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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조계산으로 등산을 가는 날이다.
그런데 무슨 옷을 입고 가야 되나 고민이다.
입은 그대로 얇은 옷을 입고 가도 되나, 아니면 한겨울 옷으로 갈아 입고 가야 되나,
아직 12월도 멀었고, 작년(2012.12.1)에 비하면 1주일이나 빠른데 옷 걱정을 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최고다.
두꺼운 한겨울재킷을 입고 밖에 나가보았다. 금방 땀이 줄줄 흐르고 갑갑증이 난다.
1주일 차이지만 11월과 12월은 천지 차이다. 바로 들어가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降仙樓)
작년보다 딱 1주일 빠른 조계산 등산, 아침의 느낌 그대로 날씨는 춥지 않고 선선하고 좋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선암사-장군봉-연산봉-굴목재-홍골-송광사 이다.
그러나 나는 보리밥을 한번 먹어보기 위하여 코스를 보리밥집 코스로 바꾸었다.
선암사-큰굴목재-보리밥집-배도사대피소-송광굴목삼거리-천자암-송광사운구재-송광사 로.
혼자 가는 길이라 조금 두렵기도 하고, 남이 안가는 길이라 약간 설레기도 하고,
구간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어느 구간을 빼고 어느 구간을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런지 바쁘지 않아도 될 곳에서도 바쁘고, 무조건 빨리 가야 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마음이 급하여 꼭 둘러보고 오는 고사리, 취나물 등 산나물 파는 머니들도 그냥 지나쳐 오고,
(三印塘.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스님이 다리에 선 채로 입적을 했다는 승선교도 멀리서 힐끔 쳐다보고 그냥 지나치고,
낙엽 되어 뒹구는 이 계절에 홀로 새파란 저건 또 무엇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삼인당이다.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점이 있는 독특한 모양으로 선암사 사적에 따르면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三法印)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것은 변화여 머무른 것이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안내문에서
(선암사 뒤깐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역시, 남다른 길을 가자니 마음이 급하여 선암사 경내는 들어가지 않고 바로 출발하려는데,
회원 한 분이 아직 나올 시간이 이른 듯한데 벌써 절에서 나오길래 "깐뒤는 보고 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깐뒤가 어디 있는데요?" 하고 되묻는다.
아이구 참말로, 뒤깐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데는 선암사 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 새 잊어버렸나,
"갑시다. 깐뒤는 보고 가야지요" 하면서 가던 길 돌아서 회원 모시고 선암사 깐뒤 보러 들어왔다.
정말로, 뒤깐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데는 선암사 밖에 없다. 모두들 사진 찍는다고 정신없다.
그뿐이냐, 확실히 알려면 직접 들어가서 볼일을 봐봐야 안다면서 전부 들어가서 볼일 다 보고,
(선암사 뒤깐 문화재자료 제214호)
깐뒤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주학리에 있는 선암사의 통시(화장실)이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목재건물이고, 볼일 보는 곳은 문이 없이 칸칸이 칸막이벽만 쳐져 있고,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큰일을 보고 절을 나가 다리를 지나면 그때서야 철푸덕 하고 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통시 깊이가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다. 한 2m 이상 되지 싶다.
(선암사 뒤깐앞에서)
뒷일 보고 나오는 사람이 무슨 전장에 나가는 장군 같습니다.
뒤깐앞에서 이렇게 용감한 사람은 처음 보겠습니다.
하여튼 선암사의 뒤깐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체험까지 하고,
(야외학습장 가는 길)
다시 선암사를 나와 모두 조계산의 정상 장군봉을 향하여 올라가고,
나는 그들과 반대방향 정상을 뺀 보리밥집을 향하여 올라간다.
(臨仙橋)
선암사에서 장군봉까지는 2.7km,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는 6.5km 이다.
길이 얼마나 좋으냐 나쁘냐, 오르고 내리는 경사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6.5km라는 숫자만 가지고는 어쩌면 내가 먼저 송광사에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야외학습장 가는 길)
야외학습장 가는 길은 주로 학생들이 많이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길이 편편하고 좋다.
(야외학습장 편백나무 숲)
나무도 어쩌면 저렇게 잔가지 하나 없이 하늘만 보고 쭉쭉 뻗어나가는지?
나도, 하늘만 보고 쭉쭉 뻗어나가는 편백나무처럼 앞만 쳐다보고 걸어간다.
(노각나무)
노각나무를 만났다.
껍질이 맨들맨들한 것이 언제보아도 예쁘다.
(계곡가 골짝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보리밥집으로 가는 길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골이다.
