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도 가끔 싸운다. 비틀스과 맞냐 비틀즈가 맞냐, 키아누 리브스가 맞냐 키에누 리브스가 맞냐, 니가 맞냐 내가 맞냐... 그래서 각 매체의 교열자들이 나름의 인명 표기 원칙을 세우고 이를 많은 기자 백성으로 하여금 회람케 하는 바, 글쓴이 역시 'FILM2.0 인명 표기 리스트'라는 걸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비틀즈는 비틀스로, 키에누 리브스는 키아누 리브스로, 데미 무어는 드미 무어로, 애쉴리 주드는 애슐리 저드로, 킴 베신저는 킴 베이싱어로 써야 잘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 외국 배우나 감독의 이름을 최대한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인 것이다. 이를 위해 본지 교열팀은 외국 사이트에 실린 동영상을 일일이 찾아 네거티브 스피커, 웁스, 네이티브 스피커의 발음을 반복 청취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호아퀸 피닉스 혹은 조아퀸 피닉스라 부르던 작자를 와킨 피닉스라 고쳐 부르고, 존 쿠삭 또는 존 쿠색이라 쓰던 표기를 존 큐잭이라 바로잡게 된 것은 전적으로 본지 교열팀이 밤낮으로 '리슨 케어플리'한 덕분이다.
킴 베신저를 킴 베이싱어로 바꿔 부르는 것 역시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현하려는 노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 크레딧에 등장하던 '킴 베신저'라는 표기는, 몹시 '독해的' 삶을 살던 예전 분들이 원어 발음은 들어보지도 않고 각 알파벳의 한글 표기를 기계적으로 조합하는, 지극히 훈고학적 번역을 일삼은 결과다. 외국애들은 그렇게 발음 안 한다. 고로 킴 베이싱어를 주장한 당신이 이겼다...고 말하고 싶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완전 무결한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해당하는 문제다.
사실 현지 발음에 정말 충실하자면 비틀스를 비를스로, 이완 맥그리거를 유완 맥그레거로 써야 옳다고 교열팀이 그랬다. 또 로버트 드 니로는 라벗 드 니로, 줄리아 로버츠는 쥴리아 라버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레오날도 디캐프리오로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금까지 써온 표기와 너무 달라 헷갈리기 때문이다. 둘째, '외래어 표기법(문교부 고시 제85-11호)'이 규정하는 표기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셋째, 그렇게 혀 굴린 발음으로 써 버릇하면 독자들이 "재수 없어!" 하기 때문이다. 세번째가 가장 큰 문제라면 까짓것 날아오는 돌팔매를 기자들이 감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앞의 두 이유가 결정적이다. 실제로 어느 질문 검색 사이트에는 "킴 베신저와 킴 베이싱어가 같은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이 올라 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어조로 말이다. 하물며 킴 베이싱어가 이럴진대 유완 맥그리거가 야기할 혼란은 상상하기도 싫다(사실 난 드미 무어도 아직 낯설다).
그래서 FILM2.0은 현지 발음에 충실한 인명 표기가 지금까지 널리 통용돼온 표기 관행과 크게 다를 경우, 가급적 기존 관행을 인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라이언 필러피 대신 라이언 필립이라고 쓰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역을 맡은 엘리야 우드는 국내 모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자기 이름이 '일라이저 우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사실이 기사로 알려진 이후 FILM2.0 역시 그를 일라이저 우드로 표기하기로 했다(혹 바뀐 표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독자는 일라이저에게 직접 '컴플레인'하기 바란다. ㅋㅋㅋ). 외국 사람 소원이라고 다 들어주는 건 아니다. 한국 축구 국가 대표 감독 코엘류는 자기 이름을 꾸엘류라 불러 달라고 강조했지만 아무도 그리 하지 않았다. 그가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절대 반지를 운반하는 중책을 맡고 있지 않아서 무시하는 게 아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는 된소리가 첫 음절이 될 수 없다'고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외래어 표기의 원칙에 따라 레오날도 디캐프리오 역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인 이름 한글 표기는 원칙과 관행 사이를 떠도는 '경계인'의 운명이다. FILM2.0만 해도 킴 베신저를 킴 베이싱어로 고쳐 부르며 김치 발음에 '빠다'를 발라주는 한편, 라이언 필립을 라이언 필러피로 바꿔 부르지 않음으로써 국가적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보국 안민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니 외국 배우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기준? 굳이 말하자면 잉글리시에 호도되지 않으면서 콩글리시에 경도되지 않는 것. 그게 기준이라면 기준일 것이다.
현지 발음이라니, 좁은 제 소견으론 영어만 해도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 카나다에서 나오는 명칭들은 또 모두 다르게 써야겠네요. 발음들이 워낙 달라서 말이죠... 예) Sir Conan Doyle 미국: 썰 코난 도요 영국: 써 코난 도일....아무래도 이런 논쟁은 계속될듯... 도마도 대 토마토! 누가 이길것이냐????
첫댓글 외국인 이름 표기... 번역가 못지않게 기자들도 골치 아프겠어요.
현지 발음이라니, 좁은 제 소견으론 영어만 해도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 카나다에서 나오는 명칭들은 또 모두 다르게 써야겠네요. 발음들이 워낙 달라서 말이죠... 예) Sir Conan Doyle 미국: 썰 코난 도요 영국: 써 코난 도일....아무래도 이런 논쟁은 계속될듯... 도마도 대 토마토! 누가 이길것이냐????
전 제친구 Mark puresevic (퓨레세빅) 에게 항상 푸레세 비치(bitch)라고 놀리는데....할부지가 유고사람이라
교열팀의 '리슨 케어플리'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는 된소리가 첫 음절이 될 수 없다' - 이런 황당한 규칙이 있나?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는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이상한 외국어를 구경할 수 있는 "영광"이 있습니다. // 실제로 외국인들에게는 전혀 안 통하는........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주 아주 잘 통한답니다.
그냥 영어로 표기하면 안되는 건가염? 아...그러면 일본어도 그래야 될꺼구...중국어도...불어도.... 머든지 깊이 들어가면 힘들어 지는군....텨텨텨...
저 이거 잡지에서 읽고 스크랩 해 놨더랍니다. 넘 웃기죠? 규칙도, 실제 발음대로 쓰 놓은 표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