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나면 피가 나오는데 피의 성분을 아십니까? 백혈구와 적혈구 혈장및 혈소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백혈구는..... 색깔이 없지만 우리 몸에 바리어스가 침입하면 처리하는데 침입자를 마치 가슴에 꼭 껴 안 듯 꼼짝 못하게 하여 녹여 없애 버린다고 합니다.
적혈구는..... 폐로부터 산소를 풍성하게 받아들여 몸 안 기관(뇌 근육 심장등) 전달하는 일을 하는데 적혈구는 어디 줄 대가 있나 살피다가 산소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 즉시 나누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몸 안에서 120일 144KM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오래된 피를 비장(지라)혹은 간에 전달하고 일생을 마친다고 합니다.
우리몸 안에 백혈구의 감싸는 사랑, 적혈구인 나누어 주는 사랑처럼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십자가에서 다 쏟아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실수로 고개들 수 없는 베드로에게 사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처음 갈릴리에서 만났을 때 그 이름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하시며 3번씩이나 부르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3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런 베드로의 답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러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신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수로 만신창이가 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씩이나 사랑이란 표현으로 질문하시면 베드로도 3번씩이나 예수님을 향해 사랑합니다. 고백합니다. 이처럼 사랑이란 단어를 주고 받으며 무려 7번이나 대화 중에 나오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사랑이란 단어 우리는 밥 먹듯이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넣지 않으면 노래를 만들 수 없고 사랑이란 단어를 넣지 않으면 드라마가 되지를 않습니다. 사랑이란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 사랑은 우리가 흔히 쓰는 사랑타령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은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사랑입니다. 이사랑은 먼저 다가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상대방이 누구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 사랑도 아닙니다........ 무엇을 잘했다고 해서 먼저 사랑하는 차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먼저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5절 시작을 보십시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실수로 만신창이가 된 베드로를 찾아가신 것에서부터 말씀이 시작됩니다. 지금 베드로의 영적 상태는 도저히 예수님을 뵐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견딜 수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자신을 감춘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죄책감이 있을 때 고민하고 감춘다고 감추어지겠어요!!~~~ 주님 앞에서는 감출 것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따라 다니며 살았던 3년 동안 실수의 흔적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말 용서 할 수 없는 3가지가 있습니다. 이 실수는 안해야 될 실수였습니다. 3가지 어떤 실수였습니까?
첫 번째......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실 때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죄 가운데 기도하지 않는 죄가 큰 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밤새 기도하셨기에 시험을 이기시고 십자가를 졌지만 기도하지 않았던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깨어 기도하지 아니한 죄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 질렸습니다.
두 번째.......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으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부인할 때 그 장소가 멀리 떨어진 거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서울에 계시고 나는 광주에 있으면서 여기서 나는 예수님 모른다며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한 곳에 같이 계셨습니다. 예수님 재판 받으시기 위해 제사장 집 뜰 안에 계시고 베드로는 천천히 뒷걸음질하며 뜰 밖에 있었으니까 좀 멀어진 것 뿐이지 베드로 바로 예수님 가까이 있습니다.
이 때 뒷걸음질한 베드로를 여종이 보고...."당신이 갈릴리 사람이요 예수님의 제자 맞지요 아∼ 아니라고“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두 번째는.... 맹세하고...... 세 번째는 저주까지 했어요. 이처럼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거야 말로 씻을 수 없는 실수입니다. 정말 큰 죄를 졌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실수를 소개하면 오늘 본문 말씀 21장 1절 이하에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다른 동료들을 선동하여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혼자 가면 갔지 왜 다른 동료들까지 선동해서 데리고 갑니까?
저 같으면 성질이 못돼 몽둥이라도 들고 두들겨 패야 시원할 할 것 같습니다. 어찌 세상 직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까? 불신앙적인 자세입니다. 베드로 큰 실수 큰 죄를 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보십시오 의기 양양 고기를 잡는다며 날이 새기까지 그물을 이리 던지고 저리 던지고 했지만 모두 허탕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예수님...... 베드로에게 찾아오십니다. 아무런 책망과 저주를 하지않습니다. 그져~~ 저들이 당장 필요한 거 아시기에 얘들아 고기가 없느냐?............ 배 오른 쪽으로 그물을 던져라.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잡힌 겁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올려 세어보니 153마리가 잡혔으니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저들이 고기 잡고 있을 때 예수님은 미리 아침 조반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피곤해 지친 제자들을 아침 밥상으로 초대합니다. 마치 자식 다루듯이 애들아 아침밥 밥자!! 떡과 생선을 저들에게 나누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런 바보 같으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한마디로 실수투성이 제자들을 다 눈감아 주시며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천국방언처럼 다! 모르고 그랬는지 뭐!~~ 용납하고 받아 드리는 아가페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아침식사 후 수제자 베드로에게 따로 불러 질문하십니다. 15절 다 함께 다시 읽습니다.
