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이 고상한 정신인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물리치는 것이 고상한 정신인가. 죽는 것,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음의 번뇌도, 육체가 받는 고통도. 그렇다면 죽고 잠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열렬히 찾아야 할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햄릿)
이 죽음의 미학을 아로새긴 것 하나로 인도와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이다.
Lufthansa는 1시간 이상을 기체 결함으로 지체한다. 1년 만에 다시 보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익숙하고 동선도 발에 읽다.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에 승무원이 할머니 수준에 가까운 반면 프랑크푸르트-런던 히드로 노선에는 생빼이 영계들이 탑승한다.
이것도 유색인종 차별인가. 맘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한다.
부시의 푸들 노릇을 한 대가로 테러를 2번씩이나 당한 탓에 입국수속 자질구레하게도 물어본다. 그러게 누가 그딴 짓 하랬니.
조상이 부끄럽지도 않냐. 인천서부터 옆자리에 동행한 청년은 무역회사 과장으로 3년마다 한 번씩은 한달 휴가를 쓰기로 한다는
방침에 따라 영국행이었는데 Hammersmith 역에서 민박집으로 전화를 하는 도중 주위를 배회하던 한국처녀가 아는 체 하면서
1시간 이상을 같은 민박집을 못 찾고 헤매던 중이란다.
한참을 기다려서 주인집 아들이 마중을 나와 민박집으로 들어가니 안주인 입이 댓 발이나 나와서 여행길의 첫인상을 구겼다.
만만치 않은 여정임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탄이었다. 이유인즉 이 한국 처녀가 도미토리로 예약했는데 혼자 쓰게 되었으니
1인실 방값으로 내라는 것이었고 입금도 확인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입금했는데
자기들이 확인하지 않고서는 순진한 처녀에게 생떼를 쓰는 것이다. 우연히 동행한 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방부터 배정해서 잠자게 하는 게 순서라고 언성을 높여 엄중한 한마디. 그 처녀는 그 집에서 예약일정을 단축하고 하루 밤만 자겠다면서
단단히 토라졌다. 3년간 에어텔 상품으로 다니다가 수십만 원씩 부가되는 호텔 싱글 차지가 아까워 이 번부터 교민이 운영하는
민박과 현지 호스텔을 병행하기로 한 첫 걸음부터 잡음이다.
다음 날은 반드시 이 집을 나가서 호스텔로 가리라 다짐하고 우선 순위 목적지인 케임브리지로 간다.
그 처녀는 해외 여행이 처음이라면서 같이 동행하자고 하여 다 다음 날 파리로 갈 유로스타 표를 우선 끊고 케임브리지 순회하기로.
표 파는 여직원 석연치 않다. 표 값이 너무 비싸니 싼 표로 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없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왕복표를 끊으면 싼데 가는 표만 쓸 수 있다고 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반값(59 유로)이기에 샀고
나중에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돌아오는 표는 비싼 값에 다시 팔수 있어 지들로서는 여간 이익이 아닌 셈이다.
투어버스로 케임브리지를 도는데 그 광할함에 녹색삼림에 입이 벌어진다.
캠 강가에 1209년부터 옥스퍼드 학생 일부가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된 이 대학에 에라스무스가 르네상스 학문을 열고 뉴턴이 수학을
가르친 곳이다. 공부를 하려면 이 정도 해야 허고 대학을 나왔다 할라카믄 요 정도 명함은 돼야 쎈쓰...
동양의 한 구석탱이 100년 안팎의 대학을 나와 행세 꽤나 하는 거 보면 가관이다. 영국에서 대학 못 나온 인간들은 어케 사는 가 몰러.
국민 언니의 나팔수는 어디 대학 나왔노. 개나 걸이나 졸업장 주나. 상태 바가믄스 주라.
조금이라도 배울라치면 약자를 제물로 삼아 한껏 거들먹거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쓰레기 청소부가 그렇게도 깔끔하고 당당한 유럽은 분명 별천지다.
투어에서 돌아 나오는 길 중간 쯤에서 하차하여 배를 채우고 처녀와 헤어졌다. 대학 구내 강변에는 삐끼들이 보트 타라고
호객행위가 끈질기다. 걸어서 역까지 가는 중에 드넓은 잔디 밭이 펼쳐지고 학교를 파한 중학생들이 공 찬다.
부럽다. 한국에 서울에 요기 10분의 1 만한 거라도 가까이 있음 날이면 날마다 공 찰 텐데.
여기서 북으로 좀 더 가면 폭풍의 언덕 워서링 하이츠가 있을까. 언제 다시 오마.
underground를 이용하여 빅토리아 역에서 내려 버킹검 궁으로 간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존하시는 곳이다.
별 하는 일 없는 왕족들을 먹여 살리는 영국인들 신통하다. 그러니 햄버거 하나 맘 편히 사먹을 없을 정도로
물가가 비싼 게 당연지사. ‘한 집안에 게으른 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 가문은 점점 고귀하게 되었다’(인간불평등 기원론)
근위병 교대식 시간은 지나서 별 볼거리는 없고 근처 Green Park을 어슬렁거리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사이 풀밭에 가까운
잔디에서 축구하고 사랑한다. 남과 여와 대지가 일자로 엎어져 뒤엉켜 미동한다.
