉으락푸르락 제빛을 잃어갔다. 당황한 내 눈길은 방향을 찾지 못해 허둥거렸다.
2) 그 지인은 ‘팥빙수 결사대 ’란 글 속의 주인공이다. 무더운 여름날, 팥빙수를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글감이 되어 내 수필 속에 등장했다. 여러 번의 퇴고와 고민 끝에 실명을 감춘 채 글 속에 자리 잡았다.
3) 그 글이 토론에 부쳐지며 세상에 나와도 된다, 안된다 의견이 분분했다. 비밀을 지켜주기 위한 결사대가 아닌가. 글을 내놓는 순간 비밀은 허물어진다. 아니다. 사회에는 이런 불륜도 있다는 것을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알려야 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토론은 끝났다.
4) 모험하듯 그 글을 수필집에 넣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끝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내내 뒤끝이 찝찝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들 한다. 책 속의 글 때문에 가족이, 친구 사이가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를 더러 보지 않았던가. 책으로 묶여 나올 때까지 고민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넣었다 뺐다 마음이 바뀌었다. 그런데 왠지 자꾸만 애정이 가는 글이었다. 아니 애정보다는 재미에 치우쳤으리라. 불구경, 싸움 구경보다 더 짜릿하고 스릴 넘치는 구경이 남의 불륜 구경이 아닐까.
5) 수필집이 세상에 나왔다. 장고 끝에 그 글도 한 페이지를 차지했다. 글을 접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재미있다고 손뼉까지 쳐대며 웃었다. 그 연세에 그런 연애를 할 수 있냐며 허구라고 수필의 진정성까지 들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내 귀에 별로 들어 오지 않았다. 이 글과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한때 왈가왈부하다 연기 사라지듯 사방으로 흩어져 잊혀질 잡담들이었다. 이 글이 그 지인의 귀에 들어가지 말란 법이 없다. ‘뺄걸’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미 글은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말았다. 서점에도 인터넷에도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6) 그 지인과는 종종 만난다. 팥빙수 결사대 대원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백 선생, 수필집 나왔다며. 나한테는 언제 주는데?” 이걸 어쩌나! 끝까지 모르길 바랐는데 주위에서 들은 모양이었다. ‘예’도 ‘아니’도 못한 채 쫓기듯 그 자리를 떴다.
7) 만날 때마다 책 가져왔냐고 채근하니 고민은 점점 더 깊어갔다. 그를 만나는 일이 고역이었다. 대역 죄인이라도 된 심정이었다. 보다 못한 다른 대원이 내놓은 비책이 더 가관이었다. 책 속에서 그 부문만 면도칼로 오려내고 드리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사인을 정성스럽게 쓴 후 수필집을 지인께 드렸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글은 내 손을 떠났다.
8) 그날 이후로도 그를 자주 만났다. 무슨 말이 나올 듯도 한데 아무 말도 없었다. ‘글을 아직 읽지 않았나. 아니면 기분 나빠서 말하지 않는가.’ 여러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를 쳐다보는 내가 오히려 좌불안석이었다. 그렇게 살얼음판 같은 만남은 이어졌다.
9)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팥빙수 결사대가 재미있는데 뒤에 더 열렬히 사랑하는 이야기가 빠져 애석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엉겁결에 우리 오빠 이야기라며 얼버무렸다. 이미 내 얼굴을 거짓을 실토라도 하듯 시뻘게졌다. 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팥빙수 먹던 날 이야긴데 ”라고 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황망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10) 둘이 있는 자리였다
“그런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니, 내 이야기를 기억해서 글로 남겨주다니 고맙고 영광인데.”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욕일까 칭찬일까?
11)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의 찐한 사랑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들어야겠다. 그날은 팥빙수 결사대 해단식이 펼쳐질 것이다.