15절.....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여기 지금 아침 식사를 나눈 6명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가페 사랑으로 물어보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 내가 주님을 사랑하신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답변하지요......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랑은 헬라어로 쓰어진 신약에 나타난 “사랑” 이란 단어는 단어 자체가 다릅니다. 아가페는 조건 없는 최고 높은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 사랑을 말하는데 스토르게는..... 핏줄기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필리아 사랑은..... 친구 같은 사랑입니다. 수평적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연애하는 사랑입니다. 잡아당기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종류가 다 다르지요
우리가 쓰는 사랑은 한 단어로 문장을 만들 때 다양하게 쓰여 집니다. 예를 들면 부모를 사랑합니다...... 나라를 사랑합니다...... 형제를 사랑합니다...... 친구를 사랑합니다...... 애인을 사랑합니다...... 음악을 사랑합니다..... 꽃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한 단어를 넣어 다양하게 사용해도 다 문장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타난 사랑은 달라요
그런데 첫 번째 예수님 질문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최고의 사랑 최상급의 사랑입니다...... 베드로에 6명보다 나를 최고로 사랑하느냐 입니다.
어떤 시인이 그랬답니다. 세장 안에 있는 새를 보며 말하기를 네가 볼 때 만 울어야 한다. 이렇게 말했다는데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두 번째도 예수님 아가페사랑으로 질문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제자들과 비교하는 사랑이 아니라 베드로만 가리키며 “ 네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질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베드로 너 자신을 부정하고 나만 사랑 할 수 있느냐 두 번째 질문에도 한 결 같이 예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답변 한 것입니다.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이렇게 확인하셨으면 되는데 세 번까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는 예수님 아가페가 아니고 이젠 필리아 사랑으로 질문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친구처럼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가혹하게 예수님 물으시니까 베드로 대답이 근심하며 좀 어색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세 번이라는 숫자가 자신에게는 트라우마처럼 깊은 상처가 있었을까요? 내가 예수님 3번 예수님 부인 했었는데 이것은 설교자인 개인의 생각입니다. 그만큼 베드로에게 죄책감이 큰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보세요 여기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 세 번째 베드로의 대답 속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라고 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디베랴 바닷가에 실수투성이로 있는 저의 모습을 다 알고 계시온데 어찌 주님이 저의 중심을 모르시겠습니까?
베드로는 한마디로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고개를 둘 수 없을 정도로 대답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며 자신을 비운 것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채움에서 비움이 아닌 철저히 십자가에 못박겠다는 고백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베드로의 이런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베드로를 확인 하시고 베드로에게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렇습니다.!! 최고의 사랑 아가페사랑을 우리가 소유한다면 우리 모두는 내게 부여된 복음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 베드로의 미래를 보셨을까요? ...... 분부한 사명대로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제 교회를 돌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양을 칩니다. 그것이 평생 수제자 베드로가 해야 할 주님이 주신 분부였습니다.
18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사명자 베드로!! 부활하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교의 길을 가기까지 주님이 주신 양을 치면서 자신과 똑 같은 실수 투성이 성도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이렇게 용서하셨는데~~ 누구를 용서 못하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평생 목양 터에서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사랑으로 어린 양들을 먹이고 치리하며 사명을 감당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분부한 명령을 잊지 않고 있기에 자신이 쓴 복음의 편지 벧전 5:2-3...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아마 이 말씀을 편지할 때 베드로는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지 않았겠습니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2번) 그 때 나는 주께 대답 했네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내마음 아시리....♪♩
성도여러분!! 2000년 전 부활하신 우리예수님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가페 사랑으로 질문 하신 것처럼
오늘!! 내가 서 있는 곳이 베드로처럼 실수의 자리에도 괜찮습니다....... 근심의 자리...... 병고의 자리...... 걱정의 자리에 주님 다가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가페 사랑으로 물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주님께 아가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