언젠가처럼 다리가 풀려 흐느적거린다. 1859년에 제조되었다는 저 멀리 국회의사당 시계탑 Big Ben, 웨스터민스터 사원 쪽을
바라보면서 템즈 강변으로 간다. 시계가 정확한지는 미처 보지 못하고 뭉친 다리를 끌다시피 걷는다.
테스에서 겉만 번지르한 빅토리아조와 기독교를 까부신 토마스 하디를 국장한 시인의 묘지가 웨스터민스터에 있다.
사산인 줄 알고 버렸다가 목숨을 건진 하디의 심장은 고향 교회 아내의 곁에 묻었다고 한다.
을씨년한 가을비에 한없이 착잡했던 작년 체코 프라하의 블타바 강물 이상으로 템즈 더럽다. London Eye에 불이 들어오면서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의 서녘이 부엿하다.
추운 밤바람을 잠바로 가리고 트라팔가 광장 분수대 옆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도너츠 두 개와 히드로 음료로 기력을 회복하고
숙소로 간다. 민박을 탈출하여 호스텔로 가려던 의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눈을 붙이고 등짝을 누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콩나물국에 밥 말아 먹고 워터루로 간다. 명절날 서울역처럼 입추의 여지가 없이 대륙으로 나가는 행렬이다.
출국장 심사관이 안녕하세요 하는데 못 알아들을 뻔 했다. 유로스타에 몸을 실어 도버해협을 해저터널로 통과하여 파리에 입성.
레옹이 법 공부하러 엠마를 떠나온 파리, 그 후 마담 보바리 엠마는 육체의 길, 나락으로 접어들어 끝내는 비소 먹고 자살 한다.
파리, 로마는 보고 죽으라. 런던은 니 맘대로 하세요. 성당을 개조해 클럽으로 운영하는 limelight를 못 본 것이 아쉽다.
자세하게 올려놓은 약도를 출력해와 무난히 민박집을 찾아 드니 정원이 넓고 약간은 낡은 2층 고택이었다.
짐을 풀고 1804년 나폴레옹 대관식을 한 노틀담 성당으로 간다. 지하철을 나와 고개 들어 그 웅장함에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산들한 세느강 바람에 런던에서의 찜찜함을 날려 보낸다.
1163년 한 사제가 시작하여 170년 동안 지었다는데 이 자들의 진득함은 고려자기 구워 내는 그 이상이 있다. 공기에 쫓겨 철근 다
빼먹고 돌연 무너지고 날라 가고 하는 우리네 일상에 비추면 요거이 하나 기특하다. 이 건축물의 조각조각 상상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늘로 향한 절대신에 대한 발원심일 것이다.
조지 부시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힘을 숭상하고 그 배후에 신을 빙자하고 항상 마귀 새끼들을 만들어 죽여 없앤다.
신이 사라진 오늘에도 유효하게 그 위세만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 힘을 보러 온 세상에서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믿음과는 무관하면서도 힘에 대한 원초적인 애착은 깊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어 줘도 제대로 용트림 한 번 못하고 쪼그라드는 건 또 모니. 지지자를 믿지 않고 잔꾀로만 밀어 붙이니.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잠꼬대 하더니 왼 발정이 났는지 소연정 대연정 난리 부루스다. 연정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망구 니 생각이다. 바탕이 다르지 않니. 군바리들 쳐들어 올 때 니 혼자 도서관에 있었다더만
그래 고작 한다는 것이 연정 지지나 하고 앉아 있냐. 그게 발랄한 거라고? 맹랑하구나.
옆차기도 꼭 2단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니.
노틀담의 부주교가 열여섯 에스메랄다에 눈독 들이다 겨우 인간의 형상을 한 외눈박이 앙가발이 콰지모도에게 당하여
골로 가신(빅토르 위고 노틀담의 꼽추) 이 성당 길 건너 뜰에는 노년의 남녀 걸인들이 서로 떠들고 난리다.
프라스틱 어쩌구 하면서 가슴을 만져 대며 희롱하는 걸 보니 뽕브라를 했다는 것인지. 이들도 콰지모도와 같은 사랑인가,
한낱 하류인생인가.
에펠탑을 보고 걷다보니 퐁네프다. 혁명 200주년에 줄리엣 비노쉬가 애매한 사랑의 이름으로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던 그 다리다.
회백색으로 깨끗하다. 우린 언제 혁명 한 번 해보고 다시 비웃어 볼까나. 염병할 사랑의 종말은 죽음일까 환생일까.
‘완전한 절망 속에서 죽기를 희망하였을까’ 비노쉬 커플은 둘 다 한다. 물로 뛰어들고 다시 올라온다.
죽으러 가는 길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겨. 인연일랑 맺질 말고 맺은 거면 벗고 가라.
5년 동안 250억 투자하여 영화를 완성하는 동안 투자한 부호들이 여럿 나가떨어지고 이 다리에서 3주간 5분 분량의 필름을 찍었단다.
여기 어디 미라보 다리 아래 사랑인지 흐를 텐데.
루브르까지 오니 해가 진다. ‘희미한 황혼의 혼돈’ 문은 닫히고 이집트 관에 불이 켜있어 쇠창살 사이로 디카 들이대다.