3. 묵은 때의 미학 / 김기람
1. 내 자동차는 나이가 많다 묵은 세월 탓인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오래전, 남편의 퇴직 기념으로 중형 suv 를 주문했다. 장거리여행 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 주저 없이 선택했다 구조변경을 하여 숙식도 해결하며 세상 구경을 다닐 생각이었다
2. 새 차를 인도받던 날, 마음은 허공을 날았다. 승용차를 몰 때 나지 않던 경유차의 소음조차도 시원하게 들렸고, 운전석이 높아 시야가 확 트여서 더욱 만족했다. 나날이 먼지를 털고 닦았으며 차고에 주차하면서도 덮개까지 덮었다. 야외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는 옆 차가 문을 여닫을 때 내 차 문짝이 상할까 봐 거리에도 신경을 썼다. 자기 전에 차의 안전점검을 해보고서야 잠자리에 드는 나를 남편은 극성맞다고 나무랐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어림없을 일을 반복하면서 자동차와 정을 쌓아갔다.
3. 애마가 내게로 온 지 서너 해가 지나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의 온갖 정성과 관심을 받았음에도 차는 종종 흠집이 났다. 취객의 발에 차인 흉터가 생기기도 했고, 심뽀 고약한 사람에 의해 몸통 둘레에 못으로 길게 파이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때마다 속이 몹시 상했지만 정비공장으로 달려가서 원상태로 돌려놓기를 반복했다. 만만치 않은 수리비용이 아깝다가도 말간 얼굴로 맞이하는 차의 모습에 금방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4. 그렇게 살뜰히 보살폈지만 무쇠도 녹이는 세월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작은 흠집은 그냥 두기 시작 했다. 한두 곳에 상처가 났을 땐 정상복구 시키려고 애쓰던 마음이 예사로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가까이서 보면 흠집이 많고 때깔도 곱지 못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런대로 모양이 괜찮아 별반 주눅 들지 않았다. 손때가 묻은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5. 며칠 전에 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앞 범퍼를 사정없이 밀고 갔는지 검은 페인트 흔적이 묻어 있었다. 아무래도 음주운전자의 소행인 것 같았다. 아들이 그렇게 블랙박스를 달아야 한다고 권했는데도 헌 차니 필요 없다고 고집부린 것이 후회되었다. 주인이 대접을 안 하니 차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 같아 미안했다.
6. 남의 차를 이렇게 만들고도 쪽지 하나 남기지 않은 운전자가 괘씸했다. 소행머리를 봐서는 범인을 찾는다고 당장 관리실로 달려가서 cctv 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숨 한 모숨 들이쉬고 생각하니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저지르고, 어떤 일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이었다. 이왕 벌어진 일, 행여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싶어 덮어두기로 했다. 우선 정비소에 가서 검은 페인트를 닦아내고 덧칠을 했다. 생각보다는 그리 추하지 않았고 타고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7. 예쁘고 빛나는 새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두 새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만, 새것을 관리할 때 마음이 고된 것도 사실이다. 그릇도 너무 예쁘거나 새 것은 수납장에 모셔놓을 때가 많고 상시로 편히 쓰지는 못한다. 고가의 옷을 장만하여 옷장에 모셔놓고도 눈요기만 할 뿐, 결국 묵은 시간들이 쌓인 만만한 옷을 입고 나들이하기가 십상이지 않던가!
8. 생명이 없는 물건이 이러할 진데 사람인들 오죽할까!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서로 간에 묵은 때가 묻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더구나 반질거리고 당차 보이는 사람이나, 만인 앞에 우뚝 선 사람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빛나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선 듯 다가가지 못 한다. 그들 앞에서는 조심성이 많아지고 아래로 잦아들기만 할 뿐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9. 묵은 때가 끼어 수더분하고 편안한 사람은 따뜻함과 향기가 우러난다. 근접하기 쉽고 오랫동안 인연이 지속된다. 나의 수십 년 지기 버팀목들처럼 말이다. 시나브로 쌓인 묵은 때는 정(情)이 되어 결핍으로 채워진 내 삶에 윤기를 더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고단한 심신을 내려놓고 쉬었다 오기도 한다. 나는 신품처럼 반질거리는 사람보다 무시로 다가갈 수 있는 수더분하고 때 묻은 사람을 좋아한다.
