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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李陸史)와 모메꽃 길
출근길 강 언덕에 연분홍 모메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반긴다. 근래에 이육사(李陸史)선생이 태어난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불미골을 중심으로 ‘이육사 문학길’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모메꽃길’도 있다 한다. 조국독립을 위해 어떤 절망에도 굴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선생과 연약한 이 꽃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 길을 걸으며 그 꽃을 보고 싶어 고향나들이에 나선다.
불미골에 왔으니 ‘이육사 문학관’ 앞 선생의 동상에 인사부터 드리자. 문학관 앞 선생의 육형제 생가인 육우당(六友堂)을 지나 ‘청포도 시비(詩碑)’ 앞에 와 ‘청포도 샘물’에 손을 씻는다. 달려온 피로가 다 풀린다. 여기서부터 동구 앞 나루터까지가 ‘모메꽃길’이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들판을 걸어가니 길섶에서 모메꽃들이 반긴다. 수수한 얼굴의 연분홍색 이 꽃은 언뜻 보면 나팔꽃처럼 생겼다. 의지할 곳이 없는 들판이라 줄기끼리 서로 부둥켜안으며 자라고 있는 것일까. 꼬마 우산을 정성스럽게 접은 것 같은 모메 꽃망울들은 풀밭 위에 떠다니는 종이배의 돛처럼 올망졸망하다. 한낮에 여우비가 온 터라 벼름간의 숯처럼 뜨겁던 여름해도 열기가 식어 한결 걷기가 수월하다.
나루터로 가는 길에서 불미골을 바라본다. 선생은 <초가(草家)>에서 “수묵화 같은 동리 앞/ 보리밭에 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두 뺨 위에 모메꽃이 피었다.”라고 모메꽃을 노래하였다. 선생은 이 시에서 젊은이들은 모두 돈 벌러 떠난 피폐한 고향의 풍경을 애달파하고 있다. 그나마 빈 바구니를 채울 수 있는 모메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여기서 지척인 내 고향동리에도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모메꽃이 만발하였다. 봄날이면 언 땅이 녹아 모래가 파인 언덕에 모메 뿌리들이 허옇게 드러났다. 겨울을 땅 속에서 보낸 뿌리를 날로 먹으면 달짝지근하였고 쪄먹으면 파삭한 맛이 더했다. 모메는 고구마와 같은 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해마다 같은 곳에서 자라며 꽃은 나팔꽃과 흡사하다. 놀다가 상처가 났을 때 모메 줄기를 부러트려 나오는 끈적끈적한 흰 진액을 바랐더니 빨리 나았다.
모메는 기름진 땅을 마다하고 오히려 모래가 섞인 척박한 땅에서 더 잘 자란다. <꽃>에서 선생이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지 않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발갛게 피지 않는가···”라 노래한 꽃도 소박하고 가난한 모메꽃일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랄지라도 모메 뿌리에는 소중한 자양분을 간직하고 있어 휘지 않고 잘 부러진다. 비록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부러질지언정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선비를 닮았다고나 할까.
이육사선생은 퇴계(退溪)선생의 14세손이다. 선비는 가난해야 본 모습이 나온다는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일생을 선비이자 독립투사로 살았다. <광야>에서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할 때 뿌리고자 했던 가난한 노래가 바로 선비의 노래가 아닐까. 선생의 일점혈육으로 이육사문학관 관장인 이옥비 여사의 한자는 ‘李沃非’다. 선생이 직접 지었다니 이름 그대로 ‘기름져서는 안 되고, 윤택하게 살지 말라’는 일생의 당부일 성싶다.
너른 백사장이 펼쳐 있는 나루터 앞은 수필 <은하수>의 배경이다. 바닥 모래가 훤히 보이는 작은 시내를 맨발로 찰방찰방 건너 백사장으로 가니 온몸이 다 시원하다. 이 백사장에서 어린 시절 선생은 시 짓고 말 타며 조부로부터 밤이 이슥하게 삼태성, 남극노인성 등 별자리를 배웠다고 했다. 여름 장마로 큰물이 지고 나면 멋진 돌이 많아, 아침이면 부지런히 강변에 나가 화단에 놓을 돌들을 골랐다고도 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광야>의 시상(詩想)을 낳았다는 ‘쌍봉 윷판대’로 기우러지고 있다. 강줄기를 따라 동쪽을 바라보니 검푸른 소(沼) 위에 장검처럼 솟은 바위 봉우리인 칼선대에 구름이 걸려 있다. 매서운 계절, 서릿발 갈라져 한 발 내디딜 곳도 없는 칼날 위라 무릎 꿇을 수도 없다는 <절정>의 긴장된 시상 그대로이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강변 모메꽃들이 저녁놀에 일제히 지는 것을 보니 이 꽃에 얽힌 충성스런 한 병사의 전설이 떠오른다.
옛날 어떤 전장에서 주력 부대와 앞선 돌격 부대의 길을 연결 해 주는 임무를 맡은 충성스런 연락병이 있었다. 그는 적군의 진격방향을 표시하는 임무를 완수하자마자 적군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적군은 이 병사가 만들어 놓은 표지판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아군이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보니 병사는 죽어있고 피 묻은 나팔 모양의 꽃이 표지판 반대쪽을 향해 피고 있었다. 아군은 그 꽃이 죽은 병사의 영혼일 거라고 생각하고 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군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로 이 꽃의 꽃말이 충성이 되었다.
백성을 일컬어 흔히 풀뿌리라고 한다. 탄압을 당하고 쓰러질지라도 풀뿌리처럼 줄기차게 일어나 삶의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민족은 관(官)이 아니라 자발적인 백성들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저력이 있다. 고려의 삼별초,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의 의병과 근세에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이 다 그러하였다.
