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장을 가다 - 요크모크 겨울시장 4세기 넘게 이어진 스웨덴 북부의 전통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21.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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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장을 가다
요크모크 겨울시장
4세기 넘게 이어진 스웨덴 북부의 전통
“요크모크 겨울시장 주간은 여러 면에서 보기 드문 경험이다. 사람들이 시장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호기심 어린 고요함이 온 마을에 드리워진다. 마을은 온통 눈에 보이는 기대감으로 들썩인다. 마을 트럭들과 로더들은 분주하게 장터와 주차장,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밀려올 인파를 준비하는 곳곳에서 눈을 치운다. (중략) 마을 주민들은 갖가지 준비로 분주하다. 요리를 만들고 빵을 구워야 하며, 전시할 그림들을 표구하고 순록 가죽을 손질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를 멋지게 보이려 하는 까닭에, 태닝 살롱, 미용사들과 의류상들은 손님들을 맞느라 부산하다. 수요일 저녁에 시장 준비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하며 손님들은 식당과 나이트클럽에 가득하다. 목요일이 되면 시장이 열린다.”
- 마리아 베딘(Maria Vedin), <요크모크 - 오랜 역사를 거쳐 온 자연과 문화(Jokkmokk – natur och kultur genom tiderna>(1999)에서
요크모크 겨울시장 장터 풍경 <출처: (cc) Let Ideas Compete at Flickr.com>
세계 도처에서 많은 전통 시장들이 흥망성쇠를 겪는 동안 요크모크 겨울시장(Jokkmokks vintermarknad)은 경제와 사회의 변화에 맞서 4세기 넘게 전통을 지켜내고 있다. 북극권에서 가장 오래된 이 시장은 1606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정해진 시기에 열렸으며, 지금도 계속 번창하고 있다.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주민들이 지혜를 모아 살아 왔던 시간 동안 형성된 시장의 역사적 역할과 의미는, 1.5킬로미터 길이로 이어진 가판에서 200여 명의 상인들이 다양한 지역 특산품을 선보이는 모습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겨울시장의 기원
사프미(사미 인 거주 지역) 지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4개국에 걸쳐 있다.
스웨덴 북부의 대표적인 지역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요크모크 겨울시장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선주민인 사미(Sámi)인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사미 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수가 적은 편인 선주민으로, 현재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영토에 속한 사미 인 거주 지역인 사프미(Sápmi)에 70,000여 명이 살고 있다. 한때 야생 순록 무리를 따라 유목 생활을 했던 사미 인은 17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순록을 방목 형태로 사육하기 시작했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요크모크 겨울시장이 선보이게 되었다.
중세 시대 동안 사미 인의 경제생활은 순록을 비롯한 동물 가죽과 가죽 가공품 교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사미 인의 교역은 당시 북유럽의 무역권을 지배했던 독일 북부의 한자 동맹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한자 동맹은 서쪽으로는 잉글랜드 런던, 동쪽으로는 러시아 노브고로드에 재외사무소를 두기까지 했으며, 라인 강에서 발트 해, 북해에 걸쳐 무역을 관장했는데, 대형 선박을 이용해 스웨덴을 비롯한 북해와 발트 해 지역에서 모피와 대구 등의 지역 특산물을 매입해 스칸디나비아 반도 이남 지역에 팔았다. 사미 인이 만드는 가죽 가공품은 인기가 좋았다.
14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한자 동맹은 15세기 말에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동시에 세력을 확장하던 스웨덴 왕국과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왕국은 북극해의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다퉜다. 스웨덴 왕국은 북부 국경을 확보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서 세금을 걷기 위해 사미 인의 거주지인 랍마르켄1)을 더욱 강력히 통치해야 했다.
