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습 드러낸 임청각. © 안동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동=안동인터넷뉴스] 중앙선 철도에 갖혔던 대한민국 독립운동 산실 임청각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00년 넘게 싸여있던 임청각 독립운동의 정신도 국민의 품에 안긴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 복원사업이 속도 내고 있다.
임청각 복원사업은 중앙선 철로를 걷어 내고 사라졌던 임청각 좌·우측 재현가옥 2동을 복원하는 사업이 핵심이다.
여기에 문화, 관광, 교육 공간으로 활용될 역사문화공유관(석주 이상룡 선생 기념관) 건립과 주변 도로 정비 및 주차장 시설도 확장해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사업비 280억 원을 투입해 2025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 중인 임청각복원사업은 지난 2021년 중앙선 철로 철거를 시작으로, 임청각 주변 가옥·토지매입 후 공사가 한창이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내 국토부 소유 철도용지 47필지도 매입 절차가 마무리 단계로, 사업 구역 내 철로 일부(60m)는 매입 후 보존해 현장 역사교육에 활용된다.
임청각 복원사업 조감도. 안동시 제공
임청각 역사문화공유관 조감도. 안동시 제공
현재 진행 중인 임청각 보수 및 지형 복원, 군자정 및 사당 단청기록화 사업 등은 10월 말 현재 공정률 70%에 이르고 있어 안동댐을 오르내리는 도로에서도 임청각과 법흥 7층전탑, 탑동고택 등의 모습이 훤하게 드러난 상태다.
기존 임청각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국민들에게 개방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후 역사문화공유관 준공과 전시콘텐츠 조성, 재현가옥 2동 복원, 산책로 및 주차장 등이 마무리되는 2025년에는 임청각이 완전체의 모습으로 돌아 올 전망이다.
대한민국 보물 제 182호로 지정된 임청각은 조선시대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
안동 고성이씨 종택이기도 한 임청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을 비롯해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등 일제 강점기 독립 투쟁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석주 이상룡은 1910년 경술국치 후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올려놨다가 국권회복 후 읽자”라는 말을 남기고 만주로 망명한다. 이듬해 정월 압록강을 건너며 “차라리 내 목이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종이 되지 않으리”라는 말도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석주 선생은 국무령 이후 만주와 간도 등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벌이다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2년 5월 길림성 서란현에서 74세에 순국했다. 선생의 부인인 김우락, 동생 이봉희, 아들 이준형, 조카 이광민, 손자 이병화, 손자며느리 허은 등 일족 3대가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독립운동의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임청각은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역사 교육장으로 만들 것”이라며 “아울러 임청각 역사문화공유관에는 석주 선생의 어록과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내 전 국민이 공유하도록 한편 고택체험과 산책, 주변관광 명소와 연계된 문화공간으로 복원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