이 놈들은 남의 것 뺏어다가 지들 것처럼 장사해먹고 주인들한테 돌려주기는커녕 사용료 한 푼 내지 않는다.
그 조상들 덕택으로 후손이 먹고 산다. 우리 거도 안 줄려면 사용료라도 내그라.
그라고 지발 남의 나라 왕궁에 와서 양주 까고 꼬시르고 하지 마라. 내가 느그들 궁에 와서 파전에 막걸리 퍼 마시고
꽁초 쑤셔 박으면 기분 조컨나. 6억인지 8억인지 그 돈 있으면 외국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책자라도 비치하고
한국어 안내 오디오라도 한 대 더 갔다 노크라. 왜 중국하고 일본은 있는데 우리는 엄노 말이다.
정신 나간 짓 좀 고마하고 파리가 궁에서 술 파티해서 인간들이 이리 몰려 들건나.
걍 답사나 계속하는 게 어떠노.
발이 무겁고 종아리가 탱탱해진다. 내일을 기약하고 민박에서 푹 잠자고 아침식탁에서 지들끼리만 소곤거리는데 우리말이 아니다.
한국인 친구가 동행했다가 이들만 남겨두고 먼저 간 뒤로 한국인들과는 별 대화가 없었던 앳된 일본인 여성들이다.
딱딱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여 말을 붙이니 영어도 곧 잘하고 자연을 좋아하여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갈 거라고 하면서
야니를 좋아하냐고 묻길 레 음악이 깊이가 없고 심플하다고 하니 웃는다. 뿌리가 없고 아주 옛부터
대륙에서 받아먹던 버릇이 고대로 남아 베껴서 작게 만들어 팔아먹는 재주는 있어도
항시 근원에 대한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대동아공영이니 탈아론이니 난무하고 반성은커녕 십계명처럼 조잘거리는 것이다.
이 자들 교육시키고 달래는 것도 한계다. 구제불능이다. 그냥 내버려 두자.
니들도 욘사마 좋아하냐고 물어서 또 한번 같이 웃었다.
쉬운 단어 몇 개만으로 서로 말이 통하는 걸 보고 그 동안 말이 없던 한국인 친구들이 적이 충격이었나 보다. 1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고 번 돈 800만원으로 70일간 여행 온 친구는 민박을 벗어나 자기도 호스텔로 가보고 싶다고
세느 강에서 우연히 만나 내가 묵은 호스텔을 알려 달란다. 2층 침대에 장기간 묵고 있는 친구는
성악 지망생으로 이태리에 유학하려다가 몰려오는 한국인들을 따돌리려고 학제를 개편하는 바람에
프랑스에 유학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한국인들 등살에 긴장하는 지구촌의 단면을 목도.
우리 자질이 뛰어난 건 이제 세상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이런 민족이 좁은 땅떵거리 안에서
서로 이리저리 엉겨 붙고 고저 한 탕 한 재산 축적에만 골몰하여 목하 곪는다. 삶고 쪄서 진액 다 빠진다.
한 해가 달리 노쇠해지나보다. 유독 배낭이 무겁다. 내년부터는 캐리지로 다닐까 부다. 민박을 나와 몽마르뜨 언덕 아래
호스텔로 간다. 체크인을 하고 3인실 방에 들어서니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광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샤크레 쾨르 성당(예수 성심 대성당)이 창에 가득 영롱하다. 1870년 보불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이것이 정녕 25유로로 숙박에 아침까지 주는 곳이란 말인가.
이 길을 나서기 전에 로마행 저가 항공권부터 구매해야 하는데 Easyjet은 노선에 없고 호스텔 프론트에서 30분짜리
인터넷 사용카드를 사서 Ryanair 홈페이지에서 구매하는 과정이 종결이 되질 않아 온 동네방네 돌아다니다 무슬림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겨우 찾아 항공권까지 구매는 했는데 출력이 되질 않아 아이디만 메모했다.
한국에서 인터넷 예매(39.99 유로)할 것을 미루다가 여기서 3배 정도 비싼 값(131유로)에 구매하니 원통하나 기차로 로마까지는
15시간 정도를 가야하는데 2시간 정도면 가니 이만큼으로 만족할 밖에. 날은 덥고 허기는 지고 기운이 나질 않는다.
눈에 띄는 대로 맥도날드에 가서 민생고 해결하고 몽마르뜨 언덕길을 오른다.
파리하고도 몽마르뜨라고 하지만 기념품점 물건들이 하나같이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의 산물들이고 질도 시원찮다.
제대로 된 물건 하나 고르기 힘들 지경이다. 성당을 끝까지 오르기 힘들어 다시 길을 내려가 Metro를 이용하여 에펠탑으로 간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에펠이 제작한 탑으로 하루에도 수억 버는갑다. 길게 늘어진 잔디가 초록이다. 현지의 미끈한 총각이
외지에서 온 아가씨를 이리저리 다루고 연인들이 딩굴고 개들이 주인 따라 나서고 무장한 군인이 어슬렁거린다.
S'il vous plait, Champs Elysees, ou, loin? 하고 물으니 프랑스어 알아듣느냐고 묻는다. 몇 달 공부한 거 가꼬 더 이상 오바하면
안 된다. 군바린데도 영어 잘한다. 여기서 멀어 투어버스 이용하는 게 좋다고 한다.
