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는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장례지도사 유재철 씨는 “세월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된다”며
“마지막까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돈과 성공이
가장 불행한 요소가 된다”고 말한다.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하관 광경.
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장례식과 제사를 어떻게 할지를 모두
유지로 남겼다
그가 묻힌 대전 현충원 묫자리는 다섯 가지 빛깔의 오색토가 나온
흔치 않은 명당 자리였다.
역대 대통령, 재벌 회장 독거노인, 무연고자 등 30년 수천 명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한 장례지도사 유재철(62) 씨가 펴낸
대통령 6명의 마지막을 묘사한 문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죽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를 느낀다.”
그가 느낀 영혼의 존재란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산 자보다 죽은 자들과 일하는 것이 맘 편하다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이나
어두움은 없어 보였다.
염을 하면 생전 체중이 100㎏ 넘게 나갔던 거구였는데도 사뿐하게 몸이 들려 가볍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40㎏, 50㎏으로 비쩍 마른 사람인데도 너무 무거운 사람들이 있었다.
산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용을 쓰면 몸이 힘들다.
‘한을 품고 간 사람들한테는 염불도 잘 안 된다’
모든 망자는 3, 4시간이 지나면 경직 현상이 온다. 자는 듯 평화롭게 돌아가신 분들도
나중에는 몸이 약간 뒤틀리며 굳어진다.
그런데 잔뜩 몸을 웅크린 자세로 돌아가셨으니 염할 때까지 그대로 두면 관 뚜껑을 덮지
못할 수도 있다.
빌딩 세 채 집도 몇 채 갖고 있는 말기 암이 진행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내고 욕설을 쏟아내 힘들게 했다.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돈과 성공은 가장 불행한 요소가 된다.
결국은 다 놓고 가야 하는데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편하게 눈 감을 기회까지 놓치고
온몸이 뒤틀려 경직된 그분의 시신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모든 것을 부여잡으려 했던
영혼의 무거움이 느껴졌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은 돈이나 부동산, 명예나 지위처럼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면서 이런 이야기도 전했다.
“손을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주먹을 아무리 펴려고 해도
펴지지 않는 삶에 대한 집착 미련이 주먹 안에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2남 1녀 자식들을 잘 키운 분이. 여든이 넘어 지병이 악화돼 곡기를 끊었다
자식들이 ‘제발 드시라’고 간청해도 ‘정신이 있을 때 떠나겠다’며 아무 말도 않고 누워만 계시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목욕을 하고 가장 아끼던 분홍치마 저고리를 입더니 소파에 누워 아들이
출근하는 것까지 보고 잠이 들었다 며느리가 흔들어 깨웠을 땐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당신 스스로 염을 하신 거. 생전에 장례에 대한 언급 유언도 없었고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차분한 마무리로 가족들도 차분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교통사고로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이가 함께 숨을 거둬 장례를 치른 적이 있다.
오열하는 남편 앞에서 엄마와 아이들 시신을 염습을 하는데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모든 장례 의식은 고인의 인생을 잘 갈무리하고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모든 분의 죽음에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있다. 살다 보니 하루하루 허투루 보낼 수 없게 된다.
고인을 보낼 때마다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가르침을 받고 있다.”
삶에는 정말 정답이 없더라. 남과 비교하며 더 가지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진정한 자기는 없고,
자기를 괴롭히는 괴물만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 답이 없지만 그래도 잘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있다. 바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 생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때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묘를 이장하며 시신을 수습하는 어느 가족이 관에 물이 차서 시신 모습이 험하게 변했는데도
자식들이 ‘우리 아빠 목욕하고 나오셨다’며 밝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국 삶의 질이 바뀐다. 그게 인격이 되고
그렇게 돼야 행복이 온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한 줄 알고 산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죽음이 임박할 때는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생과 사의 기로에서
매일 반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데 엔딩노트를 써볼 것을 권한다. 마지막 순간에 내 돈과 몸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게 제일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게 떠오른다. 이득이 되는 사람과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현재 내 몸과 돈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맺는 교류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또 내게 중요한 물건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마지막에 의료 행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화장을 할 건지 매장을 할 건지도 미리 생각하고 기록해 놓는 게 좋다.
어느 집의 경우 장례 기간 가족들끼리 화장이냐 매장이냐를 두고 다섯 번이나
바뀐 경우도 있었다.
장례식은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고
막상 닥치면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도 평소 준비해야 한다.”
“망자를 보내드릴 때에는
①시신에 대한 처리가 있고, ②사회적 관계에 대한 처리가 있다. 우리나라 장례는
대부분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치러진다.
고인들의 인생은 모두 다른데 모시는 방식은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아 있다 보니
어느 장례식에 가도 비슷비슷하다.
장모님 장례식 때 발인 전날 저녁 가족들이 모여 애도식을 했다. 아내가 어머니의 약력을 읊었고
시낭송 판소리까지 했다. 30분 내내 고인과 함께 있다가 떠나보내 드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친구는 형식적인 조문을 받고 싶지 않다며 모친상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고인의 혼이 순탄하게 빠져나가길 기다리다 가족들만 모여 망자와 8시간을 집에서 보낸 후
그대로 화장하고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형식적인 조문을 받고 싶지 않다면서 형제들 종교도
자기 욕심을 내세우지 않았고 어머니를 위한 장례만 오랜 기간 준비해 왔다.
발인 전날 애도식만 했다. 부고를 받아 든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며 고인이
속세를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셨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요즘은 정말 조문도 받지 않고 집에서 가족장으로 치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집에서 정상적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경우 망자가 숨을 거두면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
미리 장례지도사와 상의해 놓는 것도 좋다. 사망진단서가 나오면 24시간이 지나야 화장을
할 수 있다. 더운 계절에는 냉장관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하루 사용료 약 20만 원가량 된다. 집에서 모셨다가 사망진단서 받고 화장장으로 이동하면 된다.”
신동아 2022년 5월호
donga.com
첫댓글 대구 열벗회 총무 이희경은 옛 적부터 대구 카톨릭 교계에서는 이름 난 장례지도사다
특히 불우한 사람들을 잘 모셔 보낸다. 그래선가?
그 모진 위암도 거뜬히 이겨 낸 '꺼떡나이'다
얼굴이 청신한 총각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난 옛 적부터 만나면 술잔을 먼저 올린다.
자알 부탁한다고...
사람의 탄생이 축복이지만 거룩한 죽음을 맞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전 7:1-2,)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