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송대관( (宋大琯.1945년생)! 나 별 볼일 없는 훈장 송희석(1946년생) . 송대관은 집안 6촌벌 되는 조카이다. 대관이와 나 , 모두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엄청 고생을 했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이 계셔 괜찮았지만 대관이는 아버님이 6.25때 인민군에 의해 총살을 당해 아버지도 없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고생이 심했다.
6학년때 1년을 꿇어 나와 같은 학년이 되었다. 대관이는 우리 동네에 있는 이발소에 취직을 해 학교가 파하자 마자 이발소에 가 물지게를 지고 물을 날라야했다.
물지게를 지고 뒤뚱뒤뚱 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워 놀리곤 했는데 그 때 마다 대관이는 화가 나 우리를 쫓아와 그 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나를 잡아 때리곤 했다. 조카가 삼촌을 때리는 격이었다.
우린 대관이를 꼬셔서 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 자치기도하고 공도 차고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대관이는 나중에 이발소 주인한테 실컷 꾸중을 듣고....
이렇게 우리는 중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관인 집이 전주로 이사를 가 거기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전주 영생고등학교를 나왔을 것이다. 대학 다닐 때 고향에 내려 가 보니 유랑극단 가수가 되어 전국순회 공연을 하면서 고향 정읍에 들렸다. 대관이가 공연하는 곳은 꼭 따라가 격려하곤 했다.대견하기도 했고 측은하기도 했다. 그 녀석의 마음에는 가난을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너무나 뚜렷했다. 전주 방송국 전속 가수를 거쳐 <해뜰날>로 쨍하고 해가 떴던 것이다. 그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매우 좋아하던 노래라고 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금은 너무 유명 인사가 되어 만나기도 힘들지만 그녀석이나 나 ,어린 시절 우리가 함께 보낸 아름다웠던 시절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동네에서 스케이트 타던 일. 연 날리던 일. 구슬치기. 운동장에서 삭카리 물을 한 양동이 타놓고 축구시합 하던 일. 산에 있는 묘에 불놓고 도망 다니던 일. 명절 때마다 윗 동네 아랫동네 패 싸움 하던일. 대 보름에 깡통 돌리다 깡통이 지붕 위에 올라가 급히 지붕 위에 올라가 불끄던 일>
우린 가난했고 가난의 설움을 너무 많이 받은 동병상련의 동지였다.
언젠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대관이 어머니가 우리 친누나를 찾는 프로가 방영된 일이 있었다. 대관이 누나와 우리 누나는 죽마고우다.
우리 누나는 일본에서 살다가 귀국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누나는 이복 남매간으로 나와는 나이차가 많은 누나였다.
송대관! 지금은 인기가수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엔 너무나 가난한 청년이었다.
마음씨 착하고 인정 많고 인간성 좋은 괜찮은 녀석이다.
저나 나나 이젠 60을 향해서 줄달음치는 나이!
가끔 가끔 그리울 때가 많은 친구이다.
요즘 제법 잘나간다고 으시대지만 저나 나 , 시골 촌놈 출신.
1998년 여름에 송대관 어머니. 송대관. 나. 우리 누나. 이렇게 넷이 부산에서 오붓하게 점심을 먹은 게 녀석과의 마지막 해후였다.
고향 죽마고우로써 항상 성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