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할로윈이다.
어메리칸 베이비 만큼 지독하진 않지만, 역시 잉글리쉬 베이비 일 수 밖에 없는 기숙사의 틴에이저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더니 잠잠하다. 한 두어시까진 나, 고국 나이 스물 넷도 저물어버림에 이제 통곡조차 하지 못하는 코리안 레이디를-이젠 코리안 ‘걸’이라기에도 멋적은-을 좀 내버려두겠지.
믿을 수 없는 2004년이 간다.
어디다대고 매달려야하나. 울고 불고라도해서 붙잡고 싶은데 어딜가서 그래야할 지 모르겠다.
태평양도 건너고 대서양도 건너고 미친듯이 비행기를 타댄 지난해 덕에
나이가 오락가락해져서, 믿을 수 없는 스물 넷이 가버린다고는 전혀, 머리만으로도 상상 불가.
몇달 전까지 몇살이냐는 물음에 아직도 풋풋함이 조금은 남아있는 “스물 둘”을 자신있게 외쳤으니까, 한국의 “스물 다섯”을 준비하란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너무나 많이 비극적으로.
아, 그냥 이렇게 이십대 중반으로 꺽이는구나…쯤으로 뭉뚱그려 조금만 우울해지련다.
나이가 드는게 이런거구나..라는, 인생의 한 부분을 또 이렇게 외국에서 깨닫는다.
‘유학’은 전공이 아니라 인생을 가르친다고 했었던 말, 끝없이 공감한다.
한국에서…그 많은 다양한 경력의 아르바이트들…
그 시절을 회상하며 드는 두 가지 생각.
#1. 무던해진다는 것.
스물, 스물 한둘..
일주일만 넘기고 나면 더 이상 어쩌지 못할, 견딜 수 없는 극도의 어떤 일상성 같은것이 몰려왔다.
뭐랄까, 일 자체를 견디지 못함도 아니었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좋지 않았던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이 못내 어찌할 수 없으리만큼 미안했었으니.
통제되지 않는 시간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또한 무덤에서도 타협되지 않을 내 부친에게서 최소한은 독립해야 했지만,
그러나 누리고 싶은 것들 못누리며 살만큼의 무던함도 없었기에 시작했지만,
그 최소한의 반복조차 견딜 또 다른 ‘무던함’ 역시 갖지 못했던 것이다.
내 안의 그 터질듯 한 무언가는,
내 젊었던 삶의 원동력이긴 했으나, 결국 어디서도 ‘한달’이라는 최소한의 기간마저 버티지 못하게 했던 열병같은 것이었고,
그리고 그 뒤엔,
언제고 다시, 원하는 일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스물 넷 지금,
예전에도 지금도 한국이라면 결코 고려대상조차 되지않았고 상상해봐도 않을,
학교 대형 카페 서빙라인을 미국에서 두 달,
지정된 오프도 없이 매일을, 마지막 한달은 일주일에 6일을 아침 저녁 더블 쉬프트로 일했다.
몇 번 사고치고, 페이퍼에 짓눌려 서너번 뺀 것을 제외하곤 놀라우리만큼 다 나갔다.
하이웨이를 타고 한시간 반 넘게 수업을 들으러 다녔으면서도.
영국으로 건너와서…아주 노동의 신성함에 꽃을 피우는 중이다.
8월 말쯤 구한 후 며칠만에, 며칠이나 버티려나 생각했던 싸구려 모텔 아침 서빙과 룸청소는 11월을 바라보는 오늘까지 런던에서 기차를 놓치는 진짜 사고 탓에 한 번을 펑크 낸 것을 제외하곤 늦게 간 일도 거의 없다.
잡 센터에서 들어왔던 일용직들과 직접 어플리케이션을 내서 구한 학교의 미친 잉글리쉬 바 일로 3일간 40시간 넘게 일하는 괴력을 펼쳐도 봤고,
이젠 좀더 ‘무던해질’ 일이 필요했던 탓에 9월 중순쯤 시작한,
한국에선 손님으로도 가지 않았던 샌드위치 바의 일 또한 한 번의 지각 없이
우스우리만큼 성실하게 차곡차곡 스케줄표에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다.