18세기 말의 랍마르켄 지도. 오늘날의 핀란드가 포함되어 있던 당시 스웨덴 왕국의 북부 영토를 볼 수 있다. <출처: (CC BY) Edaen @Wikimedia Commons>
요크모크 겨울시장은 1602년 근대 스웨덴 왕국의 시조(始祖)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 1496~1560)의 셋째 아들이자 당시에는 공작(Hertig)이었던 스웨덴 국왕 칼 9세(Carl IX, 1550~1611)가 현재 스웨덴 북부 라플란드(Lappland)와 베스테르보텐(Västerbotten), 옘틀란드(Jämtland), 그리고 핀란드 북부의 라피(Lappi)에 이르는2) 랍마르켄 지역에 시장을 도입할 것을 골자로 하는 포고령을 내림으로써 1605년에 열리기 시작했다. 이 시장은 사프미 전역에 거주하던 사미 인들의 교류 장소였으며, 지역 문화 활동이 더해진 지역 축제로 발전해 왔다.
칼 9세는 핀란드를 포함한 스웨덴 북부에서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 사미 인을 포함한 북부 주민들에게 세금을 걷으며 사법 질서를 유지하고, 루터파 국가교회의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려는 목적에서 시장을 세웠다. 연중 가장 추울 때 랍마르켄에서 시장을 열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사미 인들은 순록 떼를 이끌고 숲에 있는 겨울 거처로 모였는데, 이러한 생활방식에 맞추어 그들은 12~1월에는 모피로 쓸 순록 이외의 동물을 사냥했고, 2월에는 모피를 비롯한 특산품을 거래했다. 얼어붙은 수로들 역시 겨울 혹한기에 시장이 열리는 이유라고 할 수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근대적인 도로 체계가 갖추어지지 못한 스웨덴 북부에서 얼어붙은 수로들은 상인, 관리와 국가교회 성직자에게 중요한 운송 및 이동 통로가 될 수 있었다.
순록과 사미 문화
요크모크 겨울시장의 순록
요크모크 겨울시장의 핵심이 사미 문화에 있다면, 사미 문화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순록이라 할 수 있다. 극한(極寒)의 환경에서도 자라는 순록이끼 등의 지의류(地衣類)를 주식으로 삼는 순록은 북부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 콜라 반도라는 극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미 인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맡아 왔다.
사미 인의 야생 순록 포획 역사는 후기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기원전 1000년~기원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동안 순록 가죽과 기타 순록 관련 제품들은 다른 종류의 동물 가죽과 함께 곡식, 직물, 금속제 도구와의 물물교환 형식으로 가깝게는 스웨덴의 다른 지역으로, 멀리는 중부 유럽까지 수출되었다. 늘어나는 수요는 야생 순록 무리의 감소를 초래해, 점차 포획보다 계획적인 사육이 필요하게 되었다.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반에 북부 노르웨이에 창궐했던 흑사병 역시 순록 사육의 필연성을 가속하는 요인이 되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이전의 수렵 기술로 순록을 사냥할 기술자들 역시 사라지면서, 생존자들은 수렵 대신 사육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순록 사육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순록 사육 자체가 사미 인 다수에게 생계 수단으로 기능을 하지는 않으나, 여전히 그들의 생활에서 순록은 중요하다. 순록을 통해 사미 인은 고기, 가죽과 기타 부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순록의 젖 역시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사미 인은 여름에 암컷 순록을 모아 젖을 짠다. 순록은 운송수단으로도 역시 이용이 가능하다. 순록이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과거에는 단순히 고기나 젖을 얻기 위한 사육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순록을 길들여야 했다. 원래 사미 인에게 순록을 길들인다는 말은, 운송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썰매를 끄는 순록 <출처: (cc) jsandb at Flickr.com> | 순록 썰매 경기 |
원래 요크모크 겨울시장은 1월 25일 경에 시작해 2~3주 동안 열렸다. 그러나 오래 열리는 시장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2월 첫 주에 열리는 것으로 개장 기간이 변경되었다. 사미 인과 사미 문화는 수공예품 판매뿐만 아니라, 사미 전통 음악과 전통 의상 전시를 비롯한 각종 관련 행사를 바탕으로 겨울시장의 주요 구성요소로서 시장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화려한 색상의 전통 의상을 입은 사미 인의 모습은 순록과 함께 방문객들의 관심을 모으는 시장의 대표적 특색이었으며, 근래 시장의 인기 행사로 자리잡은 순록 썰매 경기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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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 인들의 수공예품(허리띠, 칼, 바늘집) <출처: (CC BY-SA) Thorguds @Wikimedia Commons> 사미 인들의 전통 신발 <출처: (cc) Let Ideas Compete at Flickr.com> |
