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대하여
● 한달에 한번 모이는 <김기정선생님 합평방 모임>은 지난 한달간 무척 바빴다. 물론 그 이유가 명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절을 전후해 우리만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건,
1. 카페에 <익명게시판>을 만든다.
2. 모든 회원이 이름을 감춘 텍스트를 올린다.
3. 모든 회원이 텍스트를 읽고 별점을 매긴다. 내 작품에도 내가 별점을 매긴다.
4. 별점이 가장 높은 회원의 세 작품을 뽑아 이번 시간에 합평한다.
◯ 잔인하다. 별점 하나하나에 웃고 울었다. 내가 쓴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핸드폰에 댓글 표시가 울릴 때마다 신경이 쓰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등의 다양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온전히 텍스트만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떤 글을 작품으로 보는가’에 대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읽기’이다. 많은 이론을 허물어트릴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읽기’밖에 없다.
● 순수한 독자로서 재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용과 형식이 안정적으로 가고 있는가! 그래서 작품의 ‘읽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읽기만 적확하게 한다면 강의듣기가 필요 없다. 그것은 이론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 글을 버릴 때는 쳐다보지 말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고칠 생각도 하지 말고, 아예 새로 쓰는 것이 좋다. 이때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작용한다. 아무리 성형해도 소용없으면 미련을 갖지 말자. 섣불리 쓰지 말아야 한다. 머릿속에서 충분히 고민한 후에 써야 한다. 안 그러면 ‘작품’이 아니다. 성형하기는 정말 힘들다.
● 글은 내용과 형식이 있고 그것이 맞게 가야 온전히 ‘작품’이 된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가려면 구멍 뚫리지 않은 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 오늘 뽑힌 세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수께끼 같은 아이가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서사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이런 시도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 문장이 안정적이었으나, 아직도 대사의 남발, 특히 일상 언어의 남발은 지적할 부분이다.
● 글을 쓰는 우리 안에는 어린 독자인 ‘나’와 작가인 ‘나’가 같이 있다. 책을 읽을 때는 어린 ‘나’가 읽어야 함을 명심하자. 우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연령별로 아이들에게 맞는 음식이 있다.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아이에게 오곡밥을 주면 탈이 나는 이유다. 그 연령에 맞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기술인 것이다. 작가는 글에서 말할 목소리의 높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 왜 서사를 놓치는가 - 성인들은 자기가 알아서 음식을 다 골라내고 찾아 먹는다. 하지만 어린이는 아니다. 순수한 어린이 독자 찾기에 너무 방관했다. 그것을 반성해야 한다. 국가적인 지원 등에 출판사나 작가가 기대 온 것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계몽하고 가르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어른이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결론은 한 가지다. 우리는 정말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 서사로서 그 안의 ‘이야기덩어리’만 생각하자.
● 플롯의 문제 - 플롯은 작가가 던지는 숙제와 같다. 어떤 문제를 던지고 어떻게 해결할까. 이것이 플롯의 시작이고 또 끝이다. 자기만의 눈이 필요하다. 스스로 숙제를 던지고 스스로 숙제를 풀어내는 것이다.
● 초고는 스스로 80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 안 되면 과감히 버려라. 억지로 쓰면 독자도 억지로 읽는다. 절대 억지로 쓰면 안 된다. 작품과 독자의 거리감이 생기는 순간 읽는 속도가 떨어지게 됨을 명심하자. 안 버리기 때문에 자꾸 시행착오를 하는 것이다.
● 소재 면에서 근래에는 시간을 조작하는 작품에 눈에 많이 띈다.
● 글이 길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뭔가를 자꾸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날것의 지문이 나오는 순간, 독자는 화자와 멀어지게 된다.- 1인칭으로 화자를 쓸 때, 그는 주인공의 ‘나’인가? 아니다. 작가인 나는 이것을 교묘하게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1인칭일 때, 주인공인 ‘나’가 쓰는 것이 아니다. 작가인 ‘나’가 주인공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1인칭을 쓸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 좀 더 집중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문제는 뭔가를 만들려고 하지만 어설프다는 것이다. 본인이 쓰면서 재미있어야 독자도 재미있게 읽는다.
● 작가는 잘나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인물을 통해 배워가는 것이다. 캐리터가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면 갇혀있게 된다. 우리는 계속 허물었다 쌓고, 또 허물고 쌓아야 한다. 탑을 생각해 보자. 5층 탑이면서 3층 탑의 터잡기만 하면 어찌 되겠는가.
● 현실의 지점에서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갈 때, 작가 자신이 그 세계를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귀신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 세계를 인정하는 절절함이 보여야 한다. 단지 설명 해버리면 안 된다. 작가가 뛰어들어 실제로 믿어야 독자도 믿는다. 그 승부는 교묘하게 드러나야 한다. 정령의 시간은 백년만 사는 우리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이런 것을 길게 설명하지 말고, 한 두 마디 대사로 풀어낼 수 있는 게 능력이다.
● 합체 : 내가 그렇게 믿어야 한다. 작가와 캐릭터의 합체가 이뤄져야 한다. 그 세계를 온전히 믿고, 캐릭터를 풀어주자.
● 작가란, 자기안의 더 큰 능력을 끌어내야 한다. 그걸 써내야 한다. 몰입하자.
● 나한테 흔한 이야기는 남한테도 흔하다. 그런 것은 과감히 버려라.
● 일본 근대동화 선집 <도토리와 산고양이> 참고해 볼 것.
● 사건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목소리만 들리면 안 된다. 글 속에서 작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 단편의 매수 20매, 30매는 노출의 정도를 말한다. 동화에서는 그만큼 많은 함축과 생략이 들어간다. 설명하지 말자.
● 100권의 책을 옆에 두자. - 내가 가지고 있는 백 권의 텍스트가 있어야 한다. 글을 쓸 때 머리 속에 그 백 권이 모두 스쳐지나가야 한다. 그 작품들과 유사점이 없어야 내 글은 비로소 작품이 된다.
● 다음시간에는 플롯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 다음에는 캐릭터에 대해... 그리고 작법... 텍스트... 이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