10. 이제 자동차에 묵은 때가 끼어도, 조그마한 흠집이 나도 괘념치 않는다. 마치 새 차가 헌차 되면서 정이 들 듯이, 사람도 묵은 때가 묻으면 정이 더 간다. 어쩌면 아무리 세월 흘러도 높고 광나지 않을 자신임을 알기에, 욕심 내려놓고 묵은 때의 미학을 주저리주저리 읊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낡고 덤덤하고 묵은 때가 묻은 것들이 편하고 좋다.
4. 퐅데기 / 임윤교
거제지방에서는 ‘팥’을 ‘퐅’이라고 부른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 그 지방에 가서 듣고 난 뒤에는 수긍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퐅’이라고 해도 팥으로 찰떡같이 알아 듣는다.
대개 사투리는 표준말과 다르기 마련인데 ‘팥’과 ‘퐅’은 비슷한 어감으로 들려 혼동이 된다. 제주도에서도 같은 발음을 한다고 해서 적이 놀랐다.
‘팥’이란 말을 논하는 의도가 있다. ‘퐅데기’라는 말에 관한 궁금증 때문이다. 그 말은 사회초년생일 때 처음 들었다.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의 어떤 한사람을 가리켜 직원들은 ‘퐅데기’라고 불렀다. 당사자가 부재중일 경우 빈번히 그 단어가 통용됐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무슨 말이 이다지 된 발음이 나는가 싶어 혼자 되뇌어 보곤 하였다. 의구심은 커졌으나 어쩐지 바람직한 말이 아닌 것 같아 마음속에 사장시켜 버렸다.
퇴직한 후에도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어 보았는데 종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이제 왜 궁금해진 걸까. 그것은 문학을 합네 하며 각종 낱말에 대해 기웃거리다 보니 오래전 의구심이 증폭된 것이다. 답답한 것은 그 어원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거나 근사치의 말을 찾았으면 좋으련만 정작 그렇지 않은 게 문제였다.
누군가의 별명을 지을 때는 그 당사자의 성격이나, 생김새를 두고 짓기 마련이다 퐅대기라는 별명은 아주 급한 성격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말일 꺼라 어렴풋이 생각하였다. 왜냐 하면 그 시절, 그 분을 둘러싼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뒤늦게 ‘퐅데기 ’라는 말의 뜻이 궁금해서 지식 in 에 질문을 올렸다. 딱 한사람이 의견을 올렸는데 질문한 보람이 있었다. 옮겨 적어 본다.
이란 팥의 방언이므로 팥에 관련 된 성질이나 속성을 갖춘 사람’이라는 답변이다. 내심 혼자 생각한 근사치의 답이었다. ‘퐅데기’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푼 셈인데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팥의 성질과 사람 속성과의 연결고리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고심 했다.
‘퐅’을 줄곧 생각 하다가 잘 아는 두 자매간의 대화가 불쑥 떠올랐다. 전에 나와 셋이서 이야기를 하던 중, 자매 중 언니가 여동생에게 “니 성질머리가 꼭 끓는 팥죽 같데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내가 “무슨 뜻인데요?”라며 물색없이 물었다. 그 언니는 “다른 죽과 달리 팥죽이 끓기 시작하면 픽픽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잖아, 그럼 옆에 있는 사람이 데인다 아이가?” 톡톡 쏘아대는 동생의 성격을 빗대어 팥죽을 운운 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고민하던 팥에 관한 연결고리가 이어진 셈이다.
안구 건조증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검사를 한 뒤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적어 주었는데 뜻밖의 주문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그것은 다름 아닌 팥에 관한 것이었다. 팥 주머니를 두 개 만들어 하루 이회 씩 십분 간 눈두덩이 위에 올려서 찜질하라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팥 주머니는 일 분 삼십 초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사용하란다. 이로서 팥이 열전도율이 높다는 것을 또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숙제를 푼 것처럼 후련했다.