그래서 위로 하늘은 보여도 먼데 산 너머 산을 볼 수 있는 조망은 없다.
(물이 참 곱게 들었다)
나는 보리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매우 싫어한다. 잘 씹히지도 않고 목이 까끄러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리밥을 한번 먹어보겠다고 보리밥집을 택한 이유가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이 내가 조계산 간다고 하니까 "보리밥 먹으려 가야 되는데" 라며, 보리밥 자랑을 했다.
쌀밥도 아니고, 콩밥도 아니고, 잘란 보리밥 그까짓 게 뭐라고 보리밥 먹으러 조계산까지 가?
별꼴이야, 참 이상한 식성을 가졌네, 내장이 보통 사람과 다르나, 라며, 흘려 듣고 말았는데,
조계산이야기만 나오면 보리밥 먹어야 된다 하고, 이정표도 보리밥집으로 가라고 가르쳐 준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일단은 보리밥을 한번 먹어보자.
내가 직접 먹어보고 맛이 있는지 분위기가 어떤지 알아야 그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오늘은 보리밥 먹을 거라고 도시락도 싸지 않고 물만 한 병 넣어서 짊어지고 나왔다.
(나에게 김밥 주고 간 여인)
그런데 보리밥집이 너무 멀다. 아리랑고개 넘어가야 되나,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선암사 돌아서 야외학습장 지나 평지에 바로 보리밥집이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지금 시각 12시28분, 배가 고파 죽겠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퍽 엎어질 것 같다.
고프기 전에 먹으라고 했는데 밥이 있어야 먹지, 주저앉아 있으면 그대로 굶어 죽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보리밥집까지는 가야된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한 발 한 발 올라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어떤 여인이 그런 나를 보고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요?" 하고 묻는다.
아무 생각없이 "배가 고파서요" 라고 했더니 "이거 먹고 가세요" 라며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준다.
그 여인은 아침에 선암사에서 보리밥집까지 갔다가 다시 선암사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한다.
오면서 김밥을 두 줄 사왔는데 그대로 있으니까 한 줄씩 나누어 먹자며 한 줄을 들어내 주면서,
보리밥집까지 가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되는데 그래가지고는 절대 넘을 수 없다며 먹고 가란다.
세상에, 이렇게 진지한 사람을 만나다니, 농담을 싫어하는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진지한 사람을 만나서 감사하고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내 마음 너무 슬프다.
속은 허해도 겉으로는 펄펄하게 보였으면 좋겠는데 실제보다 더 허하게 보였다는 것 때문에.
아! 슬프다. 정말 너무 슬프다.
하루를 굶었나, 이틀을 굶었나, 겨우 한 끼 굶고 그렇게 힘을 못 쓰고 기운이 없어 보이다니?
그 여인의 덕분에 김밥 먹고 기운은 차렸지만, 몸에 근기가 그렇게 없나, 서글퍼기 짝이 없다.
(큰굴목재)
산을 하나 넘어야 된다는 그 말에 김밥 한 줄을 다 먹었더니 배도 차고 오르막도 차고,
정말 그까짓 보리밥이 뭣이라고 보리밥 한번 먹어보려다가 사람 성질 다 배리겠다.
큰굴목재에 오니 등산객들이 무더기무더기 모여서 쉬고 있길래 나도 한숨 쉬어갈까 하다가,
(보리밥집 가는 길)
김밥도 한 줄 먹었는데 쉬기는 또 뭘 쉬어, 쉬지 말고 부지런부지런 가야지,
산길은 혼자지만 차는 모두 같이 타야 되는데 나 때문에 시간을 지연시킬 수는 없잖아.
(보리밥집)
야, 보리밥집이다!
저 밑에 보리밥집 평상이 보인다.
(보리밥 메뉴)
음 보자. 보리밥, 야채전, 도토리묵, 동동주는 6,000원이고, 맥주, 소주는 3,000원이고,
음료수, 생수는 1,000원이고, 5,000원짜리는 귀찮아서 그랬나 없애버렸고, 셀프서비스이고,
전화번호는 왜 지웠을까, 오지도 않으면서 바쁜데 전화하여 엉뚱한 질문이나 하고 그런다고?
어제, 내일도 영업하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보리밥집이 하나 더 생기고, 자기는 옛날 하던 곳에서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하더니, 밑으로 옮긴 그 사람이 여기서 하다가 자리를 밑으로 옮겼나 봐.
(보리밥)
보리밥 한 상 받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보리밥이 아니다.
보릿덩어리 꺽꺽 씹히면 어쩌나, 보리밥 말고 쌀밥은 없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되겠다.