잔디가 끝날 즈음에 연인 둘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여 부탁을 들어 주고 여인을 잠시 빌려 나도 같이 찍는다.
그 꼴이 우스운 모양이다. 한참을 깔깔거린다. ‘나는 파리를 수없이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늘 마음이 설렌다.
파리의 거리를 걷노라면 뭔가 모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해진다’(달과 6펜스)
탑 위로 올라가는 것은 저녁으로 미루고 샹젤리제로 향하던 중 다리 위에서 민박집 청년을 만났다. 파리도 참 좁다.
저녁에 에펠탑 꼭대기에서 또 만났다. 세계 정상의 명품점들이 늘어섰는데 한국의 명품족들 다 어디로 갔나.
까만 히잡을 둘러쓰고 초등학생 정도의 이슬람 소녀가 길에 퍼질고 앉아 구걸한다. 1유로 건네주니 ‘merci!’한다. 마음 아프다.
‘개선문 위에 차가운 달이 걸려 있었다. 샹젤리제의 가로등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밤의 불빛이 테이블에 놓인
유리잔에 비치고 있었다. 라빅은 현실이 아닌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 잔도, 저 달도, 저 거리도, 오늘밤도 현실이 아니다...
샹젤리제는 인적이 드물었다. 길 모퉁이마다 창녀들이 한 둘 오락가락 있을 뿐이었다. 그는 거리를 내려갔다...
거기서 되돌아서서 개선문으로 나왔다...라빅은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않아 있을까?
파리의 다른 어느 곳에 앉아 있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레마르크 개선문)
충분히 어두워진 하늘 보고 다시 에펠로 가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매점에서 산 먹거리를 축내고
드디어 탑승이다. 제법 빠른 속도로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까마득히 아래로 펼쳐지는 파리가 그야말로 장관이고
세느강에 유람선의 불빛이 휘황찬란 그 자체다. 느물거린다. 만 백성이 이 불빛을 향해 부나비처럼 빨려드는 이유다.
단순하다. 이 불은 밤새 꺼지지 않고 나그네를 설레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황지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집중한다. 죽기 전에 다시 여기 와서 사랑 할 수 있을까.
숙소 근처 몽마르뜨 일대를 탐색한다. ‘유랑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상의 양식)니 이 도시도 잠들지 않는다.
Bar가 골목마다 문을 열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가만두지 않는다. 5유로에 음료수 한 잔 하면서 중년은 덜 된 여인네 말에 혹해 입장하면서 No show하고 다짐을 받았다. 20대 초반의 스페인 아가씨가
옆에 앉았고 쇼걸이 들어왔고 나는 약속이 다르다며 마담을 불러오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60유로를 내야한다면서 협박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분위기가 험해지면서 다른 남자가 출입구를 막고 나를 둘러쌌다.
순간 겁이 덜컥났다. 정신 차리자. 기 싸움이 시작됐다. ‘call the madam, call the police’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반복했으나 이 놈들은 코방귀도 끼지 않고 막무가내였다. 여기를 나갈 수 있을까. 몸 성히 무사할까.
여기서 잘못되면 난 어케 되는 걸까. 역으로 경찰로 넘겨져 뒤집어 쓰면 어카나. 그 길로 한국으로 송환되면 무신 개쪽인가.
오만 혼돈이 순식간에 뒤죽박죽 공황이다. 암담 그 자체다.
불안과 공포가 몰려오고 절망감에서 크게 소리치면서 다시 마담과 경찰을 불러 오라고 했으나 역시 효과가 없었고
무조건 60유로를 내 놓으라고 하여 순간 나도 모르게 ‘뭐?’하는 일갈이 터졌고 이 놈들은 이 한국말 한마디에 나가 떨어졌다.
지들도 무의식적으로 ‘머’하고 따라하는 바람에 멋쩍게 되었고 쓴웃음 치면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오로지 ‘뭐’의 위력이었다. 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갔다. 새벽 3시가 넘었다.
고요한 지옥이었다. 몽마르뜨야 내 너를 잊지 않으마. 이 ‘맑고 쓰라린’ 기억, ‘미묘한 수치심’
‘모든 도시에 방탕의 추억이 따르게 하였다’
방에 들어오니 흰둥이 하나, 검둥이 하나가 내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자고 있다. 이 놈들아 엉아가 무신 변을
당한지도 모르고 쳐 자빠져 자고 있냐. 무심한 놈들 같으니. 아침 8시경 잠을 깨 샤워하고 방을 나올 때까지도 두 녀석 다 자고 있다.
고케 디비 자고 한국을 언제 따라 오겠니.
빵 2개에 우유로 아침을 때우고 체크아웃. 전날 오르지 못한 샤크레 쾨르 다시 간다. 꽃길이 영롱하고 브라질 여대생은
날티 나지 않고 해맑은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파리의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간 밤에 얼마나 들 올라와서 지렸는지 코가 편하지 않다.
이내 빗줄기가 굵어지고 오르세 미술관은 반드시 봐주야 한다기에 문외한이 감상 한 번 하신다. 예술이란 성적 본능이
구현된 것이라는디(서머셋 몸, 달과 6펜스) 진짜 그렁가. 로뎅이 목을 날린 조각. 대가다운 발상이다.
