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18)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 (명사들의 수필 쓰기)
이 웅 재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한다. 수필 작법을 백 번 들어도 실제로 제대로 된 작품 하나를 숙독(熟讀)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읽기만 하여서 그 쓰는 요령을 터득하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수필 작가들의 수필 쓰기에 대한 고백담을 찾아보기로 한다. 작가마다의 취향이 다르고 표현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분의 글쓰기가 본보기가 된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몇몇 분의 고백담을 함께 들어보기로 하는 것이다. 대본은 수필문학사 편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교음사, 2000)로 하였다.
사례 1; 美와 隨筆(金奎鍊)
수필의 미는 어디서 발견되는 것일까. 그것은 수필 작가의 장인다운 솜씨와 오묘한 깨달음이 절묘한 융합을 이뤘을 때 나타난다고 본다.
장인의 솜씨만 있고 작가의 오묘한 깨달음이 없다면 창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오묘한 깨달음만 있고 장인의 솜씨가 없다면 훌륭한 창작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수필은 어떤 알맹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아무리 비범한 내용이라도 걸치고 있는 옷이 너덜하고 구질구질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그것은 아름다운 수필이 될 수 없다.
두 팔을 벌려서 껴안을 만한 가치 있는 -감동과 여운을 길게 남기는- 수필을 쓰자면 우선 문장력을 갈고 닦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첫째, 수필 문장은 짧으면서 뜻이 깊어야 된다고 본다. 짧은 문장이 되자면 그 글귀가 문학적 감각에 의해 정교하게 조탁돼야 할 것이다. 명쾌하고 참신하고 군소리 없이 압축된 짧은 글은 뜻이 깊기 마련이다. 이런 문장에는 함축성이 숨어있고 메아리가 생겨나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그 기법을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본다. 구양수(歐陽修)의 말대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두보(杜甫)의 독백처럼 ‘일만 권의 책을 읽으니 글 쓰는 것이 마치 신들린 것 같다.(讀破書萬卷 下筆如有神)’가 되지 않을까 싶다.
Henry Thomas는 말하기를 문장은 짧아야 좋고 쉬운 낱말로 표현해야 좋고 동사는 색깔이 풍부해야 좋다고 했다. 색깔이 풍부한 동사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생각이 났다는 사실을 글로 표현할 때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이 날아 왔다’, ‘생각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로 쓸 때가 있다.
또 뻐꾸기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 왔을 때 ‘뻐꾸기소리가 창문을 흔들고 있다’, ‘뻐꾸기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뻐꾸기소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내리고 있다’ 등으로 쓰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문장은 더러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종일관 ‘…이다’, ‘…했다’로 종결하면 곧 싫증이 난다. 때로는 ‘…이 아닐까’, ‘…일지도 모른다’ 등으로 바꿔야 하리라. 또 ‘…한 미완의 꿈’, ‘…한 행복한 유배’ 등 명사로 끝나는 문장, ‘…허겁지겁 달려갔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등 부사절로 끝마감하는 문장도 써 봄 직할 것이다.
하나, 기교는 극약이다. 극약은 소량을 아주 적시에 써야 약효가 있다. 기교가 독자의 눈에 띄면 그 수필은 이미 졸작이 된다.
둘째로, 수필은 진솔해야 한다. 정직하여 꾸밈이 없고 솔직하여 거짓이 없어야 할 것이다.
보면 본 대로 느끼면 느낀 대로 생각나면 생각난 대로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수필처럼 쉬운 글도 없으리라. 그래서일까. 요즘 너나없이 글줄이나 썼다 하면 수필이라고 지상에 발표한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요, 하물며 수필이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선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언어로 형상화할 때 고도의 예술 감각과 정련된 어휘의 발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물일어(一物一語) 정신으로 보석 같은 어휘들이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물 흐르듯 배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또 글귀를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다 상투적이고 사무적인 어휘가 발견되면 실감나는 글귀로 바꿔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빈부가 고르지 않다’를 ‘부잣집 대문 안에는 술과 고기 냄새, 길거리에는 얼어 죽어 뒹구는 시체들’로 고쳐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소리를 눈으로 듣고 피부로 듣고 온몸과 심혼으로 들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안(眼)과 색(色), 이(耳)와 성(聲), 비(鼻)와 향(香), 설(舌)과 미(味), 신(身)과 촉(觸), 의(意)와 법(法)의 상관질서에 혼란이 온다.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착각이요 환상이다. 그런데도 이 착각, 이 환상이 어쩌다 아주 어쩌다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당송(唐宋) 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시구 한 절 중의 글자 한 자를 두고 반년 동안 끙끙거리며 퇴고했다고 한다.