지금은 분노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 라는 병명이 자주 등장하는 걸로 보아 이 시대 사람들이 인내심이 모자라는 것으로 비쳐진다. 사람들의 심성이 이기적이어서 분쟁이 심화되고 있음이다. 누구나 퐅데기가 되지 않으려면 타고난 성격을 잘 다스려야 할 것 같다.
성격은 잘 바뀌지 않지만 조금씩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진노하는 사람은 스스로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 화를 누그러뜨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면 어떨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5. 렛잇비(let it be) / 백명철
1) 언젠가 성당의 복지모임에서 웃음치료사를 초빙하여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무기력한 노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강사는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활기찬 남자였다. 그는 먼저 웃음이 정신이나 육체에 얼마나 유익한 작용을 하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다음에 ‘자, 어르신들, 이렇게 좋으니 억지로라도 한 번 웃어봅시다.’ 그는 우리에게 않은 채 양손을 허리에 대고 아랫배에 힘을 준 다음 큰 소리로 웃음소리를 내는 훈련을 시켰다. 모두 소리를 냈지만 정작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끝마칠 무렵 전체가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는데 강사로부터 지목받은 한 노인이 일어서서 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아아 하아 히익’하는 우습꽝스런 소리를 쥐어짰을 때였다.
2) 그 후 간간히 아침 양치를 하며 웃는 연습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억지웃음을 짓는 거울 속 모습이 우스워 혼자서 낄낄댔다. 그러나 점차 그 훈련은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이나 신발처럼 부담스럽고 열없게 느껴졌다. 헛웃음 일지라도 자꾸 웃으면 나날이 장밋빛 행복으로 바꿔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3) 올해로써 삼십 년 넘게 지속되는 부부 모임이 있다. 일흔 고개를 넘어서며 모두 주름살이 늘고 머리털은 빠지고 허리도 조금씩 굽었다. 처음 시작 때는 열한 쌍이었으나 그간 세 쌍이 줄었다. 모두 부부중 어느 한 쪽의 난치성 지병으로 외출을 삼가고 있다. 힘이 팔팔할 때는 산과 바닷가로 쏘다니며 호기롭게 웃고 고함도 질렀지만 어느 때부턴가 시내에서 식사하고 영화 관람으로 마무리한다. 온종일 ‘하하 호호’ 시끌벅적했던 만남이 이제는 조용히 한나절이 채 안 되어 끝난다. 남자 아홉 명에 맥주 두 병 비우기가 뜸하다.
4) 어제는 자주 들리는 동네 저수지 산책길에서 L선생을 만났다. 팔순이 넘은 나이로 등이 많이 굽고 무릎이 불편하지만 뒤뚱대며 부지런히 걷는다. 오랜만에 만난 터에 근황을 묻자 여러 가지 증상으로 병원 가는 일이 부쩍 늘었다며 안색이 어두웠다. 이어서 한숨을 쉬며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는 그의 친구들 얘기를 늘어놓았다. “아이구, 나도 그리되면 어찌할꼬.” 평소 화안시(和顔施) 같았던 그의 얼굴에 수심이 일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조직검사’를 떠올리며 내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5) 흔히 노년의 네 가지 고통, 즉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를 얘기한다. 이중 거의 모든 사람에게 닥쳐오는 것이 병고이다. 나머지 세 가지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경중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병고는 돈이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이 겪는다. 노인의 경우 대개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큰 실의와 우울감에 빠지며 웃음을 잃게 된다. 웃음치료사는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 너털웃음을 웃으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했지만 그 효과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6) L선생과 헤어진 후 심란한 기분으로 저수지 둘레 길을 서성댔다. 저녁나절의 햇살 아래 저수지 한가운데에서 짙은 갈색의 물오리 떼가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모두 일곱 마리인데 작은 놈도 서넛 보였다. 새끼들인 것 같았다. ‘저들은 어떤 일생을 사는 것일까.’ 때가 되면 물가의 갈대숲이나 수초 더미에 알을 낳아 후손을 퍼뜨리고 주변 환경에 순응하며 종족을 이어간다. 또한 저들만의 내밀한 언어로 새끼를 돌보고 생명을 위해하는 외부의 침입에 대처한다. 그러나 사람처럼 건강에 좋다고 억지웃음을 웃지는 않는다. 오로지 현재에 충실하며 유유자적 생을 즐기고 있는 녀석들이 부럽기도 했다.
