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나해)
제1독서(신명 4,32-34.39-40)는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율법을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업적을 요약하면서(1,1-4,43) 감사의 뜻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규정과 계명들을 잘 지키라고 합니다. 이집트 탈출에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 이스라엘과 항상 함께해주신 하느님의 독특한 구원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하느님(야훼) 말고 누구를 찾겠느냐고 모세는 묻습니다. 신비롭게 불 속에 나타나신 하느님의 권능(탈출 3,2-6) 앞에 살아남은 백성은 이스라엘밖에 없지 않으냐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재하시는 유일신이시므로 그분께서 주신 계명들을 잘 지킨다면 후손들이 대대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는 더없이 위대하시고 자비하시므로 주님께서 주신 규정과 계명들을 잘 지킬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늘 안전과 평화가 함께할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마태 28,16-20)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마태오의 생각을 담아놓았습니다.
당신께서 묻히신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들(교회)에게 가서,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28,7.10). 열한 제자는 예수님의 분부대로 갈릴래아의 산으로 갔습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세 번 유혹한 곳(4,8), 홀로 죽음을 겪으신 예루살렘, 승천하신 곳, 하늘나라를 선포하신 곳(5,1), 두 번째 빵의 기적을 이루신 곳(15,29), 그리고 거룩하게 변화되신 곳(17,1-9)이 모두 산이었습니다. 마태오에게 산이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으로 당신을 구세주로 드러내신 곳입니다. 또한 갈릴래아는 하느님 나라가 처음 선포된 곳으로서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셔서 제자들보다 먼저 도착하실 곳이며(26,32),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하심을 확인해주실 곳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는데, 경배란 최고의 예를 갖춘 인사였기에 무덤에 달려간 여인들뿐만(28,9) 아니라 동방 박사들이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그랬고(2,11), 물 위를 걷다 의심하면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하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랬습니다(14,31-33). 예수님께서는 머지않아 제자들의 의심도 사라질 것을 아시고, 먼저 제자들에게 다가가시어(17,7)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산상설교 때에도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고(7,20),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것(권한)을 넘겨주셨다고 하십니다(11,25-2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통치자들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고관들처럼 세도를 부리지도 말고, 당신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어서(20,25-28) 모든 민족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한을 주시기 전에는 다른 민족이나 사마리아가 아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10,5-6)고 하셨지만, 이제는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마태오의 공동체(시리아의 안티오키아)는 예수님의 제자로 삼기 위해 먼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쳐 지키게 했습니다(7-80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물론 교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세례가 가능합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의 영이 내려오셨듯이(3,13-1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의 공동체는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을지라도 일찍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2코린 13,13; 1코린 12,4-5; 갈라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언제나 함께하신다(임마누엘)는 것은 마태오 복음 전체를 꿰뚫고 있는 중요한 믿음이라서(1,23; 9,15; 17,17; 18,20; 26장)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율법에 비추어 예수님의 계명을 가르치는 것(5-7장; 10장)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제2독서(로마 8,14-17)는 성령의 인도로 우리가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면서 외치셨던(마르 14,36) 이름이며, 모든 이에게 친숙한 이름인 “아빠, 아버지”로 하느님을 부릅니다. 예수님의 하느님이 곧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예수님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요한 5,18; 20,17)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예수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8,29)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신 아드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어야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로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요한 1,12),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어 죽음의 불안과 노예의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셨기(8,21; 2코린 3,17)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8,2), 우리 몸의 나쁜 행실을 죽이게 하시며(8,13)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녀로서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더불어 공동 상속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기고”,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5,2-3) 그래서 바오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광을 상속받기 위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이 무엇인지(필리 3,10-11), 또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콜로 1,24) 늘 깊이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1독서)와 그분의 아들(복음)과 하느님의 영(2독서)에 관한 말씀은 한결같이 성부의 백성으로서, 성자의 제자이며 형제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마태오의 공동체(시리아의 안티오키아)는 아주 일찍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면서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셋이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하나의 실체, 하나의 본성을 지니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오로처럼 이 거룩한 미사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빈다.”(2코린 13,13)고 세 위격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로서 “만물 위에” 계시고,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계시며, 성령 안에서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
삼위일체의 교리는 인간의 머리로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신비라서(로마 11,33-34) 단지 유비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위일체께서 나누시는 사랑에 참여하기 원한다면(2베드 1,4) 먼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과 올바른 신앙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 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으며, 성령께서 우리의 희망이시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 이외에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신비와 지혜에 탄복하고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아멘.”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영광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시련을 희망으로 바꿀 줄 알기에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단지 세례를 받았다고 은총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언해주시는 성령께 의탁하면서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해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야만, 그리고 무엇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을(로마 12,2) 때에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지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방효익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