春風又綠江南岸, 춘풍은 또 강남을 푸르게 한다에서 綠자를 맨 처음에는 이를 到로 했다가 마음이 들지 않아 지날 過로 고쳤다. 얼마 후 그것이 마음에 안 차서 또 들어올 入으로 바꿨다. 또 생각하고 고민 끝에 가득찰 滿으로 했다가 마침내 푸를 綠으로 고쳤다. 얼마나 진지한 자세인가.
이렇게 갈고 닦은 문장을 만난 독자들은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 감동은 차츰 크게 울려퍼져 독자의 가슴에 심리적인 스파크 현상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의 조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으로 된 수필은 다 읽고 난 뒤엔 자신도 모르게 책을 손에 쥔 채 먼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길 것이다. 이것이 수필의 큰 울림이요, 긴 여운이요, 아름다움이 아닐까.
셋째로 수필 구성에는 틀이 없는 듯 있어야 하고 있는 듯 없어야 할 것이다. 이 모순의 실체를 체득해야 비로소 수필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의 틀은 한시(漢詩) 작법의 기(起), 승(承), 전(轉), 결(結)을 본받아 응용할 수도 있다. 제일의 기구에서 시상을 제기하여, 제이의 승구에서는 기구에서 제기된 내용을 받아 전개시키고, 제삼의 전구에서 시의(詩意)를 한번 돌려 전환하고, 제사의 결구에서 전시의(全詩意)를 종합하여 전편을 거두어서 결말을 맺는다.
때로는 논리학의 연역법이라든가 귀납법을 문학적으로 풀어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때로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상 차원의 심화과정을 따라 수필을 창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한 시인은 발상 차원의 심화과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①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②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③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본다. ④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⑤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⑥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실상을 본다. ⑦나무를 흔들고 있는 그 자체(본질)를 본다. ⑧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①에서 ④까지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객관+주관, ⑤에서 ⑧까지는 마음의 눈으로 본다. 주관이다.
수필 창작에는 상상력도 동원돼야 할 것이다. 상상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하여 마음속에서 그려보는 심리활동이라 하겠다.
그 심리활동에는 접근연상(接近聯想)도 있고 유사연상(類似聯想)도 있다. 접근연상은 진주 촉석루를 보면 논개가 생각난다는 경우이고 유사연상은 원앙새를 보면 부부의 다정한 금슬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하겠다.
수필의 틀 속에는 동식물이나 사물을 인격화하는 의인법(擬人法)이 등장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동식물이나 사물의 얘기가 곧 인간의 얘기로 비유될 수 있는 탁물법(托物法)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석탄은 검은 금이다.’ 혹은 ‘물은 돈이다.’와 같이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다만 겉으로 비유하는 은유법(隱喩法)이나 ‘보름달 같은 얼굴’, ‘수줍은 처녀인 양’처럼 …같이, …인 양, …처럼 등 직유법(直喩法)도 적절히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격 높은 유머며 재치 있는 위트도 있으면 작품이 돋보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다. 형식이나 틀에 너무 얽매이게 되면 허구가 끼어들게 되고 참신한 개성미를 잃게 된다. 뛰어난 예술작가는 항시 어떤 격률을 따르면서 파격을 즐겼다. 수필도 역시 파격의 문학이다.