7) 어찌 보면 사람은 너무 똑똑하여 불행해지는 것 같다. 지난 잘못에 대하여 후회하고 다가올 어려움에 대해 미리 걱정한다. 또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성공, 실패를 따지며 불행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제는 누구나 지구상의 사건이나 사고 등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욕심의 가지 수는 수많이 늘었고 경쟁은 말할 수 없이 치열해지기만 한다. 날이 갈수록 행복은 꼬리를 감추고 미소나 웃음도 그만큼 사라졌다. 우리나라 사람의 행복지수도 전년도에 비교하여 일곱 단계나 떨어진 세계 61위가 되었다. 이 모두가 모든 생명체 중 사람만이 겪는 일이다.
8) 불가에서는 인간 삶의 여정을 생자필멸, 생로병사라고 한다. 이 가르침은 불교 탄생 이후 이천오백여 년의 장구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삶의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억지웃음뿐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이 이룩했던 모든 과학, 문화예술 등도 이 법칙 앞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결국 죽음으로 가는 삶의 과정을 감수(甘受)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리처럼, 산야의 초목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오늘을 사는 도리밖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9) 어느새 저수지에 옅은 어둠이 드리웠다. 오리 떼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무의식중에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를 내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렛잇비는 어려움이 닥칠 때 그것과 아등바등 싸우지 말고 ‘그냥 둬’라는 혹은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이 있다.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렛잇비 후렴구가 네 번씩이나 반복되는 노래, 지난 시절 좌절감에 휩싸였을 때 이 후렴구를 흥얼거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고 버텨나갈 힘이 생겼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면 바위처럼 큰 덩어리의 고통이 자잘한 모래알처럼 되기도 했다. 실제로 해결이 된 적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렛잇비에 힘입어 자꾸 부닥치다 보니 자연스레 면역이 생기기도 했다.
10) 이제 집에 가서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TV를 보고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어야지, 그냥 지금껏 살아왔던 일상을 사는 것이다. 일주일 뒤의 조직검사는 그때 가서 볼일이다. 성경에도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고 하시지 않든가’ 어둠을 뒤로 하고 한결 가벼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6. 이런 인연 / 엄옥례
1. 사그락사그락, 교정지 넘기는 소리만 감도는 공간이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는 곳. 누군가가 ‘쯧쯧’ 소리를 내며 “이 사람도 이름이 제대로 불리기는 어렵겠군” 한다. 뜻밖의 말에 귀가 쫑긋 선다.
2. 문학단체 편집진이 모여서 월간지에 게재될 원고를 정리하는 중이다. 편집위원 한 사람이 원고에 적힌 이름을 보고 혀를 차면서 하는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흔히 쓰는 글자의 조합이 아니라서 잘못 불리는 경우를 겪다 보니 동병상련을 느꼈던가보다.
3. 그때 내 옆에서 교정지를 뚫어지게 살펴보던 사람이 고개를 들고 빙긋이 웃는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눈치다. 원고를 보느라 눈이 아프던 차에 다들 고개를 들어 궁금한 표정을 한꺼번에 보내니 기꺼이 내막을 들려준다. 부군의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잘못 불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 이름이 ‘해포’란다. 해포라고 또박또박 일러줘도 십중팔구는 ‘해표’로 듣는지라 그때마다 바다 海, 물가 浦 라고 한자까지 동원해서 짚어주곤 한단다.