물론 전에도 그랬지만,
아무리 그 곳에서 내가 내 인생의 몇 퍼센트를 할애한다해도,
나에겐 이곳이 당연히도 종착점도 내 본질도 아니며 그저 나는,
내 생의 많은 순간을 비워놓고 살고선, 지금처럼 이렇게 2004년을 조금만 연기하자고 울고불고하진 않으련다고.
꽉 채우고 살았다고 자신하고도 시간의 신 앞에가 간청을 할 때에,
그 신들은 내가 잠자고 있었던 시간, 무수한 삽질들의 시간을 저쪽 쓰레기더미 어디에선가 꺼내에 비디오에 넣어 보이곤 나를 돌려보낼테니.
그리고, 안다.
내가 아무리 똑같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가정해도,
그나라 아이들과 내가 한 자리에 지원했을 때 누가 선택될지는 명백하다.
물론, 어딜 가서도 일자리를 못구하겠다는 두려움은 아직 없으나 한국에서만큼 부릴 배짱은 없어야한다는걸.
#2. 멸망을 가져올 그것.
“자존심은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오만이 앞서고 수치심이 뒤따르니.” 역시 이젠 이름 한 부분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어떤이가 한 말을 십대 초반부터 지금껏 이리 문구만큼은 토씨하나 빠지지 않게 머리에 담고 있으나 그 오만과 수치심이 무언지 이제야 이해한다. 그리고 멸망을 가져오리라는 말까지도.
스물 한살때인가 고급 바에서 일을 했었다.
스물 셋인가 넷이던 유치원 선생일을 한다던 언니가 있었다.
“넌 어리니까 이런 일 해도 괜찮지. 이 나이 돼봐. 자.존.심. 상해서….낮에 유치원 가면 선생님이라고 엄마들이 얼마나 굽신대는데!”
그리고 아주 친하게 지내는 두 살 위의 언니가 있다.
“그 흔한 과외 아르바이트 한 번 안해보고 살았는데, 스물 여섯에 길에서 설문 부탁하는데 거절 당하니 원 자.존.심. 너무 상하더라.”고 쓴 글을 봤다.
난, 결코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대해선 단정적인 말은하지 않는 편이다.
손톱밑에 든 가시가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말로해선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다치게하기 싫어서 말은 안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따위 코웃음에도 날아갈 것 같은 일들에 상해버릴 ‘무른’ 자존심이라면 쓰레기 통에 갖다 버리라고 말하고싶다.
흔히들 ‘난 자존심이 강해서…’라고 하는데, 언어도단이다.
강한 자존심들이 왜 그렇게 우습지도 않은 것들에 상처를 받는단 말인가.
‘그건 난 자존심이라곤 약해빠져서…’라는 말의 위악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가끔 사람들은,
그래, 너 잘났다. 도대체 니가 자존심 상하는 일은 뭐냐?라고 묻는다.
2000년 수능에 망하고 대학에 줄줄이 다 떨어지고도, 뭐 대학 떨어지는게 별건가.하는 나한테,
하나 둘 떨어질땐 “우리딸은 이렇게 굳세서 좋아”하시던 우리 엄마도
다 떨어지고도 아무 생각 없이 있는 날 보곤 “도대체 너한텐 뭐가 별거냐!!”라고 화를 내셨다.
첫째로,
대학이란것에 흥미도, 욕망마저도 없었기에 2000년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2001년 내 한 해를, 내 온 스무살의 뜨거웠던 모두를 다 바쳤던 그 하늘,
공군사관학교 신검에서 사유조차 희귀한 “척추측만 20도”로 떨어지고 나서,
우리 엄만 내게 더 이상 아무말도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 내게 엄한 사람이었던 우리 엄마에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그 때 처음봤었다.