그 파격의 수필 속에 소설인 양 테마가 있고, 시처럼 이미지가 있고, 철학같이 깊은 의미가 있고, 평론인 듯 비평이 있고 수필다운 무드가 있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수필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한 편의 수필은 한 덩어리의 유기체이다. 전체와 부분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조그마한 자구 하나의 이동이나 증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돌탑에서 돌 하나 빼내면 탑이 무너지듯이. 한 글자 한 구절 중에도 전편에 흐르고 있는 주제의식이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수필의 내용은 참신하고 비범하고 뛰어나야 할 것이다. 수필의 내용은 소재이다. 삼라만상과 생활주변의 모든 잡사가 모두 소재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주제가 필요로 하는 소재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선택된 소재가 곧 제재(題材)가 아닌가.
이 제재가 참신해야 할 것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면 족하다. 독자가 다 알 만한 사리를 따져 나가는 수필, 산천초목을 찬미하고 달과 구름을 예찬하는 수필은 아무리 뛰어난 미문으로 꾸며 봐도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흔해 빠진 제재라 할지라도 작가의 자별한 정감과 깊은 사상과 예리한 통찰력에 따라서는 비범한 제재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참신하고 비범한 제재가 된 것이다.
비범성이라고 해서 유별나고 기발하고 기괴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가치, 새로운 아름다움이 작가의 에스프리와 장인다운 솜씨로 형상화되면 그것이 곧 비범성이 아닐까 싶다.
수필의 내용이 뛰어나야 된다는 뜻은 내용의 질이 천박하지 않으며 품위와 격조가 높아야 된다는 것이리라.
작가는 침잠(沈潛)이며 완색(玩索)이며 적공(積功)이며 체득(体得)으로 제재가 가진 속성을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그 속에 어떤 철학이 깔려있는지 알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슨 진실이 숨어 있는지 캐내 봐야 할 것이다.
불가에는 ‘刹說 衆生說 三世一切說’이란 말이 있다. 즉 산하대지, 일월성신이 말하고 중생이 말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 존재가 다 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것은 곧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무정설법은 무언의 언어, 침묵의 언어, 무설(無說)의 설법이 아니던가. 여기엔 허구가 없고 과장이 없고 그 자체가 진실일 뿐이다. 이것은 심안(心眼)과 심이(心耳)가 아니고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유정설법(有情說法)은 인간의 언어와 문자가 아닌가. 여기엔 언제나 거짓이 있고 과장이 있기 마련이다.
수필 작가는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선 끝없는 사색과 관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구양수는 침상(寢牀), 마상(馬上), 측상(廁上)에서의 사색을 강조한 바 있다. 현대인은 차중에서도 좋고 수시수처에서 틈나는 대로 사색을 거듭하고 고민해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끝으로 다음과 같은 금기 사항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장에 형용사나 부사가 필요 없이 많아서는 안 된다. 글재주를 가지고 빈 내용을 꾸며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두 아는 사실을 혼자 아는 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식함을 은근히 자랑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기교가 드러나서도 안 되고 달관한 척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교만해도 안 되지만 너무 겸손해도 안 될 것이다. 자기를 은연중 과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남의 말을 함부로 빌려 와서도 안 될 것이다. 유머며 위트며 풍자를 어울리지 않게 사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야비하거나 표독한 표현을 써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필 창작의 여러 기법과 기교, 제재의 참신성과 비범성, 구성의 틀과 발상법…등을 간단히 살펴봤다. 이제는 그것들을 모두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잠재의식 속에 묻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의식하면 수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수필 창작 과정에 자연스럽게 유로돼 나와야 할 것이다.
결국 아름다운 수필이란 두 팔을 벌려 껴안고 싶은 가치가 있는 수필이라고 하겠다. 그런 가치 있는 수필 창작을 위해 이 글이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사례 2; 비빔밥 같은 수필을(김학)
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어언 20여 성상이 흘렀다. 이만한 연륜이면 수필에 일가견을 가질 법도 하건만 습작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고지를 마주할 때마다 나의 재주가 모자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수필의 탈을 씌워 발표한 작품이 3백여 편을 웃돈다. 그러나 자랑스레 내놓을 작품 하나 없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필에 매달리고 있다. 나는 언제나 수필의 소재를 내 생활 주변에서 찾는다. 놓쳐버리기 쉬운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수필이라는 안경을 쓰고 살펴보면 좋은 소재가 되는 수가 많다. 소재가 발견되었다고 바로 원고지에 옮기지는 않는다. 노트에 메모를 하고서 꾸준히 자료를 모은다. 여과를 시킨다.