요크모크의 사미 문화교육센터는 매년 사미 수공예 문화 관련 전시와 수공예품 판매로 많은 방문객들을 끌어들인다. 겨울시장 방문객의 ⅓이 사미 수공예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센터를 방문한다. 시장 거래에서도 수공예품, 전통 음식과 가죽 제품을 비롯한 사미 문화 관련 상품들이 여전히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요크모크 겨울시장은 일반 상인들과 지역 수공예품, 그리고 사미 문화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참여한다. 참여 상인들의 수는 200여 명, 가판의 수는 450~500여 개에 이른다. 2005년에는 400주년을 맞으면서, 76,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전환점이 된 350주년 기념행사
20세기 들어 이 지역의 교역 형태는 급격한 변화를 거쳤다. 우편 주문과 상점들이 등장하고 철도망과 도로망이 생겨나면서 전통 시장들이 많이 사라졌다. 요크모크 겨울 시장은 살아남았으나 지역 인구가 증가하면서 시내와 교외의 소매상점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1904년에는 요크모크 상인들이 겨울시장의 폐쇄를 요구해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기도 했으나 상인들의 요구는 묵살되었다.
겨울시장의 모피 <출처: (cc) Let Ideas Compete at Flickr.com>
20세기 전반까지는 여전히 순록을 비롯한 여러 동물 가죽 교역이 지배적이었다. 사미 인들이 순록 썰매에 가죽, 물고기와 새고기를 잔뜩 싣고 와 상인들에게 팔았다. 정착민들은 뇌조, 들꿩 같은 새고기, 그리고 얼린 생선을 팔러 오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나사(羅紗) 직물, 사미 인들의 전통 천막에 쓸 천, 밀가루, 막대설탕, 사탕, 커피, 담배, 털실 등이 거래되었다.
시장은 20세기 전반에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렸다. 일요일에는 목사 주재로 세례식과 장례식, 결혼식과 예배 등이 거행되었다. 또한 시장은 옛 친구와 새 친구를 만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1950년대까지도 시장의 오랜 전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동물 가죽 거래는 다양한 품질의 가죽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요크모크 시내 호텔에서 이루어졌고, 가죽의 악취는 상인들이 거래를 하며 마시던 화주 냄새와 뒤섞이고는 했다. 물건 값에서 결혼 계획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만사가 논해지던 카페에서 적지 않은 거래가 진행되었다.
요크모크 겨울시장의 상징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요크모크 기초지자체는 시장의 전통 유지가 지역 여행 산업의 발달에 미치는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기초지자체 관광청이 시장 운영의 책임을 맡으면서 놀이기구와 기타 여흥시설을 준비했으며, 시장이 열리는 목요일과 금요일 동안의 행사들을 관장했다. 관광청의 제안으로 1955년에 개장 35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기로 하여 행사를 총괄할 특별 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시장의 상징을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이때 제작된 로고가 오늘날에도 사용된다. 이 상징은 오른손에 길쭉한 천을 들고 순록 앞에 서 있는 사미 전통 의상 차림의 여성이다. 여성의 뒤에는 순록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서 있다. 이 상징은 철상(鐵像)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요크모크에 있는 스웨덴 사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포스터와 배지 같은 홍보물 역시 이때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1955년의 겨울시장에는 100명 이상의 상인들이 모였고, 방문객이 10,000명에 달했다. 지역 상인들이 상점 앞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의 전통 의상을 입고 손님들을 맞았다. 시장은 예년보다 하루 더 열려서 목, 금, 토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이때 <요크모크 겨울 시장 1605~1955>라는 350주년 기념 책자가 나왔고,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시장이 열리는 기간 동안 완성되었다.
개장 350주년 기념행사는 요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