그리고 재수한다던 나를 그렇게 반대했으면서,
삼수를 의미하는 병원 재진료에 필요 없다는대도 말없이 따라나섰었다.
둘째로,
자존심은 언제 상하느냐.고…
미국에서 첫학기였다.
우스운 학교가 토플 점수를 각 파트별로 요구했고,
나는 웬만한 대학원 요구 조건의 총점을 넘기고도 한 파트에서 1점이 모자란 관계로
근 반년 넘게 술독에만 빠져 지낸 상태로 입국해서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걷기도 어려운 정신으로 시험을 치러야 했고 당연히 점수는 어학코스를 들어야 하는 걸로 나왔다. 어쨌든 졸업 요건에 외국어 세컨 레벨이 있고, 외국 학생일 경우 ESL을 한학기 들으면 면제된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 점수는 협상을 벌여서 재시험을 보거나 연기가 가능한 거의 통과 단계의 점수였지만 그런 사정을 몰랐던 탓에, 제기랄 그냥 들으라는대로 다 들었다.
이놈의 학교 저널리즘 스쿨에 어드바이징을 받으러 갔다.
저널리즘 스쿨 앞에 뭐라고 뭐라고 이름이 길게도 붙는 별볼일 없는 학교안에서 좀 자존심이 센 과다.
지금 내 아카데믹 어드바이저, 환한 웃음과 친절한 도움으로 유명하다는 Lynne.
마주 앉은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친절하고, 두번째 찾아갔던 또 한 명의 언더 담당 재수 없던 Peterson처럼 아예 사람을 무시하는 스타일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자존심이 팍 상해버렸던 때는 대놓고 대충대충 사람을 대하던 Peterson을 만났을 때가 아니라 Lynne을 만났을때.
첫마디가 “Oh….ESL!”
그 다음부터 내가 그 과에 ‘지원’을 하려면 들어야 하는 ‘잉글리쉬’과목만을 열심히 설명해 주면서,
이 모든건 그 ESL이 끝나야만 들을 수 있는 것들이라며 “IF you HOPEFULLY pass the exam at the end of this semester….”
씨발.
아주 환하게 웃으며 그따위 식으로 말을 하는데,
그 언어 코스 들으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 바보들이랑 여기 앉아있는지 절대 이해 안되서 미칠 것 같았는데,
한국 사람들 일단 한 번 걸려들면 절대 한학기만에 못나온다는 그 학교에선 “늪”이라고 사람들은 떠들었지만, 그건 한국사람들끼리 술이나 마시며 놀러다니는 나태한 이들의 변명꺼리일 뿐이었다.
재시험, 재검토 없이 바로 통과되었고, 더 이상 언어코스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색깔부터 다른 enroll form과 수학 플레이스먼트 테스트 결과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내 보기엔 ‘수학’이라는 이름조차 민망한 산수과목을 세개나 들어야한다고 그녀는 그 전학기에 말했었지만 플레이스먼트 테스트는 내게 수학 전공자들의 세컨레벨을 들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건 그 수학 플레이스먼트 테스트 결과를 듣고 나서다.
니가 math 105나 math 115들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이 테스트 결과는 나한테 math121을 들으랜다.
이거 뭐냐? 라고 물었다. (숫자가 올라갈 수록 높은 단계고 테스트 결과는 들을 수 있는 가장 낮은 과목을 제시한다.)
“OH!!! ARE YOU ELIGIBLE?!!!!”
믿을 수 없다는 그 목소리. 믿을 수 없겠지. 10에다 0.1을 곱하면 1이 되는걸 죽어도 모르는 새대가리 미국애들로 가득찬 저널리즘 스쿨이니까.
내일 당장 자기 만나러 오랜다.
어제 약속 잡으려고 어시스턴트한테 전화했더니 너 시간 없다던데?
내일 시간이 많이 있진 않은데 언제부터 언제 사이에 오면 만날 수 있단다.
갔다.