나는 전주비빔밥 같은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다. 갖가지 채소와 영념, 고기류를 적당히 섞은 다음 비벼야 제 맛이 나는 게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영양가로 보거나, 맛으로 보거나, 색깔로 보아도 먹음직스럽다. 수필도 그래야 하리라고 믿는다. 비빔밥을 보고 입맛을 느끼게 되듯이 독자가 수필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야 한다. 비빔밥을 먹고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듯이, 한 편의 수필을 읽고 난 독자는 그 작품에서 정신적 영양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신적 영양이란 공감대의 형성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나는 내가 짜낸 수필이 옥양목 빛깔이기를 바란다. 울긋불긋 현란한 색채로 수놓은 비단이어도 안 되고, 피부에 해로운 화학섬유 같아도 안 된다. 아무리 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담백한 맛이 담겨 있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나는 나의 수필이 숭늉 맛 같기를 바란다. 술처럼 알콜이 섞여 있지도 않고, 커피처럼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 않으며, 청량음료마냥 톡 쏘는 맛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냉수 같은 맹물이어서도 안 된다. 고소한 숭늉 맛이어야 한다. 숭늉은 아무리 마셔도 부작용이 없다. 나는 그런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다. 나는 물처럼 담담한 수필을 쓰려고 한다. 물방울이 모여서 내를 이루고, 냇물이 강을, 강이 바다를 이루듯 그렇게 매끄러운 수필을 쓰고 싶다. 물은 때로는 폭포가 되기도 하고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다독거려 결이 고운 수필을 빚고 싶은 것이다.
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하려 애쓴다. 아무리 물그릇을 기울게 잡는다 해도 그릇 속에 담긴 물은 그 나름의 특성대로 수평을 유지한다. 나는 물이 수평을 유지하려 하듯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필을 쓰려 한다.
나는 나의 수필에 진한 역사의식이 배어 있기를 바란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거울이자 내일을 살아갈 우리들의 삶의 지침인 까닭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고, 현재 없는 미래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역사의 강물은 내가 인양하고 싶은 수필이 무한대로 고여 있는 소재의 보고(寶庫)다. 나는 역사의 강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수필을 낚아 바구니를 채워 나가려 한다.
나는 가능한 한 쉽게 수필을 쓰려 한다. 현학적인 중수필은 나의 취향과 걸맞지 않다. 간결하면서 템포가 빠른 경수필에 호감을 느낀다. 공감도가 높은 소재, 이해하기 쉬운 언어, 간결한 문장으로 수필을 쓰고 싶다. 나는 제목부터 쓰고서 내용을 엮어 가지는 않는다. 내용을 마무리 지은 뒤에 알맞은 제목을 붙인다.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가 설정되면 그 주제에 필요한 소재를 장보기하여 수필이라는 식탁을 꾸민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감이 가는 산뜻한 제목을 추려낼 수가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수필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쓸수록 어려운 게 수필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수필을 나의 반려로 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나의 수필이 틀스럽게 승화되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영양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례 3; 외통수 찾기(강호형)
시원찮은 글쟁이는 대개 편집자에 약하게 마련이다. 모처럼 청탁서를 받았을 때, 요구하는 내용에 제약이 없으면 황송하기 그지없지만, 감당하기 벅찬 주제로 명토가 박혀 있고 보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사양하자니 언제 또 올지 모를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망설여지고, 써 내자니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수필작법’을 공개하라는 이번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문학을 전공하지 못했고, 흔한 문화센터 강좌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명색만의 작가이고 보니 무슨 ‘작법’ 같은 것이 따로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청탁에 묵비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글쟁이의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살까지 할 필요야 있나, 맞아 죽든 굶어 죽든 편집자, 아니 독자의 손에 죽자. 수필은 솔직하게 써야 한다니 나도 수필가의 미덕을 십분 발휘함으로써 ‘정상 참작’의 관용에나 기대를 걸어 보자.