이 미친 세상은 머리 없이 사는 거나 진배 없다. 영혼을 가진 영물이라고 큰소리 치고 하는 꼬락서니는 짐승보다 못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찜했다고 무조건 지꺼라고 우기질 않나. 특히 눈 가는 곳마다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디카 칩이
동이 나기 직전이고 앞으로 로마 일정도 남아 있어 꾹 참고 베르사이유 행. 인생은 지긋이 길고 예술은 짧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사진에서 본 그 궁전이 보이질 않는다. 그 사이 장애인을 돕는 단체의 학생들이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이쁘게 디자인된 메모지꽂이를 내민다. 2유로 주고 베르사이유가 어디냐고 하니 이 전체가 베르사이유라고
하면서 캐슬은 저쪽이라고 하여 보니 까마득하다.
그리로 가는 길엔 하얀 천막들이 늘어서 있고 각종 시민단체에서 나와 활동 중인데, 맨 끝 무대에는 댄스가 벌어진다.
무겁고 가벼운 주제들이 한데 어울린다. 절대왕정의 마당이 절대 넓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내가 애써 찾아낸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의 길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어딘지 죽음과 비슷하다’(싸르트르 구토)
나폴레옹 3세가 비스마르크에 깨지고 독일제국(제1 제국인 신성로마제국에 이은 제2 제국)이 선포된 치욕의 현장이다.
로마로 가려면 보베 공항까지 가야하기에 마당에서 대충 서성이다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가는 것이다. 호스텔 luggage에서 배낭을 찾고 보베공항으로 가는 버스 터미널로 갔는데 길 건너편 빌딩을 돌아서면 탈 수 있다고 알려 주어
그리고 갔으나 여기서는 다시 터미널로 가야한다고 하여 다시 터미널로 갔지만 막차가 이미 끊어졌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후 6시를 조금 지났다.
이럴 수가. 세상 천지 어느 나라에 버스가 그것도 공항가는 버스가 벌건 대낮에 떨어진데니. 아무리 저가항공이지만.
버스기사가 알려 주는데로 가서 수소문하였으나 결론은 택시타고 가는 수밖에 없단다. 요금은 버스비의 10배고
로마로 가는 저가항공료와 맞먹는다. 재앙이다.
갈 수도 안 갈수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같은 비행기는 아니지만 이튿 날 아침에 역시 로마로 갈려고
보베 공항으로 가려다 역시 같은 처지에 처한 이태리 청년이 자기가 돈이 있으면 반반 부담하여 같이 택시를 타고 갈텐데 가진 돈은
버스비 15유로 밖에 없어 가능하다면 내가 타고 가는 택시에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자식이 누구 염장지르나.
카드도 없냐 했더니 없단다. 화를 돋꾸어라 이 놈아. 분을 이기지 못해 식식거리다가 그렇다고 로마를 포기하고 나머지 3박 4일을
예정에도 없는파리에서 더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통 터지지만 프랑스 XXX하면서 택시를 탔다. 웬수 같은 놈도 타라고 해 같이 간다. 택시 안에서도 한참 동안 분이 풀리질 않아
옆문을 치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기도 하는데 택시기사나 옆에 탄 자식이나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억지로 진정을 하면서 얄미운 동승자와 대화를 해보니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전형적인 이태리 촌 놈이고
요리관련 학업 중인데 곧 졸업하고 관련 직종의 자격증을 딴단다. 파스타, 스파게티, 포모로도 이야기를 하자 입에 게거품 문다.
드디어 문제의 보베공항에 도착하고 이태리 촌놈은 너무도 고맙다면서 자기 이름과 이멜을 적어 주면서 내 명함을 받아갔다.
한 턱 안내기만 해바라.
이 자식을 보내고 체크인하려고 갔는데 내 비행기는 방금 전에 수속이 끝났단다. 돌연사, 심장마비사가 이렇게 오는구나.
이런 식으로 돌아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가면서 온 몸에 힘이 빠졌다. 1초도 안되는 순간이었다.
저 쪽에서 아직 수속이 안 끝났다고 다른 직원이 알려주어 아직 안 돌아가셔도 되겠다. 오마이가.
탑승권을 받고 대합실에 들어서니 참 우습기가 짝이 없다. 지붕은 천막인지 뭔지, 바닥은 마루로 된 것이 삐걱거려 이가 빠진 데도 있고
승객들은 운집하여 제대로 앉을 의자도 모자라 바닥에 퍼질러 있고 난민천막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거이 유럽 저가항공의 전모였다.
보베공항에 안개 자욱하고 레스토랑의 알바정도나 되 보이는 싼 티 물씬나는 유니폼의 스튜어디스가 기체 출입문을 닫고 이륙이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기형도) 파리야 어인 일로 이케 한이 맺히게 하더냐. 돈 되는 장사는 밤새도록
차가 다니고 이제 골수 다 빼 먹었으니 갈테면 가고 말라면 말라는 건지 니들의 알량한 똘레랑스의 실체가 이거냐.
사과하고 개선하라.
‘산다는 것은 부조리를 살리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유를 마르크스 속에서 배우지 않고 가난 속에서 배웠다고 한 까뮈의 말씀.