미국 이민 온지 8년 된 한국애가 “니가 아무리 난리쳐도 A는 안나와”라고 했던
잉글리쉬 시리즈들을 가르쳐주며 실상 우리 스쿨에 들어오려면 총 평점도 중요하지만 얘네들이 제일 중요하단다. 글고 한국에서 가져온 학점들은 인정 안한단다. 근데, 넌 such a good student라서 괜찮을거란다. 제기랄.
04 가을학기, 지원요건이 갖춰진 학기인데, 영국엘 와버렸다.
오기 전날 아침, 지원서를 Lynne책상에 던져놓고 와버렸다.
첫학기 성적, 안좋았다.
시골구석에서 지쳐갈대로 지쳐가고있었고, 온갖 잡다한 사고들로 나는 끊임없이 피곤했다.
C도 하나 있었고 B가 판을 쳤다.
그리고 돈 좀 아껴보겠다고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들은 여름학기가
아직 ARTS form에 올라와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메일이 왔다. 여름학기에 들은 그 두 과목은 모두 다 지원 필수 과목이다.
그런데, ‘잉글리쉬’과목에 대해서만 묻는다. 들었냐고, 들었으면 학점은 뭐냐고.
응…학점이 많이 안좋지? 다 B야. 잉글리쉬 과목들만 빼고. 걔네들만! A 받았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너는 우리의 자랑스런 $#^%$&^%$^ 스쿨의 일원이 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지금 영국에서 마지막 졸업요건 잉글리쉬 코스로 완전 삽질 졸업생 과목하나를 듣는다.
여기서 이걸 듣고 가면 이제 더 이상 나한테 “잉글리쉬 퍼스트!”따위의 개소리는 아무도 안하겠지.
졸라 장황하게 길어졌지만,
나한텐 이게 자존심이다.
너무 길어져서 뭘 쓰려고 했었는지 생각도 안나고,
벌써 열한신데, 나는 또 읽어야 할 것 한 페이지도 못넘겼고,
제길, 프레젠테이션과 에세이는 밀려오고,
난 그만 죽어버리고만 싶고…!!
으흐~ 유니님, 추카가 늠 늦으셨어요. 이미 영국오기 전에 빼도박도 못하게 꺾이고 왔다는..ㅜㅜ 판판이 잘 놀다가 남들은 다 전공이라서 한 과목만 판 졸업생들 과목 두개가(난 다 교양인데ㅜㅜ) 담주에 죽어라고 같이 프레젠테이션이네요. 행운..보다는 명복-0-;;을 빌어주심이..쿨럭~
첫댓글 혹시 생일이세요?? 그렇다면 축하~ 영국.. 떠나고 싶습니다.. 집에가버리까.. 헤여~ 왜이리 일도 안되고 깝깝한지.. 원..
저두 당장 해야하는 report가 산더미인데..아직두 시작두 안 했네여.. 글 잘 읽었습니다. 그냥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글 style을 본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 그리고...그 자존심(님이 갖구 계시는게 진짜 자존심일거 같습니다)..오래오래 간직하시길..
화링! 무슨 영화시나리오 본거 같네요.
으흐~ 유니님, 추카가 늠 늦으셨어요. 이미 영국오기 전에 빼도박도 못하게 꺾이고 왔다는..ㅜㅜ 판판이 잘 놀다가 남들은 다 전공이라서 한 과목만 판 졸업생들 과목 두개가(난 다 교양인데ㅜㅜ) 담주에 죽어라고 같이 프레젠테이션이네요. 행운..보다는 명복-0-;;을 빌어주심이..쿨럭~
冥福이 아닌 明福을 빌어요~~~~ 잘하실거에요~ 홧팅
꺽이다뉘.. 아직 창창한뎅.. 닭알이 한판이어도 꺽였다는 표현 안쓰는뎅.. 화이팅임다.. 저도 낼까지는 무슨일이 있어도 보고서 인트로 다 써서 주기로 하구.. 인터넷질이랍니다.. 미쳤죠.. 아무래도 쫒겨나길 바라는 심정인듯.. 한국가고파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공감도 가고 .. 하이틍 님 글 정말 잘읽었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