1. 물속에 뛰어들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듯이 수영을 배우려면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안방에서 수영 이론을 십 년 배우는 것보다 직접 물속에 뛰어들어 일 년 텀벙거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그 속에 뛰어들어 수필과 친해져서 자꾸 읽고 쓰고, 쓰고 읽고 하다 보면 작법은 저절로 터득되는 것으로 믿고 실천하고 있다.
2. 당의(糖衣) 입히기
나는 어렸을 때 몸이 약했기 때문에 약을 많이 먹었다. 대개가 탕관에 달인 한약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날 만큼 써서 안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면 엄마는 코를 잡고 할머니는 퍼 넣는데 억지로 먹이는 게 분해서 마지막 한 모금이라도 뱉어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무리 좋은 약도 맛이 고약해서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수필도 마찬가지. 내용이 아무리 좋은 마음의 양식이라도 재미가 없어서 읽지 않으면 인력 손실, 지면 낭비일 뿐이다.
요즘은 당의를 입힌 약들이 나와서 아이들도 잘 먹는다. 그렇다고 약효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착안해서 수필에도 당의를 입히자는 것이 나의 작법이다.
3. 감정 잡기
노래를 감칠맛 나게 부르려면 감정부터 잡아야 한다. 슬픈 노래는 슬픈 감정, 기쁜 노래는 즐거운 감정을 잡은 다음에 불러야 그 정서가 제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내 자신이 먼저, 내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에 젖도록 감정을 조절한다. 담배도 피우고 차도 마시고 그래도 안 되면 팽개치고 나가 술을 곤드레가 되도록 마실 때도 있다.
4. 목청 가다듬기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대개 목청이 좋다. 미성이면 미성인 대로, 허스키면 허스키로서 듣기에 편하고 아름답다. 다만 그 목소리가 그에 적합한 노래를 만났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동백 아가씨」는 역시 이미자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 나고, 「삼각지 로타리」는 배호의 음성으로 들어야 제격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문체를 클래식 톤으로 할 것이냐, 육자배기가락으로 할 것이냐를 생각한다. 글쟁이에게 있어서의 문체는 가수의 목소리에 해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피천득의 「오월」과 김소운의 「목근통신」류의 수필이 문체가 서로 바뀌었을 때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5. 어깨 힘 빼기
권투나 야구 코치가 선수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어깨에 힘을 빼라는 것이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 KO나 홈런은커녕 헛손질이나 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그 강박관념에 짓눌려 제 실력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중들에게 멋진 폼을 보여 주겠다는 생각도 마찬가지. 그래서 큰 게임에서는 잘 나가는 신인보다 한물 간 백전노장이 오히려 제 몫을 해 낸다는 말도 있다. 산전수전 다 겪는 동안 욕심은 금물이라는 진리를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깨의 힘부터 빼자고 다짐한다. 아는 만큼만 쓰자, 능력대로만 쓰자, 겉멋 부리지 말자….
6. 외통수 찾기
장기를 두다 보면 외통수에 걸려 지는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물론 졌을 때는 억울하고 이기면 통쾌하다.
‘강호형의 수필은 마지막 한 줄로 외통수를 둔 것이 많다….독자는 여기서 꼼짝할 수 없다….’
황필호 교수가 내 첫 수필집 발문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외통수란 본래 수가 달리는 쪽에서 더 밝히게 마련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15장 원고에 14장을 단숨에 써 놓고도 마지막 한 장을 쓰는 데는 2, 3일이 걸리는 수가 있다. 패색이 짙은 장기꾼이 외통수나 찾는 꼴이다. 그러나 외통수도 수는 엄연한 수다. 수필에도 외통수가 있어 마지막 한 줄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두어 볼 만하지 않은가. 황교수의 말이 과찬인 줄은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상당히 고무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도 마무리가 좋아서 긴 여운을 남기는 수필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상 나의 작법 아닌 작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편집자의 동정을 구하는 바이거니와 그래도 안심할 수가 없어 한마디만 더 고백하겠다.