뿌리뿐만 아니라 어린잎도 먹을 수 있는 모메는 춘궁기에 백성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고마운 들풀이다. 창이나 칼에 다친 상처를 쉬 아물게 하고 부지런히 꽃까지 피운다. 나라 잃은 백성은 모메꽃처럼 서로 끌어안으며 끈질기게 버텨야 했다. 요즘 진한 빛깔의 꽃들에 밀려 우리에게서 멀어졌으니 이 꽃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만약 내게 ‘우리 민족의 풀꽃’을 무엇으로 정하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모메꽃이라고 답하련다.
오늘따라 익숙한 이곳 산세와 강물의 흐름이 더 준엄하고 깊어 보인다. 이육사선생이 형극의 길을 넘어 죽음마저 극복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는 많은 작품까지 남길 수 있게 한 뿌리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선생은 차디찬 겨울에 북경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여 홀로 생을 마감했던 터라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모메꽃길’을 걷고 나니 “가난하더라도 인색하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며 모메꽃처럼 부지런히 살아 꽃을 피우라!”는 초인으로 산 한 독립투사의 유언 같은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참고, 모메꽃은 메꽃의 안동지방 사투리)
첫댓글 신원장님의 유익한 글에 요사인 마음의 허기를 든든히 채우고 삽니다. 보석처럼 귀한 동기. 아니 그보다 수천배 고귀한 벗! 늘 감사한 마음이 밤하늘에 수놓고 있음을 알아 주길 바라네. 굿데이
농담이라도 칭찬이 심하다! 잘 있재?
작가가 고향엘 갔으니 얼마나 글(생각)이 많이 떠 올랐겠노?
어릴 적 우리 주변엔 적당히 모래가 있는 언덕에 모메가 많았었다.
여름이 되기 전...주로 춘궁기 때 우리는 그 잎을 보고 모메를 찾아 뿌리를 끝까지 캐 내어 먹었지.
그게 메꽃이라고 안 것은 거의 십 년도 안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겨운 그 꽃의 이름....
사실 모메라는 말도 하도 안써서 잊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시절 고향생각들이 감자 줄기처럼 쏟아지네.
내가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육사선생님의 모든 작품을 읽었네.
시, 평론, 시론과 30여 편에 이르는 선생의 수필까지 모조리 읽었네.
이를 통해 나는 선비가 무엇인지 알았네!
선비란 학문만 깊어서도, 글씨만 잘 써서도, 높은 벼슬은 더욱 아니고
힘써 학문을 닦되 아는 대로, 배운대로, 옳은 대로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네!
세상에 아무리 성인이라도 선생보다 더 언행일치를 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했네1
인품과 학문, 사상 등에서 성인의 반열에 오르셨다는 걸 알았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당시 손문이 세운 중국 최고의 명문 중산대학 의학부에 다니다가 당시 세계적 문호인 노신을 만나서 제자가 되었다
현대의학을 배운 노신이 의사노릇을 안 하고 사회개혁을 위해 철학과 문학을 하는 것에 감동되어 독립투사의 길를 걸었다네! 여름 내내 선생에 빠져 참 행복했었다네!
우리의 희망 신종찬 원장이 날로 달로 해로 농익어 가는군요. 위인의 숙성과정을 정밀히 관찰하는 이 기쁨을 누가아리요. 영웅은 영웅을 내리고 위인은 위인을 내리지.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하게.
승호야! 니 왜 이르노! 그만해라! 친구끼리 잘 논다 칸다~!
가까이서 본 영웅은 없다. 멀리서 본 별이 아름답듯이. 저만치서 본 자네는 진정 빛나는 별이야. 가까이서는 반짝임을 못느끼지. 난 알아. 그래도 난 미인을 가까이서 느끼듯. 별을 가까이서 눈부시게 느끼고있어. 예언가의 진통이와. 난 사마천의 마음을 가졌어.
그래 유승호 야그기 참말인기라 유구무언일세! 자랑스럽고! 신박사가 글을 올리면 탐독을 하면서 댓글 달기가 어려워져...신박사글을 빠짐없이 스크랩해서 직원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아이들한테도 읽어 보라고 나누어 준다네...항상 잘 읽고있고.....엤성현들과 선비들의 학문과 정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 너무 좋고, 고마우이......
과찬이지만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격려로 알아듣겟네!
유춘동!역시 임동무실의 고매한 선비정신이 아직 잘 보존되었어.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거야. 늙어서도 우리끼린 무슨 일이있어도 행복을 알며 살겠네. 보석같은 친구들. 내가 잘 발굴할께. 하하하! 고맙네. 영웅들. 춘동거사.ㅈ
잘 읽었네. 아름다운 곳일세. 한번 가봐야겠어.
모메꽃이 뭔가 했더니 메꽃이군.
자네는 어질 적이 많이 캐먹지 않았었나? 유진오선생의 소설 <창랑정기>에 보면 서울 아이들도 많이 먹엇던데!
모메 유독 논두렁에 많아서 논두렁 파헤쳐서 우동사리 처럼생긴 하얀 속살 먹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통일벼 없었으면 아직 배고파 논두렁 파헤쳐 먹을걸 생각해봅니다
늘 반갑습니다! 아마도 그럴겁니다.
모메꽃은 나만 모르고 살았네. 내 반쪽도 잘 알고 있어서 저으기 부끄럽기도해 헛똑똑이가 따로 있는게 아니구나 했네. 보기만했지 알지는 못한 인생살이.깨침에 끝이 보이지 않으니. 안다는 소리는 절대 못하겠네. 학이 시습지면 불역 낙호아!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