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6:12-15 / 성령께서 오신 목적
(요한복음 16장)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묵상/요 16:12-15)
◆ 진리의 성령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비교 불가한 이유는 '성령님'의 존재다.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실존해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냥 존재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 계셔서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인간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진리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는, 완벽한 교사가 없다.
모두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가르칠 뿐이다. 인간의 가르침은 모두가 오류를 포함하고, 실수투성이다. 루터나 칼빈처럼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성경을 신뢰함은 단순한 인간의 학문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영적 미숙함 때문에 진리에 이를 수 없다.
영적 이해력은 지적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은 아무리 완전한 진리를 말해줄지라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완벽한 교사이신 예수님조차도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함을 아시고, 당장 모든 것을 가르치지 않으셨다(12). 사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영적인 진리를 다 담을 수 없다.
미숙한 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크게 염려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사 모든 것을 가르치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함은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믿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눈을 여셔서 하나님 말씀의 기이함을 보게 하시고, 찬양케 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치는 모든 교사는 깨달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선생이 아니다. 형제들이 진리에 이르도록 돕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선생은 '성령'이시다. 설사 내가 성경을 가르친다 해도, 나는 칠판을 지우고, 분필을 갖다 놓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집중하도록 만든 학급 반장 정도임을 잊지 말자. 친구들보다 조금 더 지식이 있다고 해서 선생 행세를 하면 안 된다.
또한 성령께서는 장래 일을 알리신다.
여기서 언급하신 장래 일이란 예언 사역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개인의 장래사라기보다는 인류의 장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들이 성령을 통해서 이것을 계시받아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요한계시록도 그중의 하나다.
장래 일을 알리시는 성령의 역사(work)는 성경 기록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자기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소련으로부터 고토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1970년대부터 행로를 준비시킨 스티브 라이틀이나, 일제 강점기 시절, 하나님께 지시받아서 1939년에 일본 국회로 몰래 들어가서 일본 패망을 경고한 안이숙 여사가 좋은 예다.
비록 우리 삶에서는 그러한 대단한 예언을 체험하지 못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하시고, 다가올 상황을 준비케 하신다.
◆ 성령 사역의 목적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교파에서는 지금이 성령 시대이니 성령을 찬양하고 성령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잘못되었다.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 성령께서는 바로 그런 손가락의 역할을 감당하신다.
우리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성령께는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고 성령께서 섭섭해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내 얼굴을 칭찬했다고 내 손이 섭섭해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역이용해서 성령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해도 상관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하는데, 그것도 오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삼위 각각의 역할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면 양태론이 된다. 한 사람이 집에서는 아버지, 직장에서는 사장, 교회에서는 장로 역할을 하는 것을 삼위일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사상을 양태론이라고 하는데, 이단사상으로 정죄되었다. 삼위일체는 우주 어디에도 없는 존재 양식이므로 우리 이성으로는 이해 불가다. 잘못된 것은 분별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진리가 삼위일체다.
어떤 교회에 예배 참석하러 갔다가 그 강대상 앞에 붙여놓은 플래카드를 보고 놀랐다. 그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은 성령님이시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명시되어 있다(엡 1:22, 골 1:18).
예수님 자리를 성령으로 돌리는 것도 미혹 중에 하나다. 그러한 일을 성령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 고유의 이름을 갖지 않으심은 그의 역할이 예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다. 베니 힌이 쓴 '안녕하세요 성령님'라는 책은 한 때 성도들에게 베스트셀러였지만, 성령을 왜곡한 책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존귀히 여기고 순종해야 할 분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예수님 자리에 놓으면 안 된다. 베니 힌의 말을 따르면 마치 신비를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미혹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얼굴이 성령을 향하도록 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하도록 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오셨다. 이것을 잊지 말라. 마귀는 어떡해서든 우리의 얼굴을 예수님에게서 다른 것으로 돌이키게 하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성부 하나님께만 돌리게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피조물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잘못되었다.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성령 하나님께 돌리게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과거의 왕, 역할이 끝난 목자로 전락시켰다. 역시 잘못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 모두 우리가 경외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위치와 역할을 무시하고 함부로 순서를 바꾸면 결국 사이비, 이단이 된다.
성령에 충만해지고 싶은가?
예수님을 높여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곳에 성령께서 임재하신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11,12) 아멘, 아멘.
[출처] 요 16:12-15 / 성령께서 오신 목적|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