요즘 의사들의 파업으로 난리를 치렀다. 이런 난국이라면 돌팔이 의사의 처방도 어지간히 먹혀들지 모르지만,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건재하고 있는 수필계에서 이따위 엉터리 처방에 현혹되어 사태를 그르치는 초심자가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자신 있게 강조할 수 있는 처방이 있다면 많이 읽고 많이 쓰자는 것이다.
사례 4; 반환점 없는 여행길(임득호)
누구나 한번쯤은 먼 길 떠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의 거추장스런 짐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한적한 시골이나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만남의 인연을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 아닙니까?
그래서 주말이면 너도 나도 길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는가 봅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끼리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입과 눈이 즐거우면 금상첨화겠지요. 먼 훗날 사람들은 오늘을 입에 올리며 삶의 무료함을 달랠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은 노후가 덜 외로울 겝니다. 그래도 여행은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곤하면 돌아갈 곳이 있으니 한결 여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우리 인생은 어떤가요?
반환점 없는 길을 따라 떠나야 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 길은 쉴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일방통행입니다. 사전답사도 절대 불가랍니다. 그러니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생의 출발점에 세워졌으니 예행연습이라도 하게 해달라며 떼를 쓸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일행 중 질퍽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짜증스러울 때도 있을 테고 또 나 자신이 낙오자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조심스러워하며 서둘러야 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여행길을.
그래도 짬이 나면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물론 잡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명상에 잠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는 스케치하기에 바쁘고 차창에 스치는 풍경에 취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알찬 여행을 해보겠다는 마음은 다를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의 일부분을 메모하는 것으로 보냅니다. 물론 남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을 꼼꼼히 적어두었다가 누군가의 귀를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에서입니다. 아니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고 싶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변이 신통치 않으니 어쩝니까. 책상서랍에서 원고지를 꺼내는 것이 나의 버릇이 될 수밖에.
산다는 게 어디 별건가요. 부모가 다 생존하여 계시고 형제들이 아무 탈 없이 있으면 그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것이 또한 즐거움 아닌가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지닌 것이 으뜸이요, 자기 적성에 맞는 일거리까지 찾았다면 살맛나는 인생 아닌가요?
나만의 시간. 내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기고 누군가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시간에 그리운 사람을 대하듯 원고지와의 만남을 즐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요즘은 컴퓨턴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즐거움이 반감하기는 했지만….
여행하다 보면 하늘을 지붕 삼을 때가 있는가 하면 비단이불 덮고 잘 수도 있듯이 길을 걷다 보면 개똥을 밟을 수도 있고 개천을 건너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좋은 길벗이라도 마나면 어렵고 먼 길도 힘들이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것들을 꿰어 모아두면 나만의 여문 꿈이 되려니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개꿈으로 끝나더군요. 그래도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아주 소중한 만남이라 생각하며 실망한 적은 없습니다.
원고지를 펴고 앉으면, 그때의 그 만남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요. 그 정을 벌써 잊은 건 아닐까, 아니면 잊었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펜을 들면 봄볕에 아지랑이 피어나듯 합니다. 그 마음을 엮어 원고지의 눈금을 채워나가면 지난 세월의 아픈 추억도 그리움으로 되살려내고 맙니다. 그리고는 아주 잊은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설렘이 조금씩 엷어져 간다거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세월 탓도, 나이 탓도 아니라 어쩌면 너무 긴 인생여정에 피로가 겹쳐 지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작업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가슴이 열리고 운이 트이며 성숙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생각해 보세요. 누구나 ‘응애’ 울음소리를 터트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요?