목적이 보리밥인지라 확실히 알고 가려고 어떤 나물들이 들었나 하고 젓가락으로 뒤져 보았다.
콩나물, 시금치나물, 배추나물, 무생채, 상추겉절이, 부추겉절이, 나물만 6가지, 계란프라이만 하
나 딱 얹져주면 금상첨화겠는데, 산속에서 그것까지 바랄 수야 있겠나, 감사하게 먹어야지.
김밥을 조금 남겼어야 했는데 산 하나를 넘어야 된다는 말에 다 먹어버렸더니 음식 맛도 모르겠다.
(숭늉 끓이는 가마솥)
비빔밥은 여름이 좋지, 겨울에 밥을 비벼 먹으니 비비면서 밥 다 식어버리고,
추운데 밥까지 써늘하여 떨리기만 하더니 뜨끈뜨끈한 숭늉 한 그릇 먹고 나니 속이 술 풀린다.
내 생각인데, 여름에는 비빔밥을 하고, 겨울에는 김치에 뜨끈뜨끈한 국밥을 했으면 더 좋겠다.
(보리밥집 비닐하우스 홀)
나는 보리밥도 별로, 비빔밥도 별로, 막걸리도 별로지만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 많더라.
이런 비닐하우스가 두 동 있었는데 두 동 다 자리가 빽빽하도록 손님이 많았다.
(보리밥집)
나는, 왼쪽 끝에 까만옷아저씨 앉아 있는 평상, 저 평상에서 혼자 보리밥 한 그릇 먹고,
간 김에 야채전 맛도 보고 왔으면 했는데 배가 불러서 야채전은 다음에 먹어보기로 했다.
(배도사(裵道士)대피소)
먹었으면 또 가야지, 산에서는 가는 게 일, 혼자 살랑살랑 걸어서 배도사대피소까지 왔다.
배도사대피소라고 기둥에다 배도사대피소 내력에 대하여 만리장서로 적어놓았다.
그러나 글이 너무 길고 글씨도 깨알이다. 퍼뜩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모르겠다. 배도사대피소.
(굽은 나무)
선암사에서 보리밥집까지 오는 데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없었는데,
보리밥집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없다.
대신, 땅은 수분을 적당히 머금고 있어 길이 폭신폭신하고, 낙엽길은 싸락싸락 하고,
(송광굴목삼거리)
지금시각 14시17분, 하산시간은 16시30분, 천자암 1.6km, 송광사 2.7km.
바로 송광사로 내려가느냐, 천자암을 둘러서 송광사로 내려가느냐, 갈등이 생긴다.
시간이 모자랄 것 같지는 않은데 월악산헬기사건 이후로 무슨 일이든 겁부터 먼저 난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혹시라도 시간 안에 못 내려가면 나 하나 때문에 여러사람 피해를 보게 된다.
나만의 욕심으로 여러사람에게 피해를 주다니, 천자암 포기하고 바로 송광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한 3분 정도 걸었을까, 여기까지 와서 천자암을 빼다니, 도저히 섭섭해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힘이 약해졌어도 그렇지, 내년보다는 올해가 안 낫겠나, 가던 길 돌아서 천자암으로 갔다.
(하얀 눈송이버섯)
흰눈을 맞고 자란 버섯일까, 버섯이 하얀 눈송이처럼 생겼다.
갈까말까 망설이다 가는 길이라 마음이 매우 급하지만 그래도 볼 건 보고 가야지.
나무에 붙은 하얀 눈송이버섯이 얼마나 예쁘던지 퍼뜩 버섯 구경 좀 하고,
(조계산에 눈 왔다)
먼데서 보니까 숲속에 목화송이처럼 하얀 봉오리 저게 무엇인가 했더니 눈이다.
부산에서는 보기 힘든 눈, 녹다 만 눈이 응달 중에서도 응달인 바위틈에 콕 붙어 있다.
(천자암 가는 길)
내 앞에 아저씨 한 팀 지나가고, 내 뒤에 젊은 부부 두 쌍이 따라오는데 그 중에 한 여자가 뚱보다.
몸이 무거워 뒤뚱뒤뚱, 쉬면 안 된다며 남자가 뒤에서 밀고, 그러나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편하다.
이 젊은이들마저 속력을 내어버리면 깊은 산속에 홀로 남게 되어 무서워 떨었을지도 모르는데,
젊은 뚱보가 다리 아픈 나를 앞지르지 못하니 나이 많은 내가 더 잘 걷는 사람이 되었다.
(길이 폭신폭신하다)
천자암 가는 길도 길이 참 좋다.
