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령 야생화를 만나러
팔월 다섯째 월요일 자연학교 현장 학습은 가을이 오는 길목의 야생화 탐방을 나섰다. 야외에서는 급식 제공이 순조롭지 않아 점심이 신경 쓰였다. 이동 동선에 식당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산등선을 넘고 들길을 걸을 때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는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데 산나물이나 영지버섯 채집 시는 배낭 부피를 고려해 노점에서 김밥을 마련해 가기 일쑤였다.
이즈음은 배낭에 채울 내용물이 없는지라 집에서부터 도시락을 싸 길을 나섰다. 야생화 탐방을 나서면서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서는 이는 드물지 싶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는 마산합포구 구산이나 삼진으로 출발하는 농어촌버스 출발지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에 펼쳐진 푸성귀와 과일을 보면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정한 야생화 탐방 코스가 여항산 미산령을 넘어야 해서 진전 둔덕으로 가는 76번 버스를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 환승장에 들렸다가 진전 면소재지를 거쳐 진전천을 따라 올라갔다. 양촌과 적석산 아래 일암을 둘러 대정에서 둔덕골로 들었다. 기사는 골옥방에서 한동안 쉬었다가 둔덕 종점에 나를 내려주고 차를 되돌려 가고 나는 오곡재로 향했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은 하동에서 남강을 비켜 진주 인근 발산재에서 함안 오곡재와 미산령을 거쳐 광려산을 넘어가 쌀재에서 무학산으로 건너간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여항산의 미산령으로 창원과 함안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임도가 개설된 구간이다. 오곡재를 넘는 포장길에서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드니 들머리서부터 분홍색 이질풀꽃이 반겨주었다.
가을 들머리 이맘때 길섶은 풀이 수북할 텐데 한여름이 오기 전에 산림 당국에서 단정히 잘라 그새 풀은 새로이 돋아나 있었다. 산소의 벌초를 일찍 해두면 잔디가 다시 솟아나 자란 현장과 같았다. 야생화 탐방은 길섶의 풀을 지르지 않아야 오롯이 살필 수 있겠으나 당국의 임도 관리를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새움이 돋으면서 피는 꽃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질풀꽃에 이어 길섶의 자른 풀이 말라 검불이 되어 쌓인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괭이밥과 짚신나물이 피운 꽃도 찾아냈다. 괭이밥은 봄에 노란 꽃을 피웠는데 잎줄기가 잘려 나가 움이 트니 꽃을 피웠다. 내가 봄날에 산나물로 뜯어간 영아자도 꽃대를 밀어 올려 보라색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잎줄기가 비쩍 말라 꿩의 다리처럼 생긴 꿩의다리꽃도 솜털 같은 꽃을 달고 있었다.
당국에서 임도 길섶 풀을 자르지 않았으면 더 많은 개체의 야생화를 볼 수 있었겠지만 새로이 돋는 풀에서도 철을 잊지 않고 꽃을 피웠다. 잎줄기가 시들고 나면 꽃대가 솟아오르는 상사화도 뒤늦게 주황색 꽃잎을 달고 나왔다. 양곡이 부족한 시절 고부간의 갈등이 빚어낸 전설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도 봤고 산나물로 이름이 특이한 등골나물도 한여름부터 피운 꽃이 지지 않았다.
둔덕에서 여항산을 넘는 미산령 정자에 올라 배낭에 챙겨간 도시락을 비우면서 생수와 함께 캔 맥주로 목을 축였다. 점심을 든 정자에서 바라보인 남녘 산자락 끝나는 곳이 진동만에서 거제도가 가려진 바다였다. 내가 작년까지 그 섬에서 교직을 마무리 짓고 뭍으로 건너왔다. 점심 식후 지기들에게 미산령을 오르면서 폰 카메라에 담은 야생화들을 날려 보내면서 안부를 나누었다.
미산령 정자에서 고개를 넘어 북사면 임도를 따라가니 야생화들이 만발해 혼자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곳은 행정구역이 함안이라 당국에서는 아직 임도 길섶의 풀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라 내가 보고자 했던 야생화들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노란 마타리꽃과 하얀 뚝갈꽃이 지천으로 피어 황홀경이었다. 미산마을에 이르기까지 응달 물가는 선홍색 물봉선도 가득했더랬다. 2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