어느 글벗이 ‘언제 글을 쓰느냐’ 물을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좋은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푸념을 하고 싶은데 말을 들어줄 상대가 없을 때, 좋은 인연을 맺고 싶은데 쑥스러워 말문이 잘 안 열릴 때, 말로 얘기하자니 어눌해서 표현이 잘 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이건 건네야 하겠는데 숫기가 없어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을 때, 아니 오른쪽 왼쪽 눈을 번갈아 쳐다보며 얘기를 주고받고 싶은 인연인데 막상 얼굴을 대하면 눈의 초점을 어디에다 두고 얘기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도 나는 책상에 앉아 한동안 원고지와 눈 맞춤을 한다.’라고.
글을 재미있게 못 쓰는 건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니 실망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변변한 글 한 편 쓰지 못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 진정한 눈 맞춤의 인연이 없어서이려니 자위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가까이 와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심기일전하여 비록 보잘 것 없는 만남이더라도 질투, 노여움, 그리움, 사랑을 한 바구니에 담아두고 보석처럼 다듬어가며 비단 한 필 짜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으니 이제 내면의 ‘나’를 찾아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글의 소재가 부족하면 찾아 나서라 했거든요.
쌈박한 소재의…누구…없어요?
사례 5; 팽배롱떡갈나무(安明洙)
팽배롱떡갈나무는 내 수필의 발원지이다.
팽나무, 배롱나무, 떡갈나무를 합성하여 나는 팽배롱떡갈나무라 부른다. 내가 만든, 나에게만 의미가 통하는,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나무 이름이다. 지난날의 회한과 지금 이 순간의 어지러움이, 어쩌면 미구에 다가올 체념과 정관(靜觀)이 포도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수필을 생각하는 시간, 그 정밀(靜謐) 속에서 팽배롱떡갈나무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가교(架橋)가 되어 내 글의 주제와 소재를 밝혀준다.
배롱나무(나무백일홍)의 웃음은 가벼운 떨림으로 온다. 소년 시절에 나의 또래들은 소를 뒷동산에 몰아다 놓은 다음 놀이동산에 모여 진을 치고 놀았다. 산자락에 아름드리 해송나무숲이 두꺼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고샅에 못생긴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무껍질이 매끄러운, 빨간 꽃이 송이송이 피어 있는 백일홍에게 우리들이 보내는 첫인사는 ‘웃기기 장난’이었다. 굵은 밑둥치를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싹싹 긁기 시작하면 간지럼에 약한 백일홍 우듬지가 가늘게 떨면서 웃는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도 희로애락을 안다. 백일홍은 유별나게도 웃음을 사랑했다.
배롱나무는 우리들의 목마(木馬)였다. 세 발 가지 사이에 올려놓은 납작한 돌덩이에 앉아 힘껏 굴리면 우리들의 의자는 위아래로 춤을 춘다. 아무리 높은 회장님의 걸상이라 할지라도 상하로 움직이는 법이 없으니 배롱나무 의자는 천하제일의 목마였다. 목마 타기가 시들해지면 이야기꽃이 핀다. ‘꼬꾸랑 할마시, 꼬꾸랑 강아지, 꼬꾸랑 지팡이, 꼬꾸랑 깽깽…’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옛날이야기는 오늘 내 수필에 나타나는 골계미(滑稽美)의 뿌리가 되어 있다. 배롱나무 목마에 앉아 무시로 낄낄거렸던 그 향기로운 낭만이 현대화되어 골계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다.