로마에 도착해 연결편 버스로 가서 대기하는데 요것도 출발하기가 하세월이다. 싼 게 비지떡 실감, 절감.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새벽 2시경인가보다. 주소를 들고 이 놈 저 놈 붙들고 물어볼 때마다 방향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로마에서 이렇게 모냥없이 미치고 환장하는구나.
하는 수 없이 민박집으로 전화. 그 새벽에 안 주인이 자다말고 마중 나온다. 런던의 민박과 비교된다. 너무 미안해서
하루 묵기로 한 일정을 바꾸어 이틀 묵었다. 쓰러져 자고 아침상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은 결혼한 지 1년 된 부부를 포함하여
모두 나가는 날이고 새로 손님이 들어온단다. 한국인들 특유의 끈적거림, 외국여행하는 맛이 떨어진다.
파스타를 대충 비우고 난생 처음의 길에 들어선다.
마침 일요일이라 마조레 성당에 미사가 열리고 신도들 가득하다. 성당 옆 길목에 말만한 기집애가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 담배질이다.
테르미니 가는 길엔 아들을 품에 안은 이슬람의 젊은 어미가 콜라 컵을 앞에 하고 두 손 모으고 앉아 있다.
우리는 잘도 갔다 버리는데 이 모정이란... 동전을 꺼내니 컵을 올려 든다. 아들아 부디 잘 크거라. 니 애비가 알라이든 여호와이든
무슨 상관이니. 한 세상 이러구러 살다가 흙으로 가는 것잉게 부질없이 하늘로 가네 마네 하는 사기질에
농간 당하지 말그라. 가슴이 먹먹하여 빨리 지나간다.
‘인간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연법에 의해 용인되는 것인가’(루소) 지도를 들고 콜로세오를 찾아가다가
지나가는 할머니와 딸에게 길을 물었는데 테레비에서 한국을 봤다면서 여간 친절한 게 아니다. 평균적으로 이태리인은 순박하고
부담 없다. 중북부 유럽 애들이 거만하고 무뚝뚝한 거와는 다른 거 피부로 느낀다. 지중해의 바람과 태양의 일조량
때문일까. 제국이 망한 지 더 오래여서일까.
지척에 콜로세오 다다라 유럽 10개국을 다니면서 이만치 가슴이 울렁거린 적이 있을까. 2천년 전의 제국이 바로 눈 앞에
괴물처럼 시나이산의 야훼처럼 현현한 것이다. 니가 죽지 않고 기어코 살아서 나를 보는구나.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초가삼간도 하루아침에 안대능겨 이 사람아. 넋을 놓고 좌우를 살피는데 후세의 원조이신 개선문이며
무너진 적색 담벼락이며 벽돌이며 타임머신을 타고 제국에 입성한 꼴이어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표를 사서 드디어 콜로세움으로
들어가니 어디선가 전차 말밥굽 소리가 요란하다. 환청이다. 네로가 여기 어디 앉아서 개폼 잡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공허하고 조용하게 이 폐허의 하늘 아래에서 정처 없이 간다’ ‘쿠오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내가 어디로 가든 니 할일이나 해라.
실제로는 네로는 콜로세움이 서기 전에 죽었고, 오늘날 프로스포츠 격인 검투사들이 여기서 경기로 돈을 번 것이지,
초기 기독교도들이 끌려나와 야수들 밥이 되게 한 것은 낭설이라고 한다. 2500년간 로마의 중심지로 시저 신전과 원로원이
위치하다가 대화재로‘우아하게 쇠망한’ foro romano를 거닐다 수도에 발 적시고 물 마시니 어엿한 제국의 시민이어라.
돌고 돌아 판테온에 당도하는데 구경꾼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사진 찍느라 열심이다.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나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안을 간신히 들여다본다. 제우스 등 7신을 모시고 2천년을 고스란히 견뎌낸 세월의 무게, 도저한 섭리가 서늘하게
스며 나온다.라파엘로와 이탈리아 국왕들의 묘가 있단다.
민박집으로 가 저녁을 먹고 다시 콜로세오로 오다. 200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밤에 만난 그 불기둥의 현신에 비할 바 아니다.
은혜 충만하다. 중생한 기고만장 이상이다. 콜로세오에 내려 쏟아지는 불빛이 제국이 망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가슴 벅차 오르고 포만감에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본전 뽑은 기분에 골목을 누빈다. 어디 쯤일까. 한 쌍의 남녀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찰나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머쓱해 웃는다. 디카를 들이대면서 ‘more sexy'하니까 곧바로 야릇한 포즈 취한다.
알고 보니 이태리 건달이 러시아에서 놀러온 처녀를 한참 꼬시는 중이었다. 내가 러시안 걸과 포즈를 취하니
이태리 자식이 지 애인 가지고 논다고 투덜거린다.
이 년놈은 이 날 밤 어케 됐을까. 내내 궁금하고 아깝기도 한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잠도 잘 오질 않는다.
이튿 날 교황청 방문을 앞두고 일찍 자야 한다. 새벽부터 장사진처럼 줄을 서기 때문에 한참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어서이다.
아침도 먹지 않고 부리나케 교황청으로 갔으나 이미 인산인해 중공군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여 헬기로만 파악이 가능할 것 같은
인파가 성벽을 돌고 돌아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필요 없이 많이 가지고 쓸 데 없는 비밀이 많으면 이렇게 터무니 없이 벽이 높고
두터운가 보다.