솔솔 오솔길에 땅에 수분이 적당이 있어 쫀득쫀득하고, 퍽퍽 걸어도 착착 올라붙는다.
기암괴석에 아름다운 경치는 없어도 길이 좋아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편한 길이다.
(여기는 천자암, 송광사 3.5km)
(천자암)
야, 드디어 천자암에 도착했다.
(천자암)
깊은 산속 조용한 골에 자리 잡은 아담한 암자이다.
(천자암 나한전)
서쪽집 나한전은 마지막까지 해를 받아 환하고,
(쌍향나무 천년기념물 제 88호)
이 나무가 바로 그 유명한 천자암 쌍향나무 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한다.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사람이 밀거나 한결같이 움직이며,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
다는 전설이 있다.
(쌍향나무 천년기념물 제 88호)
쌍향나무, 정말 신기하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절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완전히 죽은 지팡이가 다시 살아난 것도 신기하고,
두 나무가 붙어서 엿가락처럼 꼬여서 자라는 것도 신기하고,
저렇게 꼬여서 영양분이나 제대로 공급 받는지 그것도 신기하고, 여러가지로 신기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나무에 손을 대기는커녕 나무
근방에도 못 가게 막아놓고 어떻게 손을 대 봐, 극락가는 길을 알고도 못가는 것이 쌍향나무다.
(천자암 종각 앞)
저 나무는 죽은 나무인가, 살아 있는 나무인가, 앙상한 나뭇가지가 뇌속의 실핏줄 이다.
겨울에는 해가 빨리 진다. 특히 산속의 겨울해는 점심만 먹고 나면 넘어가버린다.
이제 해도 서산에 기울고, 해가 지니 마음도 급하고, 많이 걸었는가 배도 슬슬 고프고,
(송광사운구재)
아까 젊은 부부팀 외 더 이상 내 뒤에 따라오거나 추월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끝인가?
마음 급해져서 쉬지도 못하고, 한 손에 사과 들고 한 손에 칼 들고 깎아 먹으면서 걸어간다.
(배추)
아, 배추다. 배추밭이 보이니 이제 다 내려왔는가 싶다.
이 골짝에는 송광사 밖에 없으니까 송광사 배추밭 아니겠나, 배추 참 맛있게 잘 되었다.
생강 마늘 갈아 넣고, 찹쌀풀 끓여서 젓국에 버무려서 척척 치대어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내년 여름 입맛 없을 때 한 포기씩 꺼내어 찬물에 살랑살랑 흔들어서 쌈 싸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저기 회장님 오신다)
나는, 내 뒤에 아무도 없어서 내가 제일 늦은 줄 알고 헐떡헐떡 정신없이 내려왔더니,
저기 다리에 회장님 오시는 것 보니 내가 제일 늦은 게 아니라 내가 제일 빠른 것 같다.
(2013년11월23일토요일. 은행잎)
샛노란 은행잎 낙엽 되어 뒹구는 모습 보니 내 마음 쓸쓸하다. 속절없이 가버렸다.
사는 게 바빠서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다가 무엇인가 느낄만하니 세월이 없다.
1년 12달 중에서 11월이라는 달이 제일 쓸쓸하다.
가을엔 떠나지 말고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라고 하더니 정말, 차라리 하얀 겨울이 푸근하다.
노랫말처럼 낙엽 지는 가을은 너무 쓸쓸하다. 낙엽지면 설움이 더 한다.
(송광사 주차장에서 마지막 한 사람을 기다린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바쁜 걸음 치지 않게 죽어도 해가 긴 날 죽어야 되겠다고.
겨울해는 너무 짧다. 아까도 말했지만 점심 먹고 나면 해가 넘어가버린다.
사람들은 이 짧은 해에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산행을 했을까?
마음도 쓸쓸하지만, 이제 머리도 낡아서 한참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면 도로 톡 튀어나온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부르고 배울 것이 많은 송광사는 생략,
이름 모를 보라색 열매도 보고, 향이 진한 은목서 향도 맡아보고, 길가에 잡초도 보고 내려왔다.
경관이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보리밥집, 쌍향수, 폭신폭신한 길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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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전히 나나님의 산행기는 맛이 있습니다. 모두 새로운 산행기 기다리는 것, 알고 계시지요. 항상 산행지를 선택하면 먼저 나나님의 산행후기를 먼저 찾습니다. 산행기를 읽으면 미리 그 산에 간 것 같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계속 산행하시어 후기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읽어 주셔서.
이렇게 산행기를 맛있게 읽어주는 분이 계셔서 글쓰는 사람은 보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바쁘고, 때로는 게으름이 나기도 하지만 꾸준히 한번 써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