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는 왜 눈이 안 왔을까?
저기는 왜 그림자가 없을까?
눈이 잘도 내리는구나
그런데 저 곳은 왜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일까?
당나라 때 방온(龐蘊)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출가하지 않고 속세에서 머리를 기르고 살아서 방거사(龐居士)라 불렸습니다.
그렇지만 불도(佛道)를 깨달아 그 경지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동정호에 던져 버리고 대나무 그릇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온 세상이 눈에 덮였는데 저기는 왜 눈이 내리지 않았을까?"
눈이 내려도 사람이 서 있는 발밑에는 눈이 오지 않습니다.
눈이 내려도 방거사가 서 있는 발 밑에는 눈이 오지 않습니다.
김흥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말씀을 읽기 쉽게 조금씩 바꿔 써 봅니다).
"세상이 다 눈에 덮여있어도, 그곳만큼은 눈이 오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죄에 빠져도, 그곳은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다 의심해도, 의심하지 않는 한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지 않고, 의심이 사라지고,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방거사가 서 있는 곳입니다.
그만의 절대적 입장(立場)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푸른 바위에 새긴 글, 219-222쪽 참조)
이와 연결되는 노래 한 곡 듣고 가겠습니다.
가수 최희준(디모테오) 씨가 부른 <빛과 그리고 그림자>입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라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빛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밝게 비추는 대낮인데도 그럼자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오늘의 퀴즈입니다.(정답을 알아맞히면 소주가 한 잔입니다~~~)
현진건 선생의 <무영탑(無影塔)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무영탑은 그림자(影)가 없는(無)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탑이 도대체 세상에 있기나 하는 걸까요?
달도 없고 아무런 빛도 없는 깜깜한 밤중에 절간에 서 있는 탑은 그림자가 없겠죠.
그런데 문제는 빛이 있는 대낮에 그림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오(正午)가 되면 태양은 하늘 한 가운데, 하늘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그때, 태양이 탑을 비추면 그림자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자 없는 무영탑의 존재가 가능한 것이죠.
태양이 하늘 한 가운데 있고 그 밑에 '내'가 서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양과 내가 일직선이 되기 때문입니다(김흥호, 법화경 강해,205쪽 참조).
태양과 내가 일직선이 되듯, 하느님과 내가 일직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그림자는 생기자 않습니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때 죄악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죠.
하느님과 일직선이 되어 그분과 일치되어 있는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때의 경지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요한 10,30).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런 말씀을 들려줍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한마디로 대낮의 신앙입니다.
대낮은 정오(正午)이고, 한 낮이고, 낮의 한 복판입니다(日中).
태양이 중천에 떠서 그림자가 없어지는 시간이죠.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우리에게 그림자가 없이,
죄 없이 살아가라고 초대합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깨어 있어라" 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라아가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할 것입니다(마태 24,38)
사고팔고, 심고 거두고, 짓고 허물고 하는 것은 일상의 모습니다(루가 17,28).
그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하느님과 일직선 되어 살자는 게 우리 신앙입니다.
특히 이 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립의 계절입니다.
이 시간 깨어 살아가자고 독서와 복음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대림절의 영성은 곧 정오의 영성이고, 대낮의 영성입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대림절 살아가리라 다집하며
대림 첫째 초에 불을 밝힙니다.
박신부의 묵상 산책
ㅡ모든 것 안에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ㅡ4권 중에서
서울 대교구 상도동성당 주임사제이신 박성칠 미카엘 신부님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