9시가 지나자 하늘 가는 줄이 서서히 움직이고 할머니가 동냥 중. 머리 수건을 한 번씩 벗어 보이는데 골이 반쯤은 드러나 핏줄이
선연하다.바로 이 담벼락 너머에 교황께서 계시는데 어이하여 여기서 이 모양으로... 필시 나사로가 환생한 것이다.
그 성하께선 천국으로 갔을까. 나사로 옆으로 갔을까. 각 방 쓸까. 지상에서 이 장대한 벽을 두고 모른 체 지내다가
천당에선 서로 친할 척 할까. 아님 소 닭 쳐다보듯 할까.
나사로 사후 여태까지 지구상에 거지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니 없니 나불대고 영혼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저 세상 가면 복을 받는다고 혹세무민하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교황의 장례식을 두고도 금욕 운운할까.
‘중구난방 싱크탱크’ ‘상식의 폭력’ 코메디는 계속된다.
언제 끝날까 싶던 줄이 이내 30분 만에 내 차례가 되어 입장이다. 게 중 한 명이 직원을 어떻게 골렸는지 화가 머리 끝가지 치밀어
큰소리로 밀치고 한바탕 소동이다. 이 놈들이 여기가 어데라고 무엄하게시리.
회랑 좌우, 천정의 그림이며 조각을 인파에 떠밀리며 무심히 보고 지나가는데 낯설지 않은 뒷모습이 포착되어 앞서 가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니 저도 나를 알아보고서는 2차 대전 중 어느 전장에서 조우한 연인처럼 둘은 얼굴이 빨개져 잠간 동안 놀라고
흥분된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어제밤 골목에서 만난 그 러시안 걸이었다.
‘how are you?' '...you got a good time last night? we have a destiny' ‘... some beer and...' '...have a sleep with him?'
순간 그녀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귀여운 것 같으니라구. ‘can I meet you tonight' 'what do you mean?'
그걸 몰라서 묻냐 인간아.
러시아 여행팀에 같이 묻혀 가다가 내 이름을 묻는다. 자기는 Anastiasia라면서. 명함 주고 하는 사이 일행이 멀어져
발길을 재촉하고 나는 더 이상 여기서 머무를 수가 없어 인간 모듬군을 빠르게 빠져 나간다.
남자가 망신을 당하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나이의 한계가 35살이라고 했던가. ‘사랑은 얼마나 어렵고 독한 것인가’
집착하지 말고 벗어나자.
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다. 에어콘 좀 빵빵하게 틀면 안대니. 교황청 장사속으로 하지 않았으면. 온통 벽화가 몸짱에다가
우량아 일색이다. 천국에선 마른 인간도 핸디캡도 엄나보다.
식당에서 스파게티와 다른 음식을 반반씩 해서 하나로 만들어 달라니 안 댄다고 한다. 안 되는 것도 뒤지게 많어.
성부, 성자, 성령으로 삼위일첸데 두개로 나누는 것도 안 대믄 2개 다 시켜 남기고 쓰레기 통에 버리란 말이냐. 고지식하긴.
속세에서 통하는 일이믄 느그도 배워야 하능그 아이가. 맛이나 있으면 몰러. 이태리 현지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 인간은
감각이 남달리 탁월하든지 또라이에 가깝다. 도대체가 퍽퍽하고 물기가 없는 것이 식성에 안맞다. 자고로 면발은 쫄깃해야 허고
촉촉해야 허는 법이다.
이 놈들도 동양년 보면 환장하는 것이 고거이 쫄깃하다나 우쨌다나 한다는거 아녀. 앞 테이블의 한국인 모녀는 잔뜩 담아다 와서 먹으면서 별 말이 없다.
애미가 부동산 한 거로 아파트 한 채 챙겨 줄 텡게로 니 년은 아모 잡생각 마고 실한 넘으로 하나 골라 오니라.
예술은 무신 얼어죽을 예술이다냐. 이 놈들은 투기도 안하고 거지같이 무신 재미로 사는지 몰러.
바티칸 박물관을 나와 아까 그 거대한 성벽같은 담장을 거꾸로 돌아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간다. 베드로가 처형된 원형 경기장을 헐고
세운 것인데 지하에 베드로가 누워 계신단다. 동성애자로서 아내와 성교하지 않은 앙드레 지드가 ‘교황청의 지하도’에서
카톨릭의 절대주의를 비판하고 금서가 되었다는데 이 지하에 뭐가 있길래.
위압감에 눌려 발품에 지쳐 바닥에 앉아 기둥에 기대니 넘 시원하고 편하다. 베드로 광장으로 나와 한 숨 자고 일어나도
교황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와도 내다 보지 않는다. 바쁘신가 보다. 안 나오면 갈란다, 고독한 순례자들을 뒤로 하고.
마지막 호스텔도 잡아야 하고 하니 나도 바쁘시다.
으르렁대는 죄 많은 신은 구원시키고, 인생은 아무 죄도 없이 지상으로 떨어져 한 세상 버팅긴다. 오물 같은 물이 흐르는 테베 강가에
수백년 된 프라타너스가 휘렁휘렁 늘어져 장관이고 일가족이 물놀이다. 미끈하다.