4. 까르르 소리를 내며 합창으로 웃던 중, 같은 이름을 가진 얼굴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혹시 하는 마음에 성도 물어본다. 기억 속의 사람과 이름, 성이 같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으나 왠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을 것 같은 예감에 마음이 급해져서 재차 묻는다.
“혹시, 영천에서 약국 하시는 분인가요?”
“맞아요!”
5. 벌러덩 자빠질 판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서로를 쳐다본다. 이런 인연도 있나 싶어 내가 옆 사람의 손을 덥석 잡는다. 옆 사람은 나와 다른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문학동네의 나이테도 제법 두텁고 유명세를 타는 작가다. 두 해 정도 같이 일하면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곤 했는데, 전혀 알지 못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옆에 앉은 사람은 오래전에 내 옆지기가 가게를 열었던 건물주의 부인이라는 말이다.
6. 마당에 수국이 서른 번을 넘게 피고 지는 시간 전의 일이다. 혼기를 훌쩍 넘긴 남자와 여자, 남편과 내가 부부가 되었다. 얼른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고 컴퓨터 가게를 열었다. 컴퓨터 전문회사에 근무했던 기술을 잘 살리면 돈을 많이 벌 거라는 기대로 마음은 시작부터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컴퓨터는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했고,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시류에 앞선 가게를 연 탓에 사람들은 호기심으로만 드나들 뿐, 구매는 하지 않았다.
7. 벌이는 없어도 임대료는 정해진 날짜에 내야 한다. 남편과 나, 주변 사람들의 돈까지 긁어모아 가게를 차린 바람에 지갑이 텅 빈 상태였다. 월세를 내는 날마다 건물주인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보증금에서 월세를 계산하라는 말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장사가 잘될 때 줘도 되니 염려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우리가 부르는 대로 가격을 깎지도 않고 선뜻 컴퓨터를 사 주었다.
8. 건물주인은 대구 근교의 소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남편보다 두엇 적은 나이에 훤칠한 키, 귀티 나는 얼굴을 가졌다. 한 마디로 이탈리아 배우 같다. 늘 혼자서 가게에 들리는지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처럼 갓 결혼을 한 듯 보였다. 그런데 동네에 들어가는 길목에 일곱, 여덟 개의 점포가 딸린 건물을 갖고 있었다.
9. 그때 우리 가게는 가뭄에 콩 날만큼만 컴퓨터가 팔려서 근근이 명줄만 잇는 형편이었다. 와중에 한 대 값을 계약금으로 내고 다섯 대를 가지고 간 사람이 흔적 없이 사라진 일도 벌어졌다. 장사 처음 하는 사람에게 사기꾼이 덤빈 것이다. 주인은 우리 사정을 알고 보증금이 바닥이 나도 집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건물 관리 문제로 가끔 들렀지만 믹스커피 한 잔 하고는 씽긋 웃어주며 가게 문을 나섰다.
10. 기대감으로 시작한 가게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기가 꺾였다. 보따리를 싸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주인의 배려에 버티는 중이었다. 이윽고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리가 바라던 따스한 바람이 그때부터 불기 시작했다. 관청과 기업의 전산화를 선두로 바람은 가정까지 파고들었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사람들도 일찍 시작한 우리 가게를 잊지 않고 찾아주었다. 값싸고 성능 좋은 컴퓨터가 인기를 끌던 때라 남편은 부품을 직접 조립해서 자신이 고안한 상표를 붙여서 팔았다.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늘어나는 바람에 휴일에도 쉴 틈 없는 나날이었다.
11. 건물주인이 보내준 겨울 햇살 같은 배려가 철없이 시작한 사업의 애로사항을 견디게 해주었다. 덕분에 궁핍했던 생활도 벗어나게 되었고, 가게의 몸집도 불려 갈 수 있었다.
12. 오래전 일이었지만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건물주인은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옆에 앉은 사람이 그의 부인이라니, 이런 인연도 있나 싶다. 나는 당시에, 글과는 아주 먼 동네에 살았던지라 그의 부인과 이렇게 연결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인연 참, 알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