수필의 아름다움은 우아미, 비애미, 숭고미, 골계미에 있다고 한다. 한국 수필가들은 우아미와 비애미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편향된 감상적(感傷的)인 정감은 오늘의 수필가들이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숭고미를 창출하기에는 역부족인 작가들이 이런 작풍(作風)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수필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마디 언어는 무엇이오?’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즉석에서 ‘내 수필의 진수는 골계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수필 쓰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골계미 창출은 한국 수필이 풀어야만 할 중차대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수필의 3할 정도는 배롱나무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수필작품에서 일부분을 유머로 처리하는 것은 크게 어려울 바 없으나 “별주부전”처럼 작품 전체를 골계문학으로 저작하려면 상당한 용기와 해박한 지식, 확대된 은유인 알레고리 수법이 필요하다. 디지털시대인 21세기에는 골계미를 구사하지 않고는 수필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빨리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육군 이등병, 일등병 시절, 떡갈나무는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처럼 내 가슴 속에 큰 깨달음을 심어 주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자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이라고 생각했다. 장미의 내재율과 그 고독,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 난의 고고한 품격이 제일인 줄로만 알았다. 졸병 계급장을 달고 위병소에서 보초근무를 하면서 일 년 내내 아름다운 강원도의 산야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강원도의 봄은 남루(襤褸), 그것이었다. 산 계곡에 남아 있는 잔설(殘雪)은 기워도기워도 떨어지기만 하던 누더기였다. 산하가 누더기를 벗어 던지는 순간 신록은 날망을 향하여 정동진 앞 바다의 파도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고로쇠나무는 혈관이 팽팽하도록 수액을 빨아올려 잎을 뻔쩍이게 하고, 잎과 꽃이 함께 피는 떡갈나무는 열여섯 소녀의 귀밑머리 같은 솜털을 송송 달고 따사로운 햇살을 희롱하며 사랑싸움을 즐긴다. 물푸레나무의 그 싱그러움하며….전선의 봄은 신록의 아름다움이 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진실을 내게 외치듯 알려주었다.
여름의 불볕이 한풀 꺾이고 하늬바람의 냉기가 나뭇잎을 흔들면 영동의 산야는 불꽃이 되어 탄다. 환절기의 아픔은 나무를 미치게 하여 토악질하듯 온갖 색소를 토해낸다. 서산을 넘어가는 태양이 벌겋게 낙조를 만들 듯이 낙엽의 임종도 최후의 걸작품으로 나타난다. 신록의 싱그러움보다 뿌리를 찾아가는 영혼의 불길이 한결 더 아름답다는 자연의 섭리를 낙엽은 침묵으로 말한다. 장엄하게.
초소 옆에 엄청나게 큰 떡갈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겨울이 되면 떡갈나무는 옷을 홀랑 벗어버리고 나목(裸木)이 되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나무의 본질은 독목(禿木)에 있는 것이야. 신록이나 낙엽은 위선이고 껍데기란 말이야.’라고 외치면서…. 초병인 나는 이따금씩 된바람을 맞아 울고 있는 끝가지를 쳐다보곤 했다. 가끔은 흰 구름 한 자락이 의연히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흰 구름은 적멸(寂滅)을 안고 있었다. 발이 시려 동동 굴리면서도 나는 적멸을 읽으면서 인생을 생각했다. 그때 읽었던 사색의 파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을 때린다. 내 수필의 장엄미는 나목의 아픔과 적멸의 파편에서 온다.
고향집 뒤꼍에 팽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2백 년은 족히 넘었음 직하다. 이 나무는 오동나무 세 그루와 큰 대나무 밭을 거느리고 있는 장수였다. 그는 댓잎의 율(律)을 부추겨 수런거리게 하고, 잘 익은 오동나무 열매로 하여금 이 땅의 토속음(土俗音)인 여(呂)를 울리게 했다. 율려가 화음을 이루어 가을의 소리를 흘리는 고향집 뒤꼍은 내 정서의 요람이었다. 게다가 이 포구나무는 내 유년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 결 좋은 나뭇가지에 칼끝으로 내 이름과 그 옆에, 이제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소녀의 이름을 새기곤 했다. 그 음각 문양에 속살이 차서 지금은 덕지덕지 상처가 되어 굳어 있다. 이런 상흔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면 고향의 풍경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농경문화의 애환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빨간 고추가 널려 있는 지붕에 고추잠자리는 맴을 돌고, 팽나무 낙엽이 시름없이 떨어지던 가을날의 적막이 애인처럼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이런 시간에는 댓잎의 수런거림과 오동잎 구르는 소리가 짙은 향수병이 되어 내 가슴을 에이게 한다. 이렇게이렇게 팽나무의 추억은 내 수필의 행간에 우아미가 되고 비장미가 되어 나타나고 있다.
팽배롱떡갈나무는 나의 수필을 미학의 배경으로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