민박집에서 보따리 들고 테르미니로 가서 호스텔 안내해 달라고 하니 덜렁 종이 쪼가리 하나 주는데 보니 호스텔이 수십개나
줄 서 있어 그 중에 하나 추천하라고 해도 고로케는 몬하신단다. 할 수 없이 맨 위에 있는 거로 찍어서 전화,
도대체가 말소리도 잘 안들리고 너무 빠르다. speak up, I can't hear you.
택시타고 가서 보니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텔이었다. 먼저 도착한 이태리 청년이랑 3인실을 같이 쓰는데 키가
족히 190은 되어 보였다. 해군 지원병으로 신검 중이라네. 머 하나 물어 보면 영어로 설명하느라 아주 된똥을 싼다. 순박하기는
이 녀석도 마찬가지. 영어 공부 좀 해라. 나도 어설픈데 니까증 그라믄 우야노. 배 고프다고 제 먼저 나가고 나도 마지막 밤을 나간다.
어느 골목 뒤에서 누가 부른다. 돌아다 보니 웬 중늙이가 한국인이냐면서 자기가 과거에 ‘운다이’(‘현대’를 이케 발음했다)에서
일한 적 있다면서 호텔에 묵고 있는데 자기랑 같이 가서 한 잔 하자는 것이다. 신용카드 가지고 있는지 물어 보면서.
별 미친 놈 다 본다.
‘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나는 거다. 그중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고’(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내가 그리 어리숙해 보이니. 사람 잘 못 골랐다. 조 터지기 전에 꺼지라카이.
‘베니스에서 나는 지극히 아름다운 창녀를 만났다. 사흘 밤 나는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녀의 곁에서는 나의 다른 사랑의
즐거움을 잊어버릴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그녀는 아름다웠던 것이다’(지상의 양식) 베니스 멀어서 못 간다.
베네치아 광장 돌고 7일 째 밤을 자고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간다.
이 자들은 피움치노 공항이라고 한다. emergency seat, window seat 달라고 해서 탑승했는데 엉뚱한 좌석이다.
지구 어디 가도 꼭 말 안 듣는 애들 있다.
베르디 나부코가 일정 한 켠에 있었는데 현지에는 없다.
인천공항에서 리무진으로 오는 길에 인천 지역에만 가정형편 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애들이 1천명을 넘는다는 뉴스다.
조국 대한민국에서만 들을 수 있는 복음이다. 있는 애들도 못 챙기고 전기도 안 주고 촛불에 타죽게 만드는 주제에 그것도 모지란다고
더 낳으라고 연신 떠들어 댄다. 어찌라고. 니나 나라.
효자로 가는 들머리에 은행이 벌써 노랗게 익어 간다. ‘생이 야성적이며 급격한 맛이다’
원님들 추석 떡값으로 얼마 챙겼다고? 그게 니 머리로는 정책개발비로 생각되니. 오바이트 하고 앞으로는 제대로 된 거 내놓고 나서
돈 가꼬가든지 하그라. 우리 국민은 너무 착하다.
누구는 아파서 휴스턴 MD 앤더슨에 간다는데 나는 왜 아픈데도 엄니. 설악으로 간다. 비선대 올라서기 전 반바지로 갈아입고
슬리퍼는 배낭에 넣는다. 바위길 돌길을 맨발로 가는 촉감, 세상을 등지는 쾌감이 콜로세오와 비할 바 아니다.
운무에 갖혔다 풀렸다 이거이 현생인가 전생인가, 꿈이라면 깨지말고 깨거들랑 선계일 것을. ‘길 떠난 사랑 오지 않고
오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견디며’ 한 조각 낱장의 편력을 더한다. ‘불모’하고 ‘유쾌한 허무’의 한 페이지를 용대리에서 접는다.
첫댓글 인물은 가리고 배경만 보삼...
인물 좋으시구만요.
맘씨가 고우시네요
아, 여행 이야기를 이렇게 써도 되는구만요. 재미있게, 통쾌하게 잘 읽고 갑니다. ^^
말씀이 더 재민네여...
그냥 지나가려다...한마디...임씨 아자씨...언제 저리 재미나게 놀다왔노...^^ 그 사무실에는 계속 나가는감?
신도 아자씬 누구? 제수씨가 나경이라... 그라믄 바로 그 아찌구나, 자슥 진작에 말하징, 그 법인 말하낭...
집사람이 나경이가 아니라 울 딸이 나경인데..ㅋㅋ
그람 요거이 완조이 다른 작디긴디...
6월에 저두 영국,프랑스,아탈리아,스위스,독일 배낭여행 다녀왔는데 정말 행복하구 아름다운 여행이었죠...사진들을 보니까 제가 갔던 곳들두 있어 그때 기억들이 나는걸요...다시 한번 여행 가보고 싶은데...기회가....
닉이 슈퍼하네여...
와우 멋지네요. 저도 언젠가는 ~ 가보고싶어요.
고통이 절반인데 멋지게 보셔서 다행이네여...
그 고통땜에 계속 미적거리게 되는데... 부럽습니다.
글 넘 재밌게 쓰시네요. 미남이시구. 낯익은 곳은 낯익은데로 기억하며, 낯선곳은 언젠가 볼 걸 기대하면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역시 조명빨의 덕을 보네여...
장문의 여행기 잘보고 갑니다.
고생 마느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