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가수의 1인자였던 크리프 리처드는 자기 생활을 바꾸게 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처럼 알려진 가수는 돈도 있어 날마다 즐겁게 살아갈 터이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가수로서 인기가 절정에 올라 있던 8, 9년 전에는 안하무인이었어요.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십자가의 희생이 내 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믿기까지는 내 인생이 만족스러웠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지금 나는 분명히 단언할 수 있어요. 그리스도는 단지 나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을 뿐 아니라, 나에게 푸짐한 앞날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변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물리적 변화요, 다른 하나는 화학적 변화이다. 물리적 변화는 물에다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올라간다. 그 수증기에다 냉기(저기압)가 가해지면 다시 물(비)이 되어 내려 떨어진다. 그 물을 섭씨 영도 이하로 차게 하면 냉동되어서 딱딱한 돌같은 고체가 된다. 같은 물인데 꽁꽁 얼어붙은 강 위로는 탱크가 지나가도 문제 없는가 하면 그 얼음이 녹으면 강물이 되어 모든 물체가 강물에 빠져 가라 앉는다. 이 물리적 변화의 특징은 언제든지 조건만 맞으면 원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러나 화학적 변화는 전혀 다르다. 가령 나무를 불로 태우면 나무는 온데 간데 없고 재만 남는다. 연기로 그 형체는 사라진다. 그 연기와 재를 가지고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원래 타기 전의 나무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기독교의 거듭남은 물리적 변화가 아니다. 화학적 변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완전히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성령의 맹렬한 불에 생태적 인간인 옛 사람은 완전히 타서 그 자취를 감추고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새 생명, 새 사람이 되어 다시 옛 사람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변화인 것이다. 즉, 깨지고 찌그러져 못쓰게 된 놋 그릇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 쇳물이 되어서 예수님 형(form)에 부어 새 그릇이 되어 나오는 격이다.
당신은 진정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Form에 부어진 새 그릇이 되었습니까?
[요 3:7-8]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길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구원과 중생 본문 : 요3:3
성도는 두 번의 출생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한번은 어머니의 배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난 육체적 출생을 경험했으며, 또 한번은 성령의 거듭남의 역사를 통해 이뤄진 영적 출생을 경험한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 출생이란 인간의 의지나 노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서,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신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각자는 이러한 영적 출생인 중생의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우리의 삶에서 중생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때로 자신의 영적 출생에 대해 의심하거나 회의하는 성도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도하신 우리의 중생 곧 거듭남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이며,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켜 놓은 것이겠습니까?
1. 전인격의 변화를 의미함(고후5:17)
1)부패한 옛 자아가 무너짐 거듭나기 전 인간의 실상은 흉악한 죄인 그 자체였습니다. 실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전혀 설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시어 거듭남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베푸실 때에, 먼저 우리 속에 내재된 부패한 옛 자아를 무너뜨리십니다. 왜냐하면 죄악된 옛 자아를 그대로 방치해 두고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할 수가 없고, 중생의 역사에 결코 동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녕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당신과 교제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항상 거룩을 요구하십니다(레11:44,45).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될 죄인들에게 내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절대 요구되는 것입니다.
2)전인격이 새로워짐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의 변화나 조금의 행동변화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온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뒤흔들어 놓는 전인격의 대 변혁이요 전 영혼의 대개혁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거듭난 영혼은 지금까지의 죄악된 삶에 대해 철저히 통회, 자복하는 기회를 맞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재조명해 보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전인격이 변화한 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삶에서 자신과 세상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그리스도 주 예수만이 살아서 역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갈2:20). 만약 이러한 변화의 흔적이 없다면 그의 거듭남의 진실성을 재고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 초자연적인 변화를 의미함(요3:8)
1)자연적이고 윤리적인 변화가 아님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중생했는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역사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남의 역사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육체적이고 자연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윤리적으로 차츰 선한 존재로 변화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이 주도하시는 초자연적인 변화로서, 인간의 감성과 이성이 경험하고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이 친히 주도하시는 초월한 역사입니다.
2)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변화함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결단이나 의지에 의해 이뤄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신령한 일이요, 불가항력적인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편에서 거듭나기로 계획했다거나 또는 거듭나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희생을 감래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직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죽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선물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신분을 갖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거듭남의 체험을 한 우리 성도는 어떤 경우든 자신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된 사실로 인해 자랑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 절대 취소되지 않는 변화를 의미함(요5:24)
1)한번으로 영원히 변화함 구원받은 성도 가운데는 때로 범죄하거나 타락함으로 인해 자신의 구원이 상실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이 사건은 결단코 취소되거나 없었던 일로 되돌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거듭남의 역사는 인간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주도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일을 이 세상 그 어떤 세력이 방해하겠으며,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삼킬 수 있단 말입니까? 따라서 우리는 매일 사도 바울처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인간의 실패에도 불변함 거듭남의 역사는 인간 개개인이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생에 한번 경험할 수 있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때로 범죄할지라도 다시 거듭남의 체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인간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각 개인에게 베풀어주셨던 거듭남의 역사는 결단코 변하지 않고 그 효력이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오늘 우리는 죄 많고 실족하기 쉬운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고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나 영원한 생명을 덧입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는 비록 우리가 범죄하고 실패할지라도 결코 취소되거나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